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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6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서은혜 옮김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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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것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어린 시절, 읽고 또 읽던 열몇권 짜리 (오십권짜리 어린이 세계문학전집 말고) 세계 전래 동화집중 유독 이야기의 재미보다 신비감을 더 크게 남겨주었던 것은 일본 동화집이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현실과 현실 아닌 곳을 왔다 갔다, 눈에 보이는 것과 상상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들이어서 다 읽고서도 갸우뚱, '이게 뭐지?' 하는 여운을 남겼던 기억이 있다. 기이하기도 하고 약간 무섭기도 하고, 확실히 우리 나라 전래 동화와는 달랐고 나머지 다른 어느 나라의 이야기와도 다른 분위기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일본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몇권 읽은 것들에서 받은 느낌은 어릴 때 기억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가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여서 그런지 이야기에 귀신이 자주 등장하고, 귀신의 출현이 일회성 출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 생활에 스스럼없이 침투하여 살아있는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한 경우까지 자주 나오는 것이,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에 편향된 독서를 해오던 나에게는 여전히 일본 소설은 일본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 책을 읽자고 고르면서, '막연한 불안'이 이유라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그 막연한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었다.

그가 발표한 작품들 대부분이 단편인데 이 책에는 열 네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소세키의 극찬을 받았다는 ''는 한 스님의 신체부위 코가 특이하게 큰 것을 소재로 하였다. 남의 눈을 기준으로 나를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고, 스님을 대상으로 한 것은 종교인이나 수도자도 예외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부질없는 희비극 끝에 도달하는 곳은 결국 허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마죽'. 마죽을 실컷 먹고 싶다는 욕망 (인생의 욕망)이 어느 순간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어느 날 해 질 녘이었다. 하인 하나가 라쇼몬 아래서 비를 긋고 있었다. 

널따란 문 아래에는 이 남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군데군데 붉은 칠이 벗겨진 커다란 원주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라쇼몬 (羅生門)'은 원래 헤이안 시대 수도 교토의 성문을 말한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쓰고 있다. 재해와 기근으로 폐허가 된 교토의 성문 (라쇼몬) 위에서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노인을 마주친, 갈 곳 없는 하인이 나온다. 도둑질 아니면 굶어 죽음 앞에서 그의 선택은 고민의 여지가 없다. 굳이 사고가 필요없는 선택이 있을 뿐이다. 역동적이고 회화적 묘사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묘한 이야기'는 전쟁에 파병된 남편을 기다림과 동시에 다른 남자와 밀회 약속을 하면서 신경증을 보이는 지에코의 이야기이다. 그녀 앞에 출현했던 빨간 모자의 정체는 그녀의 양심일지도 모른다. 

우울의 시작은 이렇게 소소한 것일 수 있지만 결과는 끝도 없이 부풀려 질 수 있다는 '다네코의 우울', 내 아기 잃은 것이 다른 아기 잃은 엄마를 보고 위로가 될 일인가? 과장된 것은 아닐지 공감이 쉽게 되지 않던 '엄마'. 모든 엄마에게 아기는 다른 대상이나 재산을 얻고 잃는 것과는 다른데 말이다.  

꿈 같은 현실, 현실 같은 꿈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그동안 읽었던 일본 소설을 구별짓는 특징 중 하나였다.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창작 과정에 따르는 필요한 혼돈일지도 모른다. 제목처럼 글 전체가 꿈 얘기인 ''. 그리고 '흙 한덩이'에서는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죽으면 흙 한덩이로 돌아간다는 의미도 되겠고, 며느리가 살아있는 동안 그토록 움켜쥐고자 했던 욕망의 부질없음을 흙 한덩이라고 보았을 수도 있다. 

