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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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괜찮다.

   
  '다 괜찮다' 고 쓰신 걸 보니 하나도 괜찮지 않군요! 그렇죠?' (128쪽)  
   
아니요 라이케씨, 정말로 괜찮았어요.

이 책 읽느라고 한밤 중의 고속 버스 컴컴한 속에서 혼자 좌석 위의 작은 자리등 켜고 두시간을 버텼다. 아무나 못 쓰는 이야기를 쓴 이 작가에 대해 궁금해진다. 책 한권이 온통 주고 받은 이메일로 채워져 있을 뿐인데, 이 두 남녀는 끝까지 서로 한번 만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다니, 거기다가 이렇게 제대로 감동까지 주면서 말이다. 충격이 싫은 요즘, 이런 식으로 나를 감동시켜주는 책이 좋다.
사랑의 모습이 어디 한 두 가지이랴만은,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례 정해진 과정을 상상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런 게 사랑이야'라는 확신이 들게 한다. 서로 만나지 않고서도 '한눈에 반한다'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글에 반하는 것이다. 글을 통해 느껴지는 대상에 반하게 되는 것이다. 우연히 시작된 메일 주고 받기를 통해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관심이 갈수록 커져 간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 과장이나 허위, 포장이 들어가지 않고 서로에게 끝까지 진실하려고 노력한다. 내 마음 밑바닥 까지 보여주기 까지 솔직함을 잃지 않는다. 이런 게 사랑 아닌가?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참으로 신선하다. 마치 김 수현의 TV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 그만큼 번역자의 실력도 한 몫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건 대체 원문이 어떻길래 이렇게 해석을 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우리 말 식의 자연스런 문장들이 꽤 눈에 띄었다.  '술이 떡이 됐군요!' 또는 '그렇게 도매금으로 싸잡아 악의적으로 갖다붙이는 남자 복수형에 나를 내맡길 수는 없어요...당신이 그러면 속상해요. 정말로!' 이런 표현들 말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또한 어색한 구석이 없었다.
작가에 대해서 잘 모르는지라 이름을 보건대 남자일 것 같지만, 그가 남자라도 놀랍고 여자라도 놀랍다. 다소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며 가끔 간접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떠보려는 시도를 하는 여자쪽, 그에 비해 논리적이고 끝까지 어떤 한계를 지켜가면서 이성적인 결단을 하려하는 남자쪽, 양쪽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끝냈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들의 사랑은 그것으로 충분했다고 본다. 완전했다고 보고 싶다. 서로 얼굴 보며 만나면서도 이보다 진실성이 떨어지고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는, 추한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는 관계도 얼마든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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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0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3-30 13:35   좋아요 0 | URL
이 책 읽다보니 우리도 만나면 안될 것 같아요. 푸하하~ 농담이고요, 읽을 땐 그 다음 진행이 궁금해서 금방 읽었는데 다 읽고도 자꾸 생각이 나면서 읽을 때 미처 생각하기 않았던 문제들을 자꾸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네요. 묘한 책이어요.

다락방 2010-03-3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hnine님께 별 다섯을 받았다니. 왜 제가 좋을까요 ㅠㅠ

제가 놀란것도 바로 말씀하신 그 부분이었어요. 작가가 남자이든 여자이든(남자입니다) 남녀사이의 감정의 기복, 남자의 마음을 떠보려고 하는 여자의 마음, 흔들리지 않으려고 중심을 잡는 남자의 마음을 대단히 잘 그려냈잖아요.
게다가 에미가 가끔 멍청한 소리를 할때(미아를 소개시켜준다거나!), 그것에 대해 후회를 할때, 그런 섬세한 감정들 까지도 정확하고 예리하게 표현을 하잖아요.

일전에 친구가 이 책을 읽고 작가가 공부를 많이 하고 아주 똑똑한것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 네, 저도 작가가 이런쪽으로(남녀 심리라든가 언어라든가 하는쪽)공부를 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똑똑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는 두시간이 hnine님께도 '괜찮은' 시간이었군요. 전 아직도 가끔 이 책을 꺼내어 뒤적여보곤 한답니다.



게다가 결말은 완벽하지요?
:)

hnine 2010-03-30 13:38   좋아요 0 | URL
이 다음 후속작을 읽어야 할 것 같아요. 리뷰 올라온 것들을 보니 이 책 만큼 좋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작가가 과연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나 궁금해서요.
이 책의 결말을 완벽하다고 하시는 다락방님은 어쩐지 저와 코드가 비슷하실 것 같기도 하네요 ^^

무스탕 2010-03-3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뛰어오실줄 알았어요 ^^

말씀대로 원작도 물론 좋았겠지만 번역자가 참 '감'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제대로 느낌살려 옮겨주다니..

hnine 2010-03-30 13:40   좋아요 0 | URL
저기요 솔직히 이 책 읽는 동안 다락방님이 자꾸 떠올랐어요 (속닥속닥...^^)
예, 제가 원서를 본 것은 아니지만 번역본만 읽어도 매끄럽게 글과 글이 연결되어지는 그런 책들이 있지요. 이 책이 그랬어요. 어설픈 곳이 별로 눈에 안띄는 외국 소설, 흔치 않은데 말이지요.

구단씨 2010-03-30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습니다. 에미와 레오의 마지막, 다락방님 말씀처럼 완벽했는지.....흠....^^
너무나 공감가는 이야기에 소심녀 너무 낯설지만 덧글을 하나 남기려고....^^
바로 이 다음 이야기(후속편-일곱번째 파도)를 읽지 않고서는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 것 같은 순간을 보냈답니다....

hnine 2010-03-30 13:42   좋아요 0 | URL
이 책의 결말이 맘에 안드는 독자도 분명히 있을거라고 안그래도 그 생각 했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상상력으로는 이보다 더 나았을 결말이 떠오르지 않아서요.
일곱번째 파도, 제목부터 또 궁금해서 아무래도 안 읽을 수 없을 것 같네요.

프레이야 2010-03-30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곱번째 파도,도 권해드리고 싶어요.^^

hnine 2010-03-30 18:32   좋아요 0 | URL
넵! 아무래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