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만나는 시간 - 오래된 책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다
앨런 제이콥스 지음, 김성환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과 그에 관한 에세이를 읽던 중에 그가 「일리아드」 에 대해 써놓은 문장을 발견하고  「일리아드」를 다시 읽을까( 또는 아이와 함께 읽을까 )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고전을 만나는 시간」 을 읽다가 또 「일리아드」 에 대한 글들을 마주한다. 소로가 '문명화되지 않은 자유롭고 야성적인 사유, 그것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라고만 표현해 둔 고전의 의미를 「고전을 만나는 시간」 을 통하여 좀 더 상세하게 만나보았다.


<일리아드>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산 사람을 사물로 뒤바꿔놓는 무시무시한 변환의 과정이다. 


- p74, 「고전을 만나는 시간」 





고전을 만나는 시간

오래된 책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다

Breaking Bread with The Dead

앨런 제이콥스 지음

미래의 창


 「고전을 만나는 시간」 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부터 이디스 워튼의 「기쁨의 집」,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등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50여 권의 책들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저자, 영국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미국의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 등 본문과 관련된 철학가나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이쯤되면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저자인 앨런 제이콥스(Alan Jacobs)는 미국 베일러대학교 아너스 프로그램(Honors Program; 최상위권 학생 교육 프로그램)의 석좌교수이자, 영문학자, 작가다. 앨라배마대학교를 졸업하고 버지니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4년부터 2013년까지 휘튼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그는 이 책  「고전을 만나는 시간」 을 통해 그동안 학생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던 '고전을 읽는 것의 가치' 를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독자로서 다른 독자들에게. 




과거의 모든 작품들이 다 고전인 것은 아니지만, 고전의 범주에 들지 않는 오래된 책을 읽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저자는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고전에 관한 에세이의 내용을 인용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들이 오래된 책을 읽을 때 경험하게 되는 '친밀감'을 강조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 그는 "고전을 읽을 때 우리는 가금 우리가 항상 알아온( 또는 안다고 생각해온 ) 무언가와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그 작가가 그 말을 제일 먼저 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것이다. 이건 커다란 기쁨을 선사해주는 놀라운 경험으로, 기원과 관계, 관련성 등을 발견할 때마다 이런 종류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


- p118




이탈로 칼비노가 말한 그 기쁨은 나도 종종 느낀다. 이를테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을 읽다가 체코의 소설가 카렐 차페크가 '로봇' 이란 단어를 처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소소한 기쁨 같은 것을 떠올린다. 이어서 개인에게 다가가는 '당신만의(your) 고전'의 개념도 인용한다. '당신만의 고전 작가란 당신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고, 그와의 관계에서 당신 자신을 정의하거나, 심지어는 그와 논쟁을 벌이도록 당신을 자극해주는 그런 작가들을 말한다.' 라고 말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만의 고전' 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책이 당신 스스로 생각해보지 못한 것은 물론, 믿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면, 그 책이 당신에게는 고전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주장에 크게 공감하며 밑줄을 그어보게도 된다.



책은 하나의 주제나 개념이 소개되고, 그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왕창 쏟아지는 구성이다. 저자 스스로도 밝혔듯이 체계적이기보다는 '나선을 그리며 상승하는 형태를 모방' 하려고 애쓴 흔적들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인용은  '차이 없는 과거'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장의 키워드는 '배움 | 과거로부터의 교훈' 이다. 


고전은 지금 이순간의 관심사를 배경 소음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배경 소음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그런 것들이다. 


- p120




주제에 대해 운을 떼고, 다양한 고전들과 독자의 사례를 통해 이어지는 이야기들 및 저자의 주장은 매우 공감가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내가 읽는 그 책이 어떤 식으로든 내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독서에 필수적인 맥락을 제공해준다. '. 아. 정말 그렇다! 


