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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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피리 부는 공공철학 전도사

 


 

 

연말 한 신간 아닌 신간의 출간을 놓고 온 출판계가 떠들썩하였다. 아니, 갑작스러운 행보를 몇 건이나 해낸 한 출판사가 벌인 일 중 하나라고 하는 게 더 바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사건에 대한 해석을 두고 갑론을박이 팽팽하였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의 결정이었는데 책 제목 때문에 더 저자는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향해 열심히 자기변호 해야하였다. 문제의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지난 20여 년간 14000명 이상의 하버드대 학생들이 수강한 명강의 정의Justice’2009년 녹화영상과 책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하버드대는 PBS와 공동 기획해 12강 분량의 강의를 녹화해 아카데믹 어스 사이트와 유투브 하버드채널에서 전부 무료 공개하였다. FSG에서 출간해 유료로 판매한 책 역시 곧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고 37개국에 수출되었다.

 

 

발 빠르게 마이클 샌델과 교섭한 김영사는 20092만 달러에 판권을 사 2010년 말 번역본을 냈고 그 해 판매 1, 다음 해 판매 2위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다. 또 일본에서 12강 강의를 정리한 책도 번역하며 마이클 샌델과 정의 신드롬에 더욱 불을 붙였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우리나라의 판매고는 123만부 이상, 지급 인세만 147600만원에 달하며 현지보다 더 열광적인 반응에 저자를 비롯한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심지어 모 외제차 한국지사는 마이클 샌델의 방한 때마다 차량협찬을 하기도 하였다. 그 동안 방한했던 어떤 해외 석학도 받지 못한 대우였다. 문제는 판권 계약 기간이 불과 5년이었다는 것이다. 재계약 판권비가 무려 10배 이상 올랐는데 개정판도 아닌 일반 재계약본이 출판사가 바뀌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였다. 출간 초엔 재계약에 실패한 김영사로 언론의 편이 실렸다. 200만부 돌파라 거짓 표기, 번역 표절 의혹, 번역이 어렵다는 등의 수용할 수 없는 지적, 상도덕에 어긋난 판권 뺏기 등이 비난의 주 골자였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이 직접 이번 사건에 대해 해명하고 김영사 역시 다른 출판사의 시리즈 신작 판권을 채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면이 전환되었고, 판단의 몫은 독자에게 일임되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두 출판사가 제시한 판권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으며 김영사와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무단으로 <어린이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출간한 것에 크게 실망을 해서란다. 그리고 보란 듯이 11월 말 이번 <정의란 무엇인가>를 낸 미래엔(구 대한교과서)에서 <10대들을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냈다.(와이즈베리는 미래엔의 인문경제경영도서 브랜드, 아이세움은 미래엔의 아동도서 브랜드이다.) 실제로 <어린이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마이클 샌델이 아닌 국내 작가의 이름으로 출시되었고, 마이클 센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폭발적 인기 속에서도 김영사나 미래엔 같은 거대 출판사 뿐 아니라 영세한 신생출판사를 비롯한 다양한 출판사와 다른 저서의 판권 계약을 했었다.

   

뒤늦게 <정의란 무엇인가>의 독자로 합류하여 와이즈베리의 새 번역본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점을 의식하며 읽지 않을 수 없었고, 서평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완독한 독자의 입장에서 필자는 와이즈베리 쪽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일단 표지가 원서와 더 가깝다. 이전 번역이 어렵고 이번 번역이 쉬워 완독률을 높일 것이라는 와이즈베리의 주장은 마케팅적 과장인 감이 크지만, 굉장히 많은 부분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달라져서 번역의 정확도가 더욱 높아졌다. 제목부터 김영사 아이디어의 표절이란 것은 동의하기 힘들다. 원제의 제목은 ‘Justice정의지만 곧바로 제목 옆에 ‘What's the Right Thing to Do?’란 부제가 붙여 있다. 따라서 김영사 만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라기보다 어떤 출판사라도 원서의 제목과 부제를 고려했을 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제목이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본문 번역 표절에 있어서는 표절까지도 아니더라도 기존 번역본을 상당히 참조해서 표현을 바꾼 감은 있다. 실제로도 와이즈베리는 일찌감치 이창신 번역자에게 번역의 재사용에 대해 문의를 했었고, 새 번에 대해 이창신 번역자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다만 책의 표지에도 새기고 주 마케팅 문구기도 한 한국 200만부 돌파는 확실한 잘못이긴 하다. 김영사 덕분에 판매부수를 한 자리대까지 다 알게 되었지만, 판매부수는 비공개라 200쇄 이상 나온 것을 보고 200만부로 추정했다는 와이즈베리의 입장도 사실이라면 경솔한 시도긴 하나 수긍의 여지도 조금 있다. 아무튼 수많은 식당들이 곧 맛집이라는 간판을 내거는 것처럼 새 <정의란 무엇인가> 역시 200만부를 목표로 열심히 달려야 할진데 상당한 인고의 세월이 걸릴 것이다. 스테디셀러화되는 대부분의 베스트셀러가 그렇지만 <정의란 무엇인가> 역시 100만부 판매는 11개월 안에 끝난 것, 그 후 판매가 얼마나 더디게 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타 출판사가 이룬 과거의 영광을 홀랑 가져가긴 하였지만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가는 셈. 한편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는 내내 우리나라 국민은 평균 독서량이 별로 많지 않은데도 이렇게 교양 수준이 높은 걸까 싶었다. 판매량에 비해 완독률이 형편없는 책이라는 와이즈베리의 주장이 맞는 걸까.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것들을 묻고 싶다.

