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가 되어가면서 하늘이 흐리기 시작하기에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옷을 몇 겹 껴입고 집을 나섰다.

가방엔 카메라와 노트, 그리고 연필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고 생각보다 바람이 많이 불고 있었다.

하도 자주 와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익숙하기도 하지만

공작, 백두산 아기 호랑이 등은 오늘 처음 본 것 같다.

 

자, '주랜드' 부터.

 

 

 

 

 

 

 

 

 

 

 

 

 

 

저렇게 구름다리를 건너면서 아래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겠지.

 

 

 

마침 수달의 식사시간. 먹이로 뭘 주나 보았더니, 살아있는 작은 물고기였다.

 

 

 

 

 

 

 

 

 

 

 

저렇게 입을 쫙 벌린채 꼼짝 않고 있어서 모형인가 싶어 자세히 쳐다보았더니, 목구멍이 위아래로 조금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있었다.

 

 

아 예뻐. 저 깃 사이로 손을 넣어보면 참 포근하겠지.

 

 

 

이 아이의 이름은 '참수리'

 

 

 

 

 

 

 

 

 

뒷모습 찍기

 

이제 식물들이 있는 '플라워랜드'로 간다.

 

 

 

 

아직 꽃들이 피지 않았다. 개나리와 산수유외에는.

사진의 꽃들은 구경온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온실의 꽃들이다.

 

 

 

 

 

 

 

 

밖에도 튜율립이 잔뜩 심어져 있었는데 아직 꽃 피기 전으로, 초록색 망이 덮어져 있었다 아기 튜울립이 잠자고 있으니 조심해달라는 표지판과 함께.

 

 

 

 

우유의 왕관 현상을 연상시키는 꽃.

 

 

 

 

'호주매화'였던가?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쓰지도 않았지만 그새 잊어버렸다.

 

 

 

 

온실의 꽃들은 이렇게 대부분 키가 작은 아이들이었다.

 

식물, 동물, 그들을 구경하고 사진 찍는 나.

모두 살아있는 귀한 생명체.

 

 

돌아와 집 현관을 들어서는데, 주랜드, 플라워랜드를 거쳐,
'여기는 무슨 랜드?'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어라 이름을 붙여줄까, 나의 집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밤 11시도 안되어 일찍 잠에 들었더니,

안그래도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오늘은 무자비하게도 새벽 3시도 안되어 눈이 떠졌다.

엊그제 다운 받아놓은 영화를 보기로 하고 앉았다.

제목 Fish Tank, 2009년도 영국 영화이다.

 

전형적인 서민식 영국 영어 억양을 만끽할 수 있다. 

알아듣기도 힘들고, 그 꺽꺽거리는 말투가 어딘지 격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의미보다 먼저 피부에 와닿아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던 그 영어.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은 그만큼 배우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옆집 사람의 일상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의도된 것 같지 않은 행동, 의도된 것 같지 않은 풍경, 대사, 따분하고 너저분해보이는 동네, 집안, 배우들의 의상.

 

청소년관람불가의 영화이다. 혼자 딸 둘을 키우는 젊은 엄마는 남자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여 거리낌없이 애정행각을 벌이고, 그런 엄마가 몸이 안좋아 그냥 잠든날 그 남자는 열 다섯살 된 딸과 관계를 가진다. 엄마와 딸 사이의 대화라고 보기 힘든 저주의 말들이 오가는건 그 이전부터 그랬지만 엄마는 딸에게 "그때 내가 너를 지웠어야 했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며 집을 떠나기 전에 인사를 하려는 딸에게 어서 가라고 한다.

열 다섯 살 미아(Mia)에게 그나마 희망이었던 춤 오디션에 가서는 결국 돌아나오고 겨우 시동 걸리는 자동차에 올라타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화면은 갑자기 끝이 난다.

 

 

 

 

 

미아가 춤 오디션에 사용하려던 곡은 California Dreaming.

이 노래도 참 여러 가수들에게 불리는데 그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이 영화에서는 Bobby Womack이라는 가수가 부르는데, 이게 그 노래인가? 할 정도로 다른 느낌을 준다.

 

 

 

'꿈'이라고 말할 때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느낌보다, 그 반대의 뒷면을 보여주는 것 같은, 이 노래를 들을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이것은 나만의 경우일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13-03-30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3시에 일어나 영화를 보시는 님은 부지런쟁이^^
영화의 내용이 참 칙칙하네요.

hnine 2013-03-30 13:00   좋아요 0 | URL
예, 특별히 이런 영화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 아니라면 보시라고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랍니다. 그런데, 저기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 열 다섯 여자 아이가 참, 꾸밈없고 순수해요. 날것의 냄새가 나는 그런 순수함이요...

