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습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4
이혜경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전에 함께 근무하셨던 한 분은 그 분의 말로 월남 파병 군인이었다. 딸만 둘을 두셨는데, 직원들은 그때 그곳에 아들 하나는 있지 않겠느냐며 잘 찾아보라는 말을 농담 삼아 하곤 했다. 아빠도 스물한두 살에 베트남 파병을 하셨다며 말씀 하시곤 했는데 아빠는 어떠셨을까 생각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되었을때 베트남 여성들에게 한 한국군들의 행동에 일본군 못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었었다. 그래서 베트남 인들이 한국사람들을 싫어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곳에 있던 라이 따이한 즉 베트남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혼혈인들의 아픔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근무했던 직원 하나도 어린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이 소설의 내용이 낯설지 않았다.

 

소설은 한 남자의 고백이다. 죽은 베트남 여성의 부모와 여동생이 공항을 통해 들어오며 장례식에서 슬피울던 가족들을 보며 과거의 시간을 떠올린다. 베트남에 파병되었다가 돌아온지도 40여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때의 꿈을 꾼다. 앞서 가던 선임이 총에 맞아 죽는 장면. 한 발을 떼었으나 지뢰를 밟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발을 떼 지뢰가 터지면서 산산조각이 되는 꿈이다. 식은 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난 남자는 현재와 과거 사이에 놓여 있다.  

 

 

 

아내를 여의고 이 마을에 들어온 필성은 마을 사람들 속에 녹아 들어간다. 반면 역시 혼자 들어와서 산속에 머무는 김은 마을 어느 누구와도 왕래가 없다. 마을 이장으로부터 철규가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베트남 새댁이 들어온 뒤 필성은 잊었던 베트남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한편 베트남어를 기억하려 한다. 멀리 시집온 새댁에게 베트남 말로 말을 걸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여전히 과거의 기억속의 일들을 헤매는 필성은 베트남에서 살아 돌아온 뒤 공부를 잘했던 필주에게 대학 등록금을 챙겨주었다. 그랬으나 동생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서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집을 차지했다.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먼저 보낸 어머니는 어렵게 형제를 키웠다. 여자 혼자 몸으로 키우는 게 쉽지 않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군표를 내고 베트남 여성을 안았던 필성은 전쟁이 끝난 뒤 헤어질 때에야 응웬이라고 알았던 여자의 이름이 판이었음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라던 판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여기에서 군표를 내고 베트남 여성들을 한국군이 상대했다는 건 새로웠다. 그저 동네 여성들과 사귀었던 걸로만 알았는데 말이다. 종군위안부를 두었던 일본군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웠다.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 받았던 김 또한 한국전쟁고아다. 살려고 서울로 도망쳤지만 북파 공작원을 양성하는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다. 나라를 위해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하였으나 도망쳤다는 이유로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곤 필성 밖에 없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의 기억들은 안고 가야할 숙제다. 그걸 어떻게 풀어가느냐는 본인에게 달렸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건지. 다른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였다고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게 화를 돌려서는 안된다. 김의 행동에 화가 나는 건 그 때문이다.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는가. 그 순간을 참지 못했는가. 똑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되는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가 보다.

 

이혜경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묵직한 울림을 주는 소설이 감정을 건드렸다. 역사 속에 숨어든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을 소환해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무시하고 넘어가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의 한귀퉁이를 엿본 느낌이다.

 

 

#기억의습지  #이혜경  #현대문학  #핀시리즈  #현대문학핀시리즈  #핀소설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