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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그림의 마음 - 조선의 두 천재 정선과 김홍도가 옛 그림으로 전하는 휴식과 위로
탁현규 지음 / 지식서재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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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미술관을 1년에 두 번 전시했을 때였다. 그때 전시한 게 <민속인물화대전>으로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등의 조선 산수화 및 인물화 전시였다. 눈앞에서 혜원의 <미인도>를, 단원 김홍도 등의 그림을 보며 감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도 가봤지만,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간송미술관 전시였다.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의 애틋한 마음을 알지 모르겠다.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고사인물화를 엮은 책이다. 두 거장의 그림으로만 구성되어 그림을 더욱더 깊게 느끼고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그림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책 속에 수록된 그림이라 자칫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설명해주어 그림을 보는 능력을 키워주었다. 그림 설명을 읽으며 놀란 게 그림 속 인물들에 관한 표현이었다. 그림 속 작은 인물에서 느껴지는 화가의 의도에 재차 감탄했다.
겸재 정선의 그림은 <귀거래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동진 시대의 도연명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생활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시가 <귀거래사>다. 겸재 정선 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바탕으로 그림, 10폭 병풍으로 된 <귀거래도>다. 집으로 향하는 배에 앉아있는 도연명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물을 배경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도연명과 냇물이 흐르는 초가집에 술병을 놓고 앉아있는 도연명의 모습은 흡사 신선처럼 여겨진다. 겸재 정선을 가리켜 왜 조선 최고의 화가라고 일컫는지 탄복하며 그림을 바라보게 된다.

산수화에서 소나무는 많은 의미가 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간직하여 선비의 꼿꼿한 기개를 나타내며 그림을 받쳐주는 기둥이 된다. 저 멀리 너른 밭이 보이는 그림 앞면에 소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그림의 모든 것을 아우른다. 정선의 <유연견남산>은 채색을 쓰지 않고 먹빛으로만 만물의 기운을 나타냈다. 너른 밭, 남산 자락의 여백에서 비움의 미학이 두드러진다. 겸재 정선을 떠올리면 당연히 <인왕제색>이다. 평생의 벗 사천 이병연이 세상을 떠나자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다. 짙은 구름이 내려앉은 먹빛의 인왕산에서 화가의 슬픔이 짙게 풍긴다. <총석정>과 <통천총석정> 그리고 금강산을 그린 <금강전도> 또한 압권이다. 바라볼수록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싶을 정도로 감동이었다.
정선과는 또 다른 풍을 그린 화가가 김홍도다. 정선의 그림은 선비의 기개, 산수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었다면 김홍도의 그림은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화려함보다 수수한 매력이다. 김홍도의 그림은 8폭 병풍으로 된 <고사인물도>의 <취후간화>부터 시작한다. 마당에 핀 매화를 바라보며 술을 즐기는 불그스름하게 취기가 돈 인물 그림이 인상적이다. 오래된 고목이 된 매화가 반쯤 피어있는 그림에서 배를 띄운 장면은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있다. <적벽야범>의 인물은 바위 절벽 아래 강물에 배를 띄우고 절벽을 바라본다. 강물에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 여백의 아름다움이 있다. 고목에 흰점이 박히듯 흩뿌려져 있는 매화 그림에 언제나 감동한다.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설명하며 전체 도판과 부분 도판을 수록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다. 매화를 호분으로 점을 찍어 그린 정선의 <고산방학>과 김홍도의 <서호방학>을 비교해봐도 좋을 것 같다. 각자의 아름다움을 느끼면 될 터, 취향으로 가를 수 없을 것이다.
정조 임금에게 사랑받았던 김홍도가 마지막으로 바친 그림이 8폭 병풍 <주부자시의도>다. 정조는 주자의 시를 배우는 것이 시대에 맞는 선비가 되는 좋은 길이라 여겨 『아송』이라는 책을 편찬했고, 주자의 시 8편을 골라 김홍도로 하여금 그리게 했다. 정조 임금이 배우고 실천하고자 했던 내용의 시를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다.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그림이 꽤 많이 수록되어있다. 이건희 컬렉션에서 본적이 있어 반가웠다. 김홍도가 죽음을 앞두고 그린 노년의 쓸쓸함과 슬픔이 묻어난 <추성부도>는 의미가 깊다. 김홍도의 태어난 해와 사망한 해를 몰라 안타깝다고 했다. <추성부>는 북송 시대 문장가인 구양수의 산문시다. 구양수의 시를 그림으로 그린 게 <추성부도>다. 바람결에 휘날리는 나뭇잎, 가을의 쓸쓸함은 곧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처럼 비유되기도 한다. 가을의 황량함, 슬픔의 탄식을 읊조린, 김홍도 평생 최고의 걸작이라고 일컫는 그림이다.
근대문화예술도 좋지만 조선시대의 산수화나 인물화가 좋다. 김홍도의 그림은 다양하게 보고 읽었으나 겸재 정선의 그림 위주로 나온 책은 드물었던 것 같다. 언젠가 정선의 그림만 수록된 책을 읽어봐야겠다. 그림은 보는 만큼 안목도 좋아지는 법이라는 걸 느꼈다.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조선 그림의 마음』을 들춰보시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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