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침묵 그 자체다. 비밀을 안고 가기 위해 죽음을 택하기도 하고 더이상의 상황 변화를 막기 위해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침묵은 곧 죽음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다. 침묵이라고 했을때 어떤 평범한 것들에 대하여만 생각했었는데 그 원초적인 건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그저 죽은 자의 유품을 수집하여 박물관을 차리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 소설은 꽤 그로테스크하다. 죽은 자의 유품을 갖기 위해 열쇠를 몰래 따고 들어간다는 설정 자체가 그렇다. 연쇄살인이 있던 장소에 간다는 건 살인자로 비춰질 수 있는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죽음이 가리키는 무언가를 찾기 바랄 뿐이었다. 새로운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면접을 보러왔던 박물관 기사 '나'는 그렇게 이 마을과 자신의 업무인 죽은 사람의 유품 찾는 일에 동화되어 간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노파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었다. 꽤 거칠게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면접에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는 짐을 풀지 않고 하룻밤을 보냈다. 어머니의 유품이었던 『안네의 일기』 만은 잠자리에서 읽던 습관을 그대로 이행했다. 다음날 노파의 손녀뻘로 보이는 소녀가 자신을 찾아와 마을을 돌아보자고 했다. 죽은 자의 유품을 건지기 위해서는 마을을 알아야 했다. 

 

죽음이 이렇게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나 싶게 마을에서 죽은 자가 발생한다. 세금을 내지 않도록 귀를 자르는 일을 했던 한 의사의 죽음에 그가 사용했던 메스를 훔쳐오는 일부터 시작했다. 오전에 노파에게 유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적는 작업을 하던 그는 유품만 보고서도 막힘없이 이야기하는 노파가 신기했다. 그 나이쯤이면 많은 것을 잊을 법한데도 노파는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소녀와 함께 유품의 색인 작업과 함께 정원사의 도움을 받아 전시관을 만드는 작업은 순조롭다. 드디어 '침묵 박물관'이라는 명패를 만들어 그럴듯한 박물관의 형태를 갖추었다. 

 

죽은 자들을 기리는 유품을 전시할 박물관을 만드는 작업을 함과 동시에 기사는 누군가가 죽으면 그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나타내는 유품을 챙겨오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여자들만을 노린 연쇄살인이 50년 만에 다시 시작되자 마을은 공포에 떤다. 박물관 기사는 죽은 여자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 여자를 가리키는 유품을 찾으러 갔다가 누군가에게 들켜 달아난다. 그때부터 경찰관 둘이 그를 찾아오기도 하고 감시하는데 되도록이면 그들 눈에 띄고 싶지 않다. 

 

박물관 기사는 과학교사인 형이 사용했던 현미경 바라보기를 즐긴다. 또한 엄마의 유일한 유품인 『안네의 일기』는 늘 여행가방의 맨 위에 차지한다. 그는 형에게 편지를 쓴다. 형수가 아이를 낳았는지, 아이에게 줄 알공예품을 사서 부치지만 이상하게 형에게서는 답장이 없다. 기사는 정원사와 밤에 술을 함께 마시곤 했다. 정원사가 만들어 준 잭나이프로 죽은 자의 유품을 찾는데 사용하기도 하는데 정원사는 잭나이프를 여러개 똑같이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재주를 가졌다. 


 

 


마을의 분수대 앞에는 수행을 하는 침묵의 전도사가 있었다. 흰바위들소의 털가죽만 걸친 침묵의 전도사는 침묵하는 수행자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가서 발설하기 어려운 비밀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 비밀은 절대 새어나가지 않았다. 박물관 기사가 처음 침묵의 전도사를 보았을때 어떤 여자가 다가가 무슨 말인가를 하는 거를 보았고, 박물관 기사 또한 배를 젓던 수습 전도사 소년(침묵의 전도사가 된 후)에게 다가가 자기가 알게된 비밀을 말하였다. 

 

죽은 자들의 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도 침묵 박물관이고 수행자들도 침묵의 전도사들이다. 침묵 수행은 자기 안의 것을 밖으로 표현할 수 없을 뿐이지 밖에서 들어오는 건 거부하지 않는다. 즉 육체를 버리고 마음 속으로 망명하는 게 침묵 수행이다. 반면 유품 전시는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박물관 기사 또한 침묵 박물관의 유품들을 전시하며 드디어 자신에 가둬두었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죽음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젠가를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즉 이 소설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삶과 죽음은 소중하고 중요한 거라고 깨우치게 한다. 때로는 잊히고 때로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죽음이 남긴 유품들은 그렇게 우리들의 곁에 살아 움직이듯 할 거 같다. 이 소설이 가진 이야기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침묵박물관  #오가와요코 #이윤정  #작가정신  #책  #책추천  #책리뷰  #소설  #소설추천  #일본소설  #일본문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