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 난 아들 녀석에게 요즘 친한 친구가 우리 아파트 앞동에 생겼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데 알고보니 우리 앞동에 살고 있었던 것. 그 아이가 우리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우리 아이도 그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아이보고 우리집에 오라고 하는 것은 싫고 자기가 그 아이네 집으로 놀러가겠다고 고집이다. 왜 그런가 알아보았더니 그 아이 집에 있는 게임기 때문이었다. 세상에...우리 집에서는 TV도 구석방에 갖다 놓고 토요일, 그것도 한시간씩만 보게 허락하는데, 그 아이 집에 갈때마다 한시간 이상씩 게임기에 붙어 있었다는 얘기.

아이를 앉혀놓고 그러면 왜 안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다가, 아니나 다를까 언성이 좀 높아졌고, 아이가 엄마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못하게만 하고 화만 내니 다른 엄마를 찾아가야겠다는 얘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벌써 한번 충격 먹고). 그러냐, 그래. 그러도록 해라. 가방 싸줄께...하며 옷서랍에서 아이 옷 몇가지와 장난감, 책 등을 챙겨주는 척하는데 아이 입에서 잘못했다는 말이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너, 갈데는 정했니?" 물어보니 위의 그 친구네 엄마한테 물어보겠단다. 자기를 받아달라고. 가방이 대충 챙겨지자 내가 물었다. "너 이제 나가면 그 친구 엄마보고 엄마라고 부르는거야. 알았지? 그리고 계속 그 집에서 유치원도 가고, 잠도 자고 하는 거다." 그랬더니 알았단다. 당당하게, 꾸려진 가방, 여행용 돌돌이 가방을 포함해서 자그마치 네개의 가방을 끌고 들고 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물론 인사도 없이.

아이가 나가자 마자, 그 집 엄마에게 전화. 다린이가 지금 이런 저런 일로 집을 나가 그 집으로 향했으니 곧 도착할꺼다, 도착하면 우리 집에서 받아줄수 없다고 하고 아이를 야단쳐서 돌려보내달라 고 부탁했다.

조금후 그집 엄마의 전화. "말씀하신대로 했는데 다린이가 집에 안 가겠다네요. 하루밤만 재워줄수 없냐면서..."

난 그때부터 거의 자리잡고 누웠다. 충격, 충격...2.5 kg. 주머니속에 넣어도 들어갈 것 같이 작게 태어난 아이가 어느새 저렇게 자라 집을 다 나가는고...

중간 과정 생략. 아무튼 아이가 집으로 다시 들어오긴 했는데 나중에 엄마께 말씀드리니, 예전에 내 남동생도 어릴때 나가라고 했더니 진짜 나가서 나중에 흙강아지가 되어서 동네를 어슬렁거리는걸 할머니께서 데리고 들어오셔가지고는, 할머니께 엄마 된통 혼나셨다고 비화를 들려주신다.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과 달라서 나가라면 진짜 나간다고.

이틀전의 이야기이다.

지금까지도 나는 여러 가지 반성중이다. 확실한건, 설사 아이 입에서 나간다는 투의 말이 나오더라도 절대 그래 나가라 는 식의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

여러가지, 아주 많은 것들을 지금 되돌려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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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7-02-1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나저나 님..지금 일곱살이니 다행이지요,,,사춘기때 집 나가라 그러면 진짜 집나가서 엄마가 빌때까지 안들어온대요..
왜냐? 엄마가 나가라고 해서 나간거니깐,,,그게 잘 못..실수로 말한거다,하기 전에는 절대 안들어오는거죠..그래서 그 말,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전 익히 들었지요.히..
그나저나,,녀석 이제 정체성이 막,,생기고 있나봐요,,,ㅎㅎㅎ

미설 2007-02-16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드시겠어요. 하루밤만 재워 달라고 했다니... 요즘 저희 큰 애도 제법 반항하는데 제가 자꾸 더 강압적으로 나가게 되어 고민입니다. 맘은 안그래야지 하는데 말이예요..

hnine 2007-02-1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일곱살때 이러는 애들이 사춘기때도 집나가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흑 흑...
미설님, 아이가 잘못되어간다 생각하기보다 내 잘못이 크다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네요. 부모 노릇 어려워요...

진주 2007-02-1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봐염 미설님과 hnine님, 15살 먹은 오리지날 제대루 사춘기 아들을 키우는 저는 어떻겠어용? 엉엉~~

진주 2007-02-1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똘똘한 다린이에게 주는 거랍니다. 원래 똘똘한 놈들이 그래요. 엄마가 휘둘리지 않으려면 공부 빡세게 해야겠는걸요 하하핫~~ㅎㅎ

hnine 2007-02-1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에궁, 주름잡아 죄송합니다~~ ^ ^

프레이야 2007-02-16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랍니다.^^
울큰딸 다섯살 때 저더러, 제가 예쁘다면 사랑해 주세요, 라고 메모지에
써서 주더군요. 얼마나 뜨끔했던지요.. ㅎㅎ

해적오리 2007-02-1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중학교때나 되어서 가출생각을 했는데.. 얼마나 덜떨어졌었는지.. 학교 옆에 텐트치고 거기서 학교 다닐 생각을 했었답니다. ㅋㅋ...
전 아직 결혼도 안하고 애도 없지만.. 제 애는 착한 아이보다는 자기 생각이 분명한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다린이가 귀엽고 대단해 보이는 걸요..;;;;

hnine 2007-02-16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제 아이도 엄마의 사랑이 더 필요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저도 뜨끔뜨끔~

해적님, 푸하하하~~ 학교옆에 텐트를요? 에궁~ 귀여우셔라. 다린이 지금 제 옆에서 점수 딸려고 제게 자기 동화책 읽어주고 있습니다 ㅋㅋ

LovePhoto 2007-02-17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나가라고 했더니 진짜 나가서 나중에 흙강아지가 되어서 동네를 어슬렁거리는걸 할머니께서 데리고 들어오셔가지고는, 할머니께 엄마 된통 혼나셨다고....."
---> 흠흠, 이 가슴 아픈 비화의 등장 인물(주인공... 긁적긁적.....)로서, 이 글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아니, 걔가 벌써?" 하면서 말입니다.
흠흠.....

LovePhoto 2007-02-17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빠가 나서서 조목조목 타일러 주시는 건 어떨까요?
막 성대를 울려가며 "야단"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잘 맞으실 것 같아서..... ^^;
역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군요.....

LovePhoto 2007-02-1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달아놓고도 여전히 충격이 가시질 않는군요.....
으~~

호랑녀 2007-02-2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가 일곱살 때는 아빠가 잡으셨지요. 전 계획 다 서 있었어요. 어디서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야지... 이렇게... 안 잡으셨으면 나갔을 거에요.
그리고 열 일곱살 때는...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수익이 안 남더군요. 그래서 바로 꼬리 내리고 엎드렸습니다 ^^

hnine 2007-02-2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어디로 가려고 하셨을까요 일곱살때... 저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집을 나가볼까 생각했던 적은 있는 것 같으네요 고맘때. 식구들 중 아무도 저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서, 확인해볼 마음에 ㅋㅋ...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싸~한데, 제 아이는 나중에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