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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세계 45개국어로 출간되어 현재까지 800만부 이상 팔린 '아프리카'문학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구전되어 내려오는 것이 더 많았던 아프리카 문학의 고전이라고까지 불리는 이 소설의 작가 치누아 아체베는 1930년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났다. 목사 아버지를 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고 미션 스쿨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가 들어간 나이지리아의 이바단 대학교도 그당시에는 런던 대학교 소속이었다고 한다. 나이지리아 방송국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아프리카 여러 지역과 미국 등을 여행하게 되었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게 되었다. 그의 첫 소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발표한 것은 1958년 그의 나이 28세때였는데 그때 나이지리아는 2년 뒤 1960년 영국의 식민지령으로부터 독립을 약속받고 정권 이양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첫 소설 이후로도 출판을 거듭하면서 치누아 아체베는 출판사 편집자, 외교관 활동, 대학 선임연구원등의 활동을 하였고 문예지 창간을 주도하기도 했다. 1972년 그의 나이 42세때 미국 애머스트 대학의 객원교수로 초빙된 것을 계기로 미국의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게 되고 이후 코네티컷 대학 객원 교수, 나이지리아 대학 교수를 거쳐 57세때는 미국 메사추세츠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고 부커상 후보에 오르며 나이지리아 최고문화훈장인 국가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2004년 그에게 주어진 나이지리아 연방공화국 지도자 훈장은 나이지리아 정치 상황에 대한 항의로 수상을 거부하였다. 아프리카와 미국, 유럽을 드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2013년 미국에서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작가가 활동한 시기는 나이지리아가 영국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독립하여 새로운 국가 설립이라는 당면 과제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가치관 등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시대였고, 아마 그런 일종의 붕괴와 건립을 동시에 목격하면서 그는 아프리카의 이전 역사부터 되돌아보다가 영국 제국주의 체제의 침입이 이루어지던 19세기 말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읽어보면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나 고발성 강한 소설로만 읽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치 아프리카에 내려오는 옛날 이야기 책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오콩코라는 한 개인의 일대기 같기도 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아프리카의 관혼상제를 비롯한 풍습, 설화, 민속, 규범 등을 소개해주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첫 페이지부터 주인공인 오콩코가 얼마나 용맹스런 사람인지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콩코는 아홉 마을과 그 너머까지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두 손으로 건실한 업적을 쌓고 명예를 일궈냈다. 열여덟 젊은 나이에 '고양이' 아말린제를 내던져 마을에 명예를 안겨 줬다. (...) 그가 '고양이'라고 불린 것은 그의 등이 한번도 땅에 닿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사람을 오콩코가 시합에서 내던졌는데, 노인들은 이를 두고 마을의 시조들이 황야에서 일곱 밤낮 동안 귀신과 싸운 사건에 버금가는 격렬한 사건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11쪽)
용맹스러움을 표현하는 비유가 독특하다.
젊을 때부터 용맹스러웠고 가족 부양에 책임감이 투철했으며 부족의 관습과 전통을 지키는데 충실했던 주인공 오콩코가 어떤 실수를 저지름으로 해서 마을에서 추방당해 일곱해를 지나야 돌아올 수 있게 된다. 그가 다른 마을로 유배가있는 동안 부족에는 서양에서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들어온 백인들에 의해 하나 둘씩 서양 문물이 들어오게 되는데, 평소 부족에서 낮은 대우를 받던 사람들과 여성들이 주로 합류하기 시작한다. 서양 백인들은 종교만 가지고온게 아니라 학교, 법원도 함께 들여와서 부족민들을 교육시키고 백인들 자국의 법에 따라 부족의 일을 재판하기 시작했다.
"백인이 땅에 대한 우리의 관습을 알기나 하는가?"
"우리말조차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알겠나. 그런데도 백인은 우리 관습이 나쁘다고 말하네. 게다가 백인의 종교를 받아들인 우리 형제들마저 우리의 관습이 나쁘다고 말한다네. 우리 형제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렸는데 어떻게 우리가 싸울 수 있겠는가? 백인은 대단히 영리하네. 종교를 가지고 즐기면서 여기에 머물도록 했네. 이제 그가 우리 형제들을 손에 넣었고, 우리 부족은 더 이상 하나로 뭉쳐 행동하지 않네. 그가 우리를 함께 묶어 두었던 것들에 칼을 꽂으니 우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네." (207쪽)
7년만에 유배에서 돌아온 오콩코가 부족 친구로부터 마을 상황에 대해 얘기를 듣는 대목이다. 주목할 것은 이 대목만으로도 작가는 부족의 붕괴와 해체는 외부 백인들의 침탈과, 거기에 더해서 부족 토착민들의 동조가 합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짚었다는 것이다.
자기 부족이 백인들의 지배하에 점차 넘어가고 있는 상태를 보자 오콩코는 도저히 두고 볼수 가 없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이었고 지금까지 그의 가치관과 신념과 목표가 뿌리채 뽑히는 것 같았다. 그냥 참고 복종할 오콩코가 아니다. 그는 마침내 결심하고 단행하여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다.
치누아 아체베의 이 소설이 의미있는 것은 오콩코라는 인물의 비극의 원인은 우선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아프리카에 가한 폭력과 침탈이었지만, 이런 세력에 수동적으로 대처하고 적극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전통사회의 나약함에도 원인이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었다는데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분석이다. 전통사회의 대처 방식이라는 공식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어려서부터 이런 서양의 문명의 혜택을 받고 교육받고 성장한 작가의 입장에서 한쪽으로만 보지 않고 다각적인 입장을 제시하려고 한 노력은 충분히 엿보인다. 그리고 붕괴되고 나면 끝이 아니라 그것이 새로운 세상으로의 전환점이 되기를, 그것만이 이제 남은 돌파구이고 생존 통로임을 제시하고자한 노력도 볼 수 있다.
제목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예이츠 (W.B.Yeats)의 시 "재림"에서 인용하였다고하는데 인용부분은 이 책 맨 앞에 소개되어 있다.
돌고 돌아 더욱 넓은 동심원을 그려 나가
매는 주인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중심은 힘을 잃어,
그저 혼돈만이 세상에 풀어헤쳐진다.
- W. B. 예이츠, "재림" -

이 책도 미국 대학위원회 선정 SAT 추천도서중 한권이다.

원서 첫 페이지인데 이미 우리말 책으로 다 읽고 봐서 그런지 아주 못읽을정도로 어려워보이진 않는다.


집에 마침 치누아 아체베의 다른 책이 한권 더 있다.
<사바나의 개미 언덕>
이왕 시작했으니 이어서 읽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