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것도 생각보다 꽤 괜찮습니다
신혜연 지음 / 샘터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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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만 내달리느라 동력을 소진해서 몸은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었고, 전처럼 머리가 휙휙 돌아가지 않아서 똑같은 일을 해도 효율이 확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근육이 줄어들고, 효율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비례로 마음속 욕심과 질투도 함께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살면서 갑옷처럼 나를 감싸주었던 허세와 자만의 거품이 슬슬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
- 글을 시작하며, p11

아. 정말 나도 그렇다. 제목을 보며 책 속에서 내 이야기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시작하는 글에서부터 격한 공감의 끄덕임이 계속된다. 이 책은 저자가 쉰 살이 되고부터 변해온 마음가짐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멀었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멀지 않은 나이..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것이려나.

 


 

나이 드는 것도 생각보다 꽤 괜찮습니다
신혜연 지음
샘터

 

주름이 생기고 탄력이 떨어져가는 얼굴, 바닥에 한웅큼 떨어짐 머리카락에 대한 한탄을 함께 해보고,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 게으르다' 보다 '자연에 순응한다' 라는 마음가짐에 살며시 밑줄을 긋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로 내 맘에 들게 하려면 겉치레가 아니라 내 몸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물론 적당한 관리는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하겠지만.

 

집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이 글은 내 일기인가 싶기도 한 글. 농담삼아 늘 '이번 생에 살림을 글렀어' 라는 내 푸념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나만 그렇지 않다라는 위로가 필요했던 요즘, 조금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살림이 즐겁고, 그걸 해야 행복한 사람이 있다. 그런 분들 집에 가면 집안 전체가 윤이 나면서 따뜻하고 고소한 향기가 감돈다. 나는 그쪽은 아니다. 살림을 하는 즐거움 보다는 유익한 생활문화 정보를 찾아내고, 글을 쓰는 일이 즐겁다. 살림 잘 하는 사람들 따라가려고 노력해봤자 내 몸만 피곤하다. 살림 잘 하는 사람들 따라가려고 노력해봤자 내 몸만 피곤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하다 보면 얻는 것은 스트레스뿐이다. 

-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집에서 일하기, p206

 

'함께 읽으면 행간이 보인다' 라는 글도 좋다. '독서 모임을 하니 내가 찾아내지 못했던 보석 같은 책을 추천받고, 혼자 읽을 때는 미처 몰랐던 해석을 듣게 된다' 라는 문장. 이건 나이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함께 하는 모임에서는 저마다의 삶의 경험을 조금 더 들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듯 하다. 아무래도 살아온 시간들과 경험이 켜켜이 쌓여있는 만큼 조금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고 할까. 

 

책은 내가 살면서 절대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어떤 책을 읽는지에 내 생각과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읽고 싶은 책만 읽어서는 생각의 전환점이 생길 수가 없다. 독서 모임을 통해 내 손으로 고르지 않았을 책도 읽어보고, 나 혼자 읽으면서는 알 수 없었던 의미를 같이 나누면서 독서의 깊이가 깊어진다. 
- 매일 하나씩 새로운 일, 함께 읽으면 행간이 보인다, p14

 

일기에 '좋은 것', '싫은 것', '나는 이런 사람', '나는 이렇지 않은 사람', '내 희망은' 을 적어보는 것도 함께 해보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적다 보면, 나라는 사람의 얼굴이, 몸짓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알고 있지만 잊고 있던 것들도 떠올리게 된다.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의 배설구만 되는 듯해서 한동안 멈췄던 일기를 다시 써야겠다고 다짐. 
 

말린 쉬위(Marlene Schiwy)는 <일기여행>에서 '일기 쓰기는 매일 일어나는 일상의 일들을 단순히 기록한다는 의미만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일기 쓰기는 심리적 근원을 향하여 일상의 표피 아래로 우리를 내던지는 생생한 반성의 과정이다. 보다 더 깊은 층위에서 글을 쓰고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변화한다. 삶의 여정과 일기 쓰기 여행이 서로 뒤섞이면서 삶과 일기는 풍요롭고 서로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진다.' 라고 했다. 그러면서 '집중력, 지속성, 반복이 가장 중요한 육체적 운동과는 달리, 분량과 길이와 횟수에 얽매이지 않는다' 고 일기 쓰기의 장점을 지적했다. 