 

 

대충이라도 서양 철학사의 주요 흐름과 학자, 개념을 알고 있는가

정의론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많은가

사유를 통해 사회에 참여하고 변화시킬 의지가 강한가



마이클 샌델은 정의론 분야의 세계적 학자이자, 공동체주의 4대 이론가이다.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상아탑 밖으로 나와 철학에 대한 대중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자처하였다. 그의 궁극적인 사상은 아직 이름이 없다. 이 책을 감수한 김선욱 교수는 자유적 공동체주의라고, 이 책의 해설을 단 서평가 로쟈는 공공철학이라고 편의상 명명한다. 요는 기존의 정의론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정의론의 모색, 기존의 어떤 철학자보다 정의에 있어 대중의 기여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정체성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점이 처음부터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아니라 하버드대에서 하버드대 학생을 위해 이루어진 강의였다는 것이다. 지식수준이 상당하고 졸업 후 사회를 이끌어 갈 엘리트들을 놓고 논하는 정의론과 철저한 정책 수용자인 대중을 위한 정의론은 소재는 비슷할지언정 강의 수준과 방향이 전혀 다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하버드 강의내용을 일반교양서로 풀긴 하였지만 완전한 대중 맞춤이라기보다는 우리(하버드)가 평소 공부하는 바를 여러분에게 보여주겠으니 알아들을 수 있으면 이해해봐라에 더 가까운 책이다. 그래서 어려운 게 당연하고 어느 수준 이상 인기 있는 것은 의아하다.


 

상이군인 훈장 논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에 담긴 도덕 논리를 보여 준다. 군인 훈장의 경우, 어떤 미덕을 가려야 하는가를 묻지 않고는 수여 대상자를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성격과 희생이라는 경쟁적인 개념들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어쩌면 군인 훈장 논란은 명예와 미덕이라는 고대의 윤리관을 되짚어 보아야 하는 특수한 사례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정의와 관련된 대부분의 논란은 번영의 열매나 고난의 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그리고 시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제에서는 복지와 자유를 앞세우는 사고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경제적 배분의 옳고 그름에 관한 주장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도덕적 자격을 갖추었는지 따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으로 흔히 다시 돌아가게 된다. -p.31

     

누구나 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한다. 공리주의 철학은 이를 깨닫고 이러한 사실을 도덕적·정치적 삶의 근간으로 삼는다. 공리의 극대화 원칙은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입법적 차원에서도 적용된다. 어떤 법이나 정책을 집행할 것인지 결정할 때 정부는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동체란 무엇인가? 벤담에 따르면, 공동체란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허구의 집단이다. 그러므로 시민과 입법자들은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이 정책에서 얻는 이익을 모두 더하고 모든 비용을 빼면, 다른 정책을 펼 때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게 되는가?” -p.63

 

자유지상주의자들 생각에는 안락사를 금지한 법이 부당하게 여겨질 것이다. 내 생명이 내 것이라면, 내게는 그것을 포기할 자유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 내 죽음을 돕도록 내가 허락한다면, 국가는 이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p.117

 

정의에 관해 뜨겁게 논쟁할 때면 시장의 역할이 자주 거론되곤 한다. 자유시장은 공정할까? 돈으로 살 수 없는, 혹은 사면 안 되는 재화도 있을까? 있다면 어떤 재화이며 그것을 사고파는 것은 왜 문제가 될까? 자유 시장에 우호적인 시각은 보통 두 가지 주장에 근거한다. 하나는 자유를 중시하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복지를 중시하는 주장이다. -p.123

 

롤스는 사실들을 다룰 때,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각자에게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사회적 여건을 (우리를 위해) 이용하자고 제한한다. 롤스의 정의론이 궁극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이론은 미국 정치 철학이 지금까지 내놓은, 좀 더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임이 분명하다. - p.248

