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화면을 보고 붙잡아두는 사이,

아래와 같이 바뀌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까진 아니지만

가끔씩 끄적거린 기록이, 기록을 남기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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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12-16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이제 15만으로 달려요~

hnine 2012-12-16 19:18   좋아요 0 | URL
옙! 다른데 눈돌리지 말고요 ^^
 
소설 쓰는 밤 랜덤소설선 11
윤영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인간의 삶이라는게 너무 빤해요. 그래서 소설도 빤해요.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어처구니없고, 살아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울고 싶고 또 살아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불쌍하고, 꼬리는 ...... 나이가 들수록 꼬리는 너무 크고 둔중해서 감히 잘라낼 엄두조차 못하지만 꼬리에게 질 수는 없어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238쪽)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평소의 윤영수라는 작가에 대한 호감과 책 소개글에서 본 위 구절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나아간다...인간이니까...

'소설'이라는 단어를 제목 속에 달고 있는 소설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 작가의 전작 <귀가도>를 읽어본 사람으로서 그게 어떤 내용이든 어떤 다른 소설과도 다른 소설일 거라는 짐작은 맞았다.

책장을 들춰보니 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각각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어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작이라고 이름 붙이기 묘한, 어쩌면 끝까지 이 여섯 이야기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모르고 읽을 수도 있을 이야기들. 구성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 -

<무대 뒤의 공연>

무대 위의 공연보다 더 리얼한 무대 뒤의 공연. 한 병실에 입원한 네 여자의 사정은 다르면서 닮아 있다. 내과 병동 302호의 1번 침상 환자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7년 동안 마비된 몸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여자. 2번 환자는 죽으려고 제초제를 들이마셔 입원했다. 3번 환자는 불명열에 시달리다 입원했는데 본인 말에 의하면 무병이라고 한다. 4번 환자는 당뇨병 환자. 이 네 사람과 그 주변 인물들이 서로 이렇게 저렇게 엮여지는데, 독자만 알 뿐 책 속의 이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는 설정이다.

불명열 여자는 모른다. 수천만 년의 전생과 억겁의 후생보다도 더욱 아득하고 고단한 이 짧은 현생의 삶. 얽히고설킨 애등의 끈을 놓지 않는 용기만이 거세고 날카로워 손바닥이 갈가리 찢겨도 절대로 놓을 수 없다는 오기만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사실.

살아내기 위해 부려야하는 '오기'란 사소하게 부리는 '오기'를 우습게 한다.

 

<내 창가에 기르는 꽃>

4번 침상의 당뇨병 환자의 아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어머니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 문병을 가던 중 예쁘고 날씬하진 않지만 사랑스러워 보이는 아가씨를 우연히 버스에서 도와준 인연으로 능력이 뛰어나고 멋지진 않지만 착하고 순한 심성을 가진 이 남자는 아가씨와 하루 저녁 시간을 함께 한다.

자기 엄마는 곧 나이 많은 노인과 재혼을 할 예정이라고 말하는 이 아가씨 엄마의 재혼 상대는 이 남자 엄마와 한 병실에 입원해있는 1번 침상 환자의 남편이다.

 

<당신의 저녁 시간>

가족으로 묶여 있다는 것은 든든한 울타리가 되기도 하지만 끔찍한 족쇄가 되기도 한다. 한사람이 넘어졌을 때 이미 비틀거리고 있던 다른 가족도 연달아 넘어지게 되고 다시 일어날 수 있기란 좀처럼 힘들다. 몰락하는 가족 이야기. 몰락의 시초를 따져보니 결국 윗대의 윗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끔찍하다.

 

<달빛 고양이>

1번 침상의 뇌졸중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의 아들 이야기이다. 고등학생이지만 엄마 모르게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중국집 단골 손님인 여자 아나운서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것을 보고 그녀를 보호해주겠다는 생각에 집까지 데려다 주게 되고, 쓰러져 잠이 든 여자 집 베란다에서 싱숭생숭해진 그는 달을 바라보며 우주비행사가 되는 미래를 그려본다. 우연히 여자의 실상을 알게 된후 자기의 꿈이 박살나는 것을 느끼며 달은 이제 푸근하고 낭만적인 달이 아니라 있으나마나, 쓸데 없는 달일 뿐이다.

