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선물로 사준 어그 부츠를 바깥에서 신어보기도 전에 집안에서 신고 돌아다니고 있다. 발이 따뜻하면 확실히 덜 춥기 때문이다. 겨울에 정말 추운 우리집. 

안그래도 깊이 못자는 요즘인데 오늘은 한기를 느끼며 더 일찍 잠이 깨었다.  

6시 반에 식구들을 깨우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
아침이 더욱 길어지고 있길래

책상에 앉아서, 

공책을 꺼내고,

연필로,

어제 보아둔 동시를 베껴 써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 할 테지.
여리고 순수한
그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은 이제는 불가능 할 테지. 

 

 

   

징검돌 

 

처음부터 제 자리를 찾은 건 아니었어
물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렸지
센물살이 다가올때
넘어질 것 같아
눈이 아찔했지
내 등을 밟고간
수많은 발자국
많이 아팠지만
그렇게 흔들리면서 자리를 잡았지
이젠
거친 물살, 거친 발걸음에도
끄떡하지 않아
가만 들어봐
내 곁에서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배 산영/ 2009 한국일보 동시 당선작)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잘 되고 있는 선인장, 게발선인장.
매일 아침 일어나면 꽃봉오리가 얼마나 커졌나부터 확인한다.
피기 전의 저 상태.
이 사진의 제목도 '동시' 라고 하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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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1-20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기 보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더 아쉬운 것 아닐까요?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은 표현할 수 있다고 봐요.
멋지군요. 동시를 베껴쓰는 마음. 가족들이 자고 있는 그 새벽에...!
생일은 잘 보내셨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 선물이 약소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님이라면 그냥도 보내드렸어야 마땅한데 생일을 빙자하다니...흐흑~

hnine 2010-11-21 05:48   좋아요 0 | URL
눈으로 읽은 것보다 이렇게 손으로 사각사각 베껴 쓰고 있으면 내용이 손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필사를 하는구나 알겠더라고요. 저야 뭐 이렇게 내킬때 가끔 끄적거리지만요.
식구들이 자고 있는 새벽 시간은 저에게 보석과도 같은 시간이랍니다. 지금도 그런 시간이고요 ^^
보내주신 책은 저에게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랍니다. 어제도 어떤 모임에 갔다가 책을 쓰신 저자로부터 직접 책 선물을 받아가지고 왔는데 얼마나 감사하고 기쁘던지요.

세실 2010-11-21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올 잠옷이 있더라구요. 두 아이들 따뜻함 느끼라고 사주었더니 좋아해요.
저도 친구가 호주 다녀오는 길에 어그부츠 사다줘서 올 겨울 열심히 신으려고 합니다.
참 따뜻해요. 나비님이 어그부츠는 맨발로 신는 거라고 하네요.
생일 이셨군요.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징검돌이 된거군요. ㅎ

hnine 2010-11-22 13:21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들어본 것 같아요. 타올 잠옷, 저희 집에선 식구 수대로 꼭 필요하겠네요. 냠편은 사주면 입을지 모르겠지만요 ㅋㅋ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일 축하해주신 것도 감사드려요. 또 새로 태어난거죠? ^^
위의 시는 동시이지만 제가 읽어도 은근히 가르침이 담겨 있어요. 저자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라네요.

비로그인 2010-11-2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시맞아요?
모자르지도 넘치지도 않게 감흥이 와닿는데^^
저도 부츠없으면 겨울 못 견딥니다.ㅋㅋ

hnine 2010-11-21 16:33   좋아요 0 | URL
예, maggie님. 동시 부문 수상작이라고 되어 있네요.
어렵지 않으면서 읽는 사람에게 뜻이 화악~ 번지는, 그런 시이지요.
어그 부츠는 사실 제 나이에 신고 밖에 나가는 것도 좀 망설여지긴 해요 ^

순오기 2010-11-2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직지박물관에서 세실님이 사준 오침안정법 직지 노트에 시를 베껴야지 생각했어요.
지난 번 hnine님이 올렸던 나태주 시를 지난 금요일 독서회원들에게 읽어줬더니 모두 좋아했아요. 다이어리는 1년 지나면 가방에 넣고 다니지 않으니까 시만 따로 적으려고요.^^

저는 곁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를 준비할래요.
게발선인장 몽우리~ 사진도 멋져요~

hnine 2010-11-21 16:38   좋아요 0 | URL
나 태주 시인의 시는 모임에서 읽어주기에 좋은 시 같아요. 저도 오랜만에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저도 학교 다닐때 도서관에서 빌린 시집, 반납하기전에 노트에 후다닥 베껴써놓곤 했는데, 이렇게 또박또박, 연필로 베껴써보니 좋더군요.
나를 흔드는 거친 물살이 아니라, 곁에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그 물이 그 물인데, 세월이 나를 변화시켰구나, 거친 물살을 견디고 난 후의 댓가인가보다, 전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저 시인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시를 쓰게 되었을까, 그것도 궁금해지네요.
게발선인장, 활짝 피면 또 한번 사진으로 올려보려고요. 이런 것에도 요즘 뭉클뭉클 감동받는다니까요 ^^

양철나무꾼 2010-11-21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두편이예요.
좋은 시 두편에 추천하나는 좀 부족한 거 같기도 하지만요~^^

hnine 2010-11-21 18:2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늘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해가 일찍 지는 덕에, 서둘러 저녁 해먹고 설겆이까지 다 하고 시계를 보니 이제 6시인거예요~ 혼자 있다면 나가서 영화라도 보고 왔으면 좋겠지만, 7시 30분에 여기 대전에 SG워너비가 와서 공연하는데 거기 가보는 것으로 주말을 마무리 하면 딱 좋겠지만...
대신, 아직 11월이긴해도 올해 무슨 무슨 일이 있었나, 개인적인 정리나 좀 해봐야겠어요.
요즘은 일주일에 딱 하루 일하러 나가는데 그게 마침 월요일이라서, 나름 일요일 저녁이면 긴장되기도 한답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비로그인 2010-11-2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끗한 시 하나를 적고, 또 맑은 사진까지 찍어 두셨으니 오늘 하루가 꼭 그러하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다시 일주일의 시작을 앞둔 시간, 음악 듣다가 시를 눈에 담아봅니다. hnine님.

hnine 2010-11-21 23:15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댓글중에서 찾았네요. 제가 동시를 읽고 베껴쓰고 하는 이유를요. 깨끗하고 맑기 때문에...
오늘은 하루 종일 쏘다녔어요. 아침과 밤은 춥고, 낮의 햇빛은 청명하고, 그런 요즘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