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11쪽

   이것은 톨스토이가 1877년에 쓴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문장입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첫 문장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그의 저작  『총, 균, 쇠』에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글을 보면 이 첫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략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읽은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 문장에서 몇 마디만 바꾸면 바로 톨스토이의 위대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유명한 첫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문장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서로 성적 매력을 느껴야 하고 돈, 자녀 교육, 종교, 인척 등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에 필요한 이 중요한 요소들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난다면 그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법칙을 확대하면 결혼 생활뿐 아니라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흔히 성공에 대해 한 가지 요소만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중요한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들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234~235쪽

   안나 카레니나오빠 스테판 아르카디이치 오블론스키가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바람에 올케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와 불화가 생기자 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페테르부르크(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옵니다. 그녀는 기차 안에서 브론스카야 백작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모스크바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백작부인을 마중 나온 아들 브론스키와도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그렇게 처음 만난 안나와 브론스키는 첫 눈에 서로에게 반해버립니다.
   그러나 안나는 이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과 결혼해 세료쥐아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고, 브론스키 또한 다리야의 막내 여동생인 키티를 만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심지어 브론스키에게 반한 키티는 그가 청혼하기를 기다리며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의 청혼을 거절해 버립니다. 브론스키에게 흔들리는 마음을 눈치챈 안나는 스테판 부부를 화해시키자마자 서둘러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데, 브론스키 또한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녀를 따라 나섭니다.

   그가 그림자 속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얼굴과 눈의 표정을 읽었다. 아니, 읽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어제 그토록 강하게 그녀에게 작용했던 그 은근하고 황홀한 표정이었다. 요 며칠간 몇 번이나 아니 방금전만 해도 그녀는 브론스키 따위는 도처에서 숱하게 만날 수 있는 여러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를 생각하는 것조차 점잖지 못한 일이라고 혼자서 되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지금 이렇게 그와 만나게 되자, 해후의 첫 순간에 느닷없이 그녀를 붙든 것은 기쁨과 자부심이었다. 그녀는 어째서 이런 곳에 그가 와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마치 그가 그녀에게 그저 당신이 있는 곳에 있기 위해서 왔다고 이야기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정확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1권 205~206쪽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 나타난 브론스키를 사람들은 '안나의 그림자'라고 부릅니다. 안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타나서 그녀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어 버립니다. 안나 또한 그런 브론스키에게 점점 빠져들어 그녀의 남편까지 둘 사이를 눈치챌 정도에 이릅니다. 남편 알렉세이는 그녀에게 조용히 경고합니다.

   '결국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혼잣말을 계속했다. '그녀의 감정이나 그밖의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그녀 양심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내 의무는 분명히 결정되어 있다. 가정의 장(長)으로서 나는 그녀를 지도해야 할 의무가 있고, 따라서 얼마쯤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발견한 위험을 지적하여 경계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 권한을 행사하여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주의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1권 286~287쪽

   "내가 당신에게 경고하고 싶은 건 말이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부주의와 경솔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씨를 뿌릴지도 모른다는 거요. 오늘 당신과 브론스키가(그는 이 이름을 천천히 사이를 두고 정확하게 발음했다) 지나치게 활발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꽤 여러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던 모양이니까." 1권 290쪽

   남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자, 남편 알렉세이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며 이혼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동안 아내를 의심해 온 알렉세이는 '오랫동안 앓던 이를 빼버린 것과 같은 느낌'(2권 86쪽)이라고 하면서도 '그녀가 타락하면서 그한테 튀기어 더럽혀놓은 진창을 털어내고, 활동적이고 명예롭고 유익한 자기 삶의 길을 계속 걸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고 가장 점잖고 가장 이로우며, 따라서 가장 정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2권 87쪽)로 고민합니다. 그는 '이혼의 시도는 다만 그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비방하고 공격하려는 적들에게 뜻밖의 기회'(2권 91쪽)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사실 안나와 브론스키도 확신이 없습니다. 알렉세이의 지붕 아래서 모든 것을 누리며 편안하게 살고있는 안나가 그 편안함을 버리고 불륜녀라는 딱지를 평생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심지어 사랑하는 아들 세료쥐아를 평생 보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브론스키는 돈도 없고 심지어 군대에 몸담고 있는데, 그녀를 데리고 떠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을까요?
   이런 이유들 때문에 안나가 브론스키의 딸을 낳고, 법적으로 알렉세이의 딸이 되어버려도 그들은 결정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괴로움만 남긴채 이혼문제를 오랫동안 질질 끌어갑니다.

