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족산성.

대전에 산성이 삼십 여개라는데, 공주의 공주산성은 몇 차례 갔으면서 대전에 있는 산성은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추운데 걷고 싶지 않아 하는 식구들을 내가 끌고 나오다시피 해서 찾은 계족산성. 대전에 있는 산성 중 가장 큰 산성이라고 한다. 높이 423m 계족산 꼭대기에 있는, 백제 시대의 석축 산성이다.

높이 423m 라는 것은 가보고 알았고, 눈 덮인 산을 타야 하는 것도 가보고 알았다. 같은 대전시인데, 눈 온게 언제인데 거긴 그래도 산이라 그런지 그때까지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공주산성, 예전에 수원 살때의 수원 화성 정도를 예상했다가 초입부터 눈 덮인 길을 걷고, 또 오르느라 땀을 뺐다. 아이는 자기는 아무래도 미끄러져 산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겁에 질려 호들갑이고,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고 큰소리치다가 남편이 넘어지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걷는데만 완전 집중하고.

 

그렇게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돌로 쌓은 성이 나타났다. 대전시가 내려다 보이고, 대청호도 보인다는데 대청호는 미처 못보고 내려왔다.

 

우리 땅에서는 보기 드물게 위로 쭉쭉 뻗은 소나무가 많이 보였다.

 

감상적으로 생각하기 좋아해서 그럴까. 돌이 하나하나 모여 이루고 있는 성을 따라 걸을때면 그것이 만들어지게 된 목적이나 기능, 뭐 그런 것을 떠나 그냥 감격스럽다. 그렇게 수백년을 한자리에서 서로 꼭 붙잡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빠, 무서워 죽겠어요~~"

"무섭긴 뭐가 무서워. 천천히, 되도록 뾰족한 곳을 디디면 안 미끄러져."

"그래도 미끄러지면 어떻게 해요? 여기서 미끄러져서 아래로 떨어지면 죽을수도 있지 않아요?"

"그럴수도 있지."

"그러면 어떡해요?"

"그러면 뭐 팔자인거지."

부자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참.

 

 

 

 

언제나 그러듯이, 날 풀리고 꽃 필때 꼭 또한번 오자고 했다. 그러고 다시 가본 적이 있었던가?

저 바삭바삭 다 말라버린 것 같은 저 나뭇가지들이 속으로 지금 단단히 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또 막 대견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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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1-1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족산성, 이름은 낯설지만 풍경은 참 좋으네요.
부자의 대화에도 미소짓고... ^^
나주에 '금성산성'이 있는데 가본다면서 수년째 벼르고만 있어요.ㅠㅠ

hnine 2012-01-11 08:00   좋아요 0 | URL
눈은 모든 풍경을 멋있게 바꿔놓는 것 같아요.
그 포장이 휙 벗겨진 후, 맨 흙을 밟으며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곳입니다.
나주의 금성산성, 저도 처음 듣는데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의 '산성'만 찾아다녀도 좋은 여행 주제가 될것 같네요.

2012-01-11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1 0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1-11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성을 어떻게 지었을까요.
후들후들 쌓인 돌을 바라보니
참 고단하게 지었겠네,
하는 생각이 스쳐요 @.@

hnine 2012-01-11 08:05   좋아요 0 | URL
신기한게, 저렇게 쌓인 돌들을 가까이서 보면 그렇게 불안해보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요.
중국에 가면 정말 목숨 걸고 쌓았겠구나 싶은 성들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마노아 2012-01-1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백 년을 서로 꼭 붙잡고 한 자리에서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저도 막 감격스러워요. 아, 이 페이퍼 참 좋네요. ^^

hnine 2012-01-12 07:33   좋아요 0 | URL
같이 공감해주시니 저도 감격~ ^^
모양도 다 다른 돌들이 틈하나 없이 꼭 부등켜 안고 있어요. 수백년을 그렇게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버텨주었으면 좋겠어요.

