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폭격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맛집 폭격] 잠시 정신 놓았다 생각하면 마음 편해요

 

 

 

장르를 불문하고 매필로 채우는 주머니가 두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쓰지 않고선 살 수 없는 수많은 글쟁이들의 몸부림으로 문화가 발전하고 풍요로워졌다. 특히 문학은 시대를 특정한 형태로 박제해 현재에 묻고 미래에 남긴다는 점 때문에 저널리즘보다 더 저널리즘 같을 때가 있다. 확실한 인재였고 제대로 처벌하고 매듭짓지도 못한 채 반년 이상 온 나라의 분위기를 침체시켰던 세월호 사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숨 막히는 응어리가 박혔고 문화 창작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눈먼 자들의 국가> 같은 책이 나오기는 했지만, 쓰는 이도 읽는 이도 많이들 비틀거렸고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올해 한국 소설은 1만부 이상 판매한 신작이 손꼽을 정도였던 최악의 해로 기록되었다.

 

 

역시 함께 심란하고 아파하다 한국 소설을 찾은 것은 해가 다 갈 무렵에서였다. 다분히 일부러였다. 한국 소설에 소홀하지 않았나 싶은 반성과 미안함, 한국 소설에 보내는 수줍지만 진심인 애정이 반반 섞여 말이다. 1,2년 치 우리 장편소설 목록을 빠르게 훑었다. 이름은 들었지만 지나쳐왔던 배명훈 작가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 때였다. 그는 장르문학의 정신으로 순문학을 유영하는 작가이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문단에서 독특한 소재와 발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주로 단편에서만 탁월한 역량을 보인 채 쉽게 장편을 내지 못하거나 내도 크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에 반해 그는 장편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고, 비슷한 수준의 작품성을 유지하며 매년 한두 작품씩 꾸준히 책을 내고 있다.

   

 

배명훈 작가는 올해 중편 소설과 장편 소설을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각각 하나씩 냈다. 전자는 조립 과정의 실수로 마음을 갖게 된 전투로봇의 성장담 <가마틀 스타일>이고 후자는 어이없는 이유로 일어난 전쟁 <맛집 폭격>이다. 둘 다 배명훈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개성이 돋보이는 소설로 오락성이 강하다. 현재도 체류 중인 뉴욕에서 집필해 일찌감치 탈고하였지만 4월의 참사를 의식해서인지 몇 달 묵힌 끝에 나왔다. 재밌는 것은 비슷한 시기에 완성된 두 소설에 대한 출판사의 태도 차인데 <가마틀 스타일>을 낸 은행나무와 달리 <맛집 폭격>을 낸 북하우스(문학동네 임프린트)는 세월호 소설과 연결해 독자들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는 이 책이 세월호 사건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한,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는 그 일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요한 것은 피해 상황을 조사하는 일 자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피해의 경험이 다루어지는 방식이 더 중요했다. 결국 폭력의 경험이 다루어지는 방식이 더 중요했다. 결국 폭력의 경험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원동력이 되고 말겠지만,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가 하는 문제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게 아니었다. -p.17

 

파괴된 건물들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하층도 없는 단층짜리 건물 몇 채가 다였다. 다시 말해 적국 입장에서는 폭격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비해 감수해야 할 위험부담이 너무 큰 곳이었다. 아무리 무차별 공격을 하고 있는 것 같아도 학교나 병원이 있는 구역은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게 양측의 암묵적인 합의였다. 그래서 병원이 있는 동네는 집값이 비쌌다. 낮 시간에는 학교도 그 기능을 했다. 미군 시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두 나라 다 미국과는 동맹 관계였으니까. -p.73

 

 

정확한 시간 제시는 없지만 지금과 가까운 현대의 어느 날, 같은 미국 동맹국인 지구 반대편의 어느 나라가 한국에 무차별 미사일 폭격을 가한다. 발사된 미사일 수가 600개가 넘어 간, 분명한 전시 상황인데도 겁에 질리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로 일상은 똑같이 돌아가고 있다. 국방부가 아니라 국제 대외 관계 속의 에스컬레이션 문제를 담당하는 에스컬레이션 위원회가 이 전쟁에 대응하고 있다. 무기체계 코디네이터인 민아리의 추천으로 전혀 경력은 없지만 업무 습득력이 빠른 민소가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에 채용되고, 현장을 누비는 핵심 업무자로 파견된다. 그는 폭격지를 분석하며 전쟁의 원인을 알아내려 애쓰는데 네 건의 맛집 폭격이 무척 마음에 걸린다. 그의 추억이 서린 장소라, 우연이라 보기엔 너무 찝찝했기 때문이다.