죄인들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지옥변'이라고 한다. 단편 '지옥변'에서는 창작의 고통을 참극으로 극대화하여 비유하였다. 딸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아비의 눈으로 보고 있어야 하는 참극이다. 이렇게 나온 창작의 결과물 앞에서그림을 그린이는 과연 만족할까. '아무리 하나의 예나 능에 뛰어나다한들 인간으로서 오상 (인의예지신)을 못가린다면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라는 짧은 인용문이 나온다. '거미줄'에서 거미줄은 신이 준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상징한다. 보기엔 가늘지만 강도가 센 거미줄을 내려주지만 결국 이기적인 인간 본성은 자기손으로 그것을 끊어내고 만다는 비유가 뛰어나다. 연꽃의 아랑곳하지 않음은 변하지 않는 진리, 흔들리지 않는 세계를 의미한다는 설정까지도. 

두자춘이라고 하는 사람이 도를 깨우쳐가는 과정을 그린 '두자춘'은 부귀영화의 삶을 누려본 후 마지막으로 그가 원하는 것은 인간답고 정직한 삶, 그에게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것은 산기슭의 집한채와 밭이었다. 

'신들의 미소'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명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일본에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신부 (神父)가 일본의 전통 토속 신앙과 대립을 이루는 방식이 몽환적이면서 상징적으로 그려져있다. 꿈의 세계에서 현실을 다시 보여주는 것은 아쿠타가와의 주특기인지.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여러사람의 설명을 모아 놓은 형식의 '덤불속'은 또 얼마나 신선했는지 모른다. 죽은 사람에 대한 어느 누구의 말도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 더 많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한들 마찬가지일것 같다. 덤불속이란 제목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 가려낼수 없는인간의 삶,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마지막 작품 '갓파'는 뜬금없이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했다. 갓파라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 나오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직업과 신분에 해당하는 갓파의 이름들이 나온다. 차크는 의사, 배그는 어부, 토크는 시인, 래프는 학생, 이런 식. 여기까지만 해도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감이 올수도 있다. 인간의 신분과 계급에 대한 비판을 갓파라는 상상의 동물을 통해 쏟아 내겠다는 것이다. 특히 시인에 해당하는 '토크'라는 갓파를 통해서는 창작가로서의 작가의 고뇌를 집중적으로 묘사한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을 썼던 해 1927년, 35세를 일기로 아쿠타가와는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세상을 등졌다. 35세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그가 소재로 삼고 작품으로 남긴 다양한 세계를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세계를 넘나들며 복잡하고 불안한 정신 세계를 혼자서 머리속에 구축해왔을까 감히 짐작하게 한다. 

막연한 불안이라는 말은 문학의 세계에서 생소한 말이 아닌 듯. 그는 더 살아남아서 그 불안을 다른 형태로 승화시킬 수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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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0-1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집의 리뷰는 쓰기 어려운데 잘 정리해 쓰셨네요.
저는 라쇼몬보다 덤불속, 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참 탁월한 작가라고 감탄하며 읽었죠.
언젠가는 덤불속을 소재로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저는 문예출판사 걸로 갖고 있어요.^^

hnine 2023-10-19 12:51   좋아요 1 | URL
제가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읽으면서 그때 그때 간단히 메모를 해두었어요.
리뷰를 쓰느라고 그때 메모를 다시 보고 페이지를 들춰보다보니 읽을 때보다 더 의미가 깊게 들어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덤불속, 제게도 작가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 인상적인 단편 중 하나였어요.
 
레테의 사람들
민혜 지음 / 디멘시아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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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디멘시아 문학상 공모전 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이라는 소개글이 보이니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디멘시아 북스라는 출판사가 있다. 한 신경정신과 의사를 중심으로 치매 환자및 가족을 위한 후원회가 결성되었고 치매 관련 정보 및 건강 정보 등의 건강지식을 알리기 위한 치매 전문 인터넷 매체 홈페이지가 개설된 것을 시작으로 치매관련 작은 도서관 설립, 이어서 치매 관련 서적 소개와 출판을 위한 출판사가 설립된 것이 디멘시아 북스이다. 이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디멘시아 문학상 공모전이 있었고 2021년 제5회 디멘시아 문학상 소설 공모전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2023년에 출판되어 나온 것이 바로 이 책 <레테의 사람들>이다. 책이 나오게 된 배경 소개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에 우선 적어보았다. 갈수록 증가하는 치매에 대한 관심이 문학공모전에까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처음에 에세이로 등단한 작가이고 그녀의 수필집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을 읽어본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엔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화자인 윤정인은 엄마 뱃속에 있을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채 홀엄마 손에서 자랐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혼자 딸을 키우느라 그닥 살갑지 않았던 엄마와 사느라 아픈 기억이 많은 딸 정인은 결혼도 하지 않고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지만 이제는 치매 환자가 되어 버린 엄마와 여전히 한집에 살고 있다. 딸도 못알아 보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구는 엄마는 정인으로 하여금 갈수록 돌봄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엄마의 기억이 자꾸 사라져가는 것을 보며 정인은 지금까지 한번도 엄마가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해준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얼굴도 모른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알게 된 어머니 인생이 상처 투성이였으며, 그것을 자신의 성장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연과지어진다. 더구나 요즘 들어 자신 역시 예전같지 않은 기억력으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어 갑자기 알게 된 어머니의 일생을 어머니와 어머니의 치매를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으로 보는 계기가 된다.       


