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브루클린
제임스 맥브라이드 저자, 민지현 역자 / 미래지향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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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소설을 읽었을 때 우리는 하나의 작은 사회와 인간관계를 엿본다. 피부색이 다른 과거의 어느 장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한다.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며 때로는 과거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며 살아가는 게 우리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1960년대의 브루클린. ‘커즈하우스라 불리는 주택단지의 광장, 국기 게양대에서 술 취한 남자가 다가와 총으로 젊은 남자를 쏘았다. 총을 맞은 젊은 남자는 광장 일대에서 마약을 파는 청년이다. 총을 쏜 남자는 파이브엔즈 교회 집사이며, 한때 총을 맞은 딤즈에게 야구를 가르쳤다. 유색인들이 기거하는 커즈하우스와 파이브엔즈 교회에 속한 인물들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다.




 


백인들 틈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사는 흑인들의 삶을 말하는 한편 차별과 화합에 대하여 말하는 소설이며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딤즈에게 총을 쏜 쿠피 램킨은 사람들에게 스포츠코트라 불리는 늙은 남자다. 스포츠코트는 매일 술에 취해 있지만 어느 노부인의 정원사 일을 하고 교회의 자질구레한 일을 한다. 스포츠코트가 딤즈에게 총을 쏘았고, 경찰은 그를 뒤쫓지만 교회나 주택단지 어느 누구도 스포츠코트의 행방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애매하게, 근처를 돌아다닐 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파이브엔즈의 지 자매가 앞장선다. 스스로 오물을 청소하는 자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소란스러운 사람들이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모두 한통속이 되어 감추고 일을 만들어 시선을 다른 데로 향하게 한다. 스포츠코트는 죽은 아내 헤티와 이야기를 나누고 킹콩이라는 술을 즐겨 마신다. 이 소설의 원제가 ‘Deacon King Kong’인 이유다. 즉 킹콩 집사라는 건데, 스포츠코트가 왜 딤즈에게 총을 쏘았는지, 딤즈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과 마약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선착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탈리아인 엘레판테가 어떤 사연으로 묶여있는지 알아보는 즐거움이 크다.

 


백인과 유색인이라고 하여 차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말한다. 파이브엔즈 교회와 선착장의 창고가 묘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곤란한 상황이 생겼을 때 도와줄 수 있었고, 그걸 잊지 않은 사람은 선물을 포함해 베푸는 삶을 산다. 핫소시지가 관리하는 주택단지의 지하실에 백인들이 먹는 고급 치즈가 배달되었던 것처럼. 누가 보냈는지 모르면서도 커즈하우스 주민들은 골고루 나눠 먹는다. 파이브엔즈 교회 자매들은 예수님의 치즈라고 부른다.

 




각박한 사람들이 사는 이 척박한 도시, 현란한 신기루에 눈먼 어리석은 인간들에겐 깨진 꿈과 허망한 약속의 동토. 하지만 세계 금융의 수도, 백인을 위한 기회의 땅. 지 자매는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이웃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들은 결국 빵부스러기 같은 존재, 굴러다니는 골무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과자 위에 드문드문 뿌려진 설탕 가루. 약속의 땅이라는 좌판 위에서 눈에 띄지 않거나 드문드문 흩어져 있어야 하는 점들. (358~359페이지)

 


그때 분명히 알았어. 우리가 백인들 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들의 잔혹함과 허위, 서로에게 하는 거짓말.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새에 그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이식되어 있었다는 것도. 남부의 삶은 정말 힘이 들었어. (370페이지)


 