2013-04-06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04-07 06:56   좋아요 0 | URL
봄 날씨가 이런가봐요. 어제 비가 온다는 말에 더 챙겨입는다고 입고 나갔음에도 버스 기다리며 얼마나 으슬으슬 춥던지, 이러다가 감기 걸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결국 택시 타고 집에 왔답니다. 봄은 화려하지도, 화사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변화무쌍, 역동적, 사람들은 쉽게 우울해지고요. 몸 아프면 더 울적할 것 같아 몸 챙기며 이 계절을 나는가봅니다. 지금 창문으로 보니 아침 하늘의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네요. 위의 영화는 글쎄, ...꼭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답니다 ㅠ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 우리말 제목과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끝일것 같은 예감' 이렇게 해석해야하나?

극반전의 결말이 꼭 아니더라도 읽는 동안 화자인 토니라는 인물에 대해 캐릭터를 참 잘 그려놓았다고 생각해오던 참이었다. 이 소설에서만 존재하는, 어디에도 없을 개성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보다도 등장하는 독특한 인물에 더 몰입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것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결말이 이게 뭔가 하는 생각. 마치 모 방송국의 인기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결말을 보고났을 때의 기분이랄까. 작가의 의도가 금방 와닿지 않았다. 왜 이런 결말을? 무슨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화가 무척 드문, 나레이션 식의 소설이라는 점도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주인공의 심리를 주인공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상을 보는 이 남자의 시선은 얼마나 참신하던지. 역사 선생과의 문답, 친구 에이드리언을 바라보는 시각, 무심한듯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세상에 관심 없는 분야가 없는 듯하고, 주위의 다른 사람을 묘사하는 것에서도 그의 특이한 성향, 아니 솔직한 성향은 어김없이 드러난다.

변호회사로부터 포드 여사의 재산 처분 문제에 관한 편지를 받는 것을 경계로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2부도 나쁘지 않았지만 1부만으로도 좋았다. 그리고 결말 역시 없어도 좋았다. 안그래도 인생 참 나이들면서 재미없어진다는 생각에 푹 빠져 읽어오는데, 결말을 그렇게까지 더 허무하고 무상하게 만들게 무어란 말인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eanne_Hebuterne 2013-03-29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읽었을 때엔 우유를 쏟고 우는 아이의 마음이었는데 지금 hnine님의 리뷰를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손목시계의 앞면과 뒷면을 돌려 차는 일이 사는 것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야 할 일은 해야겠지요. 그러나 반추하고 싶지는 않은 시간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제는 거대한 바람이 되는 나이에 접어들어 이 책을 읽으면 또 다른 생각이 들 듯 합니다. 리뷰 잘 읽었어요.(허무함은 저역시!!! 아니,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hnine 2013-03-29 19:33   좋아요 0 | URL
예전에 '에브리맨'을 읽었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나이들면서 돌아볼때, 이렇게 허무하고 무상하지 않고, 포근하고 따뜻할 수는 없는걸까요? 그래서 자꾸 반추하고 싶어지는, 그런 자취를 남기고 살 수는 없는걸까요?
다 읽은 후 앞부분을 다시 훑어보았는데 이 작가 처음부터 복선을 단단히 깔았더군요 ㅠㅠ

Jeanne_Hebuterne 2013-05-30 09:40   좋아요 0 | URL
hnine님, 이 책을 최근 다시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은 완성과는 거리가 먼 존재이고 이해하기에도 어렵다고. 저는 늘 될지도 모른다. 안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해보자. 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소설을 다시 읽다 보니 한 사람의 역사 속에서 원인과 결과는 맞아떨어지지도 않았고 더더욱 불완전한 존재였어요. 불완전성을 완전성이라고 착각하는 오기를 그만 부려야 할텐데, 사람들은 참 편리하구나. 어디서든 이유를 찾아내면 그만이니까. 라는 생각에 갈팡질팡합니다.


덧-한글판 제목은 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hnine 2013-05-30 19:15   좋아요 0 | URL
에뷔테른님, 다시 읽으셨군요. 그럴만한 책이었어요. 전 다 읽고난 후 곧바로 앞 페이지로 돌아가 몇 페이지 더 읽고는 말았는데요.
'사람은 완성과는 거리가 먼 존재이고 이해하기에도 어렵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거죠? 정말이지요? 저도 완전 공감하거든요. 그러면서도 남들에게는 쉽게 그런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원인과 결과가 맞아떨어지지도 않고, 계획한대로 꼭 되는 것도 아니고요.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이유를 끌어다대고, 그것이 옳다고 믿고, 저도 그 속에서 살고 있더라고요.
갈팡질팡은 저도 특기입니다 ^^

한글판 제목은 원제에서 'sense'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리되 좀 더 구매자를 의식해서 만든 것 같기도 해요.
 

