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공선옥의 글을 읽은 것은 20년도 더 전의 일인데, 이후로 한동안 그녀의 작품에 손을 대지 못했다. 그녀의 글엔 처절한 자기 경험이 있었고, 핏발이 서 있었으며, 감상의 눈물이 아니라 배고픔의 눈물, 가난의 눈물이 뚝뚝 묻어 나왔었다.
비교적 최근, 오랜만에 그녀의 여행 산문 <마흔에 길을 나서다>를 읽고는 그녀에게 한발 다가선 느낌이 들었고, 소설 <명랑한 밤길>을 읽으며 더 좋아져서는 이제 그녀가 새로운 책을 내면 안 읽고는 못 배길 것 같다.
이 책 <행복한 만찬>은 잘 차려진, 풍성한 식탁을 주제로 한 글들이 아니다 예상 되던 바이지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먹거리, 어떻게 먹어라, 어떤 음식은 먹지 마라, 어떤 특정 음식을 권장하는 책 등등 먹거리에 관한 책들이 눈에 번쩍 뜨이는 제목을 달고 쏟아져 나오는 요즘, <행복한 만찬>이라는, 트렌드와 맞지 않는 듯한 제목으로 그녀가 책을 내었다. 음식보다는 음식의 재료로 쓰이는 것들을 주로 뽑아 스물 여섯 가지의 이야기를 담아서.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아프면 미역국에 쌀밥을 한다. 아무리 잡곡밥이 몸에 좋다 해도 아플 때는 미역국에 쌀밥이 최고다....쌀은 그냥 쌀이라고 안 해지고 늘 '귀한 쌀'이라고 저절로 뇌어진다. 귀한 쌀. 쌀은 정말로 한 톨도 귀했다. 언젠가 보리밥에 뉘처럼 끼어 있는 하얀 쌀 한 톨을 발견하고 나는 내 밥에 쌀 있는 거 누가 볼세라 가슴이 막 뛰기까지 했었다. (62쪽)  
   

아무리 유명한 식당의 메뉴라 할지라도 지금도 보리밥과 수제비는 안 드시는 엄마 생각이 난다. 배 곯던 시절을 상징하는 음식, 다시 떠올리기도 싫으신 것이다.
음식. 우리의 목숨을 부지시켜 주는 음식. 저자는 한밤중에 먹는 토란탕은 출출한 속을 채워줄 뿐 아니라 말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향기로 근원적 외로움까지 위로해 준다고 했다. 이런 음식이 나에게도 있던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요즘 세대에게는 코웃음으로 밖에 돌아오지 않을 감정일까. 음식에는 그것이 식탁에, (아니 밥상이라고 하련다) 밥상에 오르기까지 그 누군가의 땀과 정성이 들어가 있음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 음식의 재료 자체도 한때는 하나의 생명이었거늘. 자신의 몸을 바쳐 다른 생명체의 에너지가 되어 주는 것에 대해 감사할 일 아닌가.

논 한마지기 없던 저자의 어린 시절. 깨밭 농사마저 가뭄에 작살이 나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엄마를 위로하고자 말라 비틀어진 외 (참외) 하나를 따다가 엄마에게 가져다주니, 엄마는 그것을 저자와 짜개어 나누어 먹으며 배시시 웃었다고 한다. 농사가 잘 안되면 울고, 어린 자매들은 엄마가 우는 것을 보고 따라 울었다고. 목숨 붙이고 살아나갈 일이 공포였다고. 이러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음식,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눈물과 함께 먹게 되는 음식이 바로 행복한 음식이고 행복한 밥상인 것. 감사하게 받는 밥상, 굶주리던 시절, 또는 지금도 지구의 어느 한 편에서는 굶주림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받는 밥상말이다.

요즘의 우리의 밥상. 비록 굶주림에서는 벗어났다 할지라도 그 시절보다 행복한 음식을 먹고 있는가, 행복한 만찬이 되고 있는가. 누구도 그렇다고 할수 없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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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7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8-06-07 15:32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고 계신거죠? ^^
다시 기분이 업 되시면 예전 처럼 자주 글로 뵐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을께요.
이 책, 읽으실만 해요 ^^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려본 경험이 있다...

오늘 내가 나에게 주는 노래로 당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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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6-0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간 소리로 들으니 더 뭉클해요.

hnine 2008-06-07 15:3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마노아님, 뭉클...그 자체여요.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말.
감탄하며 되새겨 보는 말.