- 매일 하나씩 새로운 일, 일기, 나를 보여주는 거울, p147

 

분명 읽었던 책인데 잊고 있던 내용도 떠올린다. 저자와 달리 아직 육아 중인 내게 일상수필이 다시 육아서가 되다니! 물론 '우아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 라는 장의 제목을 생각해보면 내 아이 뿐 아니라 이제는 주변의 마주치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기억할 만 하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우연히 존 가트맨(John Gottman) 의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을 비록해 아동 심리학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서 그런 의미 없고 추상적이며 외모 지상주의적 칭찬이 아이들에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그 후론 아이들에게 한 마디 건넬 때도 신중해졌다. '얼굴이 예쁘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외모에 편향적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 그러니 외모에 대한 칭찬보다는 "빈 음료수병을 재활용통에 버리니 환경을 보호하는 어린이구나", "동생을 잘 돌봐주는 멋진 형아네", "머리를 직접 묶었구나. 더 단정해 보이네" 그런 식으로 아이가 실제로 한 구체적 행동에 대한 칭찬이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 우아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 칭찬은 어른이 할 일, p236

 

'나이 들었다고 움츠러들지 않게, 내일은 오늘보다 더 씩씩하게, 더 우아하게 살기 위한' 느긋한 발걸음은 경쾌하다. 잡지사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백화점에서 콘텐츠디렉터로 일해온 저자는 일상의 기록들을  「건강한 일상의 루틴 만들기」, 「유행을 버리고 취향대로 산다」, 「매일 하나씩 새로운 일」,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우아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 이렇게 5가지 장으로 나누어 들려준다. 각 장의 제목만 봐도 공감지수가 높아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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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마 주니어 중학 국어 비문학 독해 연습 1 - 글 읽기 능력 향상을 위한 중학 숨마 주니어 국어 비문학 1
김영신 외 지음 / 이룸이앤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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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동안 아이와 2학년을 준비하면서, 국어의 경우 독해와 문법을 조금 더 신경써야할 듯 했다. 작년 겨울방학에도 비문학 독해를 한 권 풀었는데 올해도 풀어보기로 했다. 숨마주니어의 「중학국어 비문학 독해연습」 이다. 1일 2지문을 풀면 25일에 끝나는 진도다. 예비 중1~중2 대상의 1권. 

 


 


주로 이야기의 서사 중심의 창작물을 주로 읽는 아이인지라, 문학 외의 다른 지문들에 대한 독해 능력도 연습이 필요할 듯 했다. 이 책은 인문, 사회, 과학, 기술, 예술 분야의 제재들이 수록되어 있다.  

 


 


계획은 두 가지 방식으로 세워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차례대로 진행하거나 제재별로 섞어서 진행하는 방법 두가지다. 아이는 첫날은 차례대로 해보더니, 제재별로 섞어서 해보겠다고 했다.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나.



 

한 지문당 2~4개 정도의 문제라 푸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할 뿐.


물론 틀린 문제를 확인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쉽게 분리가 되는 정답 및 해설서는 수록된 지문에 대하여 문단별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지문 해제]도 수록되어 있다. 또한 문제에 대한 정답/오답 풀이도 아이 스스로 학습해볼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지라 복습에도 좋을 것 같다. 


각 분야의 마지막에는 해당 제재들에서 나온 어휘 등에 대해 따로 짚어볼 수 있도록 구성해놓은 부분이 좋았다. 밤톨군의 경우 과학 제재에서 어려운 단어들이 많았다고 한다. 가장 재미있어 한 부분은 예술이라더니 가장 많이 틀리는 부분도 예술분야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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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새 - 이해인 수필그림책 알이알이 창작그림책 45
이해인 지음, 이영아 그림 / 현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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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내 종교와 관계없이, 불교계에서 법정 스님의 글을 좋아했다면, 카톨릭계에서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와 수필을 좋아한다. 이해인 수녀님의 글에 일러스트를 더한 그림책은 「감사하면 할수록」 과 「누구라도 문구점」 등이 있다. 

 


 


수녀새
이영아 그림
현북스

 

강이나 바닷가 모래밭에 찍혀있는 물새들의 발자국을 보며 물새를 궁금해하고, 비오는 날에는 새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걱정한다. 새소리에 잠을 깨는 밤에는 맑고 고요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다시 잠을 청하는 이해인 수녀님.

