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2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박승후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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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를 처음 접한 후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조금쯤은 예견되었다. 거미줄에 갇힌 손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나타난다. 거미줄을 만져본 적이 있는가. 옷에 달라붙거나 머리칼에 달라붙으면 무척 끈끈하여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들이 거미줄에 갇히는 것이다. 이 소설 또한 주인공의 주변에서 안타깝게 여겨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거미줄에 갇힌 사람, 그 사람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 여자가 옛 애인의 집에 불을 질러 출근한 옛 남자친구를 제외한 아내와 쌍둥이 딸들,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 죽였다. 살인죄로 잡힌 여자는 죄를 인정했고 사형에 처한다는 형벌을 받았다. 그때 여자 사형수가 한 말은 소설을 읽는내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태, 태어나서 죄, 죄,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던 거다. 태어나서 죄송하다니, 그것 만으로도 그 여자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였나를 나타내는 부분이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죄가 될 수도 있나. 겨우 스물대여섯 살의 나이인데 말이다. 



살인자가 된 다나카 유키노의 삶을 나타낸 말들은 처절했다. 열일곱 살의 호스티스 출신의 어머니, 사생아, 새아버지에게 받은 폭력, 중학교 시절 강도치사 사건. 이것만으로도 유키노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겼네 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언론에서 나타낸 말들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 유키노를 가둬놓을 뿐이다. 



재판 방청이 취미인 여자, 유키노의 어머니를 알았던 산부인과 의사, 유키노의 언니 유코, 중학교 시절 친구였던 리코, 전 남자친구 게이스케의 친구 사토시가 유키노에게 주어진 루머 속에 든 진실을 말한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유키노와 연관된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고쳐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유키노가 사형 판결을 받자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평생 감추고 싶은 일들을 사형으로 감출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는 거였다. 



유키노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엄마 히카루가 살아있을 때였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았던 유키노와 유코는 쇼와 신이치와 함께 언덕 탐험대를 만들어 누군가 슬퍼하면 같이 돕기로 맹세한 사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고 각자의 삶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인도를 여행하다가 뉴스를 보고 유키노가 어렸을 때 알았던 그 아이임을 알게 된 쇼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변호사 자격을 갖추어 사건에 더 가깝게 다가갔다. 그리고 사건을 파헤치는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신이치였다. 하지만 쇼나 신이치는 각자의 생각이 달랐다. 




사형 찬성론과 사형 반대론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다. 또한 유키노가 가장 행복했던 때로 돌아간다. 유키노의 어머니가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날 차가운 비만 내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삶에 절망한 여성이 마침 자기에게 다가온 상황으로 죽을 결심을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사회파 미스테리지만 한 여성이 겪어온 처절한 삶 때문에 안타까웠다. 프롤로그를 읽었음에도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듯하다. 누가 어서 그녀를 구해주기를. 그녀에게 주어진 멍에가 사실이 아님을. 탐험대들이 어서 그녀의 무죄를 밝혀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책을 다 읽고나서도 슬픔때문에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 친구를 위한 일이라 여겼으나 그녀의 삶이 어떻게 변하였는가. 가족이라는 이름은 또 얼마나 허울 뿐인가. 이러한 생각때문에 이 소설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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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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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내게 무엇인지일이란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을 만났다딸에 대하여의 작가의 신작으로 한 남자의 일에 대한 현재 우리의 민낯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었다.

 


국영기업체인 통신회사에서 26년을 일한 남자는 수리와 설치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 팀에 있었다새로 부임한 젊은 부장은 그를 호출해 희망퇴직 서류를 내민다그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희망퇴직 1순위에 들었다퇴직을 하지 않으면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하고교육 결과에 따라 업무와 전혀 상관이 없는 곳으로 갈 수도 있었다직원들은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나이가 많은 그가 퇴직해주면 좋을 것이라고 내비친다.





 

그는 그만두지 못할 경제적 핑계를 댄다고등학생인 아들 준오의 학비재개발을 기대하고 전세 보증금을 끼고 집값의 반을 대출로 구입한 다세대 건물의 대출금과 이자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의 병원비그리고 매달 빠져나가는 공과금 들을 생각했다경제적인 이유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물론 직장에서 쉬엄쉬엄 일해도 월급이 제대로 나왔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그저 직장에 적을 두고 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그가 한 직장에서 26년을 일해 온 건 마치 충성을 맹세한 군인과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는 타 지역 상품 판매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는 이 일이 그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업무도 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70페이지그는 상품을 하나라도 판매해 보려고 공장 주변의 중국인들에게 공유기를 교체해주었지만 회사에서는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랐다그가 어떠한 일을 했었는지회사에 관련된 말도 금지 사항이었다그는 점점 구석으로 밀려났다.