흑백 갈등을 심각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지 자매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 헤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하는 부분에서 언뜻 보여줄 뿐이다. 대신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가족과 이웃 공동체를 위해 움직이는 모습은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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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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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아무튼, 현수동을 읽고 있을 때, 이 작품 출간 소식을 발견했다. 소설이 간절하게 읽고 싶었던 나는 구매목록에서 패스했다. 그러다가 한겨레신문에서 나온 기사를 읽었다. 표절과 그에 대한 창비와 관련된 기사였다. 패스했던 이 책을 구매하게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표절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우리가 믿었던 작가에 대한 실망감이 컸고 불편했다. 한 작가의 SNS에서 분개하는 글을 읽었지만, 어느 순간 흐지부지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외 다른 작가들은 표절에 대하여 말하기란 쉽지 않았을 거로 보였다. 작가가 출판 계약을 해지할 정도로 문제 삼은 글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신문 기자로서의 날카로움과 재치가 빛난 글이었다. 작가의 소설을 몇 권 읽은 독자로서, 명쾌한 논리로 말하는 소설가가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출판계와 작가, 한국문학이 가진 문제점을 직시한 글이라 흥미로웠다. 적나라하게 말하는 글에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 작가, 문제 작가네’,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돈 문제는 상당히 불편한 주제임이 분명하다. 사회생활을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작가로서는 더한 듯하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돈 이야기하는 것이 껄끄럽고, 출판사와 차기작 계약까지 걸린 문제라 난감하긴 할 터. 속으로는 묻고 싶은 게 많으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인 것 같은데, 장 작가는 분명하게 말한다. 인세 정산의 문제를 칼럼에서 밝혔다. 책을 내면 시스템에 따라 순 판매량을 책정해 인세를 정산해주는 거로 알고 있었다. 정확한 판매량을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어떤 책이 몇 부 팔렸는지 몰랐다고 했다. 물론 칼럼을 쓰는 시점이고 현재는 이러한 시스템에 정착해가는 단계인 것 같다. 한국 문단과 서점, 출판계에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책을 구매할 때 책 제목과 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거의 구매하긴 한다. 작가와 편집자, 마케터의 입장에서 표지를 고르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응축한 게 제목일 것이다. 제목, 표지, 내용의 합작품이 좋은 작품을 이루는 요건이고 또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소위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리라. 어떤 제목과 표지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지는 상당히 중요하다. 어떤 책의 경우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감추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어떤 책이 나왔을 때, 추천사는 중요한 부분이다. 관심 없던 책도 추천사를 써준 사람 때문에 구입한 적도 있다. 좋아하는 문학평론가, 작가의 추천사가 있는 경우는 거의 구매하는 것 같다. 이것을 노리는 출판사의 마케팅일 것이다. 작가로서 추천사를 써주는 작업도 귀찮을 것으로 보인다. 재미없는 책도 읽어야 하고, 써 줄 말이 없어도 써줘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추천사 의뢰가 한두 권 오는 것도 아니고 그거야말로 고역이 아닐까. 추천사에 대한 부분도 적나라하게 밝힌다. 장강명 작가답다.

 


현재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는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한다. 웹툰과 웹소설,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화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정말 짜증 나’, 하면서 보던 드라마도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소설을 읽지 않아 드라마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작이 궁금하긴 했었다. 이 주제의 칼럼이 있는 게 당연했다.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가 영화화한다는 기사를 보고는 괜히 반가웠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월급사실주의 소설가로서 잘된 일일 거로 보였다. 읽었던 작품에 대한 견해가 영화 개봉 후 달라지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는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분야다. 책보다 더 파급효과가 크다. 82년생 김지영도가니의 효과가 그렇다.


 

글자들의 세계는 의미의 세계였고,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정돈된 방에서 쉬는 것처럼 편안했다. 비문학 서적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것도 이 시기였다. 글을 쓰는 이유도 바뀌었다. 이제 소설 쓰기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라기보다 작은 것이라도 의미를 붙들고 싶어서였다. 아무리 글을 써도 궁극의 의미에 이르지 못할 것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위안이라도 없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시시포스가 된 것 같은 비장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301페이지)

 


