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지음, 강태경 옮김 / 새문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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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 (↑) 보다 훨씬 번역이 자연스럽다.

 

 

 

 

 

2012년 국립극단 공연을 위한 대본으로 번역되었던 것을 다듬어 출판된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일부 페이지는 비교하여 보았는데, 번역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읽힐 수가 있구나 새삼 느꼈다.

본문은 물론이고, 본문에 대한 주석이 그 페이지 바로 아래 달려있는데, 이런 경우 종종 본문보다 주석이 더 어렵고 장황스런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주석도 주석이고, 안티고네와 관련된 배경 해설이 도움이 많이 된다. 어쩌면 안티고네 본문을 위해서보다 해설과 주석을 읽기 위해 본문을 읽어야 했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

그리스 비극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오이디푸스 왕> 에 비해 <안티고네>가 가지는 의의는 무엇일까에 대해 역자는 '안티고네의 여백과 침묵'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고대 아테네인들에게도 열광적 반응을 얻었지만 19세기 유럽인들을 더욱 매료시켰다는 이 안티고네는 단순히 근친상간에 의해 태어난 자식들의 자기파괴적 욕망이라고만 하기엔 여백속에 묻혀진 의미가 더 있지 않을까. 역자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럽 철학의 패러다임 속에 함축되어 있는 "인간의 타락"이라는 주제와 연관지어 보고 있다. 인간조건은 인간정신 내외부의 억압에 대한 투쟁에 의해 결정되는 어떤 것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다른 여러 철학자에 의해 해석의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그 대부분이 헤겔의 안티고네 해석의 변주와 반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겔의 해석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한다. 헤겔은 이 작품을 "숭고미에 있어 가장 뛰어난, 모든 면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이 빚은 최상의 예술작품'이라고 극찬하였다는데,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충돌은 신성하고 내향적이며 내적 감정에 호소하는 가족애가 국가의 권리와 충돌하는 것이며 안티고네로 하여금 오빠의 장례를 금지시킨 크레온 왕은 폭군이 아니고 또 다른 하나의 윤리적 힘을 구현하는 것이다. 크레온으로 대변되는 이 윤리적 힘은 국가의 법과 통치의 권위는 존중되어야 함을, 위법은 형벌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안티고네 측과 함께 두개의 일면성으로, 양쪽의 타당성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했다. 정의는 이 일면성을 극복하는데서 온다고.

기원전 5세기의 비극 안티고네가 19세기에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었는지를 알 게 되고, 이제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어 지혜를 더 할 수 있을지, 고전 읽는 의미와 재미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잘 되시는 것보다

제가 더 간절히 바라는 일은 없습니다.

어떤 아들에게도 그 아버지의 명성만큼 더 큰 상은 없고

어떤 아버지에게도 그 아들의 명성만큼

더 큰 상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제발 아버지의 말씀만이 옳고

다른 모든 것은 그르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자신만이 지혜롭고 자신의 사고와 언행이 뭇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만큼 내면이 공허한 자들은 없습니다.

설령 진정 지혜로운 자라 할지라도

더 큰 지혜를 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시냇가의 나무들이 어떻게 격류를 이겨내는지 보십시오.

물의 흐름에 몸을 굽히면 나무는 살아남습니다.

하지만 완강히 버티다간

가지와 뿌리 모두 찢어지고 뽑혀버리고 맙니다.

항해하는 배의 선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폭풍이 이는데 고집을 부려 돛을 낮추지 않는다면

배는 뒤집히고 항해는 실패로 끝납니다.

아버지, 부디 분노를 가라앉히시고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나이 어린 자가 지각 있는 말을 할 때

자신을 낮춰 그 말을 듣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자요,

다른 사람의 지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57쪽)

 

 

- 크레온 왕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약혼자였던 하에몬 왕자가 아버지에게 안티고네의 선처를 바라며 간청하는 대목.

