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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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예상하고 구입하긴 했지만 읽기 시작하자 마자 너무 내 얘기 그대로 써놓은 것 같은 내용에 아예 밑줄 치기도 포기하고 그냥 죽죽 읽어갔다. 

김소연 시인이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이 나처럼 저자에 공감할까?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이 세상이 모두 캐럴라인 냅 같다면, 나 같다면, 그건 아닐 것 같으니까. 

고립은 일종의 자기 보호, 자기 방어 기제로서, 나를 안전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되어 선택된 것이지, 고립된 삶 그 자체가 좋아서 선택된 것은 아닐 것이다. '명랑한' 은둔자라고 한 것은 나의 이런 삶을 명랑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도의 표현이다. 은둔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명랑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때 고립고독이 된다. 저자가 말했듯이 고립과 고독은 다른 차원의 것. 원서에는 어떤 단어가 쓰였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lonelyness 와 solitude가 아닐까 추측된다. 고립과 고독이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 사이가 분명하게 구분이 가는 것은 아니어서, 둘의 관계는 쌍둥이 같기도 하고 마치 미끄러지는 경사로 같은 것이라고 지적한 저자는 과연 예리하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가 늘 분명하거나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두 상태가 늘 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고독은, 내 경험상, 자칫하면 미끄러지는 경사로다. 처음에는 안락하게 느껴지지만 종종 아무런 경고도 자각도 없이 훨씬 더 어두운 것으로 변신할 수 있는 상태다. (20쪽)

우리가 할 일은 고립의 상태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관리하는 일. 그 어느 은둔자도 고독을 즐기는 것이지 고립을 즐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혼자 있는다는 것은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25쪽)

그러면서 저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게 될 것도 각오해야한다.

"이게 정상일까? 진짜?"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지 않은 나의 작은 세계인 것이다.


저자 캐럴라인 냅은 미국의 작가이자 컬럼니스트로 1959년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성장하였고 브라운 대학 졸업후 보스턴 휘닉스지 칼럼니스트로 8년 동안 일하면서 쓴 그의 칼럼을 묶어 첫번째 책 <Alice K's guide to life>를 출판하였다. 이후 본인의 알콜중독 경험을 내용으로 한 <Dringking>을 발표하여 명성을 쌓았고 다이어트 강박증과 식이장애 경험에 대한 책 <Appetites>, 개에 대한 애착을 내용으로 한 <Pack of two>등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였으나 폐암으로 2002년 42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였다. 

여기 실린 글들은 1992년에서 2000년사이, 그녀가 30대에 쓴 것들로서 역시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록들이다. 어찌 보면 일기 같고 자기 분석의 결과물이기도 하며 어둡고 우울한 내용들일 것 같지만 글쓰는 능력이 유려하고 유머 감각을 놓지 않으려했던 덕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저 느낌과 감정에 치우칠수도 있는 내용이었을텐데 어쩌면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이렇게 철저하게 분석하여 객관적이고 명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뿐이다.


우울한 은둔자가 아니라 명랑한 은둔자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성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끊임없는 연습과 자각이 필요한 과정이다. 도달하는 곳이 아니라 계속 줄타기 해야하는 여정이라고 할까.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I am a merry recluse.)"

그녀가 스스로 그렇게 불러보았듯이 한번 흉내내본다. 명랑이란 말이 여전히 낯설다. 나랑은 안어울리는 단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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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10-04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립과 고독이 다르다는 말 와닿는데요. 자신의 성향인 은둔을 받아들이지만 그걸 고립이 아니게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이 hnine님 리뷰에서 느껴지네요. 저도 읽으려고 사놓은 책인데 hnine님 글 읽고 빨리 보고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hnine 2023-10-05 06:07   좋아요 1 | URL
정신분석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모르겠는데 저자가 자신에 대해 참 잘 알고 있었어요.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기가 쉽지 않을텐데 말이지요. 고독과 고립에 대한 차이점 정도는 우리도 쉽게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두 상태가 별개의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가역적으로 계속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러려면 자기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끌어낼 수 있었던 저자는 어딘지 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져요.
번역이 매끄러워서 더욱 더 가독성 있는 책이었어요. 사놓으셨다니 금방 읽으시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