여전히 소설이 좋다. 에세이를 읽다가도 소설이 몹시 읽고 싶다. 에세이는 이제 그만, 했다가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읽게 된다.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는 명쾌한 논리로 독자가 궁금해하는 것을 콕 찍어 이야기했다. 물론 이 책이 예비작가들을 위했다고 하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좋은책이었다. 이제 그동안 읽지 않았던 작가의 에세이와 놓쳤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책은 책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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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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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가슴 한구석에 블랙홀 같은 마음 하나쯤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늪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곳. 우리 스스로 그 늪에 갇혀 침잠하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갇히기도 한다. 언젠가 싱크홀에 빨려 들어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공사 현장이면 위험표지판을 세워놓을 텐데 확인할 틈도 없이 발생한 일이었다. 만약, 돌을 던졌을 때 공중에서 부유하다가 빨려 들어간 것처럼 누군가가 사라졌다면 이건 블랙홀일까. 우주 너머로 사라진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괴롭지 않을까. 외롭지 않을까.

 


블랙홀 언저리에서 각자의 삶에 고달픈 사람들의 이야기다. 희영과 필희, 은정은 은수리의 삼총사다. 필희의 엄마와 은정의 아빠가 도망친 이후 세 사람에게도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비밀을 이야기할 때 주로 찾았던 저수지에서 의자처럼 생긴 바위 뒤로 필희가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 이후의 삶을 나타내는 소설이다.




 


50대의 나이가 된 희영과 엄마가 죽으면서 혼자가 된 미정, 수학 여행비가 필요하다는 이든에게 슈퍼에서 알바를 제안한 순옥, 사라진 언니 필희를 찾기 위해 미확인 홀을 찾아다니는 필성, 굴착기 기사 정식, 아파트 건너편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아내를 둔 찬영의 삶은 이름처럼 빛나기만 할까. 인터넷 쇼핑몰을 하다가 사기를 당한 혜윤, 다시 은수리로 돌아온 은정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을 본다. 어쩌면 연작 단편 형식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각자의 이야기에서 외로운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마다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외로움의 불씨들이 하나씩 피어오른다.

 


아내가 낸 구멍을 등으로 막고 있다는 생각이 문제인 것 같아 온실을 지킨다는 상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봤지만, 되지 않았다. 따뜻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으로 상상의 내용을 바꾸는 것도 되지 않았다. 찬영의 상상 속에선 늘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나 데일 듯 뜨거운 바람만 불었다. 찬영은 안절부절 못하며 온실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209페이지)

 


찬영은 아내 희영이 마음속에 저수지를 품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가 우울증이었던 이유로 아내 또한 그 늪에 갇히자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무관심으로 대하는 게 잘못이라는 건 아니다. 느끼기에 어쩐지 가족으로서 잘못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희영이 저녁마다 망원경을 들고 건너편 아파트 발코니를 쳐다보는 일.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걸. 그는 알지 못한다. 그저 아내의 시린 마음이 자기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몰랐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찾는 사람이 희영이었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앞장서 해결하려고 했다. 오지랖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그것. 반면, 필성은 필희 언니가 블랙홀로 사라졌을 거라 여기고 미확인 홀을 찾는 공무원이 되었다. 필희 언니와 친구였던 희영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었던 것일까. ‘블랙홀이라는 메모를 건네 희영을 번민하게 만든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살아가기는 하지만 삶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는 듯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순옥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다른 여자의 남편과 달아났다. 몇 년 후, 그 남자는 다시 돌아갔지만 순옥이 낳은 아이와 함께 버림을 받았다. 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연락처를 남겼지만, 볼 수 없었다. 중학생인 동네 소녀 이든이 수학 여행비를 마련한다며 노래방 알바를 시작했다가 잘리자 슈퍼에서 일하게 한다. 순옥은 버리고 온 딸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든 또래였던 자기의 딸들에게 속죄하듯 했다. 더 이상 이든을 잃고 싶지 않았다.


