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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 그림으로 본 고흐의 일생
이동연 지음 / 창해 / 2023년 1월
평점 :
너무 많이 보고 들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화가 고호. 그래서 한번도 그의 일생을 한권으로 꿰뚫어 읽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의 제목이 저자나 출판사가 지은 것이라면 좀 작위적이지 않나 했는데, 고호 자신이 한 말이란다. 죽고 나서 주머니에서 미처 부치치 못한 편지 한통, 테오에게 보내려고 했던 편지가 나왔고 거기 써있던 글귀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림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이 책을 쓴 저자는 방송매체와 기업에서 예술과 역사 관련 강의를 많이 한 경험이 있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오랫동안 고정 출연하며 '예술가와 뮤즈'에 대해 다룰 때 고흐를 방송했던 것을 인연으로 이 책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강의 경험이 많은 때문인지 글이 편하게 읽혔다. 왔다 갔다 할 것 없이 고흐의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시간 순으로 구성이 되어있어 지루함 없이 따라 읽다 보면 금방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게 된다.
책 내용에서 언급하는 그림이 바로 그 페이지에 삽입되어 있어 따로 검색해보지 않고 바로 볼 수 있게 구성한 점도 독자로서 마음에 들었다. 긴 일생을 산 고흐는 아니지만 시기와 거주지에 따라 화풍이 다소 변화를 겪기 마련인데 나중에라도 그림들이 이 책에 등장했던 순서를 기억해보면 자연스럽게 시간순으로 어느 그림이 이전 그림이고 어느 그림이 나중에 그려진 그림인지 대개 가닥이 잡힐 것 같다.
1853년,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준데르트에서 태어난 고흐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고 동생 테오와는 네살 차이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듯, 어머니가 풍경을 그리러 나갈때 가끔 따라다니며 데생을 했다고 한다. 그가 9살때 그렸다는 목탄화 <다리>를 보면 확실히 어릴 때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흐의 원래 꿈은 화가가 아니라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였고 그림은 취미였다고 한다.
형제가 많았던 고흐는 초등학교는 몇년 다니다 말고 동생들과 함께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16살에는 화랑에 직원으로 취직을 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학을 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기대를 따르지 않고 고흐는 서른이 다 된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벨기에 브뤼셀 왕립미술학교, 헤이그를 거쳐 벨기에의 항구도시 안트베르펜에서 미술 아카데미에 다녀봤지만 브뤼셀 왕립미술학교를 1년도 채 못다니고 그만 두었듯이 안트베르펜에서의 아카데미도 너무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그만두고 만다. 하지만 고흐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리고는 예술의 도시 파리로 무작정 떠난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누구 못지 않았지만 파리에서 미술상을 하고 있던 테오로부터 고흐의 그림은 기대만큼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뿐이다. 고흐는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라는 테오의 조언도 듣고, 파리의 다른 여러 화가들을 만나 그들의 그림을 보고 매료되기도 하면서 자기의 화풍을 구축해나간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연인으로부터 잇달은 실연과 잘못 퍼진 소문, 좋지 않은 결과만 주고 있는 그림으로 고흐는 정신적 불안과 조울증세를 나타내며 힘든 생활을 한다. 이런 가운데 고갱을 만난 고흐는 천재 화가를 만났다며 그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한다. 파리에서 아를로 이주를 하고 좋아하는 노란색의 집을 구한뒤 고갱을 불러들인 고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동생 테오와 주위 몇몇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고갱과 함께 한집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토록 좋아하던 고갱이었지만 이들의 그림 방식과 주관은 사못 달라서 자주 의견 충돌을 보였고 사이가 멀어져 급기야 고갱은 고흐를 떠난다.
건강이 더욱 악화된 고흐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아를을 떠나 생레미 요양원으로 들어가고 외롭고 힘든 요양원 생활을 하지만 여기서도 그의 그림은 멈추지 않는다. 이당시 그의 그림을 보면 우울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다. 비탄에 빠진 노인, 단체로 운동하고 있는 죄수들, 황혼의 풍경등.
자신의 건강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안 고흐는 마지막을 요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파리 근교 시골 마을 오베르로 가서 오베르의 전원 풍경을 그리며 마지막 창작열을 불태운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나무 뿌리와 기둥>은 그가 오베르에서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1890년 그의 나이 37세,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고흐는 총알이 가슴에 박힌채 하숙집으로 돌아왔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난다. 아직도 그것이 고흐 자신이 쏜 총인지, 다른 누가 그에게 총을 쏘았는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그가 죽은지 6개월 후 동생 테오 역시 세상을 떠났다.
왼쪽으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뚝 솟아있는 그의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은 1889년 그의 요양원 시절에 그린 것, 강물에 가스등 불빛이 마치 별그림자 처럼 비추고 있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빈센트의 방> 등은 1888년 아를에서 그린 그림이다. 자연을 즐겨 그린 고흐이지만 비교적 작은 정물을 그린 그림들에서 유독 더 쓸쓸함이 느껴지는건 왜일까. 낡은 구두, 뒤집어져 있는 게, 말라비틀어진 청어.
이토록 전 세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명성을 얻고 있는 화가의 작품들이 생전에 그렇게 하나같이 인정을 못받았다는 사실이 나같은 보통사람에게 예술이라는 세계에 대해 난해함만 던져준다. 그리고 작가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 공황상태, 조울증에 시달리는 상태에서도 음악, 미술, 문학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그것이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라면 가능할까?
고흐의 37년 생애를 따라가며 그림 감상까지, 느끼고 정리하기에 좋은 기회를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