   가정생활에서 무엇인가를 꾀하기 위해서는 부부 사이에 완전한 분열이나 혹은 사랑의 일치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부부관계가 애매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에는 어떠한 계획도 실행될 수 없는 것이다. 3권 369쪽

   한편, 키티에게 거절 당한 레빈은 시골로 내려가 농장 일에 집중하지만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키티에게 달려가 다시 청혼을 합니다. 키티의 마음을 얻어 결혼하게 된 레빈은 늘 고민이 많습니다. 평생 일하지 않아도 즐기며 살 수 있는 계급과 평생 농사를 짓고 일을 해도 그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계급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이라던지, 비합리적이지만 지금까지 늘 해오던 방식만 고수하며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떤 방식이나 사교계에 권태를 느끼면서도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일은 모두 쓸데없는 짓'(3권 216쪽)이라고 말합니다.
   레빈의 이런 고민들은 톨스토이의 사상과도 일맥상통 합니다. 톨스토이는 농노제와 같은 불합리한 계급제도에 반대했고 자본주의가 몰고 온 부의 불평등을 혐오했지만 혁명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168쪽) 그는 각자가 욕망을 줄인다면 골고루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레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도 레빈은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 러시아에서 고민하는 지식인이었던 '톨스토이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아니, 자넨 행복한 사내야. 자네가 좋아하는 것은 뭐든 가지고 있거든. 말을 좋아한다면 말이 있고, 개가 있으니 사냥도 할 수 있고, 농장도 있으니 말일세."
   "그건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만 만족하고 없는 것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는 덕분이겠지." 1권 320쪽

   안나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 안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레빈 조차 그녀를 보자마자 마음이 흔들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그녀는 마지막 또한 치명적으로 끝내버립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브론스키를 선택한 안나는 브론스키의 사랑이 변할까봐 의심하고 괴로워하다가, 끝내 그 괴로움 때문에 달려오는 열차 속으로 뛰어들어 갑니다. 비록 그 방법은 잔인했지만 그녀는 열차 속으로 뛰어들 때 조차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합니다.

   '저기로, 저 한가운데로. 그리고 나는 그이를 벌하고 모든 사람들과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자.' 3권 427쪽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성호를 긋는 이 익숙한 동작이 그녀의 마음에 처녀 시절과 어렸을 때의 일련의 추억을 온전하게 불어일으켰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를 위해서 삼라만상을 뒤덮고 있던 어둠이 걷히고 한순간, 생이 그 모든 빛나는 과거의 환희화 더불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녀는 다가오는 두번째 차량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바퀴와 바퀴 사이의 한가운데가 그녀 앞까지 온 바로 그 순간에 그녀는 빨간 손주머니를 내던지고 두 어깨 사이에 머리를 틀어박고 두 손을 짚고 차대 밑으로 넘어지면서, 그리고 곧 일어나려고 하는 듯한 가벼운 동작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 순간 그녀는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공포를 느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뛰어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 거대하고 무자비한 것이 그녀의 머리를 꽝 하고 떠받고 그 등을 할퀴어 질질 끌어갔다. '하느님,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소서!' 그녀는 이미 저항하기엔 늦었음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한 농부가 뭐라고 웅얼거리면서 쇠붙이 위로 몸을 구부리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불안과 기만과 비애와 사악으로 가득 찬 책을 그녀에게 읽게 해주던 촛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확 타올라 지금까지 어둠에 싸여 있던 일체의 것을 그녀에게 비추어 보이고는 파지직, 소리를 내고 어두워지다가 이윽고 영원히 꺼져버렸다. 3권 427~428쪽