이 세상에 어느 딸도 어머니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싶어하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연관성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어머니의 인생으로부터 나에게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끈, 쉽게 끊어낼 수 없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 나이에 이른다. 어머니의 과거는 자기의 출생과 연관이 있으며 자기가 자라온 방식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숙명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부르지 않아도 그렇다.

저자는 이점을 치매와 잘 연관시켜 스토리를 구성하였고 어머니의 과거와 자신의 가족사에 대한 궁금증을 결말까지 가져감으로써 읽는 동안 독자의 관심을 끌고 가도록 하였다. 아쉬운 점은, 주인공의 특별한 노력 없이 그냥 드러나는 가족사와 그것을 너무 쉽게 잘 받아들이고 주인공이 마음의 정리를 하며 맺는 결말이다.

공모전의 취지에 맞게 치매가 글의 중심을 잘 이끌어간 것은 이 작품이 대상작으로 선정되는데 적합했음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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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8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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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8 1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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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1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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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1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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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1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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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 그림으로 본 고흐의 일생
이동연 지음 / 창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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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보고 들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화가 고호. 그래서 한번도 그의 일생을 한권으로 꿰뚫어 읽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의 제목이 저자나 출판사가 지은 것이라면 좀 작위적이지 않나 했는데, 고호 자신이 한 말이란다. 죽고 나서 주머니에서 미처 부치치 못한 편지 한통, 테오에게 보내려고 했던 편지가 나왔고 거기 써있던 글귀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림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이 책을 쓴 저자는 방송매체와 기업에서 예술과 역사 관련 강의를 많이 한 경험이 있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오랫동안 고정 출연하며 '예술가와 뮤즈'에 대해 다룰 때 고흐를 방송했던 것을 인연으로 이 책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강의 경험이 많은 때문인지 글이 편하게 읽혔다. 왔다 갔다 할 것 없이 고흐의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시간 순으로 구성이 되어있어 지루함 없이 따라 읽다 보면 금방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게 된다. 

책 내용에서 언급하는 그림이 바로 그 페이지에 삽입되어 있어 따로 검색해보지 않고 바로 볼 수 있게 구성한 점도 독자로서 마음에 들었다. 긴 일생을 산 고흐는 아니지만 시기와 거주지에 따라 화풍이 다소 변화를 겪기 마련인데 나중에라도 그림들이 이 책에 등장했던 순서를 기억해보면 자연스럽게 시간순으로 어느 그림이 이전 그림이고 어느 그림이 나중에 그려진 그림인지 대개 가닥이 잡힐 것 같다. 


1853년,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준데르트에서 태어난 고흐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고 동생 테오와는 네살 차이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듯, 어머니가 풍경을 그리러 나갈때 가끔 따라다니며 데생을 했다고 한다. 그가 9살때 그렸다는 목탄화 <다리>를 보면 확실히 어릴 때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흐의 원래 꿈은 화가가 아니라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였고 그림은 취미였다고 한다.

