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때 선물로 라디오를 받았다. 지금처럼 CD 플레이어도 아니고 그냥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들을 수 있는 조그만 라디오를.
그래도 나만의 라디오였기 때문에 얼마나 애지중지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때부터 나는 라디오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라디오 키드가 되었다는 것. 새벽 6시의 '안녕하십니까 엄정행 입니다.'부터 시작해서, 심야의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 그리고 '한영애의 영화음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방학이 되면 오전의 '가정희망음악', '세계의 유행음악', 심지어는 MBC AM 에서 하루에 20분씩 하는 연속 낭독 시리즈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까지 '유치하다, 유치해~' 이러면서 거의 매일 듣곤 했다. 어른들의 사랑얘기가 은근히 재미있었던 것이다.
방송국에 엽서도 무지하게 많이 보냈다.
아래의 곡은 처음으로 방송국에 신청곡 엽서를 써서 '서울 영등포구 ....에 사시는 ...님의 신청곡입니다.' 라는, 당시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신은경 아나운서의 소갯말과 함께 들었던 곡, 거기다가 그 엽서가 뽑혀 음악회 초대권 까지 받아서 당당히 혼자서 세종문화회관에 갈 수 있게 해주었던 곡이었다.
오늘 새벽에 이 곡을 다시 듣고 있자니, 정말 엊그제 같다. 30년 전이 엊그제 같을 수도 있나보다.
로드리고의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 2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