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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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말 참 많이 듣고 자랐고 이제는 공부하란 말 많이 하며 산다. 공부가 좋다면 스스로 하면 되는데 주로 내가 하기보다 남에게 하라고 시킨다. 대상은 대개 자녀. '공부만한 투자가 없다', '평생 공부다', '공부하는 사람 못따라간다', 판에 박힌 잔소리를 할때 보통땐 듣고 마는 자녀가 어느날 "그러는 엄마는 대체 공부가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라고 되묻는다면 대답할 한마디 근거라도 마련해놓고 있을까? 정말, 공부란 무엇일까.

<아침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명쾌하고 소신있게 강의아닌 강의를 펼쳐주던 저자가 이번엔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무엇을 깨우쳐주려고 하나 기대하며 책장을 열었다.

책을 다 읽고난 소감은,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참 맛있게 읽었다는 느낌이다. 맛은 없지만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었을때와도 다르고, 맛도 없고 몸에도 안좋은 음식을 혹시나 하며 끝까지 먹었을때 느낌도 아니며, 맛은 좋아 다 먹었다만 첨가물 잔뜩 들어 맛을 낸 음식과도 달랐다. 옳은 말이지만 세상에 던지기 어려울수 있는 말, 공부하란 말을 학생들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소신, 다독가이다보니 판에 박히지 않은 다양한 비유, 지식 충전으로 나이를 거슬러가보자는 자체적 해석, 이런것들이 만들어내는 '맛'인가보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을 때 충만한 것은 거품같은 공허뿐이다.

생각할수 있는 근력이 없기에,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대신해줄 강력한 타자를 갈구한다.

장기적인 것, 공적인 것, 엄정한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말초적인 욕망의 충족과 단기적인 이익의 추구와 근거없는 인정욕구가 남발하게 된다. (13쪽)

 

자녀들에게 잔소리하고 싶을때,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하고 싶을때 읽어보면 좋을 대목이다. 생각할 수 있는 근력, 생각의 척추기립근, 이런 말은 저자의 책에서 인상적으로 남는 말들 중 하나이다.

 

어떤 신문 기자가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이 낭가파르바트 설산을 오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메스너는 대답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의 대답에는 보통 사람이 쉽게 가지기 어려운 어떤 청춘의 기립근 같은 것이 느껴진다. (87쪽)

 

얼마전에 읽은 메스너가 여기서도 나와 반가왔다.

기립근. 똑바로 설 수 있게 하는 근육, 힘. 메스너의 이 대답은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 이용된 대답과 비슷한 맥락이다. 추석날 가족들 모인 자리에서 잔소리 하는 어른께 추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되물어보라던.

 

공부라고 할때 우리는 곧바로 성실성을 함께 떠올린다. '주기적으로 정해진 일을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말은 곧 성실성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한가지를 더 보태어 강조한다. 성실성 더하기 창의성이다. 이제 모범생의 자세로만은 부족하다면서 창의적이 되라고 한다. 창의적이기 위해 용기와 유연성이 중요한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관습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고, 관습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는 관습에 의존할수록 에너지 소비가 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다른 두 생각을 연결시킬때 생겨난다는 아시모프의 말을 인용하면서.

예상하다시피 엄청난 독서가이기도 한 저자는 서평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써놓았는데,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책에 삽입되어 있는 그림들은 내용과 어떤 관련성이 있나 읽으면서 궁금했다. 책 뒷편에 인터뷰 내용을 보니, 아침에 일어나 페이스북에 그림 한장 올리고 자기 전에 음악 링크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고 한다. 그림은 아마 그렇게 본인 페이스북에 올렸던 그림들을 책에도 포함시킨게 아닌가 싶다.

 

단테의 <신곡> 첫부분이 이렇게 된다며 인용하였다.

"인생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 길을 잃고 어두운 숲에 서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 거칠고, 가혹하고,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죽음도 그보다는 덜 쓸 것이다."

 

인생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의 나이가 되어 이 대목을 읽으니 이렇게 공감갈 수가 없다. 이 나이 정도 되면 저절로 살아질 줄 알았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이 대목이 책 중에 두번이나 나오기에 아직 안읽었지만 집에 갖고는 있는 단테의 신곡을 꺼내다가 위의 대목만 원문으로 읽어보았다.

 

 

 

 

 

그래서, 공부란 무엇이란 말인가.

공부란, 그저 살기만 하지 않는다면 그에 더해지는 모든 활동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내 생각이다 현재로서 할 수 있는.

계속 고쳐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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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1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감있는 손글씨가 좋아요. ^^
저는 초딩글씨라서 손글씨는 아무데도 못내놔요. ㅎㅎ 저는 요새 그냥 사는게 다 공부겠거니 해요. 그래서 자꾸 관성에 빠지나싶은데 이 책을 읽으면 좀 나아질까요?

hnine 2020-09-16 19:20   좋아요 0 | URL
정감있게 봐주시니 그런가봐요. 고맙습니다. 요즘 손글씨 내놓을일 없잖아요.
(천재는 악필이래요)
이책보다 먼저 나온 <아침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이 더 낫다고 하신 분들도 많아요. 저는 그책도 좋았고 이 책도 좋았어요. 지금도 아마 다음 책을 쓰고 계실듯해요.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이런 분들은 아주 유익하게 이용하고 계시더라고요.

다락방 2020-09-1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체 정말 좋아요, 나인님.

hnine 2020-09-16 19:23   좋아요 0 | URL
참고로 저는 <쓰기>라는 교과서와 과목이 있던 때에 초등학교 (국민학교)를 다녔답니다. ㅋㅋ
요즘은 손글씨 쓸일이 예전보다 거의 없지요. 얼마전엔 친구 생일인데 어디 한번 생일 카드를 손으로 써서 우편으로 부쳐볼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필체 좋다고 해주시니 기분 좋아요.

kpio99 2020-09-16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 잘 쓰시네요.

hnine 2020-09-16 19:24   좋아요 1 | URL
영어요, 한글이요? ^^ 농담입니다. 잘 쓴다고 해주셔서 고마워요.

수이 2020-09-1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절반 정도 살지 않은 거 같은데 느낌상 딱 절반까지 왔다, 이제 딱 절반 남았다, 정말 말 그대로 딱 중년이로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계속 고쳐나갈 것이다_ 그게 어쩌면 적확한 공부의 정의가 아닐까 싶어요. 이전 책에 비해서 저는 감흥이 좀 덜했는데 다시 읽으면 좀 달라질까 싶어요. 아 그리고 한글도 영어도 진짜 잘 쓰세요! 나인님, 실로 멋져서 한참 보았어요 필체 사진 :)

hnine 2020-09-17 09:02   좋아요 0 | URL
성인이 된 후의 독서는 새로운 지식이나 생각을 알아가기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고 동의하고 있는 것들을 더 공고히 하는데 이용된다는 말 있잖아요. 이미 만들어놓은 벽을 더 탄탄히 만드는거죠. 그러다가 latte가 되어가고, 흑흑. 계속 고쳐나갈 각오를 해야할 것 같아요. 지금 아무리 확실해보이는 사상이나 생각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는 자세를 지키고싶답니다.
글씨체 칭찬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칭찬받고서 으쓱해가지고 앞으로 자주 올리게 생겼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