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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홀릭 - 유쾌한 런더너 박지영의 런던, 런더너, 런던 라이프
박지영 지음 / 푸르메 / 2010년 7월
평점 :
삼수 끝에 들어간 언론사에서 10년 동안 버텨온 기자직을 내놓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옮겨간 터전인 런던. 그 중에서도 저자가 사는 곳을 보니 런던에서로 부촌이라고 할만한 동네이다. 물론 그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이 부자는 아니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은 극히 평범한 주택이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엠마 톰슨을 이웃으로 두고 있어 극장 화면이 아닌 평상시 그녀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하니 그만하면 선택받은 환경 아닌가.
기자라는 직업정신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런던'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겉모습만 보여주려 하지 않고, 영국에서 눈으로 보고 느끼는 현상의 배경이 되는 영국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고 분석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충분한 노력이었는지 내가 판단할 자격은 못되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저자는 영국의 제반 제도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 모든 속터짐과 답답함, 희망없음에도 불구하고 런던 홀릭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리뷰의 마무리용으로 남겨두어야겠다.
Never run for a bus, never skip tea.
버스가 떠날 것 같다고 뛰어갈건 없지만 오후의 티는 건너뛸 수 없다는 것.
습관은 무섭다. 아침에 출근하면 점심 시간까지 어쨌든 형식상으로는 업무에 집중하여햐 하는 미국인들과 사뭇 다른 풍경이 오전 10시에서 10시 30분경이면 영국 어디서나 펼쳐지는 것이다.
비꼬기식 말투
소위 영국식 유머라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무표정하게, 자기는 웃지 않으면서 던지는 비꼬기 한판으로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그러니 이 유머를 잘 못알아듣는 외국인의 경우 둘다 무표정 상태로 몇 초간 견뎌야 하는 어색함은 어쩌란 말인가. 유머를 던지는 사람이 먼저 웃기라도 하면 못 알아들어도 웃기는 말을 하는 구나 짐작이나 할 수 있는데 이 사람들은 평상시 말하는 것 처럼, 아니, 오히려 딴청을 부리며 자기는 전혀 웃기려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식으로 유머를 던지니 이럴 땐 듣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듣고 웃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못알아 듣는 유머에 거짓으로 웃을 수도 없고 영어에 익숙하지 못하면 이래 저래 고역이다.
과거의 유물이 미래의 기술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영국에도 어얼리 어댑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국 사람들은 지금도 쓸만한데 왜 새걸 사?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 박혀 있다. 과거의 유물이 많은 나라니까 그런 것인지.
얼마나 오래 된 물건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영국 사람들에게 나름 부의 기준인 것 처럼 보일 때가 있다.
불쌍한 남자들, 까칠한 여자들
영국 여자들은 씩씩하고 꿋꿋하다. 외모야 어떻게 꾸미고 있던 간에 그들은 억척스런 엄마이고 여성들이라는 인상을 여러 번 받았다. 여왕이 있는 나라라서? 여자 수상이 있던 나라라서? 머리에 금방 떠오르는 그런 단순한 이유는 아닌 것 같고, 여자라서 참고 산다든지, 여자라서 포기한다 등의 말은 영국 여자들 사전엔 없다. 반면 영국 남자들은 우리 기준으로 볼때 다소 여성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매우 가정적이다. 아내 혼자 식사 준비를 하게 두지 않는다. 아내 혼자 아이들 뒤치닥거리 하게 두지 않는다. 거리에서 아내의 손은 빈손으로 가도 남편들은 짐가방에 아이까지 안고 업고 가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그것을 별로 쑥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내가 있던 곳에서도 남편이 두 아이는 앞세우고 걷지 못하는 아기는 가슴에 안고 퇴근 시간의 아내를 데리러 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누구도 그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다고 상상해보라. 모두들 한마디씩 던졌을 것이다.
우리 한국 여자들의 눈은 그런데에 익숙하지 않다. 이 책에서 저자도 영국 남자들에게는 '머슴유전자'라도 있는 걸까 라고 했지만 그 속에 감춰진 부러움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을 판단하는 세가지 기준은 출신국가, 직업, 부의 정도
개인적으로 여기에 한가지 더 보태자면
어떤 영어를 구사하느냐를 꼽고 싶다. 아무리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영어의 수준은 곧 그 사람의 교육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보기 때문에 영어를 버벅거리면 그만큼 배운 게 없다고 보는, 억울한 평가를 받는 수가 많다.
영국인과 친해지려면 하지 말아야 할 제1원칙은 잘난 체하지 않는 것
이건 우리 나라도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그러니 지나친 겸손의 말도 해야 하고, 안그런척 표정 관리도 잘 해야 한다. 자기가 잘 하는 것을 마음 놓고 드러내고 그것을 나쁘게 보지 않는 미국인들과 다른 점 중의 하나이다.
박스 안의 문장은 이 책의 본문 중에서 인용했지만 그에 대한 설명은 거의 나의 생각들이다. 나는 겨우 3년 반을 살다 돌아왔고 저자는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으니 저자 만큼 자세히 알지 못하겠고 개인적인 시각의 차이도 있겠지만 나에게 영국은 참으로 생소한 나라였다. 그곳을 조금씩 알아갈 때 쯤 그곳을 떠나오게 되었다지만 누구나 그곳을 떠나올 때가 그곳을 제일 잘 아는 때 아니겠는가?
3년 반동안 주말마다 부지런히 다닌다고 다녔는데도 여전히 가보고 싶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 나라, 여전히 보지 못한, 그리고 한번 더 보고 싶은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던 나라, 또래의 여자 아이들을 사귀는 것이 제일 힘들었던 나라, 언뜻 볼때 수줍음 많아 보이지만 그 속에 감춰진 그들의 강인함, 외국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배타성은 그나마 그들이 예의와 관리된 표정 속에 감추어 주어서 다행이었던 나라.
어쩔 수 없이 이 책에 대한 리뷰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나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많이 담게 되었다. 저자는 영국에 살면서 좋은 점보다는 이것 저것 불편한 점, 문제점들을 드러내놓고, 꼬집어 보고, 비판을 해놓았다. 그러면서 왜 영국에서 사느냐 한국으로 돌아오지 라는 질문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고 한다. 그런 소소한 이유로 이곳을 떠나기에 런던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도시라고. 이 모든 역경을 공원과, 모든 슬픔은 미술관과, 모든 불리함을 이곳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와 맞바꿀 수 있다고. 그뿐인가? 매일 저녁 일곱시면 집에 돌아와 요리도 도와주고 아이와 실컷 놀아주는 100점 짜리 남편도 있고, 루이뷔통 가방이 없다고 나를 우습게 보는 백화점 직원도 없고 나를 툭 치고도 뻔뻔하게 지나가는 행인도 없다고.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가족과 함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족 없이 혼자 지내야 했던 나는 좀 더 다른 이유를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장소를 잠시 방문해보는 것과 살아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