결국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하에몬은 안티고네 옆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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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5-12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는 감히 읽을 생각도 못 했습니다.ㅠ
어렵지 않던가요?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hnine 2018-05-12 19:46   좋아요 0 | URL
새문사 책으로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두껍지도 않아서 하루만에 다 읽으실 수 있어요.
고전은 역시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걸 매번 깨달아요. 쉽게 손이 안가서 그렇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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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5-1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의 리뷰 보시고...?!^^

hnine 2018-05-11 22: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
제가 유안진 시인의 시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아마 지금까지 낸 시집 거의 다 가지고 있을거예요.).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 김광현 교수의 건축 수업
김광현 지음 / 뜨인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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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축을 전공으로 하지도 않았고 그 비슷한 언저리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오로지 관심만 있을 뿐.

7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이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내용은  나 같은 일반인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저자 김광현 교수는 서울시립대와 서울대학에서 40년 넘게 건축을 가르쳐 왔고 올해 2월 정년퇴직을 했다. 이 책은 그러니까 그동안 가르쳐온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한권으로 정리하였다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든 한 우물을 오래 판 사람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한 우물 오래 판 결과 어떤 깊이와 통찰력을 주었을지, 또 한편으로는 하나의 관점에 가두어 시야를 좁게 하지는 않았을지, 아직 그 경지까지 가보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갖는 호기심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집을 왜 짓는가>라는 제목의 1장을 시작으로 건축의 역사, 건축과 사회, 건축과 도시, 건축과 제도, 정보화 시대에 따른 건축의 미래 등 10장에 걸쳐 광범위한 건축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려운 용어나 해설때문이 아니라 워낙 광범위한 내용때문에 한 페이지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건축은 그것을 목적으로 하든 하지 않든 그 결과물에서 미적인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예술, 즉 디자인의 한 분야로 보려는 경향도 있겠지만 건축은 어디까지나 실용적인 목적이 우선해야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건축이라는 것이 있기 이전부터 인간은 생존을 위해 피난 공간으로서 건축 행위를 해야했으며 그것이 건축의 근원이라는 것. 이후로 건축에는 사회는 물론이고 역사, 사상, 종교, 경제, 법률 등등 너무나 많은 요인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건축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도 여러 분야의 배경 지식이 인용될 수 밖에 없다. 즉, 건축은 혼자 있지 않다.

이 책에서도 다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여러 건축가가 거론되었다. 특히 저자가 자주 언급한 건축가는 루이스 칸이며, 근대 건축의 거장이라고 보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에서는 건축의 근본이 추구해야 하는 점에 있어서 놓친 점이 무엇인지 지적하면서 건축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실제 그 건축을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음을 강조하였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건축물들이 사실은 건축가 없는 건축으로 만들어졌다. 전문가가 설계하지 않은 건축이라는 뜻이다. 마을이 그렇고 다양한 지역의 토착 건축들이 그렇다. 하지만 전문가가 설계하지 않았다고 해서 은근히 낮추어 보면 안되는 이유는, 유행에 걸리는 것도 없고 완전히 그 지역이나 집단의 목적에 맞기 때문에 더 지혜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급변하는 현대의 정보화 네트웤은 건축의 미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건물이나 건축의 필요성이 점차 정보화 수단으로 대체되어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역이 필요 없어지고, 서점, 도서관, 학교, 모이는 장소 등이 예전만큼 필요 없게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건축의 필요성이 사라져가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단지 건축이 가야할 방향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뿐이다.

아무리 작은 건물일지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기술, 예술, 역사, 철학, 정치, 제도, 환경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건축은 그 자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라고 했다. 그리스 시대의 정치가, 영웅은 사라졌지만 그 시대의 건축물은 남아서 뭔가를 말해주고 있다.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남아 인간의 행적을 말해주는 것이 건축이 아닐까.