형제가 많았던 고흐는 초등학교는 몇년 다니다 말고 동생들과 함께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16살에는 화랑에 직원으로 취직을 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학을 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기대를 따르지 않고 고흐는 서른이 다 된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벨기에 브뤼셀 왕립미술학교, 헤이그를 거쳐 벨기에의 항구도시 안트베르펜에서 미술 아카데미에 다녀봤지만 브뤼셀 왕립미술학교를 1년도 채 못다니고 그만 두었듯이 안트베르펜에서의 아카데미도 너무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그만두고 만다. 하지만 고흐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리고는 예술의 도시 파리로 무작정 떠난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누구 못지 않았지만 파리에서 미술상을 하고 있던 테오로부터 고흐의 그림은 기대만큼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뿐이다. 고흐는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라는 테오의 조언도 듣고, 파리의 다른 여러 화가들을 만나 그들의 그림을 보고 매료되기도 하면서 자기의 화풍을 구축해나간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연인으로부터 잇달은 실연과 잘못 퍼진 소문, 좋지 않은 결과만 주고 있는 그림으로 고흐는 정신적 불안과 조울증세를 나타내며 힘든 생활을 한다. 이런 가운데 고갱을 만난 고흐는 천재 화가를 만났다며 그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한다. 파리에서 아를로 이주를 하고 좋아하는 노란색의 집을 구한뒤 고갱을 불러들인 고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동생 테오와 주위 몇몇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고갱과 함께 한집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토록 좋아하던 고갱이었지만 이들의 그림 방식과 주관은 사못 달라서 자주 의견 충돌을 보였고 사이가 멀어져 급기야 고갱은 고흐를 떠난다. 

건강이 더욱 악화된 고흐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아를을 떠나 생레미 요양원으로 들어가고 외롭고 힘든 요양원 생활을 하지만 여기서도 그의 그림은 멈추지 않는다. 이당시 그의 그림을 보면 우울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다. 비탄에 빠진 노인, 단체로 운동하고 있는 죄수들, 황혼의 풍경등. 

자신의 건강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안 고흐는 마지막을 요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파리 근교 시골 마을 오베르로 가서 오베르의 전원 풍경을 그리며 마지막 창작열을 불태운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나무 뿌리와 기둥>은 그가 오베르에서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1890년 그의 나이 37세,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고흐는 총알이 가슴에 박힌채 하숙집으로 돌아왔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난다. 아직도 그것이 고흐 자신이 쏜 총인지, 다른 누가 그에게 총을 쏘았는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그가 죽은지 6개월 후 동생 테오 역시 세상을 떠났다. 


왼쪽으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뚝 솟아있는 그의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은 1889년 그의 요양원 시절에 그린 것, 강물에 가스등 불빛이 마치 별그림자 처럼 비추고 있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빈센트의 방> 등은 1888년 아를에서 그린 그림이다. 자연을 즐겨 그린 고흐이지만 비교적 작은 정물을 그린 그림들에서 유독 더 쓸쓸함이 느껴지는건 왜일까. 낡은 구두, 뒤집어져 있는 게, 말라비틀어진 청어.


이토록 전 세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명성을 얻고 있는 화가의 작품들이 생전에 그렇게 하나같이 인정을 못받았다는 사실이 나같은 보통사람에게 예술이라는 세계에 대해 난해함만 던져준다. 그리고 작가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 공황상태, 조울증에 시달리는 상태에서도 음악, 미술, 문학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그것이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라면 가능할까? 

고흐의 37년 생애를 따라가며 그림 감상까지, 느끼고 정리하기에 좋은 기회를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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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1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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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2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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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0-1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고흐 책을 읽고 그의 인생이 좀 안 됐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그림을 그릴 땐 행복했을까요?
불행한 삶이 예술을 방해하기보다 오히려 예술적 작품을 탄생하게 만들기도 하죠.
행복한 예술가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예술가들의 인생에는 고독 우울 불행 소외. 이런 것들이 따라다니는 듯합니다.

hnine 2023-10-19 12:53   좋아요 0 | URL
정말 불행한 일생을 살다 간 화가이지만, 그나마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떨쳐내는 결단력이 있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던 용기가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행복이 뭘까요?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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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예상하고 구입하긴 했지만 읽기 시작하자 마자 너무 내 얘기 그대로 써놓은 것 같은 내용에 아예 밑줄 치기도 포기하고 그냥 죽죽 읽어갔다. 

