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를 다시 읽으며 진 웹스터의 작품을 찾던 중 『키다리 아저씨』의 후속작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인터넷 서점에 검색했으나 종이책은 보이지 않고 전자책으로만 있었다. 바로 구매하여 읽으려고 PC에서 크레마루나를 켰더니 파일이 보이지 않았다. PDF파일만 보이지 않은건지 잘 모르겠다. 할 수 없이 휴대폰으로 읽었는데, 종이책 그대로 PDF 파일로 변환시킨 것이라 글자가 너무 작아 눈이 아팠다. 그래도 읽고 싶은 마음에 휴대폰에 눈을 맞췄다. 원래 음성으로 책을 읽으면 다른 생각이 들어 잘 사용하지 않는데, 이 책은 읽다가 산책 나가는 길에 이어폰을 꽂고 들었는데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책 내용에 집중했다. 이런 적 처음이었다. 역시 재미있고 기대감 있는 책은 음성으로 들어도 좋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친애하는 적에게』는 『키다리 아저씨』의 다음 이야기로 샐리 맥브라이드가 주인공이다. 주디 애봇은 저비스 펜들턴과 결혼생활을 즐기고 있고 존 그리어 고아원의 평의원 회장인 저비스로부터 고아원 원장을 맡아 줄 것을 제안 받는다. 존 그리어 고아원 원장으로서 리펫 원장의 잔재물을 새로 바꾸며 의욕적으로 일하는 샐리 맥브라이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샐리 맥브라이드는 주디의 대학 친구로 주디를 좋아했던, 그래서 저비스의 강한 질투를 받았던 지미의 동생이기도 하다. 샐리는 주디와, 약혼자 고든, 그리고 고아원의 파견 의사인 로빈 맥클레이 씨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저비스와 주디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존 그리어 고아원에 도착해 100여명의 아이들에 둘러 싸여 고군분투한다. 일단 아이들이 먹는 음식물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입을 옷과 아이들이 머무는 환경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고자 한다.

 

약혼자 고든이 보내주는 많은 물품과 선물들, 주디와 저비스의 강력한 응원과 물건으로 존 그리어 고아원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아이들을 위해 숲속에 캠핑장을 만들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지미와 지미의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다.

 

샐리에게는 약혼자 고든이 있지만, 그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으니 고아원의 파견 의사 로빈 맥클레이 씨다. 맥클레이 씨는 마치 저비스를 보는 듯 퉁명스럽고 차가운 성정을 지녔다. 하지만 샐리와 함께 고아원의 아이들을 지켜보며 점점 사람다운 사람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제목에 누구를 가리키는 가 하면 바로 로빈 맥클레이 씨를 가리켜 '친애하는 적'이라 부른다. 그 어떤 애칭보다 사랑스러운 애칭이 되어간다. 샐리는 주디와 고든, 맥클레이 씨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오로지 맥클레이 씨에게만 애칭을 붙여주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샐리는 존 그리어 고아원을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꾸며주는데 온 열정을 다한다. 더불어 고아들이 좋은 가정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선다. 고아가 되어 고아원으로 들어오게 된 사정, 최선을 다하여 입양을 보내 보지만 파양되어 다시 돌아오는 걸 보며 마음 아파 한다. 고아원에서 일하면서 주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주디가 원했던 것들을 생각해 좋은 가정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고아원을 장소로 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고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갖가지 사연을 가진 아이들과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피부색이 흰 아이들만 입양하려는 입양 부모들을 꼬집는다. 부호 J. F. 브레틀렌드 씨가 아내와 함께 여자 아이 한 명을 입양하고자 한다. 원래는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다른 아이를 입양보내려고 했으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며 갔던 장소에서 알레그라를 보고는 반하여 그 아이를 입양시키려 한다. 오빠 두 명과 떨어뜨리는게 좋은지, 주디의 마을 떠올리며 알레그라에게 가정을 만들어주는 게 좋은 것인지 고민한다. 알레그라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맥클레이 씨가 나타나 오빠들과 떨어져서는 절대 안된다며 딱 잘라 말한다.

 

나중에 존 그리어 고아원에 불이 나고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 내용을 본 J. F. 브레틀렌드 씨는 고아원에 찾아와 알레그라와 그 오빠들 모두를 입양한다. 이 부분은 무척 감동적이다. 가족들을 떨어뜨리는 게 옳은 것인지 가족을 만들어 주는 게 좋은 것인지 고민하였던 샐리에게 해답을 준 모습이기도 했다.

