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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악녀
페이 웰던 지음, 김석희 옮김 / 쿠오레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요즘 TV 드라마를 보면 '불륜-복수-줌데렐라' 3종 세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보통은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게 줌데렐라로 변신해 멋지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아침 드라마는 건전할수록 시청률이 침묵한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침 드라마는 물론이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TV를 시청하는 저녁 드라마에서도 이 3종 세트가 빛을 발하고 있다.
진부하다. 진부하다 못해, 진부한 소재라고 말하는 것조차 진부하다. 이 진부한 3종 세트는 TV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페이 웰던의 『에덴의 악녀』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1983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영국 BBC 방송의 드라마로, 메릴 스트립이 등장하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발표된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꾸준히 번역되고 있다. 왜 이토록 진부한 소재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는 것일까?
에덴 그로브에 사는 루스는 잘생긴 회계사 남편과 두 아이를 두었지만 그리 행복하지는 않다. 남편 보보가 자신과는 정반대의 외모를 가진 소설가 메리 피셔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메리 피셔는 바닷가 절벽에 있는 하얀 등대탑에 살고 있며 보보를 회계사로 들일만큼 돈이 많은 미인이다. 어느날 보보는 부부 싸움 끝에 루스에게 "당신은 악녀야"라는 말을 던지고 메리 피셔에게 간다. 그동안 루스는 자신이 남편을 잘 내조하는 현모양처라고 생각하며 남편이 아무리 뻔뻔한 짓을 해도 참고 있었지만, '악녀'라는 소리를 듣게되자 더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악녀니까. 악녀는 참을 필요도 없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빼앗으면 되니까. 루스는 남편과 메리 피셔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비록 그녀가 복수를 꿈꾸며 줌데렐라로 변신해 가는 모습은 진부하지만, 그녀가 변신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전혀 진부하지 않다. 그녀는 돈과 지위 등으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위선을 발가 벗겨 놓고, 비웃음을 던져준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남편은 철저하게 몰락시키고, 그 원인이 된 메리 피셔는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은 철저하게 메리 피셔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보다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덕분에 읽는 이로 하여금 현실 속에서는 행할 수 없는 대리 만족감을 갖게 한다. 이것이 바로 『에덴의 악녀』가 끊임없이 변주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2008/05/28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