이어 '죽은 이들과의 식사는 완수해야 할 학문적 과제가 아닌, 굶주린 모든 사람들이 초대받는 영원한 만찬이 되어야 한다. (p130)' 라고 해당 장을 맺는데, 만찬, 식탁에 대한 비유는 앞장에서부터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근 고전문학을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이디스 워튼의 책도 관심있게 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책 속에서는 이디스 워튼의 「기쁨의 집(The House of Mirth)」 에 담긴 노골적 반유대주의 성향 때문에 책을 거부한 학생의 사례가 나온다. 작가에게서 자민족중심주의나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등을 발견할 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시간여행을 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들이다. '오래된 소설을 집어 들 때 우리는 그 소설가를 우리 세계로 데려오면서 그 사람이 이 세계에 속할 만큼 개화된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소설가의 세계로 여행을 가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p63)' 이라는 것. '작가는 우리의 식탁을 찾는 손님이 아니라 우리가 작가의 식탁을 찾는 손님이다.' 는 문장은 고전에 대해 독자로서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단언컨대, 과거의 목소리(생각)에 놀라거나 심지어는 기분 나빠할 능력을 잃는다면, 진짜 핵심적인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문헌은 나를 불쾌하게 하니 더 이상 읽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 건 근시안적 태도일지 모르지만, 잘못된 점이나 자기 의견과의 차이점조차 못 보게 될 정도로 과거의 '위대한 책' 에 대해 경외심을 품는다면, 그것도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p118




「제인 에어」를 새롭게 재해석한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슐러 르 권의 「라비니아」 에 대한 글(p137) 또한 개인적인 호기심을 폭발하게 했다. 각기 다른 시대에 쓰인 작품들을 비교하며 서로 다른 해석, 가치관 등을 풀어내는 글에 해당 책들이 궁금해질수 밖에.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도 펼쳐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어슐러 르 귄의  「라비니아」 도 책 장바구니에 쏘옥. 



20대에 가장 인상깊은 책을 이야기하라고 할 때 나는 「데미안」 과 「작은 아씨들」 을 들곤 했다. 그리고 내가 「작은 아씨들」 을 선택했었던 이유를 다른 독자의 사례에서 만났다. 잊고 있던 기억들도 떠오르며 지금의 내 모습이 그 때 읽었던 책들의 영향도 있었음을 깨닫는다. 


도로시 오즈번과 같은 과거의 실존 인물들과 조우하거나 <인형의 집>의 노라 헬메르나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 같은 허구의 인물들과 마주칠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들과 자신의 가치, 가정, 희망, 두려움 등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갑작스럽게 그들과 우리 사이의 불협화음을 인지하게 되더라도 그 불협화음으로부터 달아나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 속으로 곧장 뛰어들어야 한다. 선조들의 태도와 자신의 태도를 비교하는 이 과업은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 될 수 있다. (...) 레슬리 제이미슨이 말했듯이 양자 사이의 긴장은 타닥거리면서 불꽃을 튀기고, 이 불꽃은 빛과 온기 모두를 생성해낸다. 


-p218, 인형의 집에서 내다본 풍경 / 비교 |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타닥거림




저자는 맺는 말에서 '정보의 밀도가 높은 환경이 인격의 밀도가 낮은 개인들을 양산해낸다(p236)' 라고 말한다.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무한한 선택을 제공하는 듯 보이는 세상이 실제로는 선택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놓는데, 이는 정보 환경이 우리를 대신해서 선택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풍부하게 하고 스스로를 더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서 죽은 이들에게 관심이란 피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9장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그렇게 획득한 강건함을 활용해 미래와 의미 있는 약속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


우리가 옛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그들은 우리가 극복한 편협함과 사악함의 본보기로서가 아닌 이웃으로서, 심지어는 스승으로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조차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도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단순한 관심을 넘어선 사랑을, 후손들에게 바라는 것과 같은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랑을 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인격의 밀도를 향상해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먼 과거에서 먼 미래로 이어지는 생명의 사슬에서 고리로서 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 앨런 제이콥스