 

『키다리 아저씨』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고아원에 얽힌 이야기와 점점 고아원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샐리의 성장과 사랑, 그리고 주디와의 우정을 보게 된다. 역시나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친애하는적에게  #진웹스터  #바른번역왓북  #키다리아저씨  #후속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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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25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키다리아저씨의 후속작이 있다니. 한번 봐야겠어요^^

Breeze 2020-05-25 21:20   좋아요 0 | URL
종이책으로는 없고 전자책으로만 있었어요. PDF파일이라 글자 크기가 좀 작습니다. ^^
 
기억의 습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4
이혜경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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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함께 근무하셨던 한 분은 그 분의 말로 월남 파병 군인이었다. 딸만 둘을 두셨는데, 직원들은 그때 그곳에 아들 하나는 있지 않겠느냐며 잘 찾아보라는 말을 농담 삼아 하곤 했다. 아빠도 스물한두 살에 베트남 파병을 하셨다며 말씀 하시곤 했는데 아빠는 어떠셨을까 생각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되었을때 베트남 여성들에게 한 한국군들의 행동에 일본군 못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었었다. 그래서 베트남 인들이 한국사람들을 싫어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곳에 있던 라이 따이한 즉 베트남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혼혈인들의 아픔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근무했던 직원 하나도 어린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이 소설의 내용이 낯설지 않았다.

 

소설은 한 남자의 고백이다. 죽은 베트남 여성의 부모와 여동생이 공항을 통해 들어오며 장례식에서 슬피울던 가족들을 보며 과거의 시간을 떠올린다. 베트남에 파병되었다가 돌아온지도 40여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때의 꿈을 꾼다. 앞서 가던 선임이 총에 맞아 죽는 장면. 한 발을 떼었으나 지뢰를 밟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발을 떼 지뢰가 터지면서 산산조각이 되는 꿈이다. 식은 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난 남자는 현재와 과거 사이에 놓여 있다.  

 

 

 

아내를 여의고 이 마을에 들어온 필성은 마을 사람들 속에 녹아 들어간다. 반면 역시 혼자 들어와서 산속에 머무는 김은 마을 어느 누구와도 왕래가 없다. 마을 이장으로부터 철규가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베트남 새댁이 들어온 뒤 필성은 잊었던 베트남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한편 베트남어를 기억하려 한다. 멀리 시집온 새댁에게 베트남 말로 말을 걸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여전히 과거의 기억속의 일들을 헤매는 필성은 베트남에서 살아 돌아온 뒤 공부를 잘했던 필주에게 대학 등록금을 챙겨주었다. 그랬으나 동생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서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집을 차지했다.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먼저 보낸 어머니는 어렵게 형제를 키웠다. 여자 혼자 몸으로 키우는 게 쉽지 않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군표를 내고 베트남 여성을 안았던 필성은 전쟁이 끝난 뒤 헤어질 때에야 응웬이라고 알았던 여자의 이름이 판이었음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라던 판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여기에서 군표를 내고 베트남 여성들을 한국군이 상대했다는 건 새로웠다. 그저 동네 여성들과 사귀었던 걸로만 알았는데 말이다. 종군위안부를 두었던 일본군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웠다.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 받았던 김 또한 한국전쟁고아다. 살려고 서울로 도망쳤지만 북파 공작원을 양성하는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다. 나라를 위해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하였으나 도망쳤다는 이유로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곤 필성 밖에 없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의 기억들은 안고 가야할 숙제다. 그걸 어떻게 풀어가느냐는 본인에게 달렸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건지. 다른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였다고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게 화를 돌려서는 안된다. 김의 행동에 화가 나는 건 그 때문이다.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는가. 그 순간을 참지 못했는가. 똑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되는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가 보다.

 

이혜경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묵직한 울림을 주는 소설이 감정을 건드렸다. 역사 속에 숨어든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을 소환해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무시하고 넘어가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의 한귀퉁이를 엿본 느낌이다.