 

학생의 학업 성취 가능성을 예측하기 위해 표준화된 시험을 이용하려면 학생의 가정, 사회, 문화, 교육 배경을 고려해 점수를 해석해야 한다. SAT에서 똑같이 700점을 받았더라도, 사우스브롱크스에 있는 열악한 공립 학교를 다닌 학생이 맨해튼의 부유한 지역인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일류 사립 학교를 졸업한 학생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 p.254

      

 

와이즈베리의 새 번역본이 대중들의 관심을 끈 이유 중 하나는 기존 번역본에서도 감수를 맡았던 김선욱 교수의 해제 외에 특별 부록으로 로쟈와 정수환(대입 논술 강사)의 해설까지 덧붙인 것이다. 정수환이 제시한 이 책을 읽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은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 정도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것. <정의한 무엇인가>는 전형적인 철학서이다. 큰 질문을 던진 후 여러 가지 예시를 준 다음 그것에 대해 자유롭게 사유가 오가도록 둔다. 행복하게 뒷짐 지고 있던 철학자는 적절할 때마다 등장해 논의를 갈무리한 후 자신의 주장을 말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수준의 지식은커녕 이 책이 철학서인 것도 모르고 집은 독자라 하더라도 아주 암담한 것은 아니다. 사례는 입시 정책과, 훈장, 안락사와 대리모 등 아주 친근한 시사 문제이고, 철학사적 순서와 상관없이 철학자들을 등판시키긴 하나 그들의 사상에 대해 기본적인 설명은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아무리 읽어도 결국 저자의 정의론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는 독자가 있다면, 본문 마지막 장의 이 대목을 언급하고 싶다.

   

 

도덕적 이견에 좀 더 적극적으로 공적 참여를 한다면 상호 존중의 기반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더욱 굳건하게 할 수 있다. 동료 시민이 공적 생활에서 드러내는 도덕적·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경청하고 배우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어려운 도덕 문제에 대해 공적으로 숙고한다고 해서 어느 상황에서든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거나, 심지어 타인의 도덕적·종교적 견해의 진가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어떤 도덕적·종교적 교리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것을 덜 좋아하게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해보기 전에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도덕적인 참여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에게 더 많은 이상을 불어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유망한 기반을 제공한다. -p.390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총 10장에 걸쳐 근 400쪽이나 되는 긴 서술을 하며 저자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것이다. 특히 마이클 샌델이 철학자로 연구에 매진하면서 넘고 싶었던 것은 롤스의 정의론이었다. 그래서 벤담과 칸트, 로크에 거쳐 서양 철학의 본격적 기원인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아이디어를 찾는다. 로쟈의 지적처럼 마이클 샌델이 가장 긍정하는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볼 수 있지만, 그에게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샌델은 결국 정의와 공동선을 뗄 수 없으며 철학의 정치성을 높이고 대중의 정치 참여를 높인 도덕적인 참여 정치가 사회를 좀 더 이상적이고 정의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책의 결론부만 읽어서는 안 된다. 철학은 답의 학문이 아니라 과정의 학문이며, 그래서 어떤 책보다 논리의 전 과정을 톺으면서 치열하게 읽어야 하는 것이 철학서이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마이클 샌델 정의론의 결론이라기보다는 중간 점검이자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기폭제이다. 그의 바람대로 이 책으로 수많은 반박서와 지지서가 촉발되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다면 미주에 언급된 문헌들을 검토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막상 특별부록과 해제는 아주 큰 도움은 되지 않는 편, 고생스럽더라도 정복하는 맛으로 한 장 두 장 곱씹으며 직접 저자의 정의론을 이해하도록 애쓰는 것을 더 추천한다. 시간은 더 걸리더라도 읽는 즐거움은 몇 배 더할 것이다. 새 번역본은 원래의 원서 서문이 빠지고 한국판 특별 서문으로 대체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기존 번역본의 업그레이드이다. 점점 심해지는 번역서 판권비(선인세) 전쟁이 빚은 촌극이 책 자체보다 더 주목받고 있는 게 아쉽다. 요약하면 와이즈베리의 번역서가 약간의 도덕적 쟁점이 있긴 하나 독자들의 입장에선 기존 번역본보다 훨씬 만족스러울 것이다. 비상식과 비정의가 횡횡한 사회에서 스스로도 정의스럽지 못한 일상을 사는 요즘, 책으로 정의를 찾았던 이번 독서가 썩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샌델의 의사는 존중해야 하나, 정의를 논하는 책의 저자의 정의에 대해 여전히 석연치 않다. 그 어느 때 읽은 독자보다 더 정의를 고민하며 읽게 되었으니 행운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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