 

 

리스트를 뽑기가 애매한 식당들을 누가 어떻게 알고 공격한단 말인가. (...) 생각보다 적긴 했지만 피해를 입은 식당은 수십 군데나 됐다. 보통 동네 식당이 대부분이라 맛집이라고 할 만한 곳은 전체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지만 어차피 그런 건 주관적인 판단이었다. - p.72

 

육백 개가 넘는 미사일이 쏟아진 지금, 사라진 장소나 사람을 살아 있는 사람이나 아직 파손되지 않은 공간보다 더 의미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날이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기념해야 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p.82

 

사망자가 스무 명에 가까운 현장이었다. 대피하지 않는 사람들, 정지되지 않는 일상이 낳은 피해자들이었다. 일상이 전쟁과 겹쳐 있는 삶은 살기가 어려웠다. 전쟁 전의 삶과 그다지 다를 게 없는 삶이기도 했다. 자기 몸이 아파도 병원 같은 데는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전쟁 전에도 충분히 많았다. 정시에 출근을 하고 꾸역꾸역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병가라는 게 있기는 했지만 쓰러지기라도 하지 않으면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휴가였다. 쉴 시간은커녕 투표를 할 시간조차 못 내는 사람도 많았다. 전쟁이 나고 공습경보가 울리면 뭔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공습경보가 울려도 대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눈치가 보여서였다. 미사일이 하필 거기에 떨어질 가능성은 아직 그렇게 높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것은 퇴근 시간이 되어도 퇴근하지 못하는 이유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그렀게 일상과 겹쳐졌다. -p.86

 

그냥 맛집 하나가 사라졌다고 하기에는 그 식당에 얽혀 있는 기억들이 너무 많았다. -p.201

 

 

나태주의 시 <풀꽃>(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같은 소설이었다. 처음 다 읽고 났을 땐 시큰둥하였다. 전형적인 아이디어는 좋은데 평이한 킬링타임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못된 년이 등장하는 치정극, 전혀 놀라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서평을 쓰기 위해 기계적으로 여러 번 훑어 읽는 과정에서 별 반개를 더해 볼만한 흥미로운 구석들을 여럿 발견하였다. 계기는 이 책에 언급되는 일곱 개의 주소였다. 처음 읽을 때 소설 속에 언급되는 맛집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곳이 있기에, 몇 개 나오지 않는 주소를 한번 다 찾아봤는데 전부 실재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식어버렸던 관심과 기대가 조금 살아나니, 눈을 잡는 문장들도 몇 생겼다. 가볍다는 생각은 변함 없으나 정크는 아니었고 깨알 같은 깜찍한 면이 많은 소설이었다. 그러나 처음 읽을 때도 다시 읽을 때도 이상하게 본문보다 작가의 말에 더 눈이 갔다.

 

 

[폭격]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321-2 야무나(인도 음식점)

[폭격] 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224-1 미 마드레(스페인 음식점)

[폭격]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190 케르반(터키 음식점)

[폭격]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 202 명화원(중국 음식점)

 

[꿈]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백로 8 부숑(프랑스 음식점)

 

[서울에서 가장 출판사 많은 곳?]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 12길 - 서교동

[도심의 상징적 건물?] 서울특별시 중구 한강대로 416 - 서울스퀘어

 

 

술술 읽히는 본문과 달리 두 번이나 작성한 작가의 말은 너무 난해하다. 대놓고 독자들이 다의로 해석하길 유도하고 본뜻을 빙빙 돌려놓았다. 출판사의 단정이 저자의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하고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사라지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과 본문의 요리 묘사 비중에 비해 군침이 돌 새가 없다. 소설 자체가 어떤 대목에 집중하려 하면 폭탄처럼 뻥 터지고 바로 빈틈이 메워지는 ‘사라지는 것’이기도 하다. 영원하거나 소중할 것 같은 것들이 한순간에 없어지고 당연하다고 느끼는 사소한 것들이 불멸이다. 그렇다면 사라진 것과 남은 것 중 무엇이 더 서글픈 일일까. 또 <맛집 폭격>은 시종 실제 혹은 있을법한 일과 음모론이 뒤섞여 있고, 대놓고 PPL인 세세한 설정과 심한 비약과 여백이 공존한다. 꿈결 같고 정신 없으며 허무맹랑하지만 날카롭고 현실적인 구석이 있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읽을 필요는 없는 책, 읽는 동안 잠시 정신 놓았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