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천국 주식회사] 대책 없는 하느님과 의외의 최종병기

 

 

 

미친 듯이 일하고 미친 듯이 노는 12, 그래서 더 속이 헛헛하고 욕구불만을 풀 도피처가 절실한 것 같다. 어서 읽어 달라 아우성대는 책 사이에서 방금 배송 받, 출간된 지 일주일도 안 된 <천국 주식회사>부터 읽은 것도 잠시라도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미국 소설인데 올해 출간되었던 책도, 12월에 출간된 책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말 번역본이 올 연말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은근히 연말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이 책의 작가 사이먼 리치는 국내 독자들에게 아직 생소한 편이다. 2011년 살림에서 번역본을 내놓으며 처음 그를 소개하긴 하였지만 아직 수상 타이틀은 없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글을 썼지만 장르가 제각각, 굳이 공통분모를 찾자면 유머가 주특기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최연소 SNL 작가로 방송과 영화계에서 열심히 경력을 쌓으면서 꾸준히 소설도 내고 있어 주목할 만한 젊은 영미권 작가이긴 하다.

 

 

하느님은 기적 코딩을 직접 하지 않으세요. 그 작업은 철저하게 기술적이거든요. 그분은 오히려 아이디어맨에 더 가깝죠. 아시잖아요? 처음부터 그분은 구체적인 실무를 대신 해결해 줄 사람들을 고용했어요. 그분께서 회사 일상 업무에 참여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네요. -p.27

 

어느 계약직 천사도 기도 수취부에서 기적부로 껑충 건너 올라간 적이 없었다. -p.34

 

크레이그는 천사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수습이나 비서로 일하는 것에 만족하면서 퇴직할 때까지 대충대충 복무 기간을 채웠다. 하느님은 40년의 복무 기간을 요구하셨으나 어떤 직종을 선택하든 상관하지 않으셨다. 천국 주식회사의 근로자들이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개 하루 5시간도 안 됐다. 테니스 코트, 보치 공놀이 경기장, 잉어 연못 등 캠퍼스에는 없는 게 없었다. 실내에 처박혀만 있는 건 미친 짓이었다. -p.46

 

인간들은 자신들이 이성적 존재로서, 자신들의 가치관과 신념 체계를 따라 산다고 믿고 있었다. 아침에 뭘 먹었는지, 잠을 잘 잤는지 못 잤는지, 그리고 최후의 만족스러운 오르가슴이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가 그것이었다. - p.242

 

 

그 흔한 역자후기나 주석 하나 없이 깔끔하게 본문만 있어 일단 읽어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천국 주식회사>의 원제는 ‘What in God's Name’,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면 도대체정도의 감탄구인데, 원제가 참 딱인 소설이다. 당황스러울 만큼 밑도 끝도 없는 발상의 발칙한 소설이다. 사이먼 리치의 상상에 따르면 하느님이 지구를 만든 이유는 오직 크세논을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설계한 세상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82개 층의 거대 기업조직을 세웠는데 그 중 74개 층이 크세논 사업에 몰두할 만큼 크세논에 대한 하느님의 꽂힘은 대단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흥미를 잃은 하느님은 대단히 무능하나 여러모로 자신과 닮은 구석이 많은 인간을 만들었는데 그들을 구경하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하루 대부분을 인간에 할애하기 시작하였다. 점점 관련 업무는 증가하였고, 기존 인력으론 도저히 소화할 수 없어 죽은 인간들을 40년 계약 천사로 채용하였다. 그런데 천국의 인사도 고과는 물론 비정규직과 정규직, 명예퇴직과 정년퇴직이 나뉜다니 젠장.

 

 

하느님은 세상과 천국 기업조직을 만들었을 뿐 거의 모든 업무는 천사들의 몫. 쉴 새 없이 돌려보는 지구본과 서버(원하는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조회 가능)를 통해 기적을 행하거나 재해를 막기도 하고, 밀려드는 기도들을 중요도에 따라 분류해 하느님에게 결제를 올린다. 그런데 천사들도 몰랐다. 하느님은 단 한 번도 인간의 기도를 들어준 적 없으며, 편애도 심하고, 주기적으로 악플 검색 등을 하며 놀고 또 논다는 사실은. 어쩌면 이렇게 가만히 계시는 게 천사들과 인간들에게 더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 사업에 싫증을 느낀 하느님은 천국에서 아시아 퓨전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며, 아예 지구 자체를 종말 시키고 천국 기업조직도 대폭 축소하자는데. 이런 일은 또 무척 빠르셔서 한 달 후에 실행하시겠단다.

 

 

인간이 죽어 천사가 되면 인간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잃는다. 그저 업무 대상으로서 인간을 대하는 것이고, 천국 기업에서 일하지 못하더라도 천국에 지내는 데는 별 문제 없다. 그런데 모든 소설이 그러하듯 어떤 위기적 사건이 등장하면, 그를 해결하고자 나서는 오지랖 넓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천국 주식회사>도 두 유능한 천사 크레이그와 일라이자, 두 찐따 인간 샘과 로라가 대책 없는 하느님을 막아 지구를 구하고자 한다. 재밌는 것은 그 중 반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 채 이 긴박한 미션에 휘말린다는 것. 3부로 구성된 <천국 주식회사>, 제목은 <천국 주식회사>지만 천국의 시스템을 다루는 부분은 채 절반이 되지 않는다. 원제 그대로 갔으면 책을 읽기 전까진 무슨 내용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출판사가 어쩔 수 없이 번역하면서 제목을 바꾼 것 같긴 하지만, 그야 말로 ‘What in God's Name!’의 연속이다.

 

 

<천국 주식회사>는 독자의 독서량과 독서철학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소설이다. 뭐니 뭐니 해도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는 입장에선 합격점이다. 그러나 미학적으로 감탄할 부분이나 내용적인 여운은 기대할 수 없는 작가의 이력이나 집필 지향점을 떠올리면 이상한 게 아닌데 어쨌든 너무 가볍다. 평소에 책을 거의 안 읽는데 모처럼 뭐 재밌는 소설 없나 하고 찾는 독자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연평균 100권 이상 꾸준히 책을 읽는 독자라면 이 소설을 읽으며 아주 뛰어나다고 느끼기 쉽지 않다. 코미디인지 로맨틱코미디인지 장르적 정체성을 확실히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있다. 원제와 비중을 고려했을 땐 작가는 후자에 더 초점을 맞추지 않았을까 추측하는데. 그게 의도가 맞다면 전반부의 분량이 너무 많고, 번역판 제목은 천국조직에 초점을 맞춰서 그 의도를 잘 살리지 못한다.

 

 

오히려 이 책은 문학적인 가치보다 영상화할 만한 매력적인 소재로서 더 가치 있다. 기본 설정과 인물들의 특징이 기발하고 개성적이어서, 잊을만하면 사고치는 CEO(하느님)과 그를 뒤치다꺼리하느라 바쁜 직원(천사)들이 나오는 특이 오피스물 드라마로 몇 시즌이고 내놓을 수 있다.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그들의 실책과 성과에 따라 요동치는 인간 세계도 중간 중간 보여주고 얼마나 재밌겠는가. 그래서 <천국 주식회사>의 후반부가 어떻게 되는지는, 그게 책의 하이라이트니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조금 조언을 준다면 이 책은 지금부터 내년 한 해 동안이 가장 읽을 맛이 훌륭한 최적 독서기간이다. 빨리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다. 특히 요즘을 추천했던 것은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들 예수의 축복(휴일)을 누릴 때기도 하고 연말 스트레스 풀 오락거리로 딱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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