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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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50분.

지하철역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대전역으로.

대전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워크샵 장소로.

길은 미끌미끌. 편한 복장을 할 수 없는 자리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은 구두.

외줄타기 하는 서툰 광대마냥 조마조마하며 하루종일 쏘다닌 내 가방에는 '에브리맨'이 함께 하고 있었다.

Everyman.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죽음이다. Everyman dies whoever he/she is.

이 책의 저자 필립 로스도 그런 뜻으로 정한 제목일까? 책에서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보석상 이름이기도 하다.

바른 생활 사나이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며 사는 형에 비해 주인공은 세번의 결혼을 하였으며 나이들어서도 여자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으며 자기에게 배려와 애정을 아끼지 않는 형에게 질투심마저 느낀다.

이 책의 시작은 이 주인공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그는 두번째 경동맥 수술을 받던 도중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에 모인 많지 않은 가족들은 그를 회상한다.

건강에 적신호가 오고, 나이가 들어감은 그냥 숫자만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던 감각, 생동감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며 죽음을 가까이 느끼는 주인공. 병원에서 수술 일정을 잡고 마지막으로 함께 지낼 사람을 찾지만 그의 주위엔 아무도 없다. 갈데 없는 그가 부모님 묘지를 찾아가 자기도 어쩌면 이곳에 묻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쓸쓸해하는 모습은 단순히 이 책 속의 주인공만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나이들어가면서 그런 상상을 해보지 않는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하는 상상.

무거운 주제인데 작가는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절제하며 필요한 만큼만 묘사하고자 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감정은 묘사된 것 보다 몇 배나 무겁고 진지하게 전달되오 온다.

 

저자에게 대들고 싶어지다.

'당신이 그렇게 일깨워주지 않아도 안다구요.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차라리 위안을 줄 것이지, 한번 더 이렇게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나요?'

- 위안? 그건 그저 위안일 뿐이지. 사실은 아니지않아?

그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거리는 미끄러지지 않아야한다는 긴장감으로 잠시 무거운 생각을 잊게 해주었다.

 

위안이 될만한 다른 책을 찾아야했다.

집에 돌아와 윤영수의 소설 한권을 바로 주문해버렸다.

 

 

 

 

 

- 2012.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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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옥이 상상의힘 청소년문고 1
이창숙 지음, 김재홍 그림 / 상상의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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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도 그랬을까? 이 작가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던 때였는데도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읽게 되리란 예감이 들었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 구독하고 있는 동시잡지에서 이 작가의 동시를 읽게 되었다.

 

프라이드 치킨

 

 

아빠도 없는데 외상값은 뭐하러 갚어?
동생 말에 할머니는 물끄러미 우리 둘을 바라보다가

말 없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

아빠 친구인 읍내 치킨집 사장 종규 아저씨도

눈이 빨개져서 안 받겠다고 하는데

할머니는 기어코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몇 장을

탁자에 놓았다

치킨 냄새에 푹 빠진 동생을 본 할머니는

손을 들고 크게 외쳤다

종규야, 여 프라이도 치킨 한 마리 튀겨 도

우리 세이 마 그거 묵고 심내서 살란다

치킨 집 창문으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아빠는 하늘에서도 술을 먹고 있을까

 

(이창숙 '프라이드 치킨' 全文)

 

금방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시를 쓴 사람이 내가 언젠가 찜 해놓았던 책 '무옥이'의 작가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렇게 이 작가의 작품과 인연이 시작되는구나, 생각하며 구입하여 읽게 된 책이다.

 

