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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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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고 있지만 아직 춥다. 마음이 추운 계절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란 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봄이라고 느낀 순간 따스한 바람이 부는 것 같고, 해결되지 않은 게 있어 마음이 아프면 저절로 몸을 움츠린다. 아직도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는 것 같은 요즘, 봄밤이 그리운, 봄볕처럼 따스한 기운을 풍기는 소설을 만났다. 백수린의 소설이다.
일곱 편의 소설은 어느 시기를 지나는 중이다. 나이는 이십 대에서 칠십 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이 나와 현재를 살고 있다. 때때로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고, 겨울눈처럼 차가운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아주 환한 날들」에서 여성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평생교육원에서 수필 쓰기 강좌를 듣는 여성은 순전히 수요일이기 때문에 강좌를 신청했다. 숙제로 수필을 써야 하지만 쓸 말이 없어 못 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위가 집에 찾아와 한 달 동안만 앵무새를 돌봐달라고 한다. 딸과는 몇 년째 소원한 관계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사위가 대신 찾아온다. 앵무새와 지내며 새에 대하여 무한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게 이렇듯 다정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걸 깨닫는다. 남편이 죽고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즐기고 있다고 여겼지만, 다른 한편으로 쓸쓸했던가 보다.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는 것. 나이 먹는 것 따위 아무 소용이 없다. 무작정 사랑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빛이 다가올 때」는 여덟 살 차이 나는 인주 언니와 뉴욕에서의 해후를 담고 있다. 인주 언니는 아픈 큰이모의 눈이 되어 보살폈다. 큰이모의 바람대로 교수가 되었다. 뉴욕에 교환교수로 오게 되며, 역시 뉴욕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주인공과 함께 만나 한 시절을 보낸다. 영어가 서툰 언니와 자주 만나 시간을 보내던 그들은 한 카페에서 일하고 있던 개리와 가깝게 지낸다. 인주 언니는 자기보다 스무 살이 어린 개리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개리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어찌 나이를 말하겠는가. 사랑하는 이를 향한 눈빛의 반짝임은 감출 수 없다. 그 사랑의 빛을 어떻게 감추겠는가 말이다.
「흰 눈과 개」는 어떤 이유로 소원해진 아버지와 딸이 스위스 여행 중에 일어난 일을 말한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부녀는 8년 가까이 만나지 않았다. 딸의 초대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산책길에서 다시 한번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아버지는 홀로 산책을 하다 개와 함께 온 부부를 보며 이 광경을 딸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딸과 함께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아버지가 말하기도 전에 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따스한 빛으로 감싸 안아 주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백수린의 이번 작품에서 엄마와 딸, 아버지와 딸은 유별나게 가까웠다가 지금은 서로를 만나지도 않은 상태로 나온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처의 깊이는 큰 법,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관계가 안타깝다. 어떠한 계기가 필요한 법이다. 때로는 동물이 서로를 잇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앵무새와 검은 개처럼.
「호우豪雨」의 소희나 「눈이 내리네」의 다혜,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의 ‘나’는 대학의 유적 답사 동아리 회원이다. 세 편의 연작소설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나타냈다. 대학 시절 이모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늙을,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덧없는 삶, 한때 빛으로 가득했던 날들을 떠올리고 지나간 삶을 반추하지만 지금도 그 빛은 여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의 배경은 작가의 다양한 경험만큼이나 각국의 풍경이 다채롭다. 힘든 시간을 겪는 사람들, 홀로이되 외롭지 않은 사람, 그러나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삶은 풍요롭지 않느냐 말이다. 그런 것들을 강조하는 것 같다. 시린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마음. 빛으로 가득해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이해와 포용, 감정의 전이, 이를테면 공감 같은 것들. 내가 아는 게 다 맞지 않다는 걸 훗날에야 알게 되는 법.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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