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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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 시리즈를 처음 읽었던게 『스노우맨』이었다. 눈사람이라는 어린시절의 동화를 강렬하게 비틀어 심장을 쫄깃하게 했던 소설이었다. 이 작품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요 네스뵈 작가의 이름이 부상했고, 이어 그의 작품들이 쏟아졌다. 요 네스뵈라는 작가의 북유럽 감성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한없는 사랑을 주는 해리 홀레라는 인물에 빠졌다고 해야겠다. 개인적으로 보면 해리 홀레라는 인물이 썩 매력적이지는 않는다. 일단 알코올 중독자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력반 경찰로서의 역할과 능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나지만 알코올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찰로서의 긍지와 사건 해결의 능력때문에 그의 매력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아마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모아보니 아래 사진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작품 순서는 조금 다르지만, 『데빌스 스타』와 『스노우맨』의 사이에 낀 『리디머』가 곧 출간된 예정이다. 그래서 기다리는 자의 가슴은 벌써부터 심장이 쿵쿵 댄다. 『레오파드』의 다음 작품인 『팬텀』은 『스노우맨』에서 살인범때문에 죽을 위험에 처했던 라켈이 무사히 살아 남자 그녀는 아들 올레그를 데리고 멀리 떠나버렸었다. 이에 상심한 해리 홀레 또한 홍콩에서 그와 어울리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가 다시 올레그 때문에 그의 본거지 오슬로로 돌아오게 되었다.

 

모든 시리즈가 그렇듯, 여태 강력반 형사 생활을 해오던 해리 홀레도 『스노우맨』에서 손가락을 하나 잃고, 『레오파드』에서는 얼굴의 절반을 가르는 흉터를 지니게 되었다. 또한 『스노우맨』에서 아직 어린 아이였던 올레그가 어느새 열여덟 살이 되었다는 것. 올레그가 마약 중독자가 되어 살인범으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구스토를 죽였다는 살인범으로 말이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올레그가 마약중독자가 되었다니 해리의 마음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에게는 자신의 모든 마음을 털어놓았던, 해리에게는 아들과 다름 없었던 올레그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마약 중독자를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외국의 소설에서는 종종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강력하게 단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약물이나 술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마음이 여리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약물이나 술에 의지해 결국엔 자신의 삶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올레그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죽을 위험에 처했다가 무사히 살아남고 친아빠처럼 여겼던 해리 홀레와 헤어진 마음을 마약으로 견디고자 했을 가능성이 많다. 외로웠던 그에게 다가온 친구, 외로움을 이기고자 마약에 빠지게 되었던 경우다.  

 

해리가 감옥에 있는 올레그를 찾아갔을때 올레그가 했던 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해리를 지키고자 입을 다물었던 올레그. 그런 올레그를 지키고자 머나먼 홍콩에서 찾아온 해리 홀레. 그렇지만 해리는 사건이 해결되면 언제든지 바로 떠날수 있게 호텔에 짐을 풀지 않았다.

 

 

해리 홀레 특유의 수사를 시작했다. 사건의 현장을 방문한 해리.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건 장소를 둘러 보았다. 과학수사과 요원들이 하는 시체가 누워있던 장소부터 시작해 주변으로 확대해가는 방식보다는 그는 먼저 전체를 둘러보는 방식을 좋아했다. 거기에서 그는 형사나 과학수사 요원이 놓칠만한 것을 건져내곤 했다. 그는 뇌를 최대한 가동시켜 사건 장소를 눈에 담는다. 사건 장소는 그의 뇌를 자극시켜 머릿속이 깊이 각인되어 시간이 지난 후에 언제든 불러올 수 있다.