 

미확인 홀은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겠다. 홀 경계에서 힘든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사람들. 좀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게 우리가 바라는 삶일지도 모른다.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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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아무튼 시리즈 55
장강명 지음 / 위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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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해보긴 했으나 아주 잠깐이었다. 어떤 역사를 지녔다던가, 구체적인 장소나 위치를 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그려보기만 했던 것 같다. 작가는 역시 달랐다. 작품 속에도 살고 싶은 동네를 그려 넣어 친숙한 동네, 즉 있음 직한 동네로 인식하게 했다. 사회, 정치부 기자였던 경험으로 꽤 날카로운 글을 쓰는 작가로 알고 있어서 지방 출신인 나는 당연히 현수동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 작가가 만들어낸, 살고 싶은 동네였을 줄이야.


 

알다시피 아무튼 시리즈는 작가들이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글이라 좋아하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작가의 상상의 도시를 들여다볼 줄은 몰랐다. 물론 작가의 성격답게 작가가 상상하는 현수동의 위치를 실재하는 몇 개의 동에서 따왔다. 현수동은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일대로 여의도에서 서강대교를 타고 한강 북쪽으로 왔을 때 좌우로 펼쳐지는 동네다. 마포구 현석동, 신수동-구수동, 신정동, 서강동, 하중동, 창전동 일부에 해당된다. 물론 서울 사람이 아니기에 그 지역이 제대로 머릿속에 각인되지는 않는다. 그저 어느 정도 위치일 것 같다, 라고만 여길 뿐이다. 현수동은 작가가 만든 세계다. 여러 단편에서 현수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거라고 했다. 이러다가 실제로 동 이름이 바뀔 수도 있겠다.

 


밤섬의 역사를 제대로 읽은 건 처음이다. 물론 어디선가 읽고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1960년대까지 밤섬의 주민이 천 명에 가까웠다고 한다. 1968년 한강 홍수를 막기 위해 폭파했고, 지금은 새들의 천국이 되었다.

 


현수동의 골목에는 이중섭의 <화가의 초상>이 작은 벽화로 그려져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박근자의 그림과 영화 <오발탄>의 한 장면도 좋다. 김수영이 구수동에서 쓴 시들이 적혀 있어도 좋다. (50페이지)

 


작가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작가가 만든 동네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이 부럽다. 우리가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아울러 역사의 한 귀퉁이에 속해있는 그 장소를 현실화하여 실재하는 동네처럼 여기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현수동이라는 동네를 걷고 있는 작가를 상상해본다. 현수동의 도서관에서, 혹은 길거리를 산책하는 작가는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 존재할까 관찰하며 지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으며, 상상의 동네를 작품에 나타내는 작가니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사는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삶을 사랑하고 또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사는 마을만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인류애 없이 자기가 사는 마을만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분명히 광흥창역 일대를 사랑했다. (143페이지)

 


사람은 과거에 살았던 동네를 추억하고, 현재 살고 있는 동네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동네에 애정이 생겨 쉽게 거주지를 옮기지 못하는 건 꽤 많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사는 곳을 떠나 멀리 이사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살았던 동네 언저리를 맴돈다.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동네를 사랑하고 그곳에 계속 머물고자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아파트 뒤로 산이 있어 한가할 때면 뒷산에 올랐었다. 타 지역으로 빠지기도 쉬운 위치에 있어 십 년 넘게 살고 있지만 언제까지 머물지는 알 수 없다.

 