 

월급이 삭감되었고 그는 또 다른 지방 소도시로 발령이 났다그나마 그가 설치 팀에 있었다는 이유로 케이블 선을 끌어다 작업하는 일이 주어졌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그에게 퇴직 권유가 시작되었다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피해 다녔다사택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 메모지로 해야 할 말을 전달할 뿐이었다그는 분기국사에서 황 여사와 같은 팀으로 일했다황 여사는 전화교환원으로 입사했다가 교환국 업무가 사라지는 바람에 콜센터 부서에서 일했다고 했다. 30여 년간 상담 업무만으로 해온 황 여사에게 회사는 설치와 수리 업무를 주었던 것이다.

 


밀려날 대로 밀려난 사람들은 고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최나 권이라는 성으로 불릴 뿐이다새로운 발령지로 갔을 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7, 3식이그는 9번에 지나지 않았다서로 이름을 알 필요가 없었다그 전에 함께 일해 왔던 사람들은 호석이나상현한수종규로 불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잠시 머물다 갈 사람으로 여겼기에 서로를 깊게 알고 싶지 않았다.





 

문득 화순의 한 공원이 떠올랐다가을이면 국화 축제를 하는 공원으로 온갖 국화와 함께 핑크뮬리까지 있어 많은 관광객을 부르는 곳이다그곳에 가면 국화꽃 한가운데 거대한 철탑이 우뚝 서 있다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하지만 필요에 의해 세워졌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지금 생각해보니 소설 속 상황에서처럼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자파가 쏟아질 테고 미관상에도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철탑을 세우는 기업에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철탑이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이 이해되었다더군다나 노년에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살고 싶은 곳이라면 어떤 마음이겠는가그 또한 마을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는 왜 회사에 남아 있으려고 했는가그는 무엇을 지켜내고자 했는가자신에게는 안식처와도 같았던 회사에서 버림받았다는 것 때문이었을까거의 평생을 일해 왔던 곳이다그곳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퇴직을 종용받는 건 커다란 고통이었다그럼에도 그와 함께 커왔다고 여기는 회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내가 먼저 그만두는 것과 쓸모를 다해 버림받는다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그가 자주 떠올리는 과거의 잔상은 행복했던 때의 한 순간이다그는 왜 아무것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자신에게 다가올 여러 가능성을 다 흘려보냈다다른 삶의 방향을 꿈꾸지 못했다그는 잘 알지 못하는 동네 사람의 수평이 맞지 않은 빨랫줄을 손보고 균형이 맞지 않은 평상을 반듯이 맞춰주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그는 왜 이렇게까지 하나갖은 수모 때문에 절망하면서도 그는 왜 회사에 버티려 하는가가슴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은 듯 그렇게 답답했다이게 현실의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지금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어디선가는 이렇듯 버틸 때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기업은 기업대로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지만 못내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소설 속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이란 무엇인지직장이란 무엇인지 묻게 된다예전과 달리 평생 직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도태되면 살아남지 못하고 밀려나기 마련이다그럼에도 일은 또다른 나의 자아다비록 경제적인 이유를 무시할 수 없지만 일을 하며 자아를 성장시킨다이름이 아닌 9번으로 불렸던 그는 비로소 자기 해야 할 일을 한다왜 진작 하지 못했느냐고 묻고 싶지만 그는 그의 일을 했을 뿐이다우리가 그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그저 그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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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0-12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정확하게 제 얘기군요.
지나보면 다, 일도, 직장도 그저 사는 과정일 뿐입니다. 이제 저는 회사를 취미생활 비슷하게 마음 먹고 살고 있답니다. 이나마도 출근 안 하면 심심할 테니까요.
전 읽지 않으렵니다. 남이 자기 얘기하면 좀 그렇잖아요, 그죠? ㅋㅋㅋㅋㅋ 웃지만 좀 웃픔. ㅋㅋ

Breeze 2020-10-15 11:31   좋아요 1 | URL
남이 자기 얘기하면 읽기 싫으신거군요.
너무도 같아서.
저도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는데, 요즘 살맛 납니다. ^^