김소연 시인이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이 나처럼 저자에 공감할까?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이 세상이 모두 캐럴라인 냅 같다면, 나 같다면, 그건 아닐 것 같으니까. 

고립은 일종의 자기 보호, 자기 방어 기제로서, 나를 안전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되어 선택된 것이지, 고립된 삶 그 자체가 좋아서 선택된 것은 아닐 것이다. '명랑한' 은둔자라고 한 것은 나의 이런 삶을 명랑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도의 표현이다. 은둔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명랑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때 고립고독이 된다. 저자가 말했듯이 고립과 고독은 다른 차원의 것. 원서에는 어떤 단어가 쓰였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lonelyness 와 solitude가 아닐까 추측된다. 고립과 고독이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 사이가 분명하게 구분이 가는 것은 아니어서, 둘의 관계는 쌍둥이 같기도 하고 마치 미끄러지는 경사로 같은 것이라고 지적한 저자는 과연 예리하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가 늘 분명하거나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두 상태가 늘 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고독은, 내 경험상, 자칫하면 미끄러지는 경사로다. 처음에는 안락하게 느껴지지만 종종 아무런 경고도 자각도 없이 훨씬 더 어두운 것으로 변신할 수 있는 상태다. (20쪽)

우리가 할 일은 고립의 상태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관리하는 일. 그 어느 은둔자도 고독을 즐기는 것이지 고립을 즐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혼자 있는다는 것은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25쪽)

그러면서 저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게 될 것도 각오해야한다.

"이게 정상일까? 진짜?"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지 않은 나의 작은 세계인 것이다.


저자 캐럴라인 냅은 미국의 작가이자 컬럼니스트로 1959년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성장하였고 브라운 대학 졸업후 보스턴 휘닉스지 칼럼니스트로 8년 동안 일하면서 쓴 그의 칼럼을 묶어 첫번째 책 <Alice K's guide to life>를 출판하였다. 이후 본인의 알콜중독 경험을 내용으로 한 <Dringking>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았고 다이어트 강박증과 식이장애 경험에 대한 책 <Appetites>, 개에 대한 애착을 내용으로 한 <Pack of two>등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였으나 폐암으로 2002년 42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였다. 

여기 실린 글들은 1992년에서 2000년사이, 그녀가 30대에 쓴 것들로서 역시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록들이다. 어찌 보면 일기 같고 자기 분석의 결과물이기도 하며 어둡고 우울한 내용들일 것 같지만 글쓰는 능력이 유려하고 유머 감각을 놓지 않으려했던 덕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저 느낌과 감정에 치우칠수도 있는 내용이었을텐데 어쩌면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이렇게 철저하게 분석하여 객관적이고 명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뿐이다.


우울한 은둔자가 아니라 명랑한 은둔자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성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끊임없는 연습과 자각이 필요한 과정이다. 도달하는 곳이 아니라 계속 줄타기 해야하는 여정이라고 할까.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I am a merry recluse.)"

그녀가 스스로 그렇게 불러보았듯이 한번 흉내내본다. 명랑이란 말이 여전히 낯설다. 나랑은 안어울리는 단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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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10-04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립과 고독이 다르다는 말 와닿는데요. 자신의 성향인 은둔을 받아들이지만 그걸 고립이 아니게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이 hnine님 리뷰에서 느껴지네요. 저도 읽으려고 사놓은 책인데 hnine님 글 읽고 빨리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hnine 2023-10-05 06:07   좋아요 1 | URL
정신분석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모르겠는데 저자가 자신에 대해 참 잘 알고 있었어요.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기가 쉽지 않을텐데 말이지요. 고독과 고립에 대한 차이점 정도는 우리도 쉽게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두 상태가 별개의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가역적으로 계속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러려면 자기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끌어낼 수 있었던 저자는 어딘지 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져요.
번역이 매끄러워서 더욱 더 가독성 있는 책이었어요. 사놓으셨다니 금방 읽으시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