마음이 착한 아이는 마을의 길에서 자란다는 서양 속담을 저자도 책에서 여러 번 인용했다. 건축은 모든 사람을 가르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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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거의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데,

어떤 주는 아이가 숙제 할게 많다고 아빠와 함께 아빠 사무실에 가서 하루 종일 있다가 올때가 있다. 그런 때는 주말까지 집에서 나 혼자 밥 먹고 나 혼자 놀아야 한다.

점심 먹고 카메라 들고 동네 한바퀴 도니까 시간도 금방 가고 하루 10,000보 걷기도 거의 달성.

 

 

역시 나의 주제는 꽃과 나무.

이름도 잘 모르지만 아는 것만 적어봐야지.

 

 

 

 

 

<할미꽃>

 

 

 

 

 

 

 

 

 

 

 

 

 

 

<애기똥풀>

이름이 왜 애기똥풀인지는 손으로 만져서 비벼보면 안다.

 

 

 

 

 

 

 

 

<아카시아>

꿀짱구를 사먹어야하는데 잊어버리고 안사왔네.

 

 

 

 

 

<황매화>

 

 

 

 

 

 

 

 

 

 

<금낭화>

 

 

 

 

 

 

<이팝나무>

우리 동네는 이 나무가 특히 많다. 산에도 많고, 도로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져 있다.

 

 

 

 

 

 

 

 

 

 

 

 

 

 

 

 

 

<찔레꽃>

 

 

 

 

 

 

 

 

 

 

 

벌들이 왱~왱~

 

 

 

 

 

 

새집이 보이시나요?

 

사실 오늘 새를 찍고 싶었는데 찍으려고 살금살금 다가가면 금방 퍼더덕 날라가서 실패했다. 얼마전엔 딱다구리도 봤는데 말이다. 겨우 새집만 찍어왔지만 이것도 좋다.

 

 

 

 

지금 시각 저녁 9시 5분.

남편과 아이는 아직도 집에 오지 않고.

재방송으로 <나의 아저씨> 못 본 회차를 끼워맞추기 식으로 보았다.

언젠가 <유나의 거리>라는 드라마 이후로 처음이다 관심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로는.

이제 몇회 안남았다는데 어떻게 끝날까.

내 기억으론 아직 한번도 웃지 않은 이지안 (아이유).

과연 그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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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8-05-06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아카시아도 빨리 피었어요.
이제 저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아이 둘 떠나고나니...
무언가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한 시기죠? ㅎ
책 읽을 시간이 점점 늘어납니다.
책 읽는 취미가 있어 참 다행입니다.

hnine 2018-05-06 08:40   좋아요 0 | URL
네, 세실님. 책 읽는 취미가 있다는게 이렇게 다행스럽게 생각된 적이 없답니다.
아이가 옆에 있는 시간이 적어지고, 대화 시간도 줄어드는게 마냥 서운해서 혼자 있을 땐 아이 어릴 때 사진첩을 들춰보며 마음을 달래기도 하는데, 한편 얼마나 감사할일인가 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요. 이렇게 잘 자라서 엄마 품 떠날 준비를 하다니, 대견스럽지 않은가 하고요.
어제는 아카시아 냄새를 한껏 만끽하고 왔어요. 서울엔 아직 활짝 핀 정도는 아닌가보더라고요.
비가 부슬부슬 오네요. 어버이날도 다가오고 해서 아버지 산소에 가려던 계획을 내일로 연기했어요.
오늘 분위기 있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어제 TV에서 순천만을 소개하는 배경으로 이 시가 나왔다.

순천만은 나도 두번 가보았는데, 갈대밭과 새는 보았지만 두번 모두 대낮이었다. 이것만 해도 잊을 수가 없는데,

노을을 배경으로 한 순천만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니 뭐라 할 말을 잊겠더라. 눈이 부셨다고 해야하나? 마음이 부셨다고 해야하나.

땅 만평이 아니라 노을 만평을 가지고 싶다고 한 시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돈 없어도 살 수 있지 노을 만평.

그것을 찾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마음을 그만큼은 비워놓고 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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