   1870년대에 쓰여진 러시아 소설, 3권을 합치면 1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등장인물이 150명이 넘고, 그들의 이름 조차 너무나 길어서 압박이 심한 톨스토이의 대작. 그러나 읽기 시작하면 의외로 페이지가 잘 넘어갑니다. 물론 초반에는 이름 때문에 일일이 노트에 정리하며 읽느라 고전했지만, 그 이름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눈에 익기 시작하면 놀랍도록 술술 잘 읽힙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습니다. 시대와 상황, 그리고 나라까지 다르지만 결혼에 임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책임감은 지금과도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 시절 사람들도, 특히 남자들도 결혼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갖춰야 했고, 아무리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여자들은 집안일과 육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공감가는 문장이 많은데, 특히 그 중에서도 안나와의 결혼을 고민하는 브론스키에게 동료가 해 준 말이 인상적입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두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졌을 때뿐이야. 그리고 이것이 결혼이야. 난 그 사실을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느꼈지. 말하자면 갑자기 손이 자유로워졌으니까.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고 이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있는 날에는 손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2권 151쪽

      『안나 카레니나』를 덮으면서 고민에 빠집니다. 어떻게 사는게 옮은 일일까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주위 사람들, 특히 가족의 행복까지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반대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불행쯤은 눈감아도 되는 것일까요?
 
    완독을 하고나니, 문학동네가 세계문학전집을 기획하면서 왜  『안나 카레니나』를 첫번째로 내세웠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 리뷰를 통해 안나의 치명적인 결말을 이미 알아버렸다고 읽기를 포기하지 마세요. 저 또한 그 결말을 알고 읽은 책이었지만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진가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자유파 사람들은 결혼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이며 단연코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파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가정생활은 스테판 아르카디이치에게 이렇다 할 만족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의 기질과는 아주 딴판인 허위와 기만을 강요했다. 1권 23쪽

   난 이렇게 생각해요…… 만약 사람의 머리가 각기 다르듯이 생각도 다르다고 한다면, 마음이 각기 다른 만큼 사랑의 종류도 다를 것이라고요. 1권 27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단 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시인이 되어버린 알렉산드르 푸시킨. 그는 러시아의 대문호로 시 뿐아니라 희곡,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썼습니다.
   『대위의 딸』은 푸시킨이 쓴 유일한 장편소설로, '푸가초프의 반란(1773-1775)'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쓴 것입니다. 석영중이 쓴 「뿌쉬낀의 삶과 작품 세계」에 줄거리가 잘 요약되어 있으니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대위의 딸』은 뾰뜨르 그리뇨프라는 귀족의 자제가 체험하는 뿌가쵸프의 반란을 가벼운 필치로 묘사한 소설이다. 그리뇨프는 벨로고르스끄 요새로 가는 도중 눈보라를 만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데 그때 어느 농부가 나타나 길을 안내해 준다. 그리뇨프는 하인 사벨리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 안내자 농부에게 토끼털 외투를 선사한다. 요새에 도착한 그리뇨프는 사령관인 미로노프 대위의 가족과 친해지고 대위의 딸 마리야와 사랑하게 된다. 선임 장교 쉬바브린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질투하여 여러 가지 방해를 한다. 그러던 중 뿌가쵸프의 반란군이 요새에 쳐들어와 사령관 부부는 처형되고 쉬바브린은 뿌가쵸프 편으로 넘어간다. 그리뇨프는 자기에게 길을 안내해 준 농부가 바로 뿌가쵸프였음을 알게 되고, 뿌가쵸프 역시 그리뇨프를 알아보고는 토끼털 외투에 대한 사례로 그의 목숨을 살려 준다. 뿌가쵸프의 도움으로 마리야와 그리뇨프는 위험에서 벗어나지만 반란이 진압된 뒤 쉬바브린의 무고로 그리뇨프에게는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마리야는 뻬쩨르부르그로 가서 예까쩨리나 여제에게 그리뇨프의 사면을 탄원하고 그리뇨프는 여제의 특사로 풀려난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 221쪽

   줄거리 자체는 지극히 평범해 보입니다. 우연히 도움을 베푼 사람 덕분에 목숨도 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인데, 『안나 까레니나』나 『죄와 벌』에서 보았던 문학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푸쉬킨의 소설에는 그만의 유머와 해학이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곤란에 빠지거나 목숨이 위태로워져도 절대 심각해지지 않고, 유머를 날려버립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의 유머입니다.

