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때 선물로 라디오를 받았다. 지금처럼 CD 플레이어도 아니고 그냥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들을 수 있는 조그만 라디오를.
그래도 나만의 라디오였기 때문에 얼마나 애지중지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때부터 나는 라디오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라디오 키드가 되었다는 것. 새벽 6시의 '안녕하십니까 엄정행 입니다.'부터 시작해서, 심야의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 그리고 '한영애의 영화음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방학이 되면 오전의 '가정희망음악', '세계의 유행음악', 심지어는 MBC AM 에서 하루에 20분씩 하는 연속 낭독 시리즈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까지 '유치하다, 유치해~' 이러면서 거의 매일 듣곤 했다. 어른들의 사랑얘기가 은근히 재미있었던 것이다. 

방송국에 엽서도 무지하게 많이 보냈다.
아래의 곡은 처음으로 방송국에 신청곡 엽서를 써서 '서울 영등포구 ....에 사시는 ...님의 신청곡입니다.' 라는, 당시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신은경 아나운서의 소갯말과 함께 들었던 곡, 거기다가 그 엽서가 뽑혀 음악회 초대권 까지 받아서 당당히 혼자서 세종문화회관에 갈 수 있게 해주었던 곡이었다. 

오늘 새벽에 이 곡을 다시 듣고 있자니, 정말 엊그제 같다. 30년 전이 엊그제 같을 수도 있나보다.  

 

로드리고의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 2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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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9-11-20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라디오 키드~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곡들이 나오면 테이프에 녹음하여 다시 듣곤 했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렇게 녹음한 곡들은 앞에 한 소절을 놓치거나 뒷부분이 광고로 잘리는 일이 종종 있는데도 말이에요. ^^

hnine 2009-11-20 06:05   좋아요 0 | URL
우리 그것 (불법복제 ㅋㅋ) 많이 했지요.
지금도 저는 라디오를 즐겨 듣는 편인데,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몇 개 있어서 제 시간에 못듣고 인터넷 라디오로 다시 듣기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요.

꿈꾸는섬 2009-11-20 0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때, 직장 다닐땐 간간이 라디오 들었는데 요샌 도통 라디오를 들은 적이 없네요.
근데 사연보내서 당첨도 되고 정말 멋지신데요.

hnine 2009-11-20 15:03   좋아요 0 | URL
사연없이 신청곡만 적어 보냈었어요. 추첨으로 뽑힌 거였지요. 이후로도 종종 음악회 티켓을 받으면서 더 재미가 붙었답니다.

상미 2009-11-20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울시 중구 정동 22번지.
얼마전 정동이 정릉동이었던 내용이 나오는 다큐를 보면서 , 이 주소와 네가 떠올랐단다.ㅋㅋ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 ㅋㅋㅋ
난 내가 따로 듣지는 않았는데, 울엄마가 맨날 라디오 틀어놔서,
방학 때 <임국희 여성쌀롱>,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 들었지.

hnine 2009-11-20 15:05   좋아요 0 | URL
정동과 정릉동은 다른데 아닌가?
맞아, MBC에선 임국희의 여성쌀롱, 그 시간 KBS에선 황인용 강부자... ㅋㅋ

상미 2009-11-20 18:1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태조의 아내 왕비가 죽고 묘가 지금의 정동에 있었대.능 이름은 정릉이었고.
태종이 자기 엄마가 아닌 이 능을 사대문에서 가까이 두는게 보기 싫으니까,
지금의 정릉에 옮기고 ,릉이 있던 곳은 정동이 된거라고 하더라.

hnine 2009-11-20 21:08   좋아요 0 | URL
아~ 그런것이었구나. 아침에 남편과도 이 얘기 했었는데, 알려줘야겠다.
고마워.

qualia 2009-11-20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 님, 이 곡을 듣던 소녀 적 hnine 님의 모습이 상상 속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아마도 그 소녀 눈에는 눈물이 촉촉하게 배어나왔을 것 같아요. 저 곡 6:15쯤부터 그리고 6:47쯤부터 아마 hnine이라는 소녀는 아름다움에 겨워 뭉클, 눈물을 글썽였을 거예요...

정말 아름다운 음악, 감사합니다.

hnine 2009-11-20 15:28   좋아요 0 | URL
곡 제목도 특이하지요? 그래서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밖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보다 저렇게 혼자 틀어박혀 할 수 있는 것들에 더 재미를 느꼈어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네요 ^^

6:15, 6:47... qualia님다우세요 ^^

하늘바람 2009-11-2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회사고 이어폰이 안되어 못듣지만 집에서 꼭 들어볼게요.
참 아름답고 추억어린 이야기네요. 중구 정동 사셨나봐요^^

hnine 2009-11-20 18:21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점심 시간에 쓰신 페이퍼 읽었어요. 월급을 안 줄리는 없을테니 너무 마음 태우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상식이 안 통하는 세상, 기분은 무척 나쁘지만요.
중구 정동 22번지는 예전의 MBC방송국 주소랍니다 ^^

같은하늘 2009-11-25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예전에 라디오를 끌어안고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공부할때도 라이오 이어폰을 끼고하면 엄마는 그러고 공부가 되냐고 하셨던...^^
몇 번지까지는 기억안나는데 중구 정동이란 주소 많이 들었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