카알벨루치 2020-10-28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에 있을 때는 모르는데 밖에 나와보면 그 안이 보이는 것이죠 몇년전이 생각납니다 웃픈 이야기입니다 ^^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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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다 읽은 후 그 여운이 길었다. 무언가를 써야할 것 같은데, 계속 백석 시인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러다 발견한 게 김연수 작가의 음성으로 '연재를 마치고 난후'와 연재소설을 듣기 시작했다. 귓가에 맴도는 소설의 내용이 내 주변을 장악하고 나는 그렇게 한동안 소설 속에 빠져있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의 신작이라고 한다.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백지 상태에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시인 백석의 이야기였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혹은 '사슴'으로 유명한 시인. 소설 속에서 백기행으로 불리는 시인의 삶을 바라본다. 작가는 이 소설을 가리켜 '백석이 살아보지 않은 이야기'라고 하였다. 백석 시인이 살았음직한 이야기. 그가 북한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작가의 시선으로 마치 백석을 다독이듯 풀어낸 글이었다.  





백기행은 시인이다. 1957년과 1958년을 그리며 과거를 오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소위 문학을 한다는 시인이 북한에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충성을 맹세해야하고 어떻게든 수령을 찬양하는 문구를 넣어야만 하는 사회주의 체제다. 글 한 문장, 단어 하나때문에 문학을 하는 사람이 육체노동을 해야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시를 쓰지 못한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을 뿐이다. 샘솟는 말들을 침묵 속에 감추고 있어야 한다. 기행 뿐만 아니라 문학을 하는 많은 작가들이 그랬다. 기행의 벗인 준이 말했다. 이런 세상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를 속일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말이다.

 

 

북한의 작가 외에도 러시아의 시인인 빅토르와 벨라를 등장시킨다. 벨라가 북한의 조선작가동맹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기행과 만나게 되었다. 벨라의 옆에서 통역을 하고 헤어질때 자신이 쓴 시가 든 노트를 건넸다. 빅토르와 벨라는 세로로 길게 쓰여진 시, 그 시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러시아와 북한이 처한 상황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기행이 벨라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기행의 생각을 대변하고, 작가의 생각을 말해주는 듯 하다. 마음속으로 죽여야만 하는 단어와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말이다.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 (165페이지)

 

 

사회주의 체제에서 문학은 어쩌면 죽은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가 사회주의 체제에 반하여 그들이 원하는 글을 쓰지 못했을때 멀리 삼수군의 축산반으로 내처졌다. 글을 쓰지 못하니 차라리 몸을 사용하는 일이 편했다. 기행이 합숙소가 아닌 사무실에서 수많은 편지를 쓰고 시를 썼다 난롯불에 태우는 작업을 밤마다 계속했다. 언어가 막히고 단어가 막힌 곳에서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비록 보내지 못하는 편지이고 발표되지 못하는 시였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비로소 그 사회주의 체제에 순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므로.  

 



 

 

언어를 모르는 불행과 병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어는 뜻밖의 방식으로 인간을 위로한다. 당신, 이미 죽은 사람, 이라는 말. 그 겨울의 골짜기에서 당신도 얼어붙고 당신의 노래도 얼어붙었다는 말. 그리고 봄에 내가 당신의 노래를 분명히 들었다, 는 말. (213페이지)

 

 

수령을 찬양하는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기행이 안타까웠다. 그것을 써야만 했을 그 마음 때문이었다. 작가는 시인을 계속 기행이라고 불렀다. 시인이기 전에 기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으로 보았음직하다. 언어와 단어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마음의 소리를 죽여야만 했던 그의 내면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단어를 가지고 시를 쓰는 시인이므로 단어와 언어와 화해해야 했다. 러시아의 언어에 매달렸어도 조선의 단어와 언어에서 나오는 그 그리움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비교적 짧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백석의 삶을 말하는 글에서 아픔을, 안타까움을, 같은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애정과 다정한 위로가 감동적이다. 우리가 그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집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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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지극히 사적인 미술 에세이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에서 미술에 관한 철학적 시선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 다산책방에서 출간된 신작도 미술 에세이로 읽힌다. 그렇지만 이 책은 사뮈엘 포치라는 한 남자를 필두로 그와 교류를 했던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시절, 벨에포크 시대를 엿보게 한다. 