'인격의 밀도를 향상'하기 위해 고전을 읽는 것은  다른 시간대, 다른 세계라는 시.공간상의 차이와 거리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자신의 시대만 아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는 앨런 제이콥스는 오래된 책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자고 권유한다. 이렇게 '과거를 향해 자신을 열어젖힐 때 우리는 마음에 안 드는 옷을 입은 젊은 여성에게 분노에 찬 트위터 메시지를 보내거나, 반감이 가는 트위터 문구를 보고 경솔하게 직원을 해고하거나, 환경 변화에 비생산적인 분노나 전적인 무관심으로 반응하는 우행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며 순간의 충동들, 결코 고요한 마음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그 충동들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전한다. 고전을 읽을 이유가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에서 이해되는 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더독스
나가우라 교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미 구르기 시작한 수레바퀴는 이제 멈출 수가 없다. 이 계획을 수립하고 제안한 마시모는 각 팀에게 이런 다짐을 받았다. 계획을 실행하는 팀 외에도 이들을 감시하는 팀이 또 있었던 것. 초반에 사라져버린 마시모란 인물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이렇게 집요하다니. 설마 마지막에 살아있었더라.. 그런 반전은 아니겠지? 


계획대로 움직인다면 설령 실패하더라도 보수를 반드시 지불한다. 평생 몸을 숨기고 살 수 있을 만한 금액을.


도중에 도망이나 이탈, 계획을 멋대로 변경하거나 배신하는 자에게는 엄벌을 내린다. 지급했던 돈을 전부 몰수하고 목숨으로 보상받겠다. 


- p257





언더독스

나가우라 교 장편소설

블루홀식스



결국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 순간순간 필사적으로 '발악' 을 하게 된다. 무기도 다룰 줄 모르고, 내세울만한 체술조차 없는 고바는 수많은 위기 때마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다. 그런 그에게 날아드는 경고들. 


죽을 고비 좀 넘겼다고 무슨 전문 요원이라도 된 것 같아? - p210


충고 하나 할까? 마시모가 살해당한 날 밤에 조사를 받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다른 사람 같아. 하지만 착각하지 마. 익숙해져서 마비된 것과 강해진 것은 전혀 다르거든. - p240



'익숙해져서 마비된 것' 이라고 주위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나는 주인공이 강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주인공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강함이라는 것이 꼭 물리적 강함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소설은 두 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1990년대의 고바의 이야기와 2010년대의 고바의 양녀를 비롯한 후대가 부모 세대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나가는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된다. 후대가 선대의 비밀을 찾아 나서게 된 것 조차 고바의 안배다. 주인공 고바가 직접 경험하는 시간에서의 앞을 알 수 없는 사건의 전개를, 2010년대에 사실은 그랬더라.. 라는 식으로 조금씩 비밀의 문을 열어주는 식이라고 할까. 이 사건의 끝은 어떻게 되려나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제공도서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J시네마 던전: BLACK 편 - 범죄·액션·스릴러·공포·역사 J시네마 던전 1
김봉석 / 에이플랫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방 속 리디 페이퍼를 오랫만에 꺼냈다. 이북으로만 볼 수 있는 책을 읽기 위해서다. 「J시네마던전」 시리즈. 이 시리즈는 <씨네21> 기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던 영화평론가 김봉석의 일본영화 리뷰집이다.  「J시네마던전」 은 BLACK, PINK, RAINBOW 이렇게 세 권으로 나뉜다. BLACK 은 범죄·액션·스릴러·공포·역사 쪽의 분야다. PINK는 로맨스·드라마·코미디·청춘·에로 분야를, RAINBOW는 SF·판타지·아니메·B급 분야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는 「J시네마던전」 의 시리즈 기준으로, RAINBOW > PINK > BLACK 순으로 봤다. BLACK 편의 영화들은 많이 보지 못했기에 오히려 더욱 호기심이 당기는 영화들을 메모해놓게 된다. 게다가 'BLACK' 분야의 영화들은 소설이 원작인 경우도 많아서 관련된 소설들까지 함께 찾아보게 되는 즐거움까지 얻는다.  '일본영화는 워낙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성향도 극과 극이라서,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면 시선에 포획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런 개성적이고 독특한 점들을 보고자 노력했다.' 라던 저자의 의도는 내게로 그대로 전해졌다.




