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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라졌다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13
수 코벳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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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색의 책 표지에는, 마법스프가 담긴 단지와 검은 색 토끼, 엄마를 찾는다는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그리고 12살 아들 패트릭으로 짐작되는 아이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다. 원제는 ‘12 again'. 미국 작가 수 코벳의 소설이다.

이제 막 중학교 2학년이 된 큰아들 패트릭 외에도, 밑으로 케빈, 초등학교 2학년 닐, 이렇게 아들만 셋을 둔 신문기자 엄마 버나뎃은 일하는 엄마의 예외 없는 바쁜 일상으로 늘 쫓기듯 살고 있고,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 역시 언제 받을지 모를 병원으로부터의 콜로 집에서조차 늘 대기 상태인 바쁜 몸. 식구 중 누구도 기억해주지 못한 그녀의 마흔 번째 생일날,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무심결에 하게 되고, 말이 씨가 되었나,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지는데.

엄마가 사라진 이후 우왕좌왕 하는 집의 상황은 누구든지 예상할 수 있겠으나 이 책에서는 사라진 엄마가 다시 12살이 되어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동급생이 되어 아들을 더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설정이다. 일하는 엄마에, 아직 앞가림 못하는 두 동생들이 있는 집의 맏이는 늘 엄마 못지않은 부담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자신 아직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부터 이미. 바쁜 부모의 가사는 좀처럼 둘째나 셋째에게 분담되어지지 않는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미루고 동생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간식을 챙겨 먹여야 하며, 숙제를 봐줘야 한다. 불만? 일단은 눌러 참는다. 자신의 자리에서 사라져 12살 아이로 돌아간 엄마는 패트릭의 이런 상황을 다시금 보게 된다.

저자의 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또 소원을 빌 때는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한다.’고.


우리가 가족을 떠나 사라질 곳은 없다. 너무 오랜 기간이 아닌, 잠시 동안이라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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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4-2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아이들이 크면 한번 시도해보고 싶어요. 사라지는 것 말고, 혼자 떠나보기...
 
별난 한의사 손영기의 먹지마 건강법 - 개정증보판 마이너스 건강 1
손영기 지음 / 북라인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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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어야 어디에 좋고, 무엇을 먹으면 오래 살고.
참살이(well - being)에 대한 사람들의 증가되는 관심, 인터넷에 의한 정보 수집의 간편함과 확산 속도는 특히 건강 정보에 대해서 홍수를 이루다시피 해오고 있다. 이것 저것 챙겨 먹는 부지런함에, 모든 일에 저런 정성을 쏟는다면 큰일을 못할 사람 없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와 어느 정도 코드가 맞는 책이었다. 뭘 그렇게 계속 먹음으로써 답을 찾으려 하는지. 배탈이 났거나 속이 안 좋을 때, 뭘 먹으면 나아질까 보다는 한두끼 속을 비우는 쪽을 선호하는, 감기나 몸살에 걸렸을 때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속을 가볍게 하고 몸으로 하여금 병원(病原)과 싸우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가만히 두는 쪽을 선호하는 내게는 말이다. 또한 스스로를 식의(食醫)라고 하며 藥보다 제대로 된 食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에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1.칼슘이 좋으면 칼슘이 풍부한 음식을 먹자. 칼슘 제제를 약으로 먹으려 할 것이 아니라.
현미가 몸에 좋으면 현미를 먹으면 될 일이지 현미 추출액을 이용한 첨가 식품을 먹지 말자. 오렌지가 좋으면 오렌지를 사서 먹는 것이 오렌지 쥬스를 마시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평소에 나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DHA가 들어간 우유와 과자, 콜레스테롤 분해 물질이 함유된 마가린, 뼈의 노화를 막는 칼슘, 비타민 D, K가 들어간 카라멜등. 이들이 유전자 조작 식품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


2. 무엇을 먹는냐 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한 사람의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도 조기 유학이나 과외에 쏟는 열정의 반만이라도 자녀들의 식습관 개선에 신경을 쓰라는 저자의 말에도 역시 동감이다.


3. 감기라든지 소화 불량, 갱년기 장애, 피로 등을 단순히 약을 먹어서 하루 빨리 고칠 생각만 말고, 몸이 보내는 신호로 받아 들이고 귀 기울이라. Let it be의 여유가 필요하다.