 

<성주 (城主)>

이번엔 뇌졸중 환자의 남편 이야기이다. 80 넘은 나이, 전직 의사인 그는 간병인을 붙여 억지로 생명을 연장시키며 의미없이 7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아내는 이미 죽은 거나 다름 없다 생각하고 다른 젊은 여자와 재혼을 하려고 한다.

고생만 하다가 무언가 알만 하니까 나이 듦이 억울하다는 생각에 차라리 태어날 때 늙은이로 태어나 나이를 먹을 수록 젊어지고 어려지는 식으로 삶이 진행되면 훨씬 낫지 않을까, 자기 혼자 상상에 빠져 있는 동안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에 동의를 해줄 가족을 찾고 있고 자기 집은 불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8살 아들을 학교에 보내기보다는 푸줏간 막일을 시키려고 끌고 가던 아버지와 묵묵히 보고만 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회한. 그것이 이 집안의 몰락의 시초였을까.

 

<소설쓰는 밤>

앞의 이야기들보다 더 오싹하게 하는 것이 맨 뒤에 숨어 있었다. 느닷없이 소설가로 등장하는 40대 남자의 정체를 맨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 알게 되는 순간. 이야기는 다시 처음의 병실로 돌아오고, 이 괴이함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해보려니 좀 더 머리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이 사는 모습이 참으로 질척질척, 서글프다. 바로 당신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막상 그 우리 속의 '나'의 이야기라고는 선뜻 말하기 어려운 것이 인지상정이겠지.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삶 속에, 즉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과 다르게 무대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속사정을 우리는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다가 어느 새 내가 그 무대 뒤의 인물들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이 세상을 포기하고 싶어질까? 아니면 더 삶에 대해 겸손해지고 여물수 있을까.

그 답을 위의 인용문에서 찾는다. '꼬리에게 질 수는 없어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등단도 늦게한 편이고 작품도 아주 드문드문 내는 작가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이 2006년이니 곧 다음 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우리가 모르는 무대 뒤의 어떤 면을 또 보여주게 될지 기대해본다. 긴장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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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16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작가 이런 소설이 있군요. 담아갑니다.^^
조용한 일요일 저녁이에요. 편히 보내세요, 나인님.

hnine 2012-12-16 19:2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언제 기회 되실때 이 작가의 책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려요. 좋다 안좋다를 떠나서 한번 읽어볼만하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집에 혼자 있던 오후.

일찌감치 저녁 준비나 하자고 콩나물을 다듬는데 지루하기에 TV를 틀었더니, EBS 초대석에 강신주씨가 초대손님으로 나와있었다. '철학, 방향을 잃은 삶의 안내자' 라는 제목이 자막으로 나오고 있었고, 엄길청씨가 진행자.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던지라, 메모하고 싶은 것을 할수 없었다.

저녁 다 먹고 치우고 난후, EBS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시보기로 '다시' 보았다.

알고 보니 지난 11월 28일에 방송된 것을 오늘 오후에 다시 재방송했던 것이었다.

구성작가가 썼겠지만 질문도 잘 뽑았고, 이야기를 하는 강신주 철학자는 책에서 접한 것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메모한 내용만 간단히 옮겨본다.

 

Q. 생각을 많이 하면 더 행복해지는가?

- 삶 자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이며 힘든 것이다.

생각을 함으로써 더 불행해지는 쪽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삶 자체가 힘든 것이라는 것을 알면 가끔 찾아오는 행복에 대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다.

 

Q. 철학으로 상념을 정리할 수 있는가?

- 상념이 많다는 것은 본질적인 핵심을 피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그런 곁가지를 잡아주고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Q. 철학은 현실과 떨어진 학문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 철학자에게는 책도 텍스트이고, 현실도 텍스트이다.

 

Q.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인문학 위기론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보라. 대개 대학에 계신 분들이다. 지원하는 학생이 적고, 공대나 자연과학에 비해 정부 지원이 적은 것에 대한 투정같은 것이다. 현실에서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인문학적 성찰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Q. 탐욕으로부터 벗어나려면?

- 행복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소유하면 소유할 수록 느끼는 행복이 있는데 이것은 B급 행복이다. 반면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내것을 덜어주면서, 내 소유를 덜어내면서 오히려 행복을 느끼는데 이것은 더 고차원적인 A급 행복이다.