J시네마 던전 : BLACK편

김봉석 지음

에이플랫



저자는 걸작과 평작을 모두 아우른 리뷰라고 소개한다. 각각의 리뷰 안에는 일본영화가 가진 독특한 특성과 영화적 가치는 물론 역사와 시대상, 사회 현상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다. BLACK 편은 4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의 범죄,액션 분야는 11편의 영화가, 2부의 스릴러 분야에는 9편의 영화 리뷰가 담긴다. 3부 공포 분야에는 16편, 마지막으로 4부 '역사와 영화, 일본을 말하다' 분야에는 12편의 영화가 등장한다. 



수록된 영화의 목록을 보며 우선 내가 봤던 영화에 대한 리뷰부터 찾아 읽게 된다. 범죄, 액션 분야에서 보자마자 눈에 들어왔던 영화 제목 「고독한 늑대의 피」! 책으로도 읽고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상영되었던 동명의 영화도 찾아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저자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었다고 하니 그당시 다른 지면에 실렸던 그의 리뷰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여성인 유즈키 유코는 영화 <의리없는 전쟁>을 너무나 좋아하여 비슷한 스타일의 소설을 쓰고 싶었고 그렇기에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의리없는 전쟁>을 떠올리게 된다고 설명하는 저자. 


<고독한 늑대의 피>는 히로시마 인근의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야쿠자 조직 간 항쟁을 그리고 있다. (...) 원작소설을 쓴 유즈키 유코는 1968년생으로 원래 기자로 일하다가 2008년에 <임상 진리>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 후카사쿠 킨지의 영화 <의리없는 전쟁>과 아사다 데쓰야의 소설 <마작방랑기>를 좋아했고, 이런 풍으로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 쓰고 싶었다던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 치밀한 취재를 통해 완성해낸 <고독한 늑대의 피>는 21세기에 걸맞은 경찰.야쿠자 소설의 걸작이 되었다. 


- p23



치사하고 악랄한 범죄자로서의 야쿠자를 실록-다큐멘터리 스타일로 그려낸 영화 <의리없는 전쟁>(1973)은 야쿠자물의 전형을 바꾸었다고 한다. <고독한 늑대의 피> 도 이 '실록' 스타일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라고 한다. <의리없는 전쟁> 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검색을 하다보니  <고독한 늑대의 피> 의 두번째 영화도 나온 모양이다. 야쿠자물이지만 형사가 주인공인 영화. 그리고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신의 원칙을 세운 인물 오가미가 야쿠자만이 아니라 동료인 경찰과도 싸워야 하는, 자신의 영역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고독한 늑대의 일생을 히오카란 인물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의리없는 전쟁> 과 <고독한 늑대의 피> 포스터


저자는 이 영화를 '시종일관 에너지가 들끓는다'고 표현한다. 감독인 시라이시 카즈야의 영화들은 늘 그렇다고 하면서 말이다. 소설과 다른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감독의 고유한 장면임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일본영화의 현재를 보고 싶다면 반드시 봐야할 영화라고 전하고 있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각색한 <바람의 검, 신선조> 는 회사의 남성동료들이 극찬한 영화였다. '드라마틱한 시대 상황 자체보다는, 그 안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한다. <철도원>과 <파이란>에서 이미 경험한 아사다 지로의 작품들은 한없이 낭만적이며서도, 남성적인 강인함으로 중심을 잡는다.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인간의 따뜻함을 결코 잃지 않으려는 갈망이 배어있다.(p185)' 라는 저자의 표현에 끄덕끄덕. 