 

 

한 음악가의 전집 시리즈로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음악가 Schubert

요즘은 라디오를 들어도 음악 위주 프로그램보다 말이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주로 듣고 있는, 그런 분위기임에도 오늘 새벽은 오랜만에 Schubert가 듣고 싶어서 50개의 CD중 올려놓은 Piani trio.

그런데 귀에 익숙한 곡이 나온다.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삽입되어 익숙한 곡인데, 들으면서도 설마 Schubert의 곡일줄, 상상도 못했다.

 

 

 

 

 

 

 

어제 그림을 배우러 간 날. 그림을 그릴 때 붓자국이 나게 칠하는 것이 좋은가, 나지 않게 칠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물음에 선생님은 붓자국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대상과 어울리느냐가 문제라고 하셨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보다 배경색이 너무 두드러진다든가, 배경의붓자국이 너무 두드러져 보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살리고 싶은 것을 위해서는 다른 것들은 '눌러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른바 좋은 그림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그림보다 '시각적 복합성'이 높다는 것.

돌아오는 길에 복잡성과 단순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꼴라쥬의 3요소라는 형태, 조화, 균형에 대해서도.

 

집에 돌아올때까지는 좋았다. 돌아와 컴퓨터를 키고 이메일을 여는 순간, 쌓여있는 일거리를 보기 전까지는 ㅠ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3-03-29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듣는 슈베르트가 좋으네요~
보라색을 좋아하는 제 눈에 확 들어온 스케치북~ 그림도 배우고, 좋아보여요!^^

hnine 2013-03-29 07:17   좋아요 0 | URL
같은 일도 새벽에 하면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전 오늘 특히 더 일찍 일어났는데 새벽이라기 보다 차라리 한밤중이라고 해도 될 시각에 일어났어요, 좀 심했지요 ㅠㅠ
슈베르트 곡은 작곡가의 일생이 불운해서이기도 하지만 웬지 더 마음이 가고 귀기울이게 되는 곡이어요. 보라색, 파란색, 분홍색, 하늘색, 마구 붓질을 하고서 위에 흰색을 탁탁 뿌리다가 책상에 온통 흰색 물감이 튀고 말았답니다 ㅋㅋ

2013-04-20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04-20 07:01   좋아요 0 | URL
ㅋㅋ 들켰네요 ^^
 
상처를 꽃으로 - 유안진 산문집
유안진 지음, 김수강 사진 / 문예중앙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저자의 책은 나에게 다른 책과는 좀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시집은 물론이고 이런 에세이 류도 빼놓지 않고 읽어왔다.

시만 쓰고 싶은 시인, 그러면서 시인이라는 이름 말고 다른 자기 분야의 일도 빈틈없이 잘 해오고 있는 사람. 자식을 비롯해서 가족에게 무한의 애정과 희생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너그러이 모든 걸 참아내고 받아내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각이 있어서 이 세상 사소한 것에서도 배우고 깨우치는데 게으르지 않는 사람. 내가 아는 저자이다.

그런데 찾아서 다 읽다보니 이미 어디서 읽은 글을 또 보게 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소월의 시 '갈 봄 여름 없이'에서 가을을 '갈'이라고 쓴 이유, 역시 소월의 시 '산새도 오리나무'에서 더 늠름하고 멋진 나무를 두고 하필 '오리나무'를 쓴 이유에 대해서는 벌써 몇 번째 접하는 내용인지 모른다. 시 '다보탑을 줍다'에 대한 해설 역시 두번 이상 본 것 같은데 이 책에 또 실려 있었다.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고독을 받아들임,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스스로 다독임,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는 위안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인지 종교와 시, 자연에서 문제의 힌트를 찾으려는 태도, 스스로는 숙맥이라고 하지만 한편 꼬장꼬장해보이기까지 하는 소신, 우리 것, 우리 말에 대한 깊은 애정, 상처에 대한 조곡이 아니라, 나의 상처에 대한 감상적 탄식이 아니라, 상처를 꽃으로 보고 싶은, 꽃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자존심'.

난 저자처럼 인간 이상의 대상에서 답을 찾는데 서툴러 이렇게 그녀의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다독인다. 설사 읽은 글을 또 읽게 되면서도 큰 군말없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3-03-22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저자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중복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ㅎ
인기 많았던 지란지교를 꿈꾸며....저녁을 먹고 나면~~
친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었죠.

hnine 2013-03-22 12:20   좋아요 0 | URL
훨씬 일찍 시로 등단했지만 이름이 알려지기는 바로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청탁에 의해 썼던 글 때문이라지요. 저도 그때문에 저자 이름을 알게 되었고요.
제가 이 분 책을 많이 읽긴 읽어나봐요. 이렇게 눈에 익은 부분이 갈수록 많아지는걸 보면요.

2013-03-25 0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26 0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