소유를 많이 해서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B-->A급 행복으로의 생각의 전환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

 

Q.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가치는?

- 사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붕괴되었다고 봐야한다. 가족의 이미지만 남아 있다.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피곤한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

'최적생계비'를 잘 생각하여 계산해보고 더 많이 가지려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그 이상은 버려라.

 

Q. '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해라. 그래서 돈이 들어오면 'Thank you!'하면 된다. 돈이 안들어와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까.

안 좋은 경우는, 돈을 목적으로 일을 했는데 돈도 안들어오는 경우이다. 이 때는 삶이 비참해진다.

 

Q.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

- 원칙적으로는 그래야한다. 최소한 사랑이라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이 다른 부수적인 조건이 더 크게 작용하여 한 결혼은, 상대방에게서 그 조건이 없어졌을 때 관계를 지속하기가 힘들것이다.

 

Q.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해줄 말은?

- 누구의 기준대로, 남 보기 좋은 삶을 살려고 하지 말고, '나'로 살아라. 개나리로 될 사람이 다른 사람이 장미를 좋아하니 억지로 장미로 자신을 바꾸려고 애쓰는 삶을 살지 않는지.

 

Q. 일반인들에게도'글을 쓴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까?

- 글을 쓰는 동안은 나를 내려다볼수 있다. 거리두는 작업.

'이야기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그래서 행복해질 여지가 있다' 라는 이성복 시인의 말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글을 써야할 시대이다.

 

Q. 경쟁사회에서 철학적 사유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 현실을 살다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문학과 철학이 시야를 넓혀줄 수 있다. 현재의 삶에서 길을 잃었다 싶을 때, 수직으로 올라가 현실을 내려다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철학이다.

 

Q. 외톨이로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철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 글을 쓰게 해봐라. 자기가 쓴 글을 얘기하도록 해봐라.

 

Q. 나눔, 타자에 대한 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사랑의 잣대는 내가 힘들어지는 데서 찾아야 한다. 내게 남아서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줌으로써 내가 불편해짐에도 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고 진정한 배려이다. 사랑의 제스쳐가 아니라.

 

언젠가 진로를 고민하는 딸에게 '인문학'이 이 세상에서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했다던 친구 남편얘기를 들으며 내심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막상 나라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 생각해봐도 언뜻 떠오르지 않았었다. 다만 정말로 '인문학'이 쓸모 없는 세상이 되면 안되는데 하는 안타까움만 들었었는데, 오늘 방송을 들으며 안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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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12-1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묻는 말은 구성작가가 궁금해 하는 이야기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를테면, "철학을 어떻게 사랑하나요"라든지 "아이들하고 나눌 생각은 어떻게 일굴까요"라든지 "우리 나라에서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한테 밝은 말 한 마디를 들려준다면"이라든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살아가는 생각은 왜 생겨날까요"라든지, 한결 깊이 파고들면서, 강신주 님 스스로도 더 깊이 생각을 가다듬도록 도울 수 있을 테니까요...

고흥에는 12월 한복판에 봄꽃이 벌써 피었답니다.

hnine 2012-12-16 19:23   좋아요 0 | URL
어떤 경우엔, 뭐 저런 질문만 하나 생각이 들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어제는 질문이 겉돌지 않고 초대된 이의 의견이 잘 드러낼 수 있게 골랐구나 싶었어요.

그리 땅덩이가 넓은 편이 아닌 나라에서, 대전과 고흥이 그렇게 차이가 난다니 참 '겨울 한볕'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가봅니다.

2013-02-22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7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미미앤 2013-03-17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ebs채널 좋아하는 편인데 이건 못봤네요.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해요^^

hnine 2013-03-17 17:37   좋아요 0 | URL
저도 일부러 본건 아니고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인터뷰 프로그램이라면 TV, 라디오를 막론하고 좋아하지요.
 
너 없는 그 자리
이혜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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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작가치고 세상일을 물 흐르는 듯 관조하며 눈 지긋이 감고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가에 대해서만은 그 생각을 잠시 잊게 했던 이유는 아마 '이 혜 경'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옆집 친구 같은 이름과, 이름에 한치 뒤지지 않는 평범하고 조용해보이는 인상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이전에 <길 위의 집>, <꽃 그늘 아래> 등을 읽은 후 왜 이 작가의 이름을 다른 어떤 작가와도 다른 대열에 놓게 되었는지, 오랜 만에 낸 이번 소설 <너 없는 그 자리>를 읽으며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아홉 편의 단편 모두 뒤통수를 치는 결말이다.