4. 마음의 병을 육체로 다스리는 법칙, 병든 마음을 몸으로 달래 보자. 음식 가리기는 마음 다스리기의 원천이다. 음식이 곧 마음. 실천하기 어려운 마음 다스리기에 지쳤다면 당장 개선할 수 있는 음식 가리기를 실천해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 요즘 이런 먹거리에 관한 책을, 먹는 것 자체에 대한 이슈보다는 '환경'의 차원에서 더 관심이 가고 있다. 거창한 이야기인지 모르나, 우리가 사는 환경의 오염과 파괴의 정도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고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인류의 위기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서히 우리의 손에 의해 진행되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본격적인 인스턴트 가공 식품 세대인 지금의 10대, 20대가 사회의 주역이 될 21세기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 궁금해진다고 저자도 말하고 있다.

제목이 다소 원초적으로 붙여진 감이 있지만 일독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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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1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7-05-0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맞아요. 예전보다 양적으로는 풍요로와 졌는데, 질적으로는 별로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가려먹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네요. 먹거리 앞에 두고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해야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속삭이신님, 우울할땐 운동으로 푸는 것이 훨씬 더 좋더군요.
오늘 노동절, 열심히 일하셨으니 푹 쉬셔야지요. 출장은 잘 다녀오신거죠?
 
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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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1, 2 읽기를 마치다.
16세기 말, 터어키 이스탄불 외곽의 어느 우물 바닥에 죽어 버려진 한 세밀화가 엘레강스의 독백이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어가는 이후로 계속 '내 이름은 누구...' 하는 식의 소 제목 아래 등장 인물 (혹은 무생물일수도 있다)들이 돌아가며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 당시 이슬람 국가의 미술 형식은 인물의 특징은 배제되고 이야기와 사건이 담긴 그림의 내용이 더 중시되던 시대. 서서히 베네치아를 비롯, 서양의 새로운 사조가 밀려 들어오고, 그것은 신과 군주에 대한 모독이라는 믿음과 부딪히게 된다. 이런 배경아래, 궁중화원 소속의 한 화가가 죽은 채 우물에 버려진 사건이 일어나고, 읽는 사람은 이 책 2권의 말미에 가서야 그 범인을 제대로 알게 되니, 읽는 사람의 흥미는 지루함을 느낄 여지를 만들지 않는다.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는 방식이나, 계속 관점을 달리하여 말하는 화자 전환 방식의 구성은 작가의 치밀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 오르한 파묵은 지난 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훨씬 이전부터 노벨상 후보 일순위에 있던 사람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터어키, 이슬람 문화, 세밀화 기법 등, 책에 처음 들어갈 때의 익숙하지 못함이 오히려, 잘 모르던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전환되어 흥미를 더해준 책.  이런 이야기와 구성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는 생각을 결코 할수 없었던, 독특하고 매력있는 책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또 하나의 작가를 마음 속에 담고, 터어키를 비롯, 그 시대 이슬람 미술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졌으니, 나의 관심 분야가 또 한번 확장되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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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1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두고 아직 손 못 대고 있어요. 터키와 이슬람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인가 봐요. 님의 리뷰 보니 흥미진진한 서술방식인 것 같아요^^

hnine 2007-04-1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읽어보세요. 독~특 하답니다 ^ ^
섬사이님, 책을 읽기 시작하고 초반부에는 좀 집중력이 요구되지요. 감을 잡아야하니까요. 하지만, 감 잡았다 싶으면 벌써 중반을 훌쩍 넘어서 속도가 붙고 있더군요. 세살 아기가 있으시군요. 한참 힘드시겠다...하지만 더 컸을때보다 고맘때가 제일 이쁘고 사랑스러웠던것 같아요.

해적오리 2007-04-1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 여행할 때 타지마할 같은 이슬람 문화를 접하면서 나름 많이 반했드랬죠.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일품이에요. 이론적으로 아는 건 없지만 그때의 감동은 아직 남아있네요. ^^

hnine 2007-04-1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님, 인도 다녀오셨군요. 옆에 앉아 얘기 듣고 싶네요.
 
진짜 좋은게 뭐지?
닉 혼비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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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 닉 혼비의 About a boy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야말로 웃기도 하고 씁쓸해하기도 하며 책을 읽었더랬다. 닉 혼비는 글을 무겁고 심각하게 쓰기보다는 풍자스럽게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런 경향은 이 책 <진짜 좋은게 뭐지?>에서도 나타난다. 비록 내용은 붕괴되어 가고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이지만 글 한줄 한줄에는 푸하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가 숨어있기 일수이다.