작가가 만든 세계는 앞으로도 작가의 작품에서 자주 만날 것 같다. 그 상상의 세계에서 다시 현수동을 생각할 거 같다.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현수도서관의 풍경이 머릿속에 맴돈다. 책이 필요하거나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좋은 장소가 되어줄 것이며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장소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 장소에서 일어날 다양한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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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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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하나를 사려고 하면 고민을 많이 한다. 이리 재고 저리 재다가 놓친 물건도 있다. 대신 내 물건이 되면 애틋한 감정을 갖는다. 오래도록 사용하는데 어떤 물건은 십 년 넘게 사용하는 것도 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정리할 시점이라는 거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쉽게 버리지 못하겠다. 미니멀하게 살고자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사는 마음, 하면 살아가는 마음, 물건을 사는 마음을 동시에 나타내는 말이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살다(live)’사다(buy)’라고 표현했다. 살아가며 필요한 물건을 사고, 물건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다. 추억이 있는 물건이어서 버리지 못하고, 영혼이 깃든 물건이어서 애지중지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사는 동물을 가리켜 반려라고 지칭한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 온 물건을 우리는 반려 물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의 반려 물건을 보자면 아버지의 책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번역가이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저자 이윤기가 썼던 책장이다. 튼튼하고 무겁지만 이제는 보내야 할 물건이다.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는 저자에게 바이올린은 무척 소중한 물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건이고 대체할 수 있으며 사라질 수도 있다고 표현한다. 엄마의 찻잔이 대표적이다. 워낙 무언가를 망가뜨리는 손이라 결혼할 때 엄마가 준비해주신 찻잔이나 그릇들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 엄마가 해준 찻잔을 당근에 내다 파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엄마는 서운할 테고. 그러나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 나도 못하고 있는 터라 강하게 주장하지는 못하겠다.


 

마음에 꼭 들지 않으면 사지 않기,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워지는 물건을 사기, 그동안 나를 기쁘게 했던 물건이 아니라면 미련 없이 남에게 주거나 버리기. 가만 보니 이 원칙은 새 인연을 만들 때도 쓸 수 있겠다. 특히 폐기가 쉽지 않은 인연을 맺으려는 사람들은 꼭 참고 바란다. (107페이지)


 

겨울 초입, 트렌치 코트 디자인의 다운을 하나 보고 있었다. 한 달 전부터 좋아하는 브랜드와 그다음 브랜드에서 장바구니에 넣어두고는 이리 재고 저리 재다가 좀 비싸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구매했다. 클래식한 디자인이라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닌가 보다. 저자가 트렌치 코트, 일명 바바리를 구매하기 위해서 했던 행동은 우리 모두와 같았다. 무리해서라도 사고 싶었던 바바리가 드디어 세일을 시작해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구매에 이르게 된 과정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왕 사는 거라고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결국 구매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물건이라는 게 그렇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구매하기 전까지 온통 그것만 눈에 들어온다. 오죽하면 지름신이라는 게 있을까.

 


예뻐서 구입한 부츠가 있다. 지퍼가 없는 부츠인데 오래 걸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발 볼이 넓어 한 사이즈 큰 신발을 사야 하는데, 운동화 사이즈로 잘못 샀기 때문이다. 올해 한 번도 신어보지 않았다. 이런 건 버려야 하는 거다.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는 아마 일 년 정도는 버려야 할까 버리지 말아야 할까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성공한 여성이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가두려는 태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마치 여성 해방이 온 것처럼 욕망하고 성취하면서 동시에 여성 해방이 여전히 멀고먼 현실을 살아 나가야 한다. 그래서 여성의 삶은 때로 앞뒤가 안 맞는 모순투성이일 수 있다. 잔소리를 극히 싫어하는 내가 젊은 나에게 딱 한 마디 잔소리를 한다면 바로 그 모순을 견디면서 나만의 삶을 만들어 나가라는 것이다. (241페이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사준 책상, 비록 현재는 수납장 용도로 사용하고 있지만 추억과 영혼이 배어있는 물건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울러 책상을 구매했을 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고 살아오는 매 순간 함께 해왔던 물건인 경우는 특히 그렇다. 텃밭에서 식물들을 키우고 있다. 정원처럼 가꾸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오늘도 장미 묘목을 심고 왔다. 식물을 가꾼다는 건 온 마음을 주는 일이다. 잡초가 자라면 잡초를 뽑아주고 때에 따라 나무를 잘라 줘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사람과 동물, 혹은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돌보는 물건들도 우리를 돌보고 있었다. 서로가 돌보는 존재가 되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한다. 아울러 수많은 물건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묻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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