대단한 플롯이 있는 것도 아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한번 읽기 시작하니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1950년대 '허무옥'이라는 평범한 여자 아이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 어머니의 얘기라는 것을 작가 후기을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무옥이 얘기를 써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어머니가 세달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 더 미룰 수 없음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이 책. 마지막 날 까지도 이 책을 위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는 작가 어머니. 벌써 가슴 뭉클해지니 어쩌나, 후기부터 읽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계집애가 학교는 다녀 무엇하느냐는 할머니의 반대로 다니다 말고, 집안 어른의 소개로 혼인을 하지만 식만 치르었을 뿐 결혼 생활이란 겪어보지도 못한채 시집살이만 고되게 하는 무옥이. 유일한 즐거움은 혼자 깨우친 한글로 '박씨부인전', '사씨남정기' 같은 이야기책을 읽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책 속 주인공이지만 다른 사람과 그렇게라도 소통하며 기쁨을 찾는 무옥이가 왜 남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책에서 얻는 큰 위로이자 힘이 아닐까 한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때, 자신이 받고 있는 부당한 대우가 견디기 힘들때, 당장 박차고 뛰쳐나올 용기보다는 꾹꾹 참고 견딜때까지 견디는 편이었던 무옥이.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견디기만 하고 끝나는 인생을 살았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결정적인 순간에 무옥이는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길 줄 알았다.

1950년대라고 해도 여자가 학교 좀 안 다니면 어떠냐고 할 정도로 의식이 그 정도 수준이었을 때 열 여덟이라는 나이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길을 나서는 무옥이는 요즘으로 보자면 혼자 다른 나라로 오르는 비행기에 오르는 것 보다 더한 강단이 있고 자신의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행동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개인적인 꿈 뿐 아니라 사회의 움직임에도 눈과 귀를 열고 대응할 수 있었던 무옥이. 그 조용하지만 강한 움직임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크고 깊게 울린다.

 

본인 혹은 가족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쓰게 되면 자칫 늘어지고 쓰는 사람은 못알아차리는 군더더기가 많이 붙는 경우가 많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그런 함정을 알고 피해 갔다. 좋은 점은 살리고 함정은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능력, 그리고 노력이라고 본다.

 

이 작가의 이전 작품을 검색해보았다. 이 책도 읽어야겠다.

 

 

 

 

 

 

- 201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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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소설] 이창숙 작가의 무옥이
    from 프론토크 2013-01-10 11:53 
    무옥이 이창숙 작가의 두 번째 소설 무옥이를 읽었다. 식민지 말기에서 한국전쟁직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화성, 서울, 부산을 배경으로 주인공 무옥이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책을 유난히 좋아하는 무옥이. 어린나이에 시집을 가서 힘든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무옥이다. '책은 힘이 있구나,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고 기쁘게도, 슬프게도 할 수 있는 게 책이로구나' 무옥이는 책의 소중함을 다시..
 
 
 

 

나에게 그녀의 시는 문학으로서의 시가 아니라 멘토로서의 시이다. 최고대학의 대학교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유명한 수필을 쓴 수필가, 등의 어떤 명칭보다도 시인이라고 불리고 싶어하는 저자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나에게 그녀의 시는 힘들 때, 갈팡질팡할 때,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을 때 나를 붙잡아 주는 하나의 받침대 역할을 해주어 왔다.

 

 

 

운명, 조롱당하다

 

 

 

콩 심은 콩 밭에서 팥을 더 추수한다

 

 

뱁새가 황새를 앞질러서 날고 있다

 

 

인삼 밭에는 민들레가 더 무성하다

 

 

통쾌한 21세기

으로 메주 쑤고, 황새보다 뱁새, 인삼보다 민들레래.

 

아름다운 문장, 절묘한 표현, 숨겨져 있던 감성을 일깨움으로써 감동을 주기보다는,

이처럼 하나의 짧은 경구 같은 시, 이렇게도 생각해보라고 가르침을 주는 듯한 시가 많다.

 

젊은 나이엔 별로 와닿지 않았을 시.

 

콩 심은데 콩 나는 거 맞지만,

콩 심은데 팥 난다고 해도 덮어놓고 틀리다 우기지 않게 되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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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소년병 아름다운 청소년 8
김하늘 지음 / 별숲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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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상의 소설이지만 요즘 청소년들이 과연 재미있게 읽을까 싶은 책.

일단 '소년병'이라는 단어가 눈에 설 것이고, 문체에서 대하소설 느낌이 난다.

청소년 소설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역사소설의 범주에 넣는 것이 이 책의 제대로 된 소속이 될 것 같다 굳이 소속을 따져야 한다면.