<훌라 걸스>는 아오이 유우의 매력에 빠져 봤던 영화다. 2006년 일본에서 개봉한 미니 시어터 영화 중에서는 <키사라즈 캐츠 아이:월드 시리즈> 와 함께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영화라고 소개되어 있다. 작지만 알찬 영화라는 설명과 함께.  


훌라 걸스가 공연을 준비하는데 탄광에서 사고가 나서, 한 여성의 홀아버지가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고 전해온다. 이런저런 논란 끝에 결국은 공연을 중단하고 돌아가려는데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공연을 하자고 말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춤을 추기를 간절히 원했고, 지금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영화의 이 장면을 들어 일본영화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을 이야기한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의 충돌은, 일본영화에서 가장 빈번히 나오는 장면 중 하나다. 일본에서는 항상 공적인 일이 중요하다. 사적인 상념을 버리고 '잇쇼켄메이'를 해야만 '천하제일'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프로, 장인의 정신이다. 하지만 뒤돌아서면 눈물짓고, 결국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p192) ' ( 아. 그렇구나! )  이런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 대중적인 영화로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고 하니 더욱 이해가 간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조금씩 관객을 모으는 좋은 영화라고 소개된다. 


책리뷰처럼 영화리뷰 또한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이 영화가 저 영화를 부르고, 원작소설과 연계되며 감독, 배우 들의 이야기까지 어우러지는 종합 선물셋트가 된다. 봤던 영화에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몰랐던 영화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결국 PINK 와 RAINBOW 까지 궁금해진다. 메모해두었던 영화도 챙겨봐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더독스
나가우라 교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며 숨쉴틈을 주지않고 계속 사건이 몰아친다. 사건의 의뢰인이었던 마시모의 죽음을 시작으로 이 계획에 러시아, 영국, 일본, 홍콩, 미국 등의 여러 나라( 그리고 첩보기관들 )가 얽힌다. 여러 나라가 얽히면서 등장 인물들의 배경 또한 얽히고 배신과 배신이 거듭된다. 팀원들간에 서로 의심해야하는 상황. 서로 협력은 하지만 각자 도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인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상황이 계속 바뀌는 터라 흥미진진하다. 도대체 홍콩 난징은행그룹 산하의 헝밍은행 지하금고에는 어떤 비밀이 담긴 정보가 있길래 그런 것일까. 초기의 작전 계획에 드러난 것처럼 각국 주요 인사들의 불법 투자와 부적절한 절세용 유령 회사의 활동 기록이 들어있는 플로피 디스켓과 서류인 것일까. 그 전제마저도 의심해보게 된다. 



고바는 자신의 팀 외에 다른 팀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팀의 역할은 데코이(decoy), 즉 사냥감을 유인하기 위한 새 모형 같은 역할이라는 것 또한 눈치챈다. 다른 팀들의 눈속임 역할만을 기대한 언더독스 부대. '실패하고 개죽음 당하는 역할을 맡은 부대'(p236) 라고 여겨진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마시모의 계략대로 굴러간다는 말입니다. 당신뿐 아니라 러시아와 영국의 전문 요원들도 속으로는 우리를 패배자 아마추어 집단 취급하며 깔보고 무시하고 방심하죠. 