우선, 이 책의 내용에 얼마나 공감이 갔는가 하는 문제이다. 결혼 생활 24년만에 이혼을 해야할까보다 생각하는 중년 여의사, 도저히 나랑 맞지 않는다고 이혼까지 결심하게 한 남편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정식 의료행위도 아닌 허리 맛사지를 받고 온 후 보인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갑작스런 변화, 그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찬성도 강력한 반대도 밀어붙이지 못하고 갈등과 방황을 보이는 부인 앞에서 독자는 더구나 이해가 힘들다. 그 갑작스런 변화의 동기와 의미는 무엇인지. 이 책의 제목 도 남편의 그런 심경의 변화에서 나온 행동을 일컫는 말인 것 같은데, 이것은 이책의 소개말에 쓰여진 ‘가정의 붕괴’라는 주제와 어떻게 연관지어 받아들여야할지 언뜻 감이 오질 않는다. 오히려 가정의 붕괴라기보다는 ‘결혼생활의 붕괴’라고 함이 더 어울리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다음 구절을 읽으면서도 해보았다.

‘...결혼식 날 여자들이 상상도 못 하는 사실은-하긴 어떻게 상상을 한단 말인가?- 언젠가는 자기가 배우자를 증오하고, 그 얼굴만 봐도 반지나 체액은 고사하고 단 한마디 말을 나눈 것조차 후회스러운,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절망과 우울, 내 인생이 끝났다는 기분, 애들한테 손끝 하나 대지 못할 거면서 징징거리는 애들만 보면 후려패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솟을 거란 상상 이런 상상을 미리 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 남편이 어느 날 아침 일어났더니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를거다. 조금이라도 이런 문제를 생각한 사람이라면, 누가 미쳤다고 결혼을 하겠는가. 한 사람도 없을 거다. 이런 거라는 걸 알면서도 결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가끔씩 표백제를 병째 들이마시고 싶어하는 사람과 똑같다. 다시 말해, 결혼이라는 것은 다들 뜯어말려야 할 일이라는 거다. 그런데 막상 결혼이, 혹은 평생을 같이 보낼 동반자 내지 내 자식들의 아버지를 찾는 일이 중대한 문제가 될 때는 이런 생각들을 할 여유가 없다. 결혼이란 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인 데다 그런 꿈마저 없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승진이나 복권 당첨 밖에 없는데, 그건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기껏해야 진흙투성이 운동화를 빠는 정도의 시련만 상상하면서 부부 관계로 들어선다. 그러다가 결국 불행해지고 신경안정제를 퍼먹다가 이혼을 하고 혼자 외롭게 죽어가는 거다...’ (128쪽)

지독한 sarcasm (풍자?) 아닌가? ‘열심히 연습한 기미가 역력한 농담’ (246쪽) 이라던지, 닉 혼비의 문체를 단순이 ‘유머’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 유쾌한 블랙 코메디’라는 소개말에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또 한가지, 자신의 이익과 편리함을 양보하여 그늘진 구석의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자고 법석을 떠는 이야기를 펼쳐 가는 가운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은근한 차별 의식이다. 동유럽에서 이민온 사람의 발음 같다던지, 동유럽 어디에서 온 사람의 외모를 하고 있다던지, 아이의 친구를 소개하면서 그 애는 흑인과 카리브 인의 혼혈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던지.

끝맺음부분에서 작가가 특별히 주려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을 바로 포착하지 못한 건 독자의 역량 탓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해체라는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도 유쾌하게 웃을 수 만은 없는 문제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번역자의 독자를 위한 노력이 친절한 ‘역주’ 여기저기에서 보이고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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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4-1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공감은 가면서도 어딘지 씁쓸하지요. 다 사람 사는 모습이려니 생각도 들구요.
 
나, 김점선 - 개정판
김점선 지음 / 깊은샘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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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에게 별로 끌리지 않는다. 나와 너무나 달라 보이는 사람에게 역시 끌리지 않는다. 나는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이 일게 하는, 언뜻 감이 오지 않는 사람에게 끌린다. 아마 김 점선이라는 사람의 책이 눈에 뜨이는 대로 손에 집어 드는 이유도 그런 것일까. 책 표지의 제목은 그녀의 필치로 당당하게 <나, 김점선>, 그리고 역시 그녀의 그림 가 돋보인다. 그림과 제목으로 벌써 난 누구라고 알리고 있는 듯한.

