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방학에 들어간지 9일째. 출근 여부와 상관없이 여전히 새벽 4-5시면 눈이 떠 진다. 이 때부터 식구들 일어나기 전 까지, 이보다 더 나 자신과 가까울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시간.

남편이 일어나고, 이어서 아이가 일어나면, 남편은 알아서 빵이든 떡이든 챙겨 먹지만 아이는 나의 방침에 따라 꼭 밥을 먹게 한다. 예전 같으면 난 곧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겠지만, 아직 유치원 셔틀버스 시간인 9시 15분까지는 시간이 여유가 있으므로, 책도 더 읽어주고, 또 요즘은 본격적으로 한글도 가르친다. 남자 아이라서 그런지 숫자에 대한 관심에 비해, 글자 읽고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은 정말 정말 없어서 지금까지 거의 방치하고 있었었다.

시간되어 아이 유치원 보내고, 나는 운동하러 간다. 운동하고, 점심 먹고, 책 읽고, 마지 못해 인터넷에서 JOB SEARCH 좀 해 보고 ( ^ ^ ), 빨래도 해서 널고, 저녁 먹을 것 준비까지 다 해놓으면 (미리 다 해놓는다 아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시간이 어느새 2시를 넘어선다. TV는 안봐 버릇 했더니, 이젠 볼려고 해도 특별히 볼것이 없다.

신나서 셔틀에서 내리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와서, 방문 선생님이 오시는 (가베, 미술 등) 날은 아이는 40분 정도 수업을 하고, 수업 끝나고 나면 선생님이랑 수다도 떤다. 선생님 드시라고 빵도 굽고 과자도 굽는다. 아마추어 수준인데도 맛있게 드셔 주시면 기분이 참 좋다. 나머지 시간 아이랑 책도 읽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 얘기에 맞장도 떠 주고, 책도 읽어주고, 남편 들어오면 저녁 먹고, 산책다녀 오고, 아이 목욕은 남편이 씻긴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전화도 걸고, 9-10시 쯤 되면 아이는 잠이 든다.

아이가 훨씬 밝아지고, 신이 나 있는 것 같다는 남편의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옆에 있으니 좋아하긴 하는 것 같다. 나도 읽고 싶은 책을 맘 껏 읽을 수 있지만, 아이도 책을 원없이 읽어줄 수 있어 좋다.

적지 않은 나이,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데, 평소에도 느긋하기 보다는 안달, 조바심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성격인데, 왜 이리 편안한지 모르겠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기분. 그 동안 많이 시달리며 직장생활 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workingmom이 몇 이나 될까 생각하면 나만 해당하는 말도 아닌데 말이다. 다들 그래도 꿋꿋하게 일하며 아이 키우며 살고들 있으니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모르겠다. 나의 한계는 생각보다 빨리 온 것 같다.

학교 다닐때 방학은 사실 방학이 아니었다. 방학은 학기중 만족스럽지 못했던 나의 실력을 up시켜야 하는 금쪽 같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계획들을 무슨 전략 짜듯이 세우고는, 하루 하루 체크하며 보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방학, 그 의미에 충실한 그런 방학을 맞은 기분이다. 이것 하며 저것 걱정하지 않는, 이것 할땐 이것 생각만 하는 그런 생활. 이제 열흘이 채 못되었지만 아직은 꿀맛 같은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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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6-2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결혼생활 얘긴줄 알았어요.ㅋㅋㅋ

해리포터7 2006-06-28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군요..아들뿐만아니라 부군께서도 좋으신듯 하여요.^^소중한 충전의 시간이 되겠지요?

hnine 2006-06-28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결혼생활의 꿀맛은, 최소한 9일보다는 오래 가지요 ^ ^

해리포터님, 그야말로 꿀맛 같은 시간이긴 한데, 충전이 되다 못해 '방전' 되어버릴수도 있을것 같아요 ㅋㅋ

비자림 2006-06-2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님의 사진 맞나요?
크게 확대해서 다시 봅니다.
마음 속에 담아 놓는 알라딘 지인들의 얼굴...

hnine 2006-06-28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지난 4월 외도 가서 아이랑 찍은 사진입니다.

세실 2006-06-29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보기에도 꿀맛같은 생활입니다.
그만 두지도 못하고...쭈욱 다녀야 할것만 같은..직장이 때론 숨 막히게도 합니다.
사진 뵈니 더욱 반갑네요. 커플 룩인가요? 헤헤

hnine 2006-06-2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꿀독에 빠질까 겁도 쬐금 납니다.

씩씩하니 2006-06-3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아주 새롭고 한층 업!된 직장을 위한 충전의 시간 맘껏 즐기세요~
큰 애 가져서 휴직계 냈었는대 너무 좋았어요,,,
저도 사진 아주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구 가요~
혹시 어딜 지나다 마주치면 혹시 님 못알아볼까봐,,ㅋㅋㅋ

hnine 2006-06-3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마주 칠지 모를 것을 대비해 사진 종종 올려야겠습니다 ^ ^

2006-07-01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6-07-01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마음에 안 내키다니요 영광이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