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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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가슴 한구석에 블랙홀 같은 마음 하나쯤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늪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곳. 우리 스스로 그 늪에 갇혀 침잠하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갇히기도 한다. 언젠가 싱크홀에 빨려 들어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공사 현장이면 위험표지판을 세워놓을 텐데 확인할 틈도 없이 발생한 일이었다. 만약, 돌을 던졌을 때 공중에서 부유하다가 빨려 들어간 것처럼 누군가가 사라졌다면 이건 블랙홀일까. 우주 너머로 사라진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괴롭지 않을까. 외롭지 않을까.

 


블랙홀 언저리에서 각자의 삶에 고달픈 사람들의 이야기다. 희영과 필희, 은정은 은수리의 삼총사다. 필희의 엄마와 은정의 아빠가 도망친 이후 세 사람에게도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비밀을 이야기할 때 주로 찾았던 저수지에서 의자처럼 생긴 바위 뒤로 필희가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 이후의 삶을 나타내는 소설이다.




 


50대의 나이가 된 희영과 엄마가 죽으면서 혼자가 된 미정, 수학 여행비가 필요하다는 이든에게 슈퍼에서 알바를 제안한 순옥, 사라진 언니 필희를 찾기 위해 미확인 홀을 찾아다니는 필성, 굴착기 기사 정식, 아파트 건너편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아내를 둔 찬영의 삶은 이름처럼 빛나기만 할까. 인터넷 쇼핑몰을 하다가 사기를 당한 혜윤, 다시 은수리로 돌아온 은정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을 본다. 어쩌면 연작 단편 형식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각자의 이야기에서 외로운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마다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외로움의 불씨들이 하나씩 피어오른다.

 


아내가 낸 구멍을 등으로 막고 있다는 생각이 문제인 것 같아 온실을 지킨다는 상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봤지만, 되지 않았다. 따뜻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으로 상상의 내용을 바꾸는 것도 되지 않았다. 찬영의 상상 속에선 늘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나 데일 듯 뜨거운 바람만 불었다. 찬영은 안절부절 못하며 온실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209페이지)

 


찬영은 아내 희영이 마음속에 저수지를 품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가 우울증이었던 이유로 아내 또한 그 늪에 갇히자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무관심으로 대하는 게 잘못이라는 건 아니다. 느끼기에 어쩐지 가족으로서 잘못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희영이 저녁마다 망원경을 들고 건너편 아파트 발코니를 쳐다보는 일.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걸. 그는 알지 못한다. 그저 아내의 시린 마음이 자기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몰랐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찾는 사람이 희영이었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앞장서 해결하려고 했다. 오지랖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그것. 반면, 필성은 필희 언니가 블랙홀로 사라졌을 거라 여기고 미확인 홀을 찾는 공무원이 되었다. 필희 언니와 친구였던 희영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었던 것일까. ‘블랙홀이라는 메모를 건네 희영을 번민하게 만든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살아가기는 하지만 삶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는 듯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순옥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다른 여자의 남편과 달아났다. 몇 년 후, 그 남자는 다시 돌아갔지만 순옥이 낳은 아이와 함께 버림을 받았다. 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연락처를 남겼지만, 볼 수 없었다. 중학생인 동네 소녀 이든이 수학 여행비를 마련한다며 노래방 알바를 시작했다가 잘리자 슈퍼에서 일하게 한다. 순옥은 버리고 온 딸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든 또래였던 자기의 딸들에게 속죄하듯 했다. 더 이상 이든을 잃고 싶지 않았다.


 

미확인 홀은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겠다. 홀 경계에서 힘든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사람들. 좀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게 우리가 바라는 삶일지도 모른다.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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