- p213




'언더독 효과' 라는 용어가 있다. 약자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심리 또는 그를 응원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회과학에서는 상대적 약자를 언더독(Underdog)이라 하는데, 이는 투견장에서 위에서 내리누르는 개를 오버독(Overdog) 또는 탑독(Top dog), 아래에 깔린 개를 언더독(Underdog) 이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한 단어다. 이후에는 스포츠 관련 용어로 확장되어 유리한 쪽을 탑독 혹은 페이버릿, 불리한 쪽을 언더독으로 부르게 되었다. 언더독 효과는 여러 창작물 중 강자와 약자의 대립이 극화되는 장르에서 클리셰로 자주 활용되고는 하는데 이 소설은 아예 제목으로 가져왔다. 덕분에 초반부터 언더독스 효과를 누리며 주인공을 응원하고 있는 중. 위기를 잘 극복하고 살아남기를!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제공도서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르소나주
실비 제르맹 지음, 류재화 옮김 / 1984Books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비 제르맹의 「페르소나주」 를 읽으면서 책장 속에 묵혀두었던 「밤의 책」 도 함께 꺼내두었다.  「페르소나주」의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시대의 반 고흐로 불리는 실비 제르맹의 에세이. 철학과 시적 언어의 경계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주제로 글쓰기에 대해 탐구한 작품' 이라고 되어 있어서 말이다. 에세이를 읽으며 그의 소설의 문체도 함께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포부도 품으면서. 




페르소나주

실비 제르맹 지음, 류재화 옮김

1984BOOKS



그나저나 이 시대의 반 고흐라니! 


호기심이 커져 작가에 대해서 푹풍 검색.


실비 제르맹 (Sylvie Germain)



 


창조적인 서사 전개와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인 실비 제르맹은 1954년 프랑스 중서부의 도시 샤토루에서 태어났다. 부지사를 지내기도 한 공무원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의 여러 소도시를 옮겨 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76년에 파리 소르본 대학 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0년대 파리 낭테르 대학(Université de Paris X - Nanterre)에서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를 만나 깊은 영향을 받았고, 그의 지도 아래 철학 및 미학 석사 학위를, 1981년에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의 주제는 기독교 신비주의에서의 고행, 그리고 인간의 얼굴 및 악과 고통에 대한 성찰이었다. 『페르소나주』를 비롯해 『밤의 책』 등의 대표작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가 특유의 번뜩이는 신비주의적 직관 및 영적 언어는 이런 연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노시스풍의 어떤 무례한 형상들, 불꽃처럼 번쩍거리는 이미지들, 고통스러운 시각적 환영들을 소환하며 전체를 총괄하는, 저 깊은 진실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읍소 같은 것들이 그녀의 문학 언어에는 충만하다. 



1981년부터 몇몇 단편소설을 써오다가, 파리 문화부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녀는 1985년 첫 번째 소설인  『밤의 책(Le Livre des Nuits)』 을 발표하며 여섯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밤의 책(Le Livre des Nuits)』 에서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에 비견되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보여주는데, 역사적 현실과 신화를 넘나들며 수많은 전쟁의 길목에서 살아간 한 가문의 백년의 광기를 보여주었다.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호박색 밤』 이후 출간한 세번째 장편소설 『분노의 날들』로 1989년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실비 제르멩은 파리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로 이주하여 1987년부터 1993년까지 프랑스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계속 글을 쓰다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녀는 파리와 라로셸 사이에서 살았으나 체코의 프라하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는 소설 「Immensites」 에 잘 드러나 있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숨겨진 삶』 등의 작품을 출간했으며, 2005년 『마그누스』로 그 해 ‘고등학생들이 선정하는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2004년 『페르소나주』를 발표했다.  『페르소나주』는 작가가 자신이 구현하는 등장인물과 맺는 기묘한 관계성을 환기하는 몽환적 픽션이다. 글을 쓰며 고통스러운, 그러나 글쓰기를 더없이 욕망하는 몸에 대한 고백서이자 성찰적 오토픽션이다.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만나는 것은 글쓰기의 리얼리즘, 글쓰기의 강력한 주문(呪文)일 수 있다. 


2016년 프랑스 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치노 델 두카 국제상을 수상했다. 무력한 개인이 엄혹한 세계와 화해해가는 과정을 몽환적인 상상력과 치밀한 필치로 그려낸 실비 제르맹의 작품들은 ‘새로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제공도서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