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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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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메일링 유료 서비스를 받았다. 일주일에 한 편씩 배달되는 인생사용법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내용을 생각하게 했다. 작가의 가족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는 그의 산문 중에서 거의 처음인 거 같아 각별했다. 다른 메일과는 다르게 즐겁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출간된 책을 받아보니 종이책이야말로 진짜 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놓치거나 겉돌았던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역시 종이책이다.
연재 글에서는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과 개인적인 사진을 실어 글과 조화가 좋았다. 단 한 번뿐인 삶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뒤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미래의 우리 삶을 계획할 수 있었다. 다만 종이책에서는 메일링 서비스와 다르게 작가의 개인적인 사진이나 그림이 수록되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라는 첫 문장부터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궁극적인 이유는 영원하지 않은 우리 삶 때문이라는 설명이 와닿았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는 죽은 것 같았던 주인공이 다시 살아나 뭔가 사건을 해결하지 않나 말이다. 우리가 살아보지 않는 삶, 상상 속의 삶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된 장소가 엄마의 빈소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그동안 엄마는 자기의 삶을 말하지 않은 게 많았던가 보다. 엄마가 과거에 여군이었다는 것. 아마 군대에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을 텐데 그걸 죽을 때까지 숨겼다. 시대가 원하는 여성상이나 남성상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아버지가 군인이었다는 건 작가의 소개 글에서 보았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는 건 드물다. 군인으로서 글씨를 못 쓰는 아들을 가르치고자 우물 정 자 천 개를 쓰라고 했던 일화도 말한다. 오래전에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성공했다. 하지만 컴퓨터 혹은 워드프로세서가 나올 줄은 모르셨겠지. 지금은 손글씨로 작품을 쓰는 작가가 귀해진 시대다. 노트북 하나 들고 카페에서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나. 더 이상의 기능을 사용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군대 선임들의 행동 또한 너무 익숙하다.
내가 좋아하는 언어는 문학의 언어였다.
그 언어는 모호하다. 이것을 말하면서 동시에 저것을 말하고, 저것을 말하면서 이것을 말한다. 때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언어이며, 사람에 따라 무한히 다르게 해석된다. 회계가 그랬다가는 큰일 날 것이다. 그런데 문학은 그래도 된다. 그래서 좋았다. (48페이지)
이 글을 쓰다가 커피 생두를 볶았다. 로스팅된 원두를 주문해서 마시다가 원두값이 인상되어 생두를 직접 로스팅을 하려고 구매했다. 처음 했을 때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탈까 봐 조심스럽게 볶다 보니 로스팅이 덜 됐다. 쓴맛이 나는 강배전보다는 산미가 느껴지는 약배전을 더 좋아하는 터라 더 살살 볶게 된다. 작가가 캐나다 밴쿠버의 대학교 기숙사에 머물렀을 때 울렸던 화재경보 사건을 말한다. 화재경보가 커피 로스팅 때문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던 에피소드였다. 문제는 1차 파핑이 일어난 시점에 화재경보가 울린다는 거다. 한방향으로 나무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어야 하는데 모든 걸 그만두고 밖으로 나가야 했던 때를 떠올렸다. 커피를 볶다가 그 생각이 나 혼자 웃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썼던 작가 조지 R. R. 마틴의 작가와 독자의 경계에 대하여 말한다. 작품 속 인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작가일 것 같은데, 장편을 쓰다 보면 많은 인물 때문에 헷갈린다는 거다. <왕좌의 게임> 작가도 등장인물이 헷갈려 가르시아라는 팬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드라마 제작진도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하는데, 독자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말하는 부분이었다.
어떤 기억은 오래도록 우리 뇌를 차지해 잊지 않고, 어떤 기억들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적당히 잊고 적당히 기억하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작가가 기억하는 것들, 혹은 살아오며 느꼈던 감정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해답을 본 느낌이다. 단 한 번뿐인 삶.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간직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한다. 명쾌한 해답을 위한 질문을 건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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