<너 없는 그 자리>에서 여자가 혼잣말하듯 조근조근 이야기하던 상대의 정체, <한갓되이 풀잎만>의 배신당하고 배신하는 이야기, <북촌>의 고즈넉함 속에서 일어나는 고즈넉하지 않은 이야기, 발리섬을 배경으로 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그리고, 축제>는 어릴 때 당한 폭행의 기억은 언제 어떻게 치고 들어올지 모른다는 것을 주인공뿐 아니라 등장하는 다른 나라,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서도 보여준다. 개인적인 사건과 사회적인 사건이 한 이야기 속에 잘 맞물려 있다. 그것이 축제가 되었든 용서를 비는 의식이 되었든 한바탕 살풀이를 거쳐야 겨우 진정되는 것은 그냥은 좀처럼 잊혀지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겠지. 몇 년 전에 작가가 인도네시아에서 머무른 적 있다고 하는데 그때 수집한 글감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감히 핀 꽃>을 읽으면서는 작가는 도대체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보기도 했다. <금빛 날개>는 아마도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이시형 박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을까? 자식의 죽음을 목전에서 지나친 아비의 업보는 무엇이란 말인지. <꿈길 밖에 길이 없어>의 남자 갑선은 정상일때보다 비정상일때 더 행복했다. 회복이 된 후 그가 외치는 말이 '나는 왜 미쳐지지도 않느냐'는, 속울음 담긴 한마디였던 것을 보면. <검은 강구>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방식은 특히 더 돋보인다. 새고려신문사와 교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연변의 고려인들을 취재하여 태어난 작품같은데 토끼반도, 여우나라, 흑곰제국등의 비유도 탁월하고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도 좋았다. <해풍이 솔바람을 만났을때>에서의 복수, 역시 제대로 독자의 뒷통수를 치는 이야기이다. 기분 나쁜 일격이 아니라 감탄이 나오는 일격이랄까. 인터넷이 우리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면서 인터넷을 통한 재택근무가 많아지고 있는 사회 현상이 반영되어 있었는데 비슷한 나의 상황이 연상되어 더 관심있게 읽은 이야기이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여기 저기 문예지에 발표했던 작품들이 모여 낸 오랜만의 이 소설집은 오랜 만에 나온 보상을 제대로 해주었다. 작품 속에 그때 그때 사회적 현상과 이슈를 담으려고 한 노력도 엿보인다. 치밀한 작가이다.

 

누구는 소설보다 현실이 더 기막히고 처절한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 하는가.

소설을 읽는 이유중의 하나는, 읽는 동안의 재미외에도, 그보다 더한 현실에 대한 예방주사, 마음의 준비의 차원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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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1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어쩜어쩜 저랑 같은 느낌을 받으신 것 같아 놀랍고 반가워요.
'뒷통수를 치는'이라는 말이요. 제가 쓴 이 책에 대한 페이퍼에
어느 분이 댓글을 다셨는데 그 아래 제가 '뒷통수를 치는 이야기'가 많다고 덧글을
달았거든요.ㅎㅎㅎ 나인님, 정말 이 작가의 이야기와 방식, 좋더라구요.
저 '감히 핀 꽃' 서두까지 녹음했는데 그 뒤의 이야기들이 너무 읽고싶어서
지금 당장 달려갑니다. 후다닥~~~

hnine 2012-12-14 22:00   좋아요 0 | URL
오늘 '감히 핀 꽃' 녹음 마치셨나요?
제 남편이 저보고 그러더군요.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소설보다 더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구요. 뒷통수 치는 일을 아직은 많이 경험해보지 않고 살았나봐요 제가. 사는게 참 구비구비 고개길이구나,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고 의견을 달면 안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의 '금빛 날개'도 아마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 참, 저 이곳에 있는 점자도서관에 녹음 봉사에 대해서 알아보았답니다. 다음주에 한번 가보려고요 ^^