저자 자신이 한국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이면서 이 정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할 정도이면 자료 조사를 많이 했으리라는 것과 완성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남의 집 머슴 노릇 하여 살아가는 형과 이 세상에 형 하나 의지하며 사는 열 네살 동생 기주. 6.25 전쟁이 터지고 형이 빨치산에 가담하여 지리산으로 떠나자 혼자 남는게 싫어 형이 있는 지리산으로 따라가 소년병이 된다. 빨치산의 생활상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제한된 독자층의 관심을 사게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시대, 사건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고서는 읽는 동안 자칫 지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재는 현대물이 아니지만 문체는 좀 더 현대적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 2012.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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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스 2017-04-11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번 6월에 청소년 토론 모임에서 읽을 책입니다. 중1이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어 좀 어렵지 않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청소년 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 소설, 이태의 <남부군>을 읽는 느낌?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역사의 이면을 알려 주고 싶어 선정했습니다. 어려운 책도 함께 읽으면 읽기가 수월하다는 ‘집단지성‘의 힘을 믿어보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hnine 2017-04-12 12:54   좋아요 0 | URL
다행이 길이가 별로 길지 않아서 중학생도 도전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역사의 이면을 알려주고자 하셨다는 의도로 정하셨다면 잘 정하신 것 같고요. 저자께서 매우 공들여 쓰신 책인 것은 제가 잘 알고 있으니 감히 권해드립니다.
 
슬로 러브 - 나를 사랑하는 시간
도미니크 브라우닝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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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to lose라는 말이 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즉 다 잃었다는 말이다.

이 책의 출발은 이런 상태에서 시작한다고 책 소개글에 나와있었다.

이미 한번 이혼의 경험이 있고, 다시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한 사이와 다름 을 정도로 오래 사귀어 온 남자 친구와 헤어진다. 다니던 잡지사도 문을 닫는다. 저자는 갑자기 아무 것도 할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 책의 내용은 여기서 출발하고 있고, 아마도 그래서 탄생하게 된 책이지 않을까 싶다.

제목 '슬로 러브', 그리고 잔잔한 표지 꾸밈새에서 예상하던 분위기는 정적이고 혼자 내면의 다스림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그런 내용이었다.

내가 제대로 읽었다면 이 책은 생각보다 유쾌하고 발랄하다. 저자의 성격 자체가 활발한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글에서 유머감각이 요기 조기서 튀어 나온다. 아들 둘은 이미 다 키워서 집을 떠나 있고 혼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감당못하여 더 생각은 우울한 쪽으로 치닫고, 바깥 출입은 더욱 더 안하게 되며, 그러다 보니 잠이 안오고, 그러다가 우연히 머핀 만드는 재미를 발견하고 밤새 머핀을 굽기도 한다. 결과는 체중이 마구 늘어나게 된다.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찾아간 주치의는 저자의 건강 상태뿐 아니라 정신적인 상태에 대해서도 간파를 하고 여러 가지 도움말과 함께 실질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차츰 마음을 다스리고, 헤어진 남자 친구에 대한 미련도 정리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다. 책의 기획상 그렇게 구성을 짰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과정이 가을, 겨울, 봄, 여름 네 번의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일어난다.

읽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도 비슷한 분위기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마도 그 책의 배경이 되는 무대가 이 책보다 훨씬 넓을 것 같지만 (이 책은 저자가 사는 동네인 뉴저지 주, 그리고 뉴욕 정도가 고작).

기대하던 내용이 아니기도 했고, 저자가 나 자신인양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그 정도가 아니어서 아쉬웠다. 저자 자신은 매우 힘든 시기였겠지만 그 시기를 특별한 내면의 성찰이나 깨달음 없이,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 시간을 보내고, 의사의 조언을 받고, 정원을 가꾸며, 네 계절 지내고나니 이미 극복한 것 처럼 결말을 맺는 것이, 나는 왜 이 책을 읽었던가 싶은 마음도 생기려고 했다.

번역이 부자연스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읽는데 꽤 질질 끌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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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11-2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느리다"고 말하면서, 정작 글쓴이 스스로 "조금 더 느리게 삶을 누린 다음" 이야기를 쓰지 못해서 그럴 수 있지 싶어요

hnine 2012-11-22 20:27   좋아요 0 | URL
저랑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은거죠 뭐.
전 좀더 심오한 뭔가가 있을 것을 기대했거든요 ^^

2012-11-23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3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