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데르트바서의 집
제랄딘 엘슈너 지음, 루시 반드벨드 그림, 서희준 옮김 / 계수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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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 유영석 작사, 작곡의 <네모의 꿈> 이라는 노래가 먼저 떠오른다. 위키에 따르면 이 세계의 모습을 비판하기 보다는 멀리 있는 네모별의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기 전, 지구인들이 네모에 익숙해지라고 텔레파시를 쏘아 네모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배경이었다며, 작곡가 본인이 방송에서 밝혔다고 하지만, 창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어 불리고 있다. 밤톨군의 경우도 초등학교에서 꽤 많이 배우고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최근에 와서야 디자인적으로 훌륭한 건물들이 지어지고는 있다지만, 효율을 중시하던 시기에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최대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네모 반듯하게 지어졌다. 그림책 속 공간의 시작도 '크고, 잘 정돈된 회색빛 도시' 였다. 그런데 이 도시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훈데르트바서의 집
Une maison fantastique
제랄딘 엘슈너 글, 루시 반드벨드 그림
책가방 속 그림책
계수나무

 

책 속 아이는 자신의 눈 앞에서 일어나는 건물들의 변화를 들려준다. 할머니의 가구를 만들던 공장은 커다란 체스판처럼 변하고, 엄마의 꽃집 건너편의 오래된 나무는 이상해보이는 큰 옷을 입더니, 다음에는 벽 사이로 사라진다. 새로 생긴 벽에는 여러가지 그림이 그려지고, 창들이 여러가지 색들로 칠해지며 점차 알록달록해진다. 

 


회색, 검정과 알록달록한 화려한 컬러의 대비가 매우 돋보인다. 회색이 화려하게 물들어가는 과정은 재미있기도 하다. 현실에서도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사실 Une maison fantastique(환상적인 집) 이라는 원제와 달리 번역 제목이 미리 스포하기는 했다.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의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 거장, 훈데르트바서는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이다. 환경운동가이자 평화주의자로서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꿈꾸고, 뒤집어 생각하고 남다르게 사는 방법을 찾으며 평생 자연 친화적인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주제로 한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은 미술사와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고, 정규 건축 수업을 받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적이고 사람을 배려하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로 ‘오스트리아의 가우디’로 불린다. 

 

하인버그 원자력발전소 반대 운동에 참여해 공사를 중단시켰고, 이런 환경운동 활동은 뉴질랜드와 미국 워싱턴에서는 '훈데르트바서 환경주간'을, 샌프란시스코는 '훈데르트바서의 날'을 선포하게도 하는 등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훈데르트바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환경을 다섯 개의 피부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첫번째 피부는 사람의 살갗이고 의복, 집, 정체성, 지구가 나머지 부분이다.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일관된 꿈을 화폭 위에 펼치며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디자인한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책 속에서도 뒷 부분에 건물의 실제 사진이 큼지막하게 수록되어 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분수나 정교한 모자이크 기둥 등의 사진도. 훈데르트바서에 대한 소개와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들려주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누구나 아름다움에 다가갈 권리가 있고, 우리의 도시에 자연을 가져오고 함께 살아야 하며, 황금 돔은 평범한 주민들을 왕과 여행으로 만든다' 라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을 기리며 헌정하는 그림책을 만들었다는 그림 작가.

책에서 나는 강렬하게 대비되는 나만의 색 - 훈데르트바서의 것과 항상 비슷했던 색깔들-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나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오래된 도시의 지붕, 거리와 외벽의 모자이크, 체스판의 체크무늬를 그렸다. <중략>

내가 사용한 나선형 선들은 아이들의 상상에서 나오는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상징한다. 

- 루시 반드벨드, 작가의 말 중에서

 

루시 반드벨드 ( Lucie Vandevelde )

프랑스 대학에서 사진과 순수 미술을 공부했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상업 광고, 학교와 서점의 환경 꾸미기, 주택 및 주거 환경 꾸미기 프로젝트에도 관여하는 등 그녀의 활동 영역은 넓고 다양하다. 또한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야외 조형물 제작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림책으로는 『조에 서커스단』, 『빅 마마 트롬본』, 『용들의 땅』 등이 있다




다시 책 속으로 가본다. 아이는 완성된 집을 보고 환호한다. 색색의 아름다운 모양은 마치 동화 나라에 온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멋진 변화를 일으킨 사람은 마법사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를 따라 집안 정원으로 들어가보자 '황금색 양파 지붕 아래에서 형형색색의 왕관을 쓰고 행복한 듯 서 있는' 나무를 만난다. 벽 사이로 사라졌던 소중한 나무. 마치 이 새로운 숲의 새로운 왕이 된 것 같다. 

 

화려한 배경에 먼저 시선이 가다보니 나중에서야 알아차린 소소한 부분. 아이들과 태우고 마을을 움직이는 집(심지어 꼬리도 달려있다)은 내내 직선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훈데르트바서로 보이는 인물과 함께 있는 집은 곡선이 두드러지는 모습으로 바뀐다.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한 일러스트 속에는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물들이 오마주되어 곳곳에 담겨있다. 여러가지 빛깔의 자갈이 거리를 따라 흐르고, 벽에는 온갖 색들이 빛을 내며, 파도처럼 미끄러지는 선과 모자이크로 그려진 나선이 사방에 감긴다. 그의 나선형 그림들은 '식물적 회화법'이라는 독특한 작업방식으로 그렸다고 한다.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끝없이 돌고 도는 나선은 우리의 삶과 가장 많이 닮아 있다’고 말했던 훈데르트바서의 말도 떠오른다. 


나무들도 여기가 집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보살펴 줘야지.

우리 모두 지구에서 함께 사는 주민이니까

- 책 속에서


나무도 지구의 '주민'이라는 그림책 속 메시지에서 훈데르트바서의 '생태 건축' 철학의 메시지를 느껴본다. 그리고 검색을 통해 그림책 속 일러스트와 유사한 실제 건축물을 찾아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문득 그 곳들을 방문해 직접 마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그림책을 보기 전에 훈데르트바서를 몰라도 괜찮다. 어떤 이에게는 '환경그림책'으로, 어떤 이에게는 '여행그림책'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인물그림책' 으로 다가갈 수 있다. 건축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건축물의 모습이 보일 것이고, 화려한 색감의 일러스트에 눈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아이가 어떤 즐거움을 찾아낼 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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