 

 

#기억의습지  #이혜경  #현대문학  #핀시리즈  #현대문학핀시리즈  #핀소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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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작품을 몇 개를 읽었더라. 읽으면 읽을수록 반하게 되는 작가다. 작품이 재미있고 막힘이 없다. 더군다나 유쾌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더불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어딘가에 이런 일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마는 일들 같다.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이었다. 민음사에서 나오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좋아하기도 하고 책들이 예뻐 되도록이면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싶은 시리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정세랑 작가의 책을 몇 권 구매하기로 하면서 구매하게 되었다. 책을 보관해야하는 부담감은 없으나 역시 좋아하는 책은 종이책으로 갖고 싶다는 걸 다시한번 깨닫게 되기도 했다.

 

 

소설 속 주인공 안은영은 사립 M고 보건교사다. 안은영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으니 바로 퇴마사라는 것. 즉 귀신들을 보는 눈을 가졌다. 가방에 화장품 보다는 비비탄 총과 무지개색 플라스틱 장난감 칼을 가지고 다닌다. 안은영이 학교를 기웃거리는 이유는 학교에서 감지되는 그 무엇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10편으로 된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건 다르지만 보건교사 안은영과 M고의 실제 이사장 이자 한문 선생인 홍인표가 나오는 건 같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었으며 매 작품마다 다른 주인공들이 나와 소설을 이끌어간다. 몇 년 전 요양원에 옴이 퍼져 시끄럽게 했는데, 학교에서 옴을 잡아 먹는 소녀, 인표가 가진 밝은 색의 아우라(인표를 보호하는 빛)를 뺏으려하는 원어민 교사, 다른 학교에서 여학생의 방석을 뺏어오면 수능을 잘 본다는 소리에 훔쳐왔으나 반 아이들 전체가 울고 있었던 일들. 모두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안은영의 눈에는 보이는 것들의 사연을 말한다.

 

 

퇴마사의 역할을 하려면 홍인표가 가진 빛의 파동, 즉 그의 손을 잡으면 전해오는 힘을 가져 충전을 시키기도 했으며 소원을 비는 탑을 돌며 그들의 염원을 가져오기도 했다. 또한 주말마다 남산에도 자주 다녔는데 연인들의 사랑의 맹세를 해둔 열쇠를 만지면 충전이 되곤 했다. 남산에 열쇠를 걸어두신 분들 조심하시라. M고 안은영 보건교사가 당신들의 마음을 다 가져갔으니 당신들의 사랑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릴적 자신에게만 보였던 정현을 만나러 놀이터에 가끔씩 가곤 하는 은영. 그녀는 정현에게 줄 과자를 사 가지고 가 함께 이야기를 한다. 은영보다 머리 하나는 컸던 정현은 어느새 은영보다 훨씬 작은 아이로 남아있다. 또한 유일하게 은영과 친구였던 강선이 찾아왔던 날, 그가 죽었음을 알았다. 왜 죽었느냐고 물어보지 못했던 은영. 은영에게 비비탄 총과 무지개 색을 발하는 장난감 총을 주었던 아이가 강선이었다.

 

그는 대형 크레인에서 작업을 하다 죽었다. 지금은 랜드마크 주상 복합이 된 그 곳에서. 아직 희미해지기 전의 강선은 은영의 학교 보건실에서, 교실에서 함께 놀았다.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은 그곳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마치 상상 속에 일어난 일들처럼 말했다.

 

 

유머 스럽고, 유쾌한 소설이었다. 더군다나 학창시절을 보내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위트있게 그렸다. 지금의 학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에로에로를 내뿜는 아이들에게서 일어나는 일들과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싸움을 그리는 내용은 유쾌해 지켜보는 이들, 특히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정세랑 작가의 책을 다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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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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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한 장소에서 몇 달씩 혹은 몇 년씩 묵는 사람들이 부럽다. 누군가 부러우면 지는거라고 했는데, 그래도 부러운건 어쩔 수 없다. 최근 코로나가 있기 전 추세가 어느 나라의 한 장소에서 한 달 살아보기가 마치 유행처럼 번졌다. 며칠을 여행하는 것과는 다른 한 달씩 살아보며 그 장소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행자들이 주로 가는 곳보다는 실제 그곳 사람들이 살아 숨쉬는 골목골목을 걸어보는 일이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알지 못하는 맛있는 빵집이라든지 신선한 생선을 파는 가게를 알 수 있고 그 사람들과 마치 주민처럼 친해질 수도 있다. 김영하가 작가가 머물렀던 시칠리아의 리파리섬에서처럼.