 

그림 속 다양한 새들을 바라본다. 꽃이나 나무 이름에 비해 새 이름을 조금밖에 몰라 새들에게 미안하다는 수녀님은 그 이름을 불러주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집 근처의 새들을 보며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아파트 현관 근처의, 눈 쌓인 산수유 나무 위에 남은 산수유 열매를 먹는 이 새를 최근 많이 만난다. 얼마 전에야 '물까치' 라는 것을 알았다. 수녀원 언덕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가슴이 노란 새의 이름이 궁금해서 조류 사전을 빌려다보았다는 그녀의 글을 보며 함께 미소를 짓게 된다.

 


 


 


그녀의 이메일 아이디는 'nunbird88' 이다.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믿음과 사랑을 전하는 작은새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은 아이디라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마음이 그림책에 담겼다. 세상을 향해 띄우는 또 한 권의 러브레터다. 

 

수녀 새는 파랑새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녀의 꿈 많은 소녀시절, 친구가 그녀에게 '곧 날아가버릴 한 마리의 파랑새 같구나' 라고 써서 보냈던 편지의 구절에 나온 것처럼. 

 


 

파랑새는 동명의 고전 소설을 통해 행복의 상징이 된 새이기도 하다. 어디론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은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날아가고 싶다고 적는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희망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수녀 새' 가 되고 싶다고.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모두 새들에게 배우면 좋겠습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그들의 자유로움을,
먹을 것도 꼭 필요한 양만 취하는 욕심없음을,
그리고 먼 길도 기다렸다 함께 가는 우애와 의리를!

- 2020년 부산 광안리,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이해인 수녀로부터

 

이해인 수녀님의 글의 풍경을 그대로 그림에 담아내는 것에 더하여 '이해인' 이라는 수녀이자 시인의 다른 이야기를 좀 더 그림으로 담아내었다면 '이해인 수필그림책' 이라는 것 외에 또 한 권의 '인물 그림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그녀의 러브레터를 받고 펼쳐 읽는 이들의 마음은 저절로 따뜻해진다.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보게 된다. 그녀의 선한 영향력이 조용하게 읽는 이에게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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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15
카를로 콜로디 지음, 이기철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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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Le avventure di Pinnocchio
카를로 콜로디 지음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 15
보물창고

 

이 책은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이라는 시리즈의 15번째 권이다. 「어린왕자」 를 시작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보물섬」, 「베니스의 상인」, 「크리스마스 캐럴」, 「호두까기 인형」 등을 새롭게 나오고 있다. 어른들이 '클래식', 혹은 '명작' 이라고 부르는 고전 소설들이다. 그리고 오래 읽히는 고전 소설들은 분명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세상이 매우 변했다고는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뿐더러, 혹여 다른 가치관이 있더라도 달라진 부분을 찾아내어 확장해볼 수 있는 생각거리들이 있는 까닭이다. 

 

표지는 엔리코 마잔티(Enrico Mazzanti) 가 그린 1883년 초판본 일러스트를, 본문은 카를로 치오스트리(Carlo Chiostri)의 일러스트를 담았다. 구성에 있어 본문의 일러스트의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므로 텍스트에 친숙한 초등 고학년 이상의 아이들이 읽기에 좋다.

 


책 서두의 정보와 부록

 

친숙한 이야기에 더하여, 책의 서두에 나와있는 카를로 콜로디 및 여러 판본에 대한 소개와 책 후반부의 부록인 '장난꾸러기 꼭두각시와 함께 떠나는 좌충우돌 모험' 은 더욱 흥미롭다. 부록에 나온 뒷 이야기를 조금 옮겨보면, 처음의 「피노키오」 는 「꼭두각시 인형의 모험」 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신문에 연재되었는데, 여우와 고양이의 꾐에 넘어가 그 벌로 떡갈나무에 목을 매달린 채 죽음을 맞이하는 15화짜리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비극으로 끝난 결말이, 피노키오를 다시 보고 싶어하는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여 2년에 걸쳐 36화까지 연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전인 이 책의 여러가지 해석에 익숙한 나와 달리 밤톨군의 완역본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완역본보다도 축약본 그림책이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만나보았을 듯 하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는 여러 창작물에서 차용되어 사용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완역본으로 만나는 피노키오의 성격은 디즈니 애니보다는 좀 더 짓궂은 성격으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어른이 되서 읽는 피노키오는 부모로서 한숨을 쉬게 하면서도, 성장의 통과의례로서의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반면 밤톨군은 마음껏 일탈을 만끽하는( 비록 일탈의 결과가 무섭다고는 했지만 ) 피노키오의 자유로움이 인상적이었다고.