 

해리는 올레그가 구스토를 죽였다면 그를 왜 죽였는지, 동기가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 올레그의 무죄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죽였는지 의문을 던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즉 '의심'으로 시작된 사건 수사였다. 해리의 마음 저변에는 올레그가 죽이지 않았을 거라는 가정하에 수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 스스로 느꼈던 바 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건 수사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명철한 두뇌를 가동시키는 그이기에 사건을 재조사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요 네스뵈의 소설 답게 결말 부분의 반전이 놀랍다.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하지만 한가닥 의심을 품었던 게 사실이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노르웨이는 작은 동화의 나라' 라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스노우맨』에서도 느꼈던 바지만 노르웨이는 북유럽 동화의 나라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신종 마약을 새롭게 만들어 판매해 돈을 취하고, 마약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지옥으로 빠지는 결과를 낳는다. 동화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이처럼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작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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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1-1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사야겠네요 ㅠㅠㅠㅠ

Breeze 2018-01-10 12:03   좋아요 1 | URL
책 재미있습니다. ^^

물감 2018-01-1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 모으셨네요. 두께의 압박으로 한번도 못읽었는데 대단하십니다😅

Breeze 2018-01-10 14:02   좋아요 1 | URL
해리 홀레 시리즈를 워낙 좋아합니다. 그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거든요. ^^

2018-01-11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1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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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좋다. 그 무엇보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타인의 삶을 보고, 소설 속에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경험한다. 내가 꿈꾸었지만 실행해보지 못했던 마음속의 꿈.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것들의 대리 경험이랄까. 나는 소설 속에서 유럽을 여행하고, 새로운 남자와 사랑을 하고, 전혀 내가 생각지 못했던 삶을 산다. 마치 아름다운 꿈을 꾼 것처럼 빠져 있는게 좋다고 표현해야 할까. 내가 소설을 읽는 일이 그렇다.

 

소설을 읽는 일 외에 한동안 심리학에 빠져 있었다. 심리학 관련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고, 프로이트 심리학에 더 심취해 있었다. 작가들이 쓴 문학과 심리학에 대한 책도 자주 읽었고, 어릴적 트라우마를 심리학으로 이겨냈다는 작가의 글도 찾아 읽었다. 수많은 문학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종종 심리학을 경험한다. 콤플렉스나 트라우마를 겪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작품들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는 것. 문학과 심리학이 이처럼 끈끈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정여울의 신작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는 마음을 다독이는 글이다. 내 안의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었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들과 대입해 볼 수 있다. 트라우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컫는 말이다. 어릴 적 상처때문에 마음 속에 자리잡은 트라우마는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힘들게 한다. 저자는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내면 아이를 다독이라고 말한다. 결국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야 제대로 치유할 수 있다.

 

내 안의 괴물과 싸워 이기기 위해, 우리는 '그 무엇과도 용감히 대적할 수 있는 내안의 힘'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의식이 아직 느끼지 못할 때조차도, 우리 무의식 안에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자기 안의 현자'가 있다.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고, 모든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자기 안의 가장 용감하고 지혜로운 멘토가 있다. 바로 그런 자기 안의 멘토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내적 성장의 황금열쇠다. (14페이지)

 

 

 

 

 

 

작가 정여울은 서른 편의 작품을 소개하며 심리학에 연관된 문학 작품을 말한다. 읽었던 작품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읽지 않은 작품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을 느끼며 우리는 우리 안의 내면 아이를 들여다 본다. 제목에서처럼 늘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엔 내 안의 내면 아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임을 깨닫는다.

 

나에게 콤플렉스가 있다고 고백하는 순간 상처가 반은 치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추려고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는 줄곧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고,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썼다. 타인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의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겠는가.

 

 

 

나와 닮은 상처를 지닌 타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상처는 흠칫 놀란다. 타인의 상처라는 거울에 비친 내 상처의 투명한 민낯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나와 닮은 상처를 지닌 사람에게 이끌린다. 그것은 매혹와 증오의 양가감정이기도 하다. 내 상처의 데칼코마니 같은 그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고 싶은 충동과 결코 그 상처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은 충동이 격렬하게 사투를 벌인다. (92페이지)

 