 

그러니까 이 책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이후에 나온 책이 아니라 십 년 전에 출간되었던 책을 다시 손봐 내놓은 책이다. 『여행의 이유』 이전에 나온 책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후에 나온 책이기도 하다. 서로 연결되는 여행이라는 주제가 있으니. 『여행의 이유』가 보다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보았던 여행에 대한 사유라면,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김영하의 눈으로 바라보는 보다 개인적인 시선이 담겨 있었다. 학교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마음, 여행지에서의 일상, 요리를 하는 한 여자의 남편이 비춰졌다. 물론 그의 사유가 빛이 안나는 건 아니다. 그가 머물렀던 장소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역시 해박하다.

 

 

 

십 년 전의 작가는 한국종합예술학교의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연재 소설 계약을 하고 소설을 쓸 것인가, 매달 정해진 급여가 나오는 학교일을 계속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소설에 더 집중하라는 작가의 아내는 분명 미래를 내다보는 천리안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무슨 일에서든 작가를 응원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시칠리아로 떠나기 전 작가는 한 방송사의 <세계테마기행>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함께 제작하며 외국에 다녀오기로 했다. 작가는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를 말했고, 여행 프로그램을 찍었었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 작가는 남은 기간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시칠리아로 향했다. 스마트폰도 없고 지도 한 장과 물어물어 원하는 장소로 향하는 모습은 오래전 우리들이 여행했던 그것과 닮았다.

 

이 책에서는 초판에서는 없었던 꼭지가 생겼다. 현지에서 요리하는 모습인데 꽤 인상적이다. 요리법이 TV만 틀면 나오는 요리가 백종원 못지 않다. 현지에서 나오는 재료로 스파게티 등을 만드는데 침을 삼키며 읽은 부분이다. 머릿속으로 그가 하는 요리를 따라하며 오늘은 스파게티를 해먹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주 상세하고도 간단한 몇가지의 요리를 소개했다. 오징어 스파게티, 봉골레 스파게티, 동서양 절충식 볶음밥, 해물 리소토를 가리켜 지중해식 생존요리법이라 칭했다. 궁금하지 않는가!

 

작가는 시칠리아의 북쪽 해안에 자리잡은 안토니나의 농장에서 개짖는 소리를 들으며 오래전 추억을 떠올린다. 군대의 대대장 관사에서 살았던 때 아버지를 따랐던 개 꾀돌이가 사라져 며칠이고 찾았던 그때를. 십수 년이 지난뒤 아버지를 찾아왔던 병사가 말하기를 부대원들이 꾀돌이를 산속으로 유인하여 잡아먹었다며, 이후 그 부대에서 안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래전 집에서 기르던 개를 떠올린 작가는 안토니나의 농장이 더이상 낯설지 않았다는 말을 읊조린다. 삶은 그런 것이다. 낯선 곳에서도 익숙한 기억들이 떠올라 더이상 낯설지 않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행을 떠나며 그가 가진 많은 것들을 정리했다는 점이다. 물건들을 정리하며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사서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시냇물이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다시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36페이지)

 

 

 

작가는 여행을 준비하며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집을 둘러본다. 거실에는 기억자로 된 커다란 책장에 책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안방 뿐만 아니라 다른 방들에 걸쳐 책에 둘러 쌓여 있다. 그렇다고 이 책들을 다시 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몇 권에 한정된다. 헌책방에 팔아 누군가가 보게 할 수도 있다는 것. 작가의 말처럼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집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너무 천천히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었어.

특히 여행 같은 거 떠날 때는 더더욱 그랬지. 예약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을 보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맛있는 것 먹고 하루종일 얘기하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287페이지)

 

내가 이제야 느끼는 것들을 작가와 작가의 아내는 벌써 십 년 전에 느꼈다는 것이다. 그때 느꼈던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삶의 방식이 자유로운지도 모르겠다. 여행하는 삶. 여행자로 살아가는 그의 삶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곧 여행이므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과도 같은 삶인데 굳이 현실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래준비해온대답  #김영하  #복복서가  #여행  #여행에세이 #에세이  #에세이추천  #책추천 #여행의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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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20-05-1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책장 정리하면서 책이 많이 줄었다는것이 확실히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대략 300권정도 있던데, 함정은 읽지 않은책이 대부분이라는거죠. 더 열심히 읽어서 100권 미만으로 죽이는것이 목표랍니다~

