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다큐멘터리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개봉 전 트레일러를 보면서부터 어딘지 내 마음을 끌었다. 요 며칠 무더위도 한 몫 한 것 같고, 오늘은 아침부터 아이를 데리고 이 영화를 보러 집을 나섰다.
제작비 8천만 달러, 7년간의 집념, 이런 선전 문구는 나중에 포스터를 보고서 안 것이고, 눈 앞에 펼쳐지는 푸르고 푸른 바닷속은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 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그동안 인공적인 것들에 길들여진 내 눈을 다시 트이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은하계에서 유일하게 지구에만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것은 '바다'가 있기 때문이라는 나레이터의 말. 바다와 그 속의 생물들에게 지금 인간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따로 나레이션이 필요 없었다. 인간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상어를 잡아 올려 바로 지느러미만 도려낸 후 피흘리는 상어를 다시 바다로 던져 넣으면, 지느러미를 모두 잘린 상어는 제대로 헤엄을 칠 수도 없고 방향을 잡을 수 없어 그냥 바다의 바닥으로 피 흘리며 가라앉을 뿐이다.
새로운 뱃길을 트기 위해 북극의 얼음을 억지로 깨어내어 그곳 생태계를 파괴 시키고, 멸종해가는 바다 생물들의 수는 갈수록 늘어가고, 자기가 태어나고 살던 곳을 떠나 그물에 잡혀 거대한 수족관에서 일생을 마치는 바다 생물들.
우리 말 녹음을 한 정 보석과 진 지희의 더빙이 너무 장난스럽다는 평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넘겨봐줄만 했다. 아마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점을 너무 의식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보다 정작 놓치기 쉬웠던 것은 이 영화의 OST! 음악이 얼마나 웅장하고 아름답던지. 영화의 시각적인 효과에 집중하는 동안 자칫 묻혀버리기 쉬울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 이 영화에는 바다 생물들만 출연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쟈크 페랭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중년의 토토를 연기하기도 했던) 이 백발의 모습으로 대사 없이 영화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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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단지 바다 생물 뿐 아니라 <생명체>라는 것이 가지는 존귀함에 대해 오랜만에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과학 과목에 그리 뛰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한 과목 <생물>이라는 과목에 대한 끌림, 생명체를 생명체로 존재하게 하는 이유와 본질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때문에 이과를 선택했고, 그 댓가를 오랫 동안 톡톡히 치뤄야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조금씩, 그 선택을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 중인데, 이 영화를 보는 오늘 아침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