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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20 - 5부 5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0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연재 20년 만에 끝냈다는 토지 20권의 마지막은 극적이지 않았다.
앞의 권과 비슷하게 진행된다. 여러 등장 인물이 교대로 나오면서 서민들의 대화를 통해서는 가난하고 굶주려야하는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지식인들의 대화를 통해서는 시대 상황, 그리고 시대상황을 위해 또는 그것을 틈타 어떻게 개인의 의지와 욕망을 실현시키려 하는가를 보여주고,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연인들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은 시대, 신분, 국가의 개입을 보여준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 자리를 지킨 서희. 그녀의 삶은 예사롭지 않은 일생을 살다간 부모와 할머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서희를 중심 인물이라고 할때 그것은 소설 속 사건의 중심 역할을 했다는 뜻이라기 보다 그 많은 등장 인물들을 직접 간접으로 그녀를 중심으로 관계 지어서 자칫 산만하고 일관성 없을 인물 관계를 피할 수 있게 하는 의미에서이다.
동학도, 항일운동도, 신학문도, 계속 언급되기는 하지만 어느 권에서도 크게 한번 터지는 일이 없다. 우리 역사가 그렇기 때문 아닐까. 민초들의 삶을 자잘하게 묘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지루하지 않아 20권 까지 읽어가도록 그리 어렵지 않았고 초집중해서 읽어야할 필요까지 없었지만, 20권 결말이라고 해서 결말지어지는 것이 없다. 물론 일본에 드디어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조선은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대미를 장식하긴 하지만 아주 짧은 지면을 할애할 뿐이다.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 어느 인물들에 의해 (누구라도 상관없다) 21권, 22권으로 계속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이지 않는다.
여섯 살때 부모의 사랑에서 격리되어 그 결핍을 독으로 품고 살아야 했던 서희. 어린 나이에도 어린 나이로 살 수 없었던 서희가 길상을 배우자로 선택하여 빼앗긴 토지를 되찾는 과정이 아무래도 이 소설의 중심 플롯일 것이다. 간도로 이주하였다가 마침내 조준구로부터 빼앗긴 토지를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데에서 끝났더라면 어땠을까 감히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조선의 역사가 그러한 것을 작가가 어찌하랴. 강한 나라의 틈새에서 약자 역할을 해온 쪽의 얘기가 극적으로 소설화 될 수 있을 것인가.
20권을 통털어 그 많은 등장 인물 중에 아무리 봐도 서희라는 여인을 뛰어 넘는 인물이 없다. 서희가 신분 차이 따위 뒤로 하고 먼저 결혼을 제안하여 남편이 된 길상은 마지막 권에서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서희의 두 아들중 큰 아들 환국은 결단력의 소유자라기 보다 이를테면 햄릿 형 인물. 그보다 추진력 있던 둘째 아들 윤국은 학병으로 참전 중이다. 봉순의 딸이며 양딸인 양현을 슬하로 다시 데리고 온 서희는 늙어가면서 어쩌면 양현에게 더 의지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남편도 아니고 장성한 두 아들도 아닌.
한세대의 삶은 그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본다. 내가 살아가는 길은 부모가 살아온 궤적을 크게 벗어날 수 없고 내 자식의 삶 역시 내가 살아가는 길과 완전히 상관없을 수 없다.
그러니 끝은 없다. 그래서일까. 20권까지 읽은 느낌은 19권 읽고 난 느낌이나 18권 읽고 난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계속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