프레이야 2012-12-16 01:08   좋아요 0 | URL
네, 현실은 더 뒷통수를 치지요. 배신도 잘 하구요.
그래도 현실은 나름 괜찮을 때가 많지요. 마음그릇 잘 닦고 살고파요.
감히핀꽃, 금빛날개 다 읽었어요. 너무 읽고 싶어서 6시간 읽고 왔답니다.
지난 금욜에요. 해풍이 솔바람을 만났을 때, 읽다가 왔어요. 이제 조금
남았어요. 다음주면 끝날 것 같아요. 저는 이 일이 너무 좋아요.^^
그곳 점자도서관은 어디에 있나요? 궁금하네요.
나인님도 함께하시면 정말 좋겠어요. 일석삼조의 행복이 있답니다^^

hnine 2012-12-16 05:49   좋아요 0 | URL
와, 여섯 시간을 읽고 오셨다니 대단하세요. 뭐 이번이 처음은 아니시지만 그래도 들을때마다 감탄합니다.
자기가 좋은 일을 하는 것, 누가 천금을 준다고 해도 바꾸지 말아야 할 일이지요. 어제 들은 강의에서도 그러더라고요.
여기 점자 도서관은 제가 한참 찾았답니다 워낙 소규모이고 많이 알려져있지도 않아서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일지,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일단 문을 두드려보기로 했답니다.
 

책상에 진득이 앉아있게 하는 접착제로

클래식만 나오는 제1FM 라디오를 틀어놓기 좋아하는데

가사가 들리는 가요나

리듬이 펑펑 살아있는 외국노래가 나오는 채널은

이때 만큼은 정신 집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라디오 채널을 틀자마자

뮤지컬 <레 미제라블> 중의 한 곡이 나온다.

에잇~

영화로도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도 곧 상영할거라는데

난 뮤지컬만 세번 본 사람

세번에 다 사연이 있는지라

정신 집중은 커녕

추억이 추억을 부른다.

처음 본 것은 당시 하이텔 동호회에서 알게 된 사람과 예술의 전당에서,

(하이텔 동호회, 이것부터가 추억의 이름 아닌가)

두번 째 본것은 영국에서 혼자,

세번 째 본것도 영국에서, 누구랑 함께 볼 예정이었으나 바람 맞아 혼자 봤다.

세번 모두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 눈물 글썽이며 봤으니

아마 영국에 더 오래 있었으면 세번에서 그치지 않았을지 모른다.

연중 무휴, 수년 째 계속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중 하나이니까.

 

이 글을 쓰는 사이 프로그램이 바뀌었다.

지금부터는 되도록 나 모르는, 자극하지 않는 음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뭐, 중세 그레고리안 챈트 같은거...

 

 

 

 

P> 

 

이건 세시간이 넘는 이 뮤지컬의 마지막 무대.

 

 

 

 

 

아무 말도 안하지만, 노래를 끝내고 난 후 수십초 동안 이 사람의 표정에서 참 여러가지를 읽는다.

일생에 한번이라도 이런 감동과 희열을 느껴볼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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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2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2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anne_Hebuterne 2012-12-1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그렇게 부른 추억은 추억일 뿐인지도 몰라요. 내가 마음대로 위조하고 변조하고 필요할 때 불러내는 마약. 이렇게 말한다면 오히려 제가 추억을 과대평가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측만 난무하는 댓글을 남겨 죄송하지만 전 원래 이렇습니다.

hnine 2012-12-12 13:11   좋아요 0 | URL
에뷔테른님, 추억에 대해, 추억하는 것에 대해 애증이 있으신것 같아요. '애'와 '증'...
추억으로부터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탄성회복력' (이거, 학교 다닐때 물리시간에 배운거 같은데 ^^) 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Jeanne_Hebuterne 2012-12-12 18:05   좋아요 0 | URL
빙고! 전 요즘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가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금요일엔 비가 내린다니 감기 조심하시길 바래요!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처럼, 뒤돌아보지 않는 대신 바람소리가 들리는 나날들.

hnine 2012-12-12 21:47   좋아요 0 | URL
전 운동에너지 다 떨어졌어요. 먹은게 다 어디로 가는지 ㅋㅋ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참 묘하고 알쏭달쏭한 영화였어요. 나 또 웃어야 할 영화를 혼자 심각하게 본거야? 영화 다 보고 나서 그랬었지요 ^^

감기 절대 안 걸리겠어요! 에뷔테른님도 절대!

2012-12-13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3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4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