Breeze 2020-05-19 09:04   좋아요 0 | URL
책을 좀 정리해야지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네요. ^^
 
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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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미래에서 아들이 찾아왔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쉽게 믿을까? 대답은 아니다,가 많을 것 같다. 소설 속 아들이 말하길, '나는 당신 아들이야. 미래에서 왔어.'라고 얘기했다면 당신이라면 믿겠는가. 하지만 독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을 응원하게 된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들. 그 아들이 찾아왔음에도 알지 못하는 스물세 살의 철부지 청년에게 제발 아들이란 걸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필 왜 스물세 살의 다쿠미에게 아들이 찾아간 것일까. 그 의미를 찾느라 많은 생각을 거듭했던 것 같다. 스물세 살의 다쿠미는 한 방을 노리며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상태다. 하나야시키 놀이공원. 한때 야구선수이기도 했던 다쿠미는 공을 던지지만 제대로 맞지 않는다. 투구 폼 이때부터 그랬구나 라고 던진 젊은 청년이 다가오고 자신을 도키오라 칭한다. 바로 당신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친척 쯤 된다고 말하는 도키오는 그 때부터 다쿠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앞서 소설의 첫부분은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에 걸린 아들 도키오가 침대에 자는 듯 누워있다. 깨어나면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을까 하여 말을 건네지만 아들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들 도키오가 과거의 아버지 다쿠미에게 찾아온 설정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아직 엄마를 만나지 않은 시기, 지금의 아빠와는 많이 다른 철부지 청년에게 마치 친구처럼 다가가 그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다쿠미에게는 여자 친구 지즈루가 있었다. 지즈루는 술집에서 일했고 그에게 번듯한 직장을 찾길 바라 경비회사에 면접을 보러가라고 소개해주었지만 게임을 하다가 면접에 늦어버린 다쿠미였다. 면접에 늦은 사실을 숨겼던 다쿠미는 갑자기 이별 통보를 하고 사라진 지즈루를 찾았다. 다쿠미 앞에 수상한 남자들이 나타나 지즈루를 찾으며 거액의 돈을 제시한다. 지즈루를 찾으러 오사카로 향하게 된 다쿠미와 도키오의 여정이 진행된다. 그동안 다쿠미는 입양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언젠가 집에 찾아온 젊은 여성이 친어머니일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자기를 버렸다며 모든 걸 친어머니 탓을 한다. 자기를 버리고 부잣집에 재혼을 한 어머니가 탐탁치 않다. 생명이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았음에도 일절의 관심이 없다. 

 

이 소설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화해를 다룬다. 도키오의 이름이 되돌리는 시간이었듯,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아버지에게 찾아온 도키오는 철부지 아빠를 다독이며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가 친어머니 탓을 해도 낳아주지 않았느냐며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오사카로 가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뉴스에 나왔던 사실을 기억한 도키오가 건 말 또한 과거에 이름을 날렸던 말의 아들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엄마와 딸의 관계보다 더 묵직한 감정인 것 같다. 말없이 바라봐 주는 역할이면서 서로를 북돋아주는 관계라고 여겨도 될 것 같다. 십대 중반부터 온 몸이 굳어가는 희귀병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아이를 태어나게 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함께 했던 다쿠미의 현재는 울컥한 부성애를 불러 일으킨다.

 

과거의 시간 속 다쿠미와 도키오는 부모의 근원, 즉 다쿠미를 양자로 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를 찾게 한다. 철부지 스물세 살의 청년을 이끌어 부모의 근원을 알게 한다. 길러주지는 않았으나 태어나게 해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것이 행복임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종종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 소설을 만나곤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속 시간여행은 좀더 감동적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부모를 원망하는데, 낳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걸 말하였다.

 

추리와 미스테리, SF적인 요소, 그리고 아들과 조금씩 성장해 가는 한 젊은 청년. 왜 스물세 살의 다쿠미인가에 얽힌 귀한 인연들이 사랑이라는 형태로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고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아사쿠사의 하나야시키로! 아마 이 새로운 여행은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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