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축제가 열리고 있는 공주 영평사에 다녀왔다.
집에서 40여분 거리. 원래 작년에 가려던 계획이 있었는데 그날 남편과 툭탁거리느라 못갔던 기억이 난다. 올해가 11회째. 영평사는 공주 마곡사의 말사로서 자그마한 절이다. 그런데 어느새 이 구절초 축제가 많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모이니 절의 분위기는 전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주차장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진입로 차도 갓쪽이 그냥 주차장이 되어버리니 들어오고 나가는 차들이 한동안 꼼짝 못하고 묶여있다가 풀리다가를 반복해야했다. 

그런데 참 고맙게도, 입구부터 맞아주는 구절초 행렬을 보자마자, 바로 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런 것 다 잊고 그냥 자동적으로 입이 벌어졌다. 표정이 저절로 풀리며 웃음이 나왔다.

 

 구절초가 거의 융단처럼 산기슭을 덮고 있었고 몇몇 아주머니들께서 꽃을 따서 바구니에 담고 계셨다. 구절초 꽃잎을 가지고 술도 담그고 차(茶)의 재료도 된단다.  

바로 위의 보라색 꽃은 구절초와 비슷하게 생긴 '수레국화' (라고 알고 있는데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그 위의 붉은 꽃은 단풍나무의 꽃이다. 단풍나무 꽃은 대표적인 풍매화. 비행기 날개처럼 생긴 저 꽃의 볼록한 곳에 씨가 들어있다.

 

어느 절에나 가면 있는 돌탑. 아이가 그 위에 돌을 하나 더 얹고 있는 줄 알았더니 위에다 구절초 꽃잎을 올려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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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0-1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럽습니다.
정말 요즘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죠.
늘 좀비처럼 방구들이나 지키고 앉아 있으면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 납니다.
이렇게 여행이라도 휑하니 다녀오면 좋을텐데.흐흐

hnine 2010-10-10 23:51   좋아요 0 | URL
stella님, 가까운 곳이라도 일단 나가세요. 훨씬 나아요. 어디갈까 떠오르는 곳이 없더라도 그냥 나가세요!

다락방 2010-10-1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이 말씀하신 그 기분, 저 너무나 잘 알아요! 3년전이었나, 그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제가 예술의 전당에 오페라 [카르멘]공연을 보러 가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뭣때문이었는지 기분도 너무 안좋고 가기도 싫고 그런거에요. 그런데 표가 아까워서 억지로 갔거든요. 중간에 친구를 만나서도 기분이 풀어지질 않아 빨리 공연이 끝났으면,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만 하다가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는데요, 공연전 리허설이었는지 혹은 연습들을 하고 있는거였는지 소프라노들의 노래소리와 음악소리가 들리는거에요. 그때 갑자기 기분이 확 바뀌면서 와, 오길 잘했다, 정말 잘했어!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왜 기분이 나빴었는지, 어디서 온 스트레스였는지도 모르겠었는데,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오늘 hnine님이 입구에서 반겨주던 구절초를 보는 순간 느꼈던 그 감정이, 제가 그때 느꼈던 감정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hnine 2010-10-10 23:50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읽고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주시니 감사하네요. 말씀하신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저도 알것 같아요. 오늘 뿐 아니라 저도 종종 그럴 때 있거든요. 예전에 혼자 연극을 보러다닐 때 그랬었어요. 오페라 공연도 그렇겠지만 저는 삶의 활력이 바닥났다 싶을 때에는 스크린 속의 영화가 아니라 직접 배우들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연극을 보러가곤 했었어요. 그러니까 컨디션이 별로 좋을 때는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갈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가 안떨어지는 발걸음으로 어기적 어기적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서,몇 명 되지도 않는 관객들을 앞에 놓고 연극 배우들이 혼신을 다해 연기를 시작하는 순간 저는 그냥 바로 거기 몰입되곤 했었어요.

저의 페이퍼가 다락방님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다락방님의 댓글이 저의 또다른 기억을 불러오고...^^

순오기 2010-10-11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자연스러운 풍경이 좋아요~
가을엔 역시 구절초를 만나야해요.
구절초 한 송이를 올리는 다린군의 진지함이 기도하는 마음이겠죠.^^

hnine 2010-10-11 05:27   좋아요 0 | URL
자연을 보고 느끼는 아름다움이 사람들 마음의 긴장을 풀게 하고, 잠시나마 다른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들수록 단풍 놀이니, 벚꽃놀이니 하며 찾아다니는지도 모르겠어요.사진에는 안 실었지만 어제 다린이는 꽃을 머리에 꽂기도 하고 꽃에 앉은 나비를 잡겠다고 꽃밭에 들어가기도 하고, 밤나무 밑에 떨어진 밤송이에서 밤을 여남은게 주워다가 집에 오자마자 삶아 먹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

상미 2010-10-1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처음 나비랑 꽃 사진 참 좋다.
주말마다 놀러다니던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주말엔 잠만 몰아자고 있어.
체력이 딸리나봐

hnine 2010-10-11 17:28   좋아요 0 | URL
꽃이 만발하니 꽃구경하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나비와 벌이 제일 신난것 같았어. 그런 장면을 참 많이 봤단다.
체력, 어서 보충해서 또 열심히 다녀봐.

무스탕 2010-10-1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얀 구절초와 나비가 어쩜 저렇게 선명하게 어우러졌을까요.
나비를 불러들인 구절초는 정말 성공적인 삶을 살고있군요 ^^
이렇게 사근사근 생활을 적어주시는 나인님의 페이퍼가 참 좋아요. 물론 그런 페이퍼를 적는 나인님이 더 좋은거구요 :)

hnine 2010-10-11 17:29   좋아요 0 | URL
그저 잡기 식의 글인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 이런 소소한 살아가는 이야기 정도이지요. 요즘 제가 쫌 울적하거든요. ㅠㅠ 칭찬해주시니 힘이 나네요.

담쟁이 2010-10-12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얀 구절초가 참 예쁘네요^^
공주는 아주 오래전 후배 만나러 함 갔었는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완전 분리 되더군여.

한아름 담아오신 가을 사진 참 좋아요 :)

hnine 2010-10-13 09:19   좋아요 0 | URL
지금 어디나 구절초가 많이 피었을거예요. 예전에도 공주 얘기 하셨던 것 같은데 친한 후배였나봐요? ^^
가슴뭉클님 사진 보면 전 항상 그 장소 속으로 떠나고 싶어 나도 모르게 탁상달력 부터 꺼내요, 언제가 좋을까 하고요. 그러면서 아직 한번도 못 떠났어요 ^^

... 2010-10-1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이 예쁜 사진들을 왜 이제 봤을까요? 이게 바로 미야베 미유키 책의 제목이기도 했던 구절초군요. 저는 지나가다 보며 소국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는데.. 저 수레국화도 말이예요.

hnine 2010-10-13 09:22   좋아요 0 | URL
미야베 미유키 책에도 있군요! 꽃, 나무 이름이 들어가게 제목을 지으면, 음...잘만 지으면 아주 분위기 있을 것 같아요. 미야베 미유키는 어떻게 제목을 지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소국을 사실 전 구절초보다 더 좋아해서 꽃다발로 선물도 많이 해봤네요. 구절초보다 꽃이 훨씬 작지요. 구절초는 꽃모양이 그림 잘 못그리는 제가 어릴 때 꽃 그리라면 무조건 그리던 그 꽃 모양 그대로 생겼어요. 처음에 진짜 이렇게 생긴 꽃도 있네,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