우리 문학 작품 속의 인물에 깊이 이입되는 것도 내 안의 상처를 들여다 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안의 상처와 마주하며 눈물을 흘리고 기쁨을 느끼는 것. 우리 안의 내면의 아이와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면면들을 작품 속에서 자신의 경험과 함께 말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싫으면 싫다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배워가야 할 일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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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8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9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1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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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라는 부제 때문에 이 소설이 더 궁금했다. 사랑했던 아내가 죽은지 1 년째 되는 날. 아서 페퍼의 슬픔이 그대로 묻어나는 하루의 일상이었다. 아내가 있었던 때 처럼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회색 바지와 겨자색 민소매 티로 갈아 입고, 평소처럼 아침을 맞이하는 남자. 다만 커다란 식탁에 홀로 앉아있다는 것만 다를 뿐. 슬픔에 빠져 있다보면 다른 사람의 호의를 느끼지 못한다. 홀로 된 그에게 파이 등을 가져다 주면 그를 들여다보는 버나뎃을 피할 정도다. 이제 아서 페퍼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딸 루시의 말처럼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아내의 물건을 정리해야만 했다.

 

아내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신지 않았던 부츠 속에서 참팔찌를 발견했다. 아내 미리엄이 살아 있을 때는 보지 못한 화려한 팔찌였다. 팔찌에는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반지, 하트의 참들이 달려 있었다. 소박한 삶을 살았던 아서와 미리엄에게 어울리지 않는 팔찌였다. 꽤 값이 나가보이는 코끼리에 적힌 글자를 발견했다. 아내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머나먼 인도에 전화를 걸었다. 그곳에서 메라 라는 남자에게서 결혼전 아내가 자신의 보모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와 함께 머물렀던 공간에서 움직일 줄 몰랐던 남자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새로운 모습,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내력을 알고 싶었다. 아내가 머물렀던 흔적을 찾아 난생 처음 새로운 곳을 향해 길을 떠났던 것이다. 부담스럽다고 여겼던 버나뎃과 버나뎃의 아들 네이든이 모는 자동차를 타고 말이다.

 

어떤 삶이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서 페퍼가 아내의 부츠 속을 더듬지 않았더라면 아내의 참 팔찌는 누군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을 것이고, 아서 페퍼는 자신과 만나기 전의 아내 모습을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신이 모르는 아내의 삶이 두렵고 불안했지만 그것을 향해 나아갔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며 낯선 사람과의 우정을 나눌 수도 있었고, 아내의 담당이었던 딸과 아들과의 관계도 다시금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미리엄이 걸어왔던 삶은 자유롭고 열정적이었다. 자신과의 삶이 너무 무료하지 않았을까 염려했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픔을 간직했으나 누구보다도 아서와의 삶을 사랑했던 미리엄이었다.

 

앞서 아들 댄과 루시는 아내 미리엄의 담당이었다고 했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딸과 아들이었다. 아내의 장례식에 조차 참석하기 어려웠던가. 서운했던 마음도 있었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묻지 않았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했다고 해야 맞겠다. 하지만 미리엄의 자취를 살펴보며 자식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편함을 느꼈지만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이웃들의 새로운 관계도 달라졌던 것이다.

 

어쩌면 나도 이 웅덩이에 갇혀 있었던 건지 몰라. 그가 생각했다. 비록 두려운 미지의 세계일지라도, 나도 바다로 나아가야 해. 그러지 않으면 말라 죽어버릴 테니까. (368페이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가 마음을 열고 사람들을 대하게 되니 그들도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닫았던 마음을 열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딸 루시와의 관계도, 아들 댄과의 관계도 달라진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만 빠져있지 않고, 이제 그만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누구나 삶이 어렵다.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있어 우리 사회는 아직 따스한 관계를 유지하는지도 모른다. 미리엄을 잃은 아서를 늘 살펴주었던 버나뎃이 있었고, 버나뎃의 아들 네이든의 말을 묵묵이 들어주었기에 아서와 마음을 터놓는 관계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앞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 역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일지라도 우리는 배워야 할 게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가족과 사랑하는 방법도, 누군가를 포용하는 것도, 용기를 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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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이우일 지음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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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태국을 여행할 때 신랑과 나눈 이야기가 있다. 신랑 퇴직후 따뜻한 나라 태국에서 한두 달쯤 머물다 가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어느 나라든 어느 도시든 며칠을 머무는 여행이 아닌 한두 달쯤 살아보는 여행. 꼭 태국이 아니어도 좋다. 익숙한 장소를 떠나 제주도든,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머물다 오자는 말을 했다. 친구네 가족과 함께 하면 더욱 좋을 것 같아 함께 여행간 친구네 부부와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왕이면 함께 다니자고.