줄리언 반스는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전시된 빨간 코트를 입고 서 있는 사뮈엘 포치의 사진을 보고 깊이 매료되어 이 책을 쓰기에 이르렀다. 사뮈엘 포치를 그린 그림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이름도 낯설다. 그렇지만 사뮈엘 포치는 '1901년 프랑스 최초의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전 세계적으로 '표준 교과서'로 인정받은 부인과학 논문을 쓴 저명한 의사'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885년 여름, 프랑스인 세 사람이 런던 방문을 하였다. 자신들의 목적을 '지적이고 장식적인 쇼핑'이라 일컬었다. 그들은 한 명은 왕자, 한 명은 백작, 다른 한 명은 이탈리아 계 성을 가진 평민이었다. 왕자는 에드몽 드 폴리냐크, 백작인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페젠사크, 이탈리아 계 성을 가진 평민은 닥터 사뮈엘 장 포치였다. 몽테스키우를 우리에게 익숙한 사상가 몽테스키외와 같은 인물로 보았으나 다른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집에 있는 닥터 포치> 존 싱어 사전트


사뮈엘 포치와 교류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많다.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집에 있는 닥터 포치>를 그린 존 싱어 사전트가 쓴 소개장을 들고 찾아간 헨리 제임스를 비롯해 공쿠르 상의 주역 에드몽 드 공쿠르, 위스망스, 마르셀 프루스트, 오스카 와일드 등이다. 뿐만 아니라 알퐁스 도데와 그의 아버지 레옹 도데와 19세기 프랑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이디스 워튼, 장 로랭 등도 있다. 전기작품을 통해 그들과의 인연을 찾아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여겨졌다.  



책을 보면 오스카 와일드의 사건을 꽤 비중있게 다룬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샬로메』 를 쓴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를 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들이 언급되었다. 그 시대에는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취급하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나누었던 듯 하다. 포치와 가까운 관계였던 몽테스키우나 폴리냐크 또한 동성애자였다. 마치 유행처럼 남자들이 남자들과 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사뮈엘 포치 또한 동성애자였다는 건 아니다. 포치는 결혼하여 아내와 딸과 아들이 있었다. 문제는 이 시대에 남자들에게 결혼은 그저 아이를 낳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점이다. 쾌락은 집밖에서 해결하였다. 정부를 두고 여러 여자와 염문을 뿌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포치는 의사이자 외과 의사, 사교계의 명사였다. 줄리언 반스는 프랑스 독서에서는 포치를 만난 적이 없었고, 미술잡지에서 '프랑스의 부인과학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여성 환자를 유혹하려 한 확인된 성 중독자'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수많은 여성들과 사귀었고 포치의 아내인 테레즈와 딸 카트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카트린의 이야기도 언급했는데, 카트린은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했던 것 같았다. 





포치는 부인과학을 독자적인 분과로 바꾸어 놓았다. 남성 의사가 여성 환자의 질을 진찰하는 것을 '환자의 도덕감 해이'를 가져올 수 있으니 '여성에게 절박하게 필요할 때'에만 해야 한다고 말했던 미국의 찰스 메이그스와 달리 포치는 검경을 이용하는 진찰과 양손을 사용하는 진찰을 비교하면서 여성의 편안함을 위해 먼저 검경을 소독한 물로 따뜻하게 데우라고 권했고, 진찰하는 동안 환자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아본 여성이라면 느꼈을 법한 일이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여성 의사가 있는 병원을 다니다가 양수가 부족하여 대학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느낀 그 상황이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무래도 포치는 부인과학을 이끄는 전문의로 환자에 대한 진료를 즐기지 않았나 싶다. 



책에는 수많은 인물들의 사진들 뿐 아니라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포치의 사진들이 많고 다양한 인물들이 담뱃값 속에 들어있는 카드 섹션처럼 보이는 사진들도 많았다. 사뮈엘 포치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류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이끌었던 벨에포크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들을 만날 수 있게 했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기질 때문에 혹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들의 재능들때문에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예술은 예술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더불어 사뮈엘 포치라는 인물을 알게 되어 더욱 값진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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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28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내용이 궁금했는데 소개글 장 읽었습니다. 곡 저도 읽고싶네요

Breeze 2020-09-29 10:26   좋아요 0 | URL
벨에포크 시대의 다양한 인물들과 닥터 포치에 관한 이야기들이 흥미로웠어요.
감사합니다. ^^
 
예술의 쓸모 - 시대를 읽고 기회를 창조하는 32가지 통찰
강은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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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다. 그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게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에서 였다.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다. 책 속의 그림과 빈센트 반 고흐의 삶에 대하여 알게 되어 그의 그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림이 실려 있는 책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그림을 좋아하긴 하였으나 제대로 그림에 관심을 더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뒤부터 나는 그림과 예술 관련 책을 읽고 사 모으고 있다. 



