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혼자 있던 오후.

일찌감치 저녁 준비나 하자고 콩나물을 다듬는데 지루하기에 TV를 틀었더니, EBS 초대석에 강신주씨가 초대손님으로 나와있었다. '철학, 방향을 잃은 삶의 안내자' 라는 제목이 자막으로 나오고 있었고, 엄길청씨가 진행자.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던지라, 메모하고 싶은 것을 할수 없었다.

저녁 다 먹고 치우고 난후, EBS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시보기로 '다시' 보았다.

알고 보니 지난 11월 28일에 방송된 것을 오늘 오후에 다시 재방송했던 것이었다.

구성작가가 썼겠지만 질문도 잘 뽑았고, 이야기를 하는 강신주 철학자는 책에서 접한 것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메모한 내용만 간단히 옮겨본다.

 

Q. 생각을 많이 하면 더 행복해지는가?

- 삶 자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이며 힘든 것이다.

생각을 함으로써 더 불행해지는 쪽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삶 자체가 힘든 것이라는 것을 알면 가끔 찾아오는 행복에 대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다.

 

Q. 철학으로 상념을 정리할 수 있는가?

- 상념이 많다는 것은 본질적인 핵심을 피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그런 곁가지를 잡아주고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Q. 철학은 현실과 떨어진 학문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 철학자에게는 책도 텍스트이고, 현실도 텍스트이다.

 

Q.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인문학 위기론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보라. 대개 대학에 계신 분들이다. 지원하는 학생이 적고, 공대나 자연과학에 비해 정부 지원이 적은 것에 대한 투정같은 것이다. 현실에서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인문학적 성찰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Q. 탐욕으로부터 벗어나려면?

- 행복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소유하면 소유할 수록 느끼는 행복이 있는데 이것은 B급 행복이다. 반면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내것을 덜어주면서, 내 소유를 덜어내면서 오히려 행복을 느끼는데 이것은 더 고차원적인 A급 행복이다.

소유를 많이 해서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B-->A급 행복으로의 생각의 전환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

 

Q.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가치는?

- 사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붕괴되었다고 봐야한다. 가족의 이미지만 남아 있다.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피곤한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

'최적생계비'를 잘 생각하여 계산해보고 더 많이 가지려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그 이상은 버려라.

 

Q. '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해라. 그래서 돈이 들어오면 'Thank you!'하면 된다. 돈이 안들어와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까.

안 좋은 경우는, 돈을 목적으로 일을 했는데 돈도 안들어오는 경우이다. 이 때는 삶이 비참해진다.

 

Q.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

- 원칙적으로는 그래야한다. 최소한 사랑이라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이 다른 부수적인 조건이 더 크게 작용하여 한 결혼은, 상대방에게서 그 조건이 없어졌을 때 관계를 지속하기가 힘들것이다.

 

Q.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해줄 말은?

- 누구의 기준대로, 남 보기 좋은 삶을 살려고 하지 말고, '나'로 살아라. 개나리로 될 사람이 다른 사람이 장미를 좋아하니 억지로 장미로 자신을 바꾸려고 애쓰는 삶을 살지 않는지.

 

Q. 일반인들에게도'글을 쓴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까?

- 글을 쓰는 동안은 나를 내려다볼수 있다. 거리두는 작업.

'이야기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그래서 행복해질 여지가 있다' 라는 이성복 시인의 말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글을 써야할 시대이다.

 

Q. 경쟁사회에서 철학적 사유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 현실을 살다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문학과 철학이 시야를 넓혀줄 수 있다. 현재의 삶에서 길을 잃었다 싶을 때, 수직으로 올라가 현실을 내려다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철학이다.

 

Q. 외톨이로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철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 글을 쓰게 해봐라. 자기가 쓴 글을 얘기하도록 해봐라.

 

Q. 나눔, 타자에 대한 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사랑의 잣대는 내가 힘들어지는 데서 찾아야 한다. 내게 남아서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줌으로써 내가 불편해짐에도 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고 진정한 배려이다. 사랑의 제스쳐가 아니라.

 

언젠가 진로를 고민하는 딸에게 '인문학'이 이 세상에서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했다던 친구 남편얘기를 들으며 내심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막상 나라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 생각해봐도 언뜻 떠오르지 않았었다. 다만 정말로 '인문학'이 쓸모 없는 세상이 되면 안되는데 하는 안타까움만 들었었는데, 오늘 방송을 들으며 안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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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2-1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묻는 말은 구성작가가 궁금해 하는 이야기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를테면, "철학을 어떻게 사랑하나요"라든지 "아이들하고 나눌 생각은 어떻게 일굴까요"라든지 "우리 나라에서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한테 밝은 말 한 마디를 들려준다면"이라든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살아가는 생각은 왜 생겨날까요"라든지, 한결 깊이 파고들면서, 강신주 님 스스로도 더 깊이 생각을 가다듬도록 도울 수 있을 테니까요...

고흥에는 12월 한복판에 봄꽃이 벌써 피었답니다.

hnine 2012-12-16 19:23   좋아요 0 | URL
어떤 경우엔, 뭐 저런 질문만 하나 생각이 들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어제는 질문이 겉돌지 않고 초대된 이의 의견이 잘 드러낼 수 있게 골랐구나 싶었어요.

그리 땅덩이가 넓은 편이 아닌 나라에서, 대전과 고흥이 그렇게 차이가 난다니 참 '겨울 한볕'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가봅니다.

2013-02-22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7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미미앤 2013-03-17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ebs채널 좋아하는 편인데 이건 못봤네요.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해요^^

hnine 2013-03-17 17:37   좋아요 0 | URL
저도 일부러 본건 아니고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인터뷰 프로그램이라면 TV, 라디오를 막론하고 좋아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