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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평점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라는 부제 때문에 이 소설이 더 궁금했다. 사랑했던 아내가 죽은지 1 년째 되는 날. 아서 페퍼의 슬픔이 그대로 묻어나는 하루의 일상이었다. 아내가 있었던 때 처럼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회색 바지와 겨자색 민소매 티로 갈아 입고, 평소처럼 아침을 맞이하는 남자. 다만 커다란 식탁에 홀로 앉아있다는 것만 다를 뿐. 슬픔에 빠져 있다보면 다른 사람의 호의를 느끼지 못한다. 홀로 된 그에게 파이 등을 가져다 주면 그를 들여다보는 버나뎃을 피할 정도다. 이제 아서 페퍼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딸 루시의 말처럼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아내의 물건을 정리해야만 했다.
아내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신지 않았던 부츠 속에서 참팔찌를 발견했다. 아내 미리엄이 살아 있을 때는 보지 못한 화려한 팔찌였다. 팔찌에는 코끼리, 꽃, 책, 팔레트, 호랑이, 골무, 반지, 하트의 참들이 달려 있었다. 소박한 삶을 살았던 아서와 미리엄에게 어울리지 않는 팔찌였다. 꽤 값이 나가보이는 코끼리에 적힌 글자를 발견했다. 아내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머나먼 인도에 전화를 걸었다. 그곳에서 메라 라는 남자에게서 결혼전 아내가 자신의 보모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와 함께 머물렀던 공간에서 움직일 줄 몰랐던 남자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새로운 모습,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내력을 알고 싶었다. 아내가 머물렀던 흔적을 찾아 난생 처음 새로운 곳을 향해 길을 떠났던 것이다. 부담스럽다고 여겼던 버나뎃과 버나뎃의 아들 네이든이 모는 자동차를 타고 말이다.
어떤 삶이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서 페퍼가 아내의 부츠 속을 더듬지 않았더라면 아내의 참 팔찌는 누군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을 것이고, 아서 페퍼는 자신과 만나기 전의 아내 모습을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신이 모르는 아내의 삶이 두렵고 불안했지만 그것을 향해 나아갔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며 낯선 사람과의 우정을 나눌 수도 있었고, 아내의 담당이었던 딸과 아들과의 관계도 다시금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미리엄이 걸어왔던 삶은 자유롭고 열정적이었다. 자신과의 삶이 너무 무료하지 않았을까 염려했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픔을 간직했으나 누구보다도 아서와의 삶을 사랑했던 미리엄이었다.
앞서 아들 댄과 루시는 아내 미리엄의 담당이었다고 했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딸과 아들이었다. 아내의 장례식에 조차 참석하기 어려웠던가. 서운했던 마음도 있었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묻지 않았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했다고 해야 맞겠다. 하지만 미리엄의 자취를 살펴보며 자식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편함을 느꼈지만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이웃들의 새로운 관계도 달라졌던 것이다.
어쩌면 나도 이 웅덩이에 갇혀 있었던 건지 몰라. 그가 생각했다. 비록 두려운 미지의 세계일지라도, 나도 바다로 나아가야 해. 그러지 않으면 말라 죽어버릴 테니까. (368페이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가 마음을 열고 사람들을 대하게 되니 그들도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닫았던 마음을 열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딸 루시와의 관계도, 아들 댄과의 관계도 달라진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만 빠져있지 않고, 이제 그만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누구나 삶이 어렵다.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있어 우리 사회는 아직 따스한 관계를 유지하는지도 모른다. 미리엄을 잃은 아서를 늘 살펴주었던 버나뎃이 있었고, 버나뎃의 아들 네이든의 말을 묵묵이 들어주었기에 아서와 마음을 터놓는 관계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앞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 역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일지라도 우리는 배워야 할 게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가족과 사랑하는 방법도, 누군가를 포용하는 것도, 용기를 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