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연 작 <선물>
들어본 적 없는 작가의, 들어본 적 없는 제목의 책을 읽게 된 이유가 있다. 지금은 밝히기가 곤란하지만.
어린이책이라 하기엔 문장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제목 붙이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
채 인선 작가의 <그 도마뱀 친구가 뜨개질을 하게 된 사연>
1999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10년도 더 된 책인데 지금까지 꽤 많이 읽히고 있으니 제목이 내 귀에도 익었겠지.
읽어보니 과연, 유명한 책은 이유가 있구나 싶다. 모두 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아이들 눈높이에서 쓰여져 있었고, 어색한 곳이나 억지스러운 곳을 찾을 수 없어 나는 이 정도면 秀作이라고 부르고 싶다. 여행간 섬에서 도마뱀을 발견한 아이 해수 (해수는 채인선 작가의 실제 딸 이름이기도 하다). 그 도마뱀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도마뱀이 하는 말, 쥐가 그렇게 하는 걸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란다. 즉 도마뱀은 심심했던 것이다. 해수는 도마뱀이 심심하지 않도록 뜨개질 하는 것을 가르쳐준다.
<바다에 떨어진 모자>는 모자를 의인화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주인과 떨어져나와 잠시 자유로움을 느끼지만 그것이 곧 심심함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조금씩 심심해졌어요. 아무 걱정할 것도 없고 아무 속상할 일도 없지만, 친구가 그리웠어요 (34쪽)
나는 왜 위의 짧은 구절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을까.
그 모자가 결국 도착하는 곳이 앞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마뱀. 뜨개질 하고 있는 도마뱀의 머리였다. 서로 별개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슬쩍 연결시키면서 작가도 재미있었으리라.
생명과학의 여러 분야중 특히 유전학 관련 책들에 주목하는 것은, 유전학이라는 학문의 역사적 배경때문이기도 하고, 생명과학에 대해 기본 지식이 있던 없던 보통 사람들도 많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에게 유전 현상과 원리에 대해 어떻게, 어디까지 설명해주면 좋을까.
개인적으로, 과학적인 사실을 너무 스토리화 해서 설명해놓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딱한 이론으로 무장한 책을 좋아하는 것은 더욱 더 아니다. 즉 적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 정도면 적정 수준이 아닌가 한다.
유전이란 무엇인지, DNA란 무엇인지, 너무 추상적으로, 뜬구름 잡는 식으로가 아니라 정확하면서 잘 비유를 하여 설명해놓았다.
DNA는 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는 아주 가느다랗고 긴 두 줄의 띠야. 바로 이 띠에 유전자가 담겨 있단다.
-우리가 크는 것은 세포가 커지기 때문인가요?
-염색체는 왜 쌍으로 되어 있어요?
-Y 염색체가 왜 어떻게 남자를 만들어요?
-사람들은 왜 생김새가 모두 달라요?
-우리의 유전자는 어디서 생긴 거예요?
-왜 엄마와 아빠가 필요하죠?
-여자와 남자의 수가 비슷한 건 왜죠?
-우리가 병에 걸리는 게 모두 병든 유전자 때문인가요?
-머리를 똘똘하게 해주는 유전자도 있나요?
-한 유전자에 결함이 있으면 뭐가 달라지나요?
위의 질문들은 그렇다, 아니다, 혹은 한 단어로 대답될 수 있는 질문들이 아니다. 왜? 어떻게? 이런 질문들에 대해 '그냥 그렇다, 원래 그렇다' 라는 대답은 과학에서 있을 수가 없다. 이유를 모르는 것은 우리가 아직 못 밝혀 내었을 뿐. '이유가 있을텐데 아직 우리가 모르고 있어.' 라고 대답하는 것이 옳다.
번역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잘 되어 있다. 초등 고학년 정도에게 적합한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그런 것 별로 의미 없다고 본다. 나에게도 무척 유용하게 읽힌 책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