나를 반 고흐의 그림으로 이끌었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는 고흐의 동생인 테오가 엮었다고 생각했으나 고흐가 죽은 뒤 얼마되지 않아 역시 세상을 뜬 테오의 아내 요한나가 엮은 책이다. 비운의 화가인 고흐와 그를 보살폈던 미술상 테오가 나눈 편지들을 버리지 않고 고흐의 그림을 알리기 위해 책을 활용했다. 그로 인해 천재적인 화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던 것이다. 돈 맥클린의 음악 <빈센트>를 사랑했던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책 속에서 저자도 말하였지만, 예술은 우리에게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줄 뿐만아니라 얼어붙은 감각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림을 바라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 『예술의 쓸모』는 마음의 위안을 얻음과 동시에 그림을 바라보며 통찰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과 어디까지 예술이 될 수 있으며 예술을 통해 삶의 자세를 말한다.



그림을 혹은 예술을 잘 알지 못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쓴 글이다. 거창한 지식 없이도 가능하단 이야기다. 그림을 통해 예술가의 생애를 알게 되고 그림의 화법이나 화풍을 가르는 글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예술에 대한 지식이 쑥쑥 올라감을 느낄 것이다. 전에 다른 책에서도 볼 수 있었던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 이 책에서도 언급되었다. 자코뱅 소속이었던 다비드가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에 혁명가로 활동했다가 나폴레옹의 도움으로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을 말하는 부분이었다. 오래전 '나폴레옹'이라는 술이 있었던 듯한데 그 술병에 그려진 그림이 다비드의 그림인 것 같다.(내 기억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로렌스 알마 타데마는 고향을 떠나 런던을 택했다. 사회적으로나 미술적으로도 격변기의 시기에 낭만을 선사하는 전력을 세워 큰 인기를 끌었다. 스승으로부터 고전적인 기법을 익혔고 이탈리아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그의 그림은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마치 유토피아에 있는 것처럼 마음을 즐겁게 한다. 




<기대> 로렌스 알마 타데마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스토리텔링 만한 게 없다. 예술서적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그러한데 이 그림을 먼저 알게 되고 동명의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콜린 퍼스와 스칼렛 요한슨이 나온 영화였는데 스토리가 굉장히 아름다웠다. 원작 소설이 따로 있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쓴 작품을 영화화 한 것으로써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리게 된 과정을 나타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그러고보면 스토리텔링처럼 중요한 게 없다. 페르메이르의 삶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페르메이르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리게 된 과정은 무척 흥미로웠다. 새로운 이야기의 탄생이며, 그 그림을 달리 보게되는 효과가 있다. 더불어 페르메이르라는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나치가 강탈한 각종 예술품을 회수하던 중 헤르만 괴링이 보관하던 페르메이르의 <그리스도와 회개하는 여인>을 발견했다고 한다. 국보급 문화재를 나치에 팔아넘긴 화가이자 미술품 중개인인 반 메헤렌을 체포하였으나 그 작품이 직접 그린 위작이었다는 폭로를 하였던 에피소드도 말한다. 당대의 저명한 미술 평론가 또한 진품으로 인정했다하니 위작 소동을 통해 평론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평단을 골탕먹이려 했던 메헤렌이 위작 작업을 계속 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키스> 구스타프 클림트


클림트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키스>이지 않을까. 황금빛으로 이루어진 한 남자와 여자가 키스하는 그림이다. 그 색채가 아름다워 누군가의 집에도 이 그림을 걸어놨던데 다시봐도 참 아름답다. 매우 화려하고 밝게 보였던 그림인데 자세히 쳐다보면 몽환적이고 화려한 분위기가 낯설고 불안하게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클림트의 <죽음과 삶>이라는 그림을 보면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죽음이라는 그림자의 어두운 내면을 나타냈다. 가족의 죽음때문에 평생 죽음과 유전병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쩐지 서글프다. 



오랜만에 그림 관련 책을 읽고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답답한 시간들을 견디기 힘들었었는데 책 속의 그림들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이처럼 그림은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며 커다란 깨달음을 준다. 저자가 설명하는대로 따라가다보면 예술에 대한 통찰력으로 깊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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