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부처
이 원규
내내 긴 겨울잠을 자다
매화 꽃망울 터지는 소리에
깨어보니
삼매는 오간 적도 없고
삼발 머리에 손톱 발톱만 자랐다
봄은 봄이로세
부시시 일어나
토방에 군불을 지피고
꽃피는 법당 하나 차렸다
촛불 두 개를 켜고
헌화 헌다 헌향
목불 하나 없는 법당에서
커다란 거울을 보며
백팔 배를 하였다
한 번 절하고
너는 누구냐
또 한 번 절하고
너는 또 누구냐
묻고 묻다가
거울 속의
남루한 부처와
두 눈이 딱 마주쳤다
그도 분명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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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 라는 제목의, 곽 재구 시인이 모아 놓은 다른 사람들의 시 모음집을 어제 손에 넣었다. 곽 재구 시인의 시는 한 편도 실려 있지 않지만, 여기에 실린 시들을 읽으며 또 한번 이 세상에는 곽 재구 시인같이 '시인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생각하게 된다.
이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온 시를 한 편 골라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이제는 나, 그 물음을 되도록 묻지 않으며 살기를 바라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