 

틀에 박힌 듯 생활하고 있는 우리. 익숙한 도시를 떠나는 여행이란 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이유도 되고,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삶을 향한 원동력이 되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다. 나는 다른 데 덜 쓰고 여행하자는 주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좀더 즐겁고 행복하자는 것이 아닐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삶을 잘 사는 것이리라.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만약 자유로운 직업을 가졌으며, 꼭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이라면 이들처럼 우리나라를 떠나 세계의 어느 곳에서 일이 년쯤 머물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것도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삶은 곧 여행이며, 여행이라는 것도 며칠 머무는 게 아닌 일이 년쯤, 어쩌면 더 적은 한두 달쯤 머무는 여행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왜 나는 자꾸만 낯선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걸까. 이유가 특별히 없다면 그 자체가 바로 목적이 아닐까. 어쩌면 새로움과 낯섦을 찾아 헤매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목적일지 모른다. (9페이지)

 

이 여행산문집은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인 이우일이 역시 만화가이자 그림책 작가인 아내 선현경과 그림을 공부하는 딸 은서와 함께 미국 오리건주 북서부에 위치한 포틀랜드에서의 이 년 동안 살면서 그곳의 풍경을 전하는 책이다. 처음에 이 책을 받아들고 '퐅랜'을 '플랜'이라고 잘못 읽고는 어떠한 계획에 대해 말하는 책인가 보다 했다. 하지만 여행산문집이라는 것에 다시 보았다. '퐅랜'은 '포틀랜드'의 영어식 발음을 그대로 가져온 제목이라는 걸 알고는 만화가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시계를 가지고 있다. 모양도 보는 법도 제각각이지만 시계를 가진 건 분명하다. 누구나 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시계 관리는 순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다. 그걸 보든, 버리든, 분해하든, 뭘 해도 상관은 없다. 고장이 나는 것도 자기 책임이고 잃어버려도 하는 수 없다. 중요한 건 누구나 하나씩 있긴 있다는 거다. (86페이지)

 

포틀랜드의 비오는 풍경을 상상했다. 일년에 6개월쯤 비가 내려도 퐅랜 사람들은 누구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는 그곳 말이다. 일 년의 대부분이 비가 내리는 이곳이 어쩌면 소설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들이 머무는 곳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소설에서는 포크스라는 걸 나중에야 발견했지만 말이다. 비가 와도 퐅랜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우산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여행자들. 저자 또한 처음엔 우산을 썼지만 나중에는 퐅랜 사람처럼 우산을 쓰지 않고 다녔다는 거.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느끼는 찰나였다.

 

아마 포틀랜드의 풍경을 그려보자면 수염을 기른 남자들과 거의 모든 퐅랜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타투, 우산을 쓰지 않는 사람들. 느리고 여유롭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느리다는 건, 순서를 지키고, 정확하게 일하는 것, 차례를 지키고, 법을 지키는 것이 가장 능률적이고 바른 방법이라는 것을 말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고작 일 년을 살았을 뿐인데 집으로 돌아온 기분을 느껴도 되는 걸까? 집을 떠나 드디어 집에 도착한 것만 같은 이 평온한 기분이라니. (190페이지)

 

만화가 답게, 포틀랜드의 풍경,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 삽화가 실려 있었다.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퐅랜의 풍경들에서 저자처럼 한 번쯤 퐅랜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여행이란 게 스치듯 다녀가는 곳이 아닌 최소 몇 달, 일이 년쯤 살아보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북적대는 곳이 아닌 소도시의 차분함과 정겨운 풍경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나도 그곳을 좋아할 수 있겠다는 어떤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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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22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Breeze 2017-12-22 22:4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2017-12-23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4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30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eeze 2018-01-03 10:2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문님도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2018-01-03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12-31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내일부터는 2018년 새해가 됩니다.
새해에는 가정과 하시는 일에 좋은 일들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따뜻한 저녁, 희망 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reeze 2018-01-03 10:2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즐겁고 자주 웃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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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아름다움을 엿보고 관심을 가진게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일 것이다. 학교다닐 적부터 역사를 좋아해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우리의 유물들에 대한 기록들이 좋았다. 지금에 와서 든 생각이지만 왜 역사를 전공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이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를 전공했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텐데. 이런 생각을 너무 늦게야 했다는게 문제긴 하다.

