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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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한 장소에서 몇 달씩 혹은 몇 년씩 묵는 사람들이 부럽다. 누군가 부러우면 지는거라고 했는데, 그래도 부러운건 어쩔 수 없다. 최근 코로나가 있기 전 추세가 어느 나라의 한 장소에서 한 달 살아보기가 마치 유행처럼 번졌다. 며칠을 여행하는 것과는 다른 한 달씩 살아보며 그 장소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행자들이 주로 가는 곳보다는 실제 그곳 사람들이 살아 숨쉬는 골목골목을 걸어보는 일이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알지 못하는 맛있는 빵집이라든지 신선한 생선을 파는 가게를 알 수 있고 그 사람들과 마치 주민처럼 친해질 수도 있다. 김영하가 작가가 머물렀던 시칠리아의 리파리섬에서처럼.

 

그러니까 이 책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이후에 나온 책이 아니라 십 년 전에 출간되었던 책을 다시 손봐 내놓은 책이다. 『여행의 이유』 이전에 나온 책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후에 나온 책이기도 하다. 서로 연결되는 여행이라는 주제가 있으니. 『여행의 이유』가 보다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보았던 여행에 대한 사유라면,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김영하의 눈으로 바라보는 보다 개인적인 시선이 담겨 있었다. 학교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마음, 여행지에서의 일상, 요리를 하는 한 여자의 남편이 비춰졌다. 물론 그의 사유가 빛이 안나는 건 아니다. 그가 머물렀던 장소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역시 해박하다.

 

 

 

십 년 전의 작가는 한국종합예술학교의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연재 소설 계약을 하고 소설을 쓸 것인가, 매달 정해진 급여가 나오는 학교일을 계속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소설에 더 집중하라는 작가의 아내는 분명 미래를 내다보는 천리안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무슨 일에서든 작가를 응원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시칠리아로 떠나기 전 작가는 한 방송사의 <세계테마기행>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함께 제작하며 외국에 다녀오기로 했다. 작가는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를 말했고, 여행 프로그램을 찍었었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 작가는 남은 기간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시칠리아로 향했다. 스마트폰도 없고 지도 한 장과 물어물어 원하는 장소로 향하는 모습은 오래전 우리들이 여행했던 그것과 닮았다.

 

이 책에서는 초판에서는 없었던 꼭지가 생겼다. 현지에서 요리하는 모습인데 꽤 인상적이다. 요리법이 TV만 틀면 나오는 요리가 백종원 못지 않다. 현지에서 나오는 재료로 스파게티 등을 만드는데 침을 삼키며 읽은 부분이다. 머릿속으로 그가 하는 요리를 따라하며 오늘은 스파게티를 해먹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주 상세하고도 간단한 몇가지의 요리를 소개했다. 오징어 스파게티, 봉골레 스파게티, 동서양 절충식 볶음밥, 해물 리소토를 가리켜 지중해식 생존요리법이라 칭했다. 궁금하지 않는가!

 

작가는 시칠리아의 북쪽 해안에 자리잡은 안토니나의 농장에서 개짖는 소리를 들으며 오래전 추억을 떠올린다. 군대의 대대장 관사에서 살았던 때 아버지를 따랐던 개 꾀돌이가 사라져 며칠이고 찾았던 그때를. 십수 년이 지난뒤 아버지를 찾아왔던 병사가 말하기를 부대원들이 꾀돌이를 산속으로 유인하여 잡아먹었다며, 이후 그 부대에서 안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래전 집에서 기르던 개를 떠올린 작가는 안토니나의 농장이 더이상 낯설지 않았다는 말을 읊조린다. 삶은 그런 것이다. 낯선 곳에서도 익숙한 기억들이 떠올라 더이상 낯설지 않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행을 떠나며 그가 가진 많은 것들을 정리했다는 점이다. 물건들을 정리하며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사서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시냇물이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다시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36페이지)

 

 

 

작가는 여행을 준비하며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집을 둘러본다. 거실에는 기억자로 된 커다란 책장에 책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안방 뿐만 아니라 다른 방들에 걸쳐 책에 둘러 쌓여 있다. 그렇다고 이 책들을 다시 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몇 권에 한정된다. 헌책방에 팔아 누군가가 보게 할 수도 있다는 것. 작가의 말처럼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집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너무 천천히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었어.

특히 여행 같은 거 떠날 때는 더더욱 그랬지. 예약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을 보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맛있는 것 먹고 하루종일 얘기하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287페이지)

 

내가 이제야 느끼는 것들을 작가와 작가의 아내는 벌써 십 년 전에 느꼈다는 것이다. 그때 느꼈던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삶의 방식이 자유로운지도 모르겠다. 여행하는 삶. 여행자로 살아가는 그의 삶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곧 여행이므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과도 같은 삶인데 굳이 현실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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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20-05-1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책장 정리하면서 책이 많이 줄었다는것이 확실히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대략 300권정도 있던데, 함정은 읽지 않은책이 대부분이라는거죠. 더 열심히 읽어서 100권 미만으로 죽이는것이 목표랍니다~

Breeze 2020-05-19 09:04   좋아요 0 | URL
책을 좀 정리해야지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