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모건스턴 (Susie Morgenstern) 은1945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우리 나이로 66세.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나 프랑스 수학자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프랑스 니스로 이주, 박사 학위를 받고 비교 문학을 가르치고 있단다. 두 딸을 낳아 기르면서 어린이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40여 권의 어린이, 청소년 소설을 발표하였고 상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 그녀의 <공주도 학교에 가야한다>를 처음 읽은 후, 단순하지만 독창적인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그녀의 다른 책들도 눈에 보이는대로 찾아 읽고 있는 중이다.
그중 나이듦에 대한 책 두권이다.
<어느 할머니 이야기>
원작 출판년도가 1979년으로 되어 있으니 저자가 아직 마흔도 안되었을 때의 작품인데 어찌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심리 묘사를 잘 해낼 수 있는지 놀랍다.
자식들도 다 키우고 혼자 사는 할머니.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면 열쇠를 잃어버릴까봐 항상 걱정을 해야하고,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어 문을 여는 것도 잘 되지 않아 무지 고생을 하지만 결코 투덜거리는 법이 없다. "예쁜 문, 착하지? 나 좀 들어가게 해 주렴."
책을 좋아했지만 눈이 너무 피곤해져서 이젠 그것도 잘 안한다. 바느질도 좋아했지만 손이 말을 안 들어서 그것도 잘 못한다. 아침 햇살과 바다와 등산을 좋아했지만 위험하다는 의사의 경고에 따라 그것도 못한다. 그러면서 할머니 하는 말, '그러면 적어도 신발은 덜 닳겠군.'
마늘과 양파를 볶아서 먹곤 했지만 이제 속이 안 좋아서 그런 걸 못 먹는다. '이젠 양파 때문에 눈물 흘릴 일은 없겠네.'
예전엔 너무 할일이 많아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이제 할머니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생각할 시간이 있다. 그러면서 하는 생각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하면 되는거지.'
가끔 옛날 생각을 한다. 가난했던 남자와 결혼하여 돈이 별로 없었지만, 그러면서 생각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이를 주셨으니 빵도 주실거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아이들 생각을 한다. 유치원 가던 것, 공부하러 멀리 떠나던 것, 군대 가던 것. 결국엔 모두 자기 삶을 찾아 날아가 버린 아이들. 그 중에서도 전쟁 중에 영원히 사라져 버린 아들이 특히 더 생각난다. 그 일로 할머니는 세상의 사탕이란 사탕을 다 모아도 마음의 상처 때문에 생기는 쓴 맛을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 필요한 거 없냐는 아들의 전화를 가끔 받을 때 할머니는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게 생각나지만 그냥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없어."
이런 저런 물건을 잃어버리고 하루 종일 찾아다니기 일쑤지만 그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다. '할 수 없는 거지, 뭐. 하나가 없어지고 열 개가 다시 나타나는 수도 있는거야.'
밤이나 낮이나 혼자 있는 할머니에게 유일한 벗이라면 그것은 텔레비전. 텔레비전을 보며 할머니는 자그마한 자기 아파트를 벗어나 세상 구석구석을 여행한다.
추억을 돌리는 기계가 자꾸 돌아가는 탓에 할머니는 밤에도 잠이 오지 않을 때가 많다.
할머니가 다시 한번 젊어지면 좋겠다는 손자들의 말에 할머니는 전혀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아니, 내 몫의 젊음을 살았으니 이젠 늙을 차례야. 내 몫의 케이크를 다 먹어서 나는 배가 불러."
아, 이건 너무나 슬프고 아름답잖은가. 나이 들어 조금만 더 젊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내 몫의 케이크를 다 먹어놓고, 더 먹고 싶어 탐 내는 것이라 이제부터 생각하기로 한다.
아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아마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더 감동을 받지 않을까 한다. 지금 나처럼.
<우리 선생님 폐하>
40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온 스틸리아노 선생님은 곧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다. 한 직종에서 오래동안 일을 해오다 보니 바꾸는 것, 옮기는 것은 무엇이든 질색을 하지만 나름대로의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애정을 다해 가르친 선생님. 정년 퇴직이란 곧 후퇴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동안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왔음에도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고 학교를 떠나고 싶지 않다.
정년 퇴직을 기념하기 위해 학생들과 학교 측에서는 축제같은 파티를 열어주기도 하는데 선생님은 이런 축제를 조금도 기뻐하지 않고 급기야 이 선생님은 자기 교실 벽장안에다 자기 임시 침소를 마련하고 버티기 시작한다. 교장선생님이 와서 아무리 설득을 해도 꼼짝을 않고.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강제로 선생님을 교실에서 끌어내는 것? 그것은 너무 서글프다. 원칙을 위반하고 계속 아이들을 가르치게 하는 것도 바람직한 해결책은 아니다. 작가의 예지와 위트가 발휘되는 결말이 돋보인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정년은 빨라지는 요즘, 더욱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에 40년을 몸담다가 떠나야 되는 심정이 어떨까? 이런 주제를 아이들 책 소재로 삼은 작가의 의도를 알것 같다.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서 보는 선생님, 그 선생님의 입장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지.
퇴직, 후퇴, 물러남. 이런 단어가 곧 피부로 와닿는 때가 올것이다. 누구에게나.
지금 막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번 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어른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들이다.
특히 위의 <어느 할머니 이야기>는 어른들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