 

역사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의 과거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대한 치욕스러운 역사 때문에 어떻게든 일본을 이기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고구려, 신라, 백제 중에서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가 백제이다보니 백제가 가진 유산이 제대로 남아있을리도 없고, 역사적 기록 또한 폄하되었기 마련이었다. 우리가 초등학교때부터 배워왔던 역사 시간에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이 삼천 궁녀와 함께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다고 하지 않았나. 나 또한 아이들 어렸을 적에 부여에 있는 낙화암을 방문해서 저 곳에서 삼천 궁녀와 함께 의자왕이 뛰어내린 곳이라고 설명했을 정도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그곳은 삼천 명의 궁녀가 뛰어내릴 곳이 못된다. 아주 좁은 장소. 그곳을 흘러가는 백마강 또한 아주 얕다는 것을 발견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니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 또한 사실이다.

 

많은 역사가들이 신라나 고구려를 연구한 것 때문에 신라의 유적과 유물을 사랑했다. 자주 경주를 방문하고 과거 역사속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 가슴 뭉클했었다. 이는 신라를 연구한 학자들이 많았기에 그만큼 우리가 습득한 지식도 많았으리라. 이제는 백제에 주목할 때인가. 『내가 사랑한 백제』라는 다소 로맨스 소설적인 제목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나 또한 전라도에서 나고 자라 현재도 살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백제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그렇게 생각했 듯 말이다.

 

백제를 연구한 학자 때문에 백제의 유적과 유물들을 살펴보고, 우리가 백제를 알아야 할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백제는 고구려의 문물을 가져와 백제식으로 만들었으며, 이를 일본이 영향을 받아 그들이 꽃피운 아스카 문화를 만들어 낸 원동력이 되었다.

 

 

 

박물관 수장고에 남겨진 보물들은 그 가치를 알아 보는 사람의 눈에만 보물로 보인다. (173페이지)

 

나의 시각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백제가 다르게 보이고, 백제 유물이 달리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364페이지)

 

일제 강점기때 일본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유적들을 파헤쳐 유물들을 몰래 빼돌렸다. 그들은 미개한 조선인들을 위해 유적들을 발굴해 박물관 건립을 했다는 식의 말을 했지만 결국엔 조선의 유물들을 약탈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현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인 저자 이병호는 20여년 간 국립박물관에 근무하면서 박물관에 있는 백제의 유물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백제사 연구에 매진했던 학자다. 사료의 부족으로 연구되지 못한 백제의 유물과 유적 파편으로 존재할 뿐이었던 것을 연구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도록 기틀을 마련했다고 보아야겠다. 그는 정림사지의 소조상과 능산리의 목간, 연꽃 문양을 가진 기와의 수막새를 분석했으며, 능산리 사지의 가람배치 등을 밝혀낸 인물이다.

 

우리나라에서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백제의 아름다움을 탐했다. 아스카 문화를 꽃피운 백제의 아름다움에 일찍이 눈을 떴던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출생해 살아온 배경과 어떤 공부를 했으며, 국립박물관에 들어와 자신이 했던 백제사의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마치 산문처럼 다정하며 백제의 아름다움을 익히 터득한 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던 글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부여를 방문했었다. 최근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조만간 부여 여행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익산에 백제의 유적인 미륵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한번도 유적지 여행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는데 이 책으로 인해 마음을 굳혔다. 부여와 익산에서 새롭게 백제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다. 저자가 속해있는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역시 책을 읽은 자만이 꿈꿀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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