 

그녀의 다른 책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쓴 구절을 읽고 밑줄 그어 놓은 기억이 있는데 그녀는 실제로 지나치기 쉬운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마음과 눈을 가졌다.

「나는 해가 뜨기 훨씬 전에 일어난다. 그러고는 해가 떠서 색채가 구별되기를 기다린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밥 짓고, 빨래하고, 우리 아들 도시락을 싼다. 그런 후에 나가서 가로등을 끈다. 천천히 마을을 돌면서 가로등을 끄면, 그 중 몇은 벌써 꺼져 있다. 마을 주변의 벌 언저리에서는 어둠 속에서 검은 덩어리로만 보이는 농부가 밭일을 하고 있다. 나는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마을에 몇 명의 성인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이 내린 날 새벽에 산 속으로 산책을 나가 보면, 어느새 비탈길엔 눈이 치워져 있다. 모래나 연탄재가 뿌려져 있기도 하고, 더 미끄러운 길은 흙을 파서 발 디딜 자리를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그런 길을 밟고 걸으면서 나는 또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만 산골에도 하느님에게만 보이는 표지를 몸에 지닌 성인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을 완전한 성실로 채우는 사람들, 하찮은 일들을 정성껏 해내는 사람들, 사람들과 말하기보다는 하느님과 말하기를 더 즐기는 사람들」(111쪽, 일상 속의 성인들)

작가와 마음이 혼연 일치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 구절이다. 이런 느낌과 생각으로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을 이렇게 글로 남기는 사람이면 그 누구이든 기억하고 싶다.

 

김점선에게 글쓰기는 이미 어릴 때부터 거의 집착에 가까운 책읽기 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어떤 문제가 생기면 책 또는 그림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고 한다.

「노동에 치여서, 스러져 버릴 것만 같은 내 생명에 대한 연민의 기록,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꿈이고 뭐고를 다 잃어버릴 것 같은 공포에 저항하는 … 나 자신에 대한 나의 기록. 그 필요가 지친 몸을 눕지 못하게 했다. 새벽 동이 트도록 곧추세워 …… 그 몸을 책상에 앉혔다.」(프롤로그 中) ‘내 생명에 대한 연민의 기록’ 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꾸미려고 하지 않는다. 짤막짤막한 문장 속에, 바로 그때의 느낌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군더더기 없는 그녀의 글이 좋다. 마치 그녀의 그림이 그렇듯이. 복잡한 풍경이나 구상을 그리기 보다는 토끼, 꽃, 말, 오리, 거위, 코끼리, 맨드라미, 고양이 등, 어린 아이들도 대상으로 삼을 만한 소재들을 몇 가지 안 되지만 선명한 색, 복잡하지 않은 선으로 표현되어 마치 무슨 판화를 연상하게 되는 그림들이다. 하나의 그림을 위해 수없이 반복한다는 에스키스는 마침내 그런 형태의 그림이 되어서 세상에 나오나 보다.

 

학교 다닐 때 큰 키와 행색으로 장발 단속에도 여러 번 걸렸다는 김점선. 결혼이라는 게 싫었던 그녀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또 얼마나 그녀다운지. 내 식으로 결혼하고 내 식으로 생활하며 내 식으로 만들어갈 것이라는 각오로 시작한 그녀의 결혼 생활 얘기, 아이 낳아 키우는 얘기도 좋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떻게 자기 자신이 옳은 어른이 될까 하고 생각해야 한다. 아이는 가르칠 의도로써 가르치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기 일을 꿋꿋이 해나가는 사람을 봄으로써 더 큰 것을 얻게 된다. 가르친다는 기술이나 내용을 연구하기보다는 어른 자신이 분명하게 살길 바란다. 어른이 아주 작은 일에도 정직하고 공정하게, 바르게 행동하고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시간을 허술히 쓰지 않고 목표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면 그것으로써 엄마의 역할은 다 되는 것이다. 아이는 노예처럼 아이 주변을 맴돌며 시중이나 들어 주고 얘기 상대나 되어 주는 엄마를 원치 않을 것이다.」(273쪽, 아주 작은 일에도 정직하고 바르게 중).

 

아마 또 어디선가 김점선이라는 이름을 보게 되면 나는 주저없이 다가가게 될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게 될 것임을. 그것이 글의 형식이든 그림의 형식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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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4-0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그렇지요? 그 구절이 가슴에 콕 박히더라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