 

피노키오의 코가 길어지는 그 유명한 장면은 17장에 처음 나온다. 인형극단 단장인 만자푸오코가 아빠에게 가져다주라고 준 금화 다섯닢의 행방에 대해 파란 머리 요정에게 이야기하던 중, 호주머니에 있는 금화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한 순간이다. 

 

얘야,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난단다. 
거짓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이야.
하나는 다리가 짧아지는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이란다.
네 거짓말은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이야.

-피노키오, p95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 외에 '다리가 짧아지는' 거짓말이 있다는 말에 아이와 나는 함께 웃었다. 어떤 거짓말을 하면 다리가 짧아지는 건지 이야기해보면서 말이다. 

 

이야기에 나오는 귀뚜라미는 피노키오의 '양심'을 나타낸다. 많은 문화권에서 귀뚜라미는 행운과 지혜의 전령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해석되는 듯 하다. 또한 파란 머리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주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기에 피노키오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아버지'로서의 제페토의 '부정(父情)' 과 부모로서의 성장 또한 현실 속 삶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 그러나 이 해석은 디즈니적 해석이라는 견해도 있다. )

 


책을 다 읽고 난 뒤 아이와 표지에 나오는 캐릭터들과 그 에피소드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눠본다. 표지의 뱀은 'Snake' 나 'Phyton' 인 줄 알았는데 'Serpent' 라는 이야기며, 파란 머리 요정과 피노키오를 나쁜 길로 유혹하는 여우와 고양이, 할아버지와 피노키오를 삼켜버린 물고기까지, 읽었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는 계기가 된다.

 

피노키오는 나무인형일 때도 이미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피노키오가 '진정한 인간' 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난 피노키오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다. 천진난만함과 세상에 대한 무지로 인해, 피노키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마주한다. 우리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 존재가 올바른 길로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는 꾸준히 배우고 경험을 통해 지혜를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하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나아질 수 있다' 라는 계몽적인 이상을 포함하면서 말이다. 


우리 집이 이렇게 갑자기 변한 것은 다 네 덕분이란다. <중략>
나쁜 아이들이 착한 아이가 되면 
가정에도 새로운 힘이 생기고 웃음이 퍼지기 때문이지.


- 피노키오, p254

 

다른 한 편으로는 단순한 '착한 아이가 되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인간의 사회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도 떠올려본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 '나무인형'의 이야기는 꼭 완역본으로 읽어봐야할 책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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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의 집
제랄딘 엘슈너 지음, 루시 반드벨드 그림, 서희준 옮김 / 계수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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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 유영석 작사, 작곡의 <네모의 꿈> 이라는 노래가 먼저 떠오른다. 위키에 따르면 이 세계의 모습을 비판하기 보다는 멀리 있는 네모별의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기 전, 지구인들이 네모에 익숙해지라고 텔레파시를 쏘아 네모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배경이었다며, 작곡가 본인이 방송에서 밝혔다고 하지만, 창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어 불리고 있다. 밤톨군의 경우도 초등학교에서 꽤 많이 배우고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최근에 와서야 디자인적으로 훌륭한 건물들이 지어지고는 있다지만, 효율을 중시하던 시기에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최대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네모 반듯하게 지어졌다. 그림책 속 공간의 시작도 '크고, 잘 정돈된 회색빛 도시' 였다. 그런데 이 도시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훈데르트바서의 집
Une maison fantastique
제랄딘 엘슈너 글, 루시 반드벨드 그림
책가방 속 그림책
계수나무

 

책 속 아이는 자신의 눈 앞에서 일어나는 건물들의 변화를 들려준다. 할머니의 가구를 만들던 공장은 커다란 체스판처럼 변하고, 엄마의 꽃집 건너편의 오래된 나무는 이상해보이는 큰 옷을 입더니, 다음에는 벽 사이로 사라진다. 새로 생긴 벽에는 여러가지 그림이 그려지고, 창들이 여러가지 색들로 칠해지며 점차 알록달록해진다. 

 


회색, 검정과 알록달록한 화려한 컬러의 대비가 매우 돋보인다. 회색이 화려하게 물들어가는 과정은 재미있기도 하다. 현실에서도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사실 Une maison fantastique(환상적인 집) 이라는 원제와 달리 번역 제목이 미리 스포하기는 했다.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의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 거장, 훈데르트바서는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이다. 환경운동가이자 평화주의자로서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꿈꾸고, 뒤집어 생각하고 남다르게 사는 방법을 찾으며 평생 자연 친화적인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주제로 한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은 미술사와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고, 정규 건축 수업을 받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적이고 사람을 배려하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로 ‘오스트리아의 가우디’로 불린다. 

