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좋은게 뭐지?
닉 혼비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수년전 닉 혼비의 About a boy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야말로 웃기도 하고 씁쓸해하기도 하며 책을 읽었더랬다. 닉 혼비는 글을 무겁고 심각하게 쓰기보다는 풍자스럽게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런 경향은 이 책 <진짜 좋은게 뭐지?>에서도 나타난다. 비록 내용은 붕괴되어 가고 있는 한 가정의 이야기이지만 글 한줄 한줄에는 푸하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가 숨어있기 일수이다.

우선, 이 책의 내용에 얼마나 공감이 갔는가 하는 문제이다. 결혼 생활 24년만에 이혼을 해야할까보다 생각하는 중년 여의사, 도저히 나랑 맞지 않는다고 이혼까지 결심하게 한 남편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정식 의료행위도 아닌 허리 맛사지를 받고 온 후 보인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갑작스런 변화, 그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찬성도 강력한 반대도 밀어붙이지 못하고 갈등과 방황을 보이는 부인 앞에서 독자는 더구나 이해가 힘들다. 그 갑작스런 변화의 동기와 의미는 무엇인지. 이 책의 제목 도 남편의 그런 심경의 변화에서 나온 행동을 일컫는 말인 것 같은데, 이것은 이책의 소개말에 쓰여진 ‘가정의 붕괴’라는 주제와 어떻게 연관지어 받아들여야할지 언뜻 감이 오질 않는다. 오히려 가정의 붕괴라기보다는 ‘결혼생활의 붕괴’라고 함이 더 어울리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다음 구절을 읽으면서도 해보았다.

‘...결혼식 날 여자들이 상상도 못 하는 사실은-하긴 어떻게 상상을 한단 말인가?- 언젠가는 자기가 배우자를 증오하고, 그 얼굴만 봐도 반지나 체액은 고사하고 단 한마디 말을 나눈 것조차 후회스러운,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절망과 우울, 내 인생이 끝났다는 기분, 애들한테 손끝 하나 대지 못할 거면서 징징거리는 애들만 보면 후려패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솟을 거란 상상 이런 상상을 미리 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 남편이 어느 날 아침 일어났더니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를거다. 조금이라도 이런 문제를 생각한 사람이라면, 누가 미쳤다고 결혼을 하겠는가. 한 사람도 없을 거다. 이런 거라는 걸 알면서도 결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가끔씩 표백제를 병째 들이마시고 싶어하는 사람과 똑같다. 다시 말해, 결혼이라는 것은 다들 뜯어말려야 할 일이라는 거다. 그런데 막상 결혼이, 혹은 평생을 같이 보낼 동반자 내지 내 자식들의 아버지를 찾는 일이 중대한 문제가 될 때는 이런 생각들을 할 여유가 없다. 결혼이란 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인 데다 그런 꿈마저 없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승진이나 복권 당첨 밖에 없는데, 그건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기껏해야 진흙투성이 운동화를 빠는 정도의 시련만 상상하면서 부부 관계로 들어선다. 그러다가 결국 불행해지고 신경안정제를 퍼먹다가 이혼을 하고 혼자 외롭게 죽어가는 거다...’ (128쪽)

지독한 sarcasm (풍자?) 아닌가? ‘열심히 연습한 기미가 역력한 농담’ (246쪽) 이라던지, 닉 혼비의 문체를 단순이 ‘유머’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 유쾌한 블랙 코메디’라는 소개말에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또 한가지, 자신의 이익과 편리함을 양보하여 그늘진 구석의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자고 법석을 떠는 이야기를 펼쳐 가는 가운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은근한 차별 의식이다. 동유럽에서 이민온 사람의 발음 같다던지, 동유럽 어디에서 온 사람의 외모를 하고 있다던지, 아이의 친구를 소개하면서 그 애는 흑인과 카리브 인의 혼혈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던지.

끝맺음부분에서 작가가 특별히 주려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을 바로 포착하지 못한 건 독자의 역량 탓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해체라는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도 유쾌하게 웃을 수 만은 없는 문제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번역자의 독자를 위한 노력이 친절한 ‘역주’ 여기저기에서 보이고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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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4-1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공감은 가면서도 어딘지 씁쓸하지요. 다 사람 사는 모습이려니 생각도 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