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메일의 Draft 폴더에는 5년 넘게 한통의 메일이 저장되어 있다.

2012년 1월. 지금까지 하던 일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한지 세달 째 되어가던 때였다. 겨우 일에 적응이 되려고 하던 참인데 이번엔 임원진이 통째로바뀌고 일의 체계까지 대폭 바뀌어 도저히 앞으로 내가 감당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고심 고심 끝에 "저보다 더 적임자가 있을 것 같습니다" 라는, 한마디로 일을 그만 두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쓰고 전송하기 직전, 혹시 조금이라도 무례한 표현이 있는지 읽어보라고 남편에게 보여주었는데 읽고난 남편이 그 일을 지금 당장 그만 두지 말고 조금만 더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메일은 전송을 보류하고 Draft 폴더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세달 모자라는 6년을 해온 일. 이제 진짜 그만 하게 되었다.

 

열심히 했다.

그래서 여한이 없다.

 

 

 

하나의 문이 닫히고 있으니,

어디선가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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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3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8-03 12:2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
좀 슬슬 했더라면 더 오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너무 과잉충성한게 오히려 안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아요.

세실 2017-08-0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부러운걸요!

hnine 2017-08-03 13:02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세실님, 제가 짤린건데요 ㅠㅠ

프레이야 2017-08-0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시작!! 뭐든 응원합니다.

hnine 2017-08-03 16:04   좋아요 0 | URL
뭐든 응원해주신다는 말씀이 피부로 와닿습니다.
당분간 책을 더 열심히 읽으려고요. 방학 숙제 없이 방학을 맞은 학생이 되었다 생각하고요 ^^

2017-08-03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8-03 16:06   좋아요 1 | URL
새로 언제 무엇을 시작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불안하게도 하지만 그 불안도 제가 마음 속에서 짓는 것이니, 그냥 좋게, 마냥 좋게 (^^) 생각하려고요. 몸이 아픈 것 아니라면 이 세상에 정말 심각한 일이란 몇 안된다는게 제 평소 생각이기도 하고요.
기운나라고 해주시는 말씀 감사드려요.

2017-08-03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8-04 05:04   좋아요 0 | URL
일의 성격을 파악하고 나니 제 적성에도 아주 맞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 다른 곳에서 또 제의가 오면 마다하지 않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출근하지 않고 제 집에서 할 수 있다는게 저 같은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었지요.
제 친구들 중에도 직장 생활 계속 해오고 있는 애들은 이제 많이 지쳐하더군요. 거의 번아웃 증후군 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요. 체력의 고갈을 느낄 즈음 그만 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디 딱 아픈 곳이 나타나야 비로소 쉬게 되니 참...
저도 계속 쉴 수 있는 형편은 못되고요 ^^ 조급하지 않게 또 다른 곳을 알아보아야지요.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qualia 2017-08-03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화제의 서재글 꼭지에 올라온 hnine 님의 글 첫머리를 딱 읽었을 때, 평소 hnine 글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었던 유형의 심리적 무게감을 느꼈습니다. 역시 열어보니 다사다난했던 스토리 대부분은 hnine 님 마음 깊은 곳에 접어넣으시고 짧게 축약하고 절제한 글이군요. 세 달 만에 끝났을지도 모를 쉽지 않은 스토리를 여섯 해나 계속 이어오신 것이었네요.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입니다. 저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것 같은데, 온라인 상의 한 독자에 불과하지만 정말 응원해드리고 싶네요. 그래요. 어디선가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을 겁니다. 이 말씀엔 오히려 제가 응원받는 느낌이네요. 아자~!!! hnine 님, 화이팅입니다~!!!

hnine 2017-08-04 05:12   좋아요 1 | URL
이 사려 깊은 댓글이라니, 감동입니다.
제 원래 성격은요 qualia님 (속닥속닥 ^^) 계획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거나 그 계획을 제 자신이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거나, 그러면 무척 불안해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자책하고, 그래서 주위 사람까지 불안하게 하는, 그런 성격이랍니다. 그런데 그게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저에게 득이 되는게 없더라고요. 지내고 보면 그렇게 마음 끓일 정도의 일이 아니었던 경우도 많았고요. 결혼도 남들보다 늦게, 그러니 자연히 아이도 남들보다 늦게, 공부도 남들보다 늦게 마치는 경험을 해오다 보니 성격이 많이 누그러 들었다고 할까요. 세달 만에 끝났을 수도 있을 일을 거의 6년 동안 해온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지요.
응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여기 온라인 상에서 제일 솔직해지고 응원도 받고, 그러는 것 같아요 ^^

신지 2017-08-05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문이 닫히고 있으니,
어디선가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겠지.라는 말 참 좋네요.
어떤 새로운 문이 열릴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왠지 너무 늦지 않게 또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

hnine 2017-08-05 11:55   좋아요 2 | URL
늦지 않게 새로운 문이 열리면 저도 좋겠어요. 그때까지 조급하지 말라고, 제 자신에게 당부하는 의미로 이 페이퍼를 쓴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이런 일이 한두번인가, 어디 나에게만 있는 일인가, 생각해야지요.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단, 이 더위라는 문이 어서 닫히고 가을이라는 문이 열렸으면 좋겠네요 ^^

nama 2017-08-11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문....‘ 이라는 글귀 요즘 제가 입에 달고 살아요. 아이들 성적표 가정통신문에도 인용했어요. 저도 새로운 문을 열 준비를 하려고 하거든요. 뜻대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hnine 2017-08-11 20:10   좋아요 0 | URL
네, 어떤 곳으로 향하는 문일지 모르겠고,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고 기대감도 가져보고 그렇네요. nama님도 잘 되실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