 

하인버그 원자력발전소 반대 운동에 참여해 공사를 중단시켰고, 이런 환경운동 활동은 뉴질랜드와 미국 워싱턴에서는 '훈데르트바서 환경주간'을, 샌프란시스코는 '훈데르트바서의 날'을 선포하게도 하는 등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훈데르트바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환경을 다섯 개의 피부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첫번째 피부는 사람의 살갗이고 의복, 집, 정체성, 지구가 나머지 부분이다.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일관된 꿈을 화폭 위에 펼치며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디자인한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책 속에서도 뒷 부분에 건물의 실제 사진이 큼지막하게 수록되어 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분수나 정교한 모자이크 기둥 등의 사진도. 훈데르트바서에 대한 소개와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들려주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누구나 아름다움에 다가갈 권리가 있고, 우리의 도시에 자연을 가져오고 함께 살아야 하며, 황금 돔은 평범한 주민들을 왕과 여행으로 만든다' 라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을 기리며 헌정하는 그림책을 만들었다는 그림 작가.

책에서 나는 강렬하게 대비되는 나만의 색 - 훈데르트바서의 것과 항상 비슷했던 색깔들-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나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오래된 도시의 지붕, 거리와 외벽의 모자이크, 체스판의 체크무늬를 그렸다. <중략>

내가 사용한 나선형 선들은 아이들의 상상에서 나오는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상징한다. 

- 루시 반드벨드, 작가의 말 중에서

 

루시 반드벨드 ( Lucie Vandevelde )

프랑스 대학에서 사진과 순수 미술을 공부했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상업 광고, 학교와 서점의 환경 꾸미기, 주택 및 주거 환경 꾸미기 프로젝트에도 관여하는 등 그녀의 활동 영역은 넓고 다양하다. 또한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야외 조형물 제작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림책으로는 『조에 서커스단』, 『빅 마마 트롬본』, 『용들의 땅』 등이 있다




다시 책 속으로 가본다. 아이는 완성된 집을 보고 환호한다. 색색의 아름다운 모양은 마치 동화 나라에 온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멋진 변화를 일으킨 사람은 마법사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를 따라 집안 정원으로 들어가보자 '황금색 양파 지붕 아래에서 형형색색의 왕관을 쓰고 행복한 듯 서 있는' 나무를 만난다. 벽 사이로 사라졌던 소중한 나무. 마치 이 새로운 숲의 새로운 왕이 된 것 같다. 

 

화려한 배경에 먼저 시선이 가다보니 나중에서야 알아차린 소소한 부분. 아이들과 태우고 마을을 움직이는 집(심지어 꼬리도 달려있다)은 내내 직선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훈데르트바서로 보이는 인물과 함께 있는 집은 곡선이 두드러지는 모습으로 바뀐다.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한 일러스트 속에는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물들이 오마주되어 곳곳에 담겨있다. 여러가지 빛깔의 자갈이 거리를 따라 흐르고, 벽에는 온갖 색들이 빛을 내며, 파도처럼 미끄러지는 선과 모자이크로 그려진 나선이 사방에 감긴다. 그의 나선형 그림들은 '식물적 회화법'이라는 독특한 작업방식으로 그렸다고 한다.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끝없이 돌고 도는 나선은 우리의 삶과 가장 많이 닮아 있다’고 말했던 훈데르트바서의 말도 떠오른다. 


나무들도 여기가 집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보살펴 줘야지.

우리 모두 지구에서 함께 사는 주민이니까

- 책 속에서


나무도 지구의 '주민'이라는 그림책 속 메시지에서 훈데르트바서의 '생태 건축' 철학의 메시지를 느껴본다. 그리고 검색을 통해 그림책 속 일러스트와 유사한 실제 건축물을 찾아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문득 그 곳들을 방문해 직접 마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그림책을 보기 전에 훈데르트바서를 몰라도 괜찮다. 어떤 이에게는 '환경그림책'으로, 어떤 이에게는 '여행그림책'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인물그림책' 으로 다가갈 수 있다. 건축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건축물의 모습이 보일 것이고, 화려한 색감의 일러스트에 눈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아이가 어떤 즐거움을 찾아낼 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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