더 알고 더 모른다고
자만하지 말고
비굴할 것도 없느니

그것이 결국
부처님 손바닥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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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은 공 지영의 소설 중,
절망에 빠진 주인공이 그 절망을 위로받을 요량으로
자신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보고 싶어한다.
시장의 가판에서 생선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
저런 사람들은 어떻게 매일매일 구차한 삶을 극복하면서 살아갈까.
그런데 막상 그 아주머니는
자신의 삶이 어떠한지, 행복한지, 불행한지
그런 것 생각할 틈도 없이 살더라는 것.
절망에 빠졌을 때,
절망에서 헤쳐나올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저 살아내는 것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
소설의 주인공이 알아낸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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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나에게 대들고 반항하는 모습에
어제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팠고
'내가 착각속에 살고 있었어...'라는 말만 혼잣말처럼 되풀이 했다.
오늘 아침, 운동을 하면서,
그리고 일하러 오가는 왕복 30분 여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해보니
아이의 그 모습은 바로 내가 아이에게 보여준 내 모습에 다를 바 없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아이를 다그치고 화 내고 일방적으로 야단쳤을 것이다.
반성한다.
'애정'과 '훈육'의 균형. 이것이 가정 교육의 기본인데,
우리집은 아이 아빠가 워낙 훈육 없이 애정공세만 퍼붇다 보니,
따끔한 훈육 part 는 전부 엄마 담당이 되어버렸다.
이건 남편과 얘기를 해봐야 할 부분이다.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에도 나몰라라 하고는
아침도 안 차려주고 나와버렸다.
한시간 쯤 후에 들어가보니
남편이 밥 데우고, 국 데우고, 달걀 부쳐서 아침을 해 먹인 흔적이 있다.
남편에게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
난 이래서 또 나쁜 엄마 되었고, 남편은 착한 아빠 되었네...하는 점

아이를 키우면서 내 성격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 '고집'이 수십번 꺾이고 바뀐다.

-- 아이가 제목을 대면서 찾아달래서 얼마전에 찾아준 노래이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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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06-05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글 읽고 있노라면 우리집 풍경이랑 오버랩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제 맘에 여유가 없을때 아이에게 더 짜증내고 다그치게 됩니다.
맞아요. 엄마는 거울. 님 우리 따뜻한 엄마되도록 노력해요. 님 잘 하시면서.....

hnine 2008-06-05 21:39   좋아요 0 | URL
아, 저희 집에서만 있는 풍경은 아닌거죠?
따뜻한 엄마가 되려면 어찌 해야할까요. 구체적인 행동지침 좀 한수 가르쳐주세요.

세실 2008-06-07 08:06   좋아요 0 | URL
소리 지르지 않으려 노력하기, 잔소리 하고 싶은거 참기, 아이가 말할때 하던일 멈추고 눈 맞추면서 들어주기,이야기 나누기, 자주 꼭 안아주기, 뽀뽀해주기, 함께 놀기(요즘 카드 이용한 도둑잡기,베개싸움 즐겨하고 있습니다), 칭찬해주기, 엉덩이 두드려주기.....또 뭐가 있을까요?

하늘바람 2008-06-06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분 멋지네요 비교왕

hnine 2008-06-06 06:03   좋아요 0 | URL
아닌 것 같은데 ... ㅋㅋ ^^

Arch 2008-06-06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분이 무조건적인 애정을 쏟는게 좋다고 하던데(어디서 읽었더라) 그랬더라 통신이긴 하지만. 두분 다 훈육을 하면 아이가 맘을 붙일데가 없잖아요. 아이들과의 관계만큼 그때그때 다른게 또 있을까요.

hnine 2008-06-06 20:58   좋아요 0 | URL
아이들 교육에 관한 의견이 참 다양하긴 하지요. 그래서 부모의 소신이 중요하다고 하나봅니다. 시니에님, 조카들 돌보시면서 나름 깨달으신 것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나 언제부터인가

비움과 채움의 사이에서 방황한다

덜어내고 퍼내어

넓어진 공간

그 속이 그렇게

가볍고 편안할 수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언제

다시 뭔가를 조금씩

채워넣고 있었구나

불편하다

답답하다

 

문득 생각하기를

나도 모르게 조금씩

채워넣는 것은 무엇이고

채워넣는 곳은 어디인지

 

(2008.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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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3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4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8-08-19 15:37   좋아요 0 | URL
쓸쓸한 날 감상에 젖어 쓴 글은 아니고요.
앞으로 내가 목표로 할 곳은 무엇인가 생각을 하다보니, 더 이상 뚜렷한 목표가 없더라는...
저희 엄마께서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선배 역할은 훌륭히 해주셨지만, 자상하시고 따뜻한 엄마는 아니셨어요. 그리고 그게 많이 아쉬웠어요.
직장이 있다고 해서 당당하게 세상속에 나설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자신감과 당당함은 꼭 직업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위치에 있느냐 와 관련있는 것 같지는 않더라는 것을 몇년 전에 어떤 책을 읽으면서 확~ 깼답니다.
하루 하루, 배우고 깨우치며 삽니다. 누가 마흔을 불혹이라고 했던가요. 저는 아직 아니라고 봐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구나.
20년전 보다 나아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똑같이 재현되는 장면들.
예전 자료 화면인가 들여다보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장면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20년 후는 달라야하겠기에
저리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서 외치는구나

달라질까 과연
회의만 늘어가는
못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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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5 0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5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