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하지는 않게, 듬성듬성 메모가 있는 책상 달력. 나는 듬성듬성 살았나?
아이가 옆에서 자고있을 때만 가끔 사용하는 회색의 스탠드가 그 옆에,
지금 읽고 있거나 막 읽기를 마친 책들이 그 앞에 서너 권.
잠시만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수분기 하나 없이 바짝 말라 거칠어지는 내 손을 달래주는 연초록핸드크림이 있다. 그 옆의 올 해의 히트상품 손 세정크림은 두 번이나 발랐을까? 한단 짜리 책 꽂이에서 아트도 파워가 있다고 붉은 물감은 요동을 치고, 표지가 예뻐서 못버리고 있는 2009년 1월호 어떤 잡지, 중년의 나이보다 20대의 젊음보다 여전히 나를 잡아 끄는 것은 풋내나는 청소년기, 사고 보니 청소년을 상대로 한 계간지였던 또 어떤 잡지, 깐깐하게 넛지(Nudge)할 수 있는 광기와 방랑의 자유인이 되고 싶었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지만 내 길은 결국 내 발과 내 의지로 걷는다는 것을 눈물로 콧물로 배웠네. 지난 여름 아이가 사준 노란 스마일 부채는 부채로 쓴 적보다 책상위 연필 꽂이에 꽂아두고 아이의 얼굴과 겹치기 용으로 보기를 원했다. 책꽂이 앞의 메모지엔 오늘의 메뉴, 시금치국, 조기 구이, 숙주 나물, 두부 조림. 굽고 조리고 데우며 산 2009년, 결국 그거였던 나의 2009년.
  

 

-- 안 현미 시인의 <내 책상 위의 2009> 라는 제목의 시를 보고 따라 써 보다 --  

 

 

 

 

 

 

 

  

 

 

                                       내 책상 위의 2009 

                                                                                              안 현미 

 

그림과 음악과 호찌민 평전이 있다 먼지가 두껍게 앉은 스탠드도 있다 까망도 있다 의무감도 있다 최선을 다해보려 낑낑대는 나도 있다 없는 것들까지 있다 밤도 있다 겨울도 있다 아킬레스건도 있다 꿈도 있다 21세기가 있다 100명의 소녀들에게 아침을 나눠주는 당신이 있다 영원이 있다 희미한 희망이 있다 까망을 사랑하는 빨강이 있다 파랑과 합체하는 빨강도 있다 무채색과 어울리는 바람도 있다 색깔론이 있다 분단과 녹슬어가는 자본주의가 있다 바겐쎄일이 있다 후일담도 있다 MB노믹스도 있고 MB악법도 있다 30년과 10년 종류별 '잃어버린'도 있다 그림과 음악과 호찌민 평전이 있다 먼지가 두껍게 앉은 스탠드도 있다 뉴타운천국 실업자천국 김밥천국 호기심천국 천국도 종류별로 있다 그때 그 시절!복고열풍도 있다 냉전도 반민주도 복고 복고, 지지고 볶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던, 엄마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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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2-09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멋진데요
따라해 보고 픈데 음
~

hnine 2009-12-09 20:04   좋아요 0 | URL
저도 하늘바람님의 2009년이 듣고 싶어요.

비로그인 2009-12-09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다가 마지막 구절에 눈길이 갔을때는 좀..뭐랄까 아직 덜 마른 수건을 만질때 같은 느낌이 드네요. 비록 적으실 때는 그런 뜻이 아니었을지라도요.

어쩌면 제가 방금 읽고 온 책 한권, 읽고 난 후의 잔향의 영향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hnine 2009-12-09 21:59   좋아요 0 | URL
덜 다듬어졌음, 어딘지 부족함의 느낌 말씀하시는거죠? ^^
어떤 계획, 어떤 꿈을 가지고 시작했던 간에 어차피 하루하루를 채운 건 매일 먹고 사는, 일상적인 일들이었다는 의미로 썼어요.
방금 읽고 오신 책은 뭘까요?

비로그인 2009-12-10 08:18   좋아요 0 | URL
에이,,설마요~^^
덜 마른 수건. 그건 아직 상쾌하지만 아직 축축한 느낌, 왠지 모르게 측은해지는 느낌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댓글에 답해주신 두 번째 줄의 느낌에 근접한 것이 아닐까 하는데 제가 생략을 하다보니 그렇게 받아들여지셨나 봅니다.

"덜 다듬어졌음" 이란 것은 늘상 저에게나 하는 말입니다. ㅋ

어젯밤 읽고 온 책은요.. 메를로-퐁티의 [눈과 마음]이란 책이구요~

hnine 2009-12-10 14:01   좋아요 0 | URL
휴~~ ^^
메를로-퐁티의 저 책은 어떤 책인지 구경하러 갑니다~

섬사이 2009-12-10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지만 내 길은 결국 내 발과 내 의지로 걷는다는 것을 눈물로 콧물로 배웠네." 그래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겠죠? 저도 눈물 콧물, 많이 뺐던 것 같아요. ^^
멋집니다.

hnine 2009-12-10 07:55   좋아요 0 | URL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지난 생일에 선물로 받은 책인데 웬지 아직도 손이 안가서 못 읽고 있다가 제목만 이렇게 인용을 했네요.
섬사이님, 눈물 콧물 뺀 기억도, 폭소를 터뜨렸던 기억들도, 모두 2009년에 대한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되겠지요.
비가 간간히 뿌리는 아침이어요. 섬사이님도, 세 아이들도 춥지 않게 하루를 잘 보냈으면 좋겠어요.

같은하늘 2009-12-14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져요.
저도 해보고싶지만 솜씨가...ㅜㅜ

hnine 2009-12-14 07:17   좋아요 0 | URL
따라한 것 뿐인걸요 뭘~
같은 하늘님의 2009년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