무스탕 2012-01-11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성을 많이 둘러본건 아니지만 몇몇 본 산성들을 보면서 정말 신기해 했어요.
어떻게 돌로 저렇게 쌓아 몇 백년을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나.. 말이에요.
그 이유를 이제 알았네요. 서로 꼭 붙잡고 있었더군요! 맞아요. 혼자가 아니고 '서로'였기에 몇 백년도 잘 지냈던거에요. 아, 이쁘다 +_+

hnine 2012-01-12 07:3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예전에 수원 화성에서 일부 허물어진 곳을 다시 재건해놓은 곳을 봤는데 눈에 금방 띄더라고요. 시멘트 흔적도 보이고 돌 색깔, 모양도 다르고요.
서로 꼭 붙잡고 있으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지지요.

sslmo 2012-01-1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렇게 사실만을 나열한 무미건조한 글로도...
이렇게 따뜻해질 수 있는 것이로군요~^^

좀 춥고 쓸쓸한 오후였는데...덕분에 한껏 따뜻해졌습니다~^^

hnine 2012-01-12 07:37   좋아요 0 | URL
따뜻해지셨다니 제가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늘 분위기 더 썰렁하게 하는, 가라앉히는 글만 쓰는 것 같아 제 서재 와주시는 분들에게 미안한 감도 있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왜 춥고 쓸쓸한 오후였을까요?

블루데이지 2012-01-1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번주에 계족산성 가봐야겠어요...
대전에 12년을 살았는데 대전에서 유명하다면 유명한 계족산을 한번도 못가봤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사진 너무 멋지구요..1000번째 페이퍼...저는 언제쯤?ㅋㅋ

hnine 2012-01-12 07:39   좋아요 0 | URL
아마 눈이 여전히 쌓여있을거예요.
장갑 필수!
저희 세 식구 모두 장갑도 없이 갔답니다.
꼭대기에서 대청호로 넘어가는 길도 있는 것 같던데 저희는 그건 엄두도 못내었답니다. 말 하다보니 오랜만에 저는 대청호에 가보고 싶어지네요. 겨울의 대청호는 어떤 풍경일지...

프레이야 2012-01-11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전에 계족산성이요? 저도 처음 들어요. 정말 우물안개구리 ㅎㅎ
눈밟는 풍경이 너무 멋지게 담겼네요. 눈이 다 시원하고 환해져요.

hnine 2012-01-12 07:40   좋아요 0 | URL
예전에 수원에 살때는 집에서 수원 화성이 가까와서, 시도 때도 없이 갔었어요. 높지 않고 걸을만 하거든요. 성을 따라 쭉 걷다보면 화홍문, 장안문, 남문, 서문 등을 차례로 통과할 수 있었는데...그 생각하고 계족산성 갔다가 허걱 했지요. 수원에 있는 것은 그냥 '성'이고, 여긴 '산성'이었어요 ㅠㅠ

bookJourney 2012-01-17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꽃이 다 지고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계절에 갔었는데요, 그 때도 참 좋았어요. 시간이 없어 산성까지는 못 갔지만, 맨발로 나무그늘이 있는 황토길을 걸으며 즐거워했었지요.
꽃 피는 봄에 가도 좋고, 꽃잎이 떨어진 초여름(아님 늦봄)에 가도 좋을 거에요. 다시 가고 싶네요. ^^

hnine 2012-01-19 10:22   좋아요 0 | URL
맨발로 걸을 수 있은 황토길이 있는가본데 제가 간 날은 눈으로 다 덮여 있어서 어디에 그런 구간이 있는지도 몰랐지요.
저날 눈 때문에 얼마나 올라가기 힘들었던지 제 아이는 지금도 그 얘기를 한답니다, 자기 정말 죽는 줄 알았다면서...ㅋㅋ
대전에도 아직 안 가본 곳이 많아요. 지난 주에는 상소동 산림욕장에 마련되어 있는 얼음공원엘 갔었어요. 거기도 배경이 바뀌면, 즉 계절이 바뀌면 달리 보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