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험 감독을 끝으로 이번 학기도 막을 내렸다.
늘 시험 문제지 마지막은 이번 학기 수업 듣느라 수고 많았다는 인사말로 맺는 버릇이 있는데, 학생들은 종종 그 아래에 감사하다는 글을 덧붙여서 내기도 한다.
착하고 순수한 이 학생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수업과 관련 없는 이야기도 참 많이 떠들었던 것 같다. 지방대 강의를 나가다 보면 학생들 중에 이유없이 기가 죽어 있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이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쫓기는 강의 일정에도 불구하고 앞에 나와서 10분 씩이라도 자기가 조사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을 만들었고 발표가 끝난 후에는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그건 되도록 짧게 하고, 잘한 점을 아주 많이 부각시켜 칭찬을 해주었다. 나도 대학교 1학년때 이렇게 하라면 못했을 거라고 (진짜 그렇다), 나의 어리버리한 면도 마구 폭로하면서.
채점하다가 학생들이 답안지 끝에 문제의 답과 무관하게 남긴 몇줄의 글들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열심히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그 말이 나는 너무나 감사하다. 내가 그들에게 줄 것이 있었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집안 문제로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더이상 남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는 어느 여학생의 글, 질문을 하도 해서 선생님을 귀찮게 해드려 죄송했다며, 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과목이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는 글, 부끄러워 숨고 싶은 마음이면서도 보람이 느껴지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정말 보잘것 없는 급여에, 학기가 끝나면 그나마도 없는 시간강사란 타이틀. 얼마나 더 이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가르친다? 아니,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내가 조금 더 알고 있는 전공 지식이 아니라, 그들의 의욕을 북돋아 주고, 격려해주는 것, 잘할 수 있다는 칭찬, 그런 것들일 것이다.
나 역시 생기발랄한 인간이 못되지만, 그래서 더욱 그들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다. 이 세상에 그들을 의기소침하게 할 것은 아무것도 없노라고. 기운 내서 마음 껏 꿈을 펼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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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1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동이 물씬, 막 눈물 날 것 같아요.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더래도 고마움의 한 줄 두줄, 꼭 남겼을 거예요. 진정 위로가 되었노라고...

hnine 2008-12-13 00:30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 기죽이는 사회가 아닌, 서로 기운을 북돋아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08-12-13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때 너 이분야 계속 공부해볼래 라고 말해주신 선생님의 한마디를 지금까지 가장 좋은 칭찬으로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hnine님은 좋은 스승이시네요.

미설 2008-12-13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긴 몰라도 님이라면 무어라도 한가지 더 챙겨주려고 노력하셨을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요. 진심을 알아주는 학생들이 정말 고맙네요^^

hnine 2008-12-13 22:59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칭찬이 정말 힘으로 발휘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전혀 과장 같지가 않아요.

미설님, 이 학생들은 정말 요즘 대학생 맞나 싶을 정도로 순박해서 제가 감동을 많이 받았었어요. 그런데 본인들은 그걸 모르더라구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2008-12-14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8-12-14 01:41   좋아요 0 | URL
아마 모르긴 몰라도 생각없이 한 제 말에 마음 상한 학생들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아무말 안하고 혼자 삭이고 말았겠지요.
참 쉽게 말할 자리가 못되요 가르치는 사람의 자리란.
공감해주시니 고마와요 ^^

프레이야 2008-12-2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한해 참 잘 해내셨습니다.
글에서 그런 느낌이 팍팍 들어요.
보람되이 보내셨어요.^^

hnine 2008-12-14 14:45   좋아요 0 | URL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니까요 ^^
감사합니다~

미미달 2008-12-17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선생님이셨네요. 저도 어제 답안지 내면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고 나오니 이제 정말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ㅠ ㅠ

hnine 2008-12-17 20:33   좋아요 0 | URL
기말고사 답안지 내고 돌아서면 그것으로 마지막인 경우가 많지요. 답안지 제출하고 나가는 학생들 보면서 저도 서운하던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