  저런! 세상에 그런 부자도 다 있구먼! 우리는 말이요, 젊은이, (…) 다행히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하지만 문제는 우리 미샤라우. 혼기는 찼는데 주어 보낼 게 있어야지? 참빗 한 개에, 빗자루 한 개, 목욕탕에 갈 3꼬뻬이까짜리 동전 한 닢뿐이라우. 착한 신랑감이 나타나면 좋으련만, 안 그러면 평생 노처녀로 늙게 생겼수. 42쪽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그의 시구를 소설로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요? 비록 현실은 암울하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웃어보자는 푸슈킨 식의 따뜻하고 신랄한 유머 덕분에 러시아 문학은 지루하고 딱딱하다는 편견까지 깨버릴 수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도 『청춘의 독서』에서 "이렇게 '웃기는' 러시아 소설은 처음 보았다. 상황과 등장인물 모두가 희극적"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 푸슈킨의 삶 또한 희극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위의 딸』을 쓰고 3년 뒤인 1837년에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바람둥이 프랑스 남자 단테스와 자신의 아내 나탈리아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와 결투를 합니다. 그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어 숨을 거두게 되는데, 도스토예프스키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 '소문'은 민중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푸슈킨을 견제하던 차르 니콜라이 1세가 일부러 퍼뜨린 음모라는 설도 있습니다.

   푸슈킨은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비롯한 수많은 러시아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1세대 작가이면서도 종종 그들과 비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실 문제에 덜 예민했다는 것인데, 만약 그가 38세에 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천히 소리 내어 읽습니다. 서사시의 운율이 느껴지도록 소리 내어 읽습니다. 비록 우리말로는 그 운율을 잘 느낄 수 없다 하더라도, 아주 오래전 방식을 따라 소리 내어 읽습니다. 애초에 『일리아스』는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씌어진 것이 아니라 구송(口誦)을 위해 쓰여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자의 사용이 아직 생활화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문학작품이든 역사 이야기든 어디까지나 구송(口誦)을 위해 쓰여진 것이지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씌어졌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메로스 당시의 텍스트는 시인 또는 음송자(rhapsodos)들이 시를 낭송할 때 참고하기 위해 요지만 기록해두는 식의 간단한 것에 불과했으며, 전승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구전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텍스트가 완전히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일 때는 후기의 음송자들에 의해 새로운 내용이 첨가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으며, 실제로 호메로스의 텍스트에서는 그런 부분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해설」 775~776쪽

   호메로스가 정리해서 쓴 『일리아스』는 인간들의 싸움에 신들이 끼어들어 싸움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서사시로 그려낸 것입니다. 이 싸움을 촉발시킨 것은 헬레네의 미모에 반한 철없는 트로이아 왕자 파리스(일명 알렉산드로스)입니다. 그는 이미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된 헬레네를 몰래 트로이아로 데려와 두 나라 간의 싸움을 일으키게 되지만 파리스가 헬레네에게 반한 것도, 싸움이 더 크게 번지는 것도 모두 신들 때문입니다.

   "가증스러운 파리스여, 외모만 멀쩡하지 계집에게 미친 유혹자여!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거나 장가들기 전에 죽었어야 했다. 그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지. 이렇게 만인이 보는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멸시받느니 그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 머나먼 나라에서 창수들의 며느리인 미인을 데려와 네 아버지와 도시와 모든 백성들에게는 큰 고통을, 적에게는 기쁨을, 그리고 너 자신에게는 굴욕을 안겼단 말이냐?" _헥토르, 102~103쪽

   아내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연합군을 모아 함선을 타고 트로이아로 진격합니다. 이 전쟁은 무려 9년 동안이나 이어지고, 이 사이 연합군 사이에서 최고 영웅으로 손꼽히는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이 전리품으로 얻은 여자 때문에 사이가 틀어져 버립니다. 아킬레우스는 더 이상 아가멤논 왕을 위해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전선에서 물러납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저를 단명하도록 낳으셨으니, 높은 곳에서 천둥 치는 올륌포스의 제우스께서는 명예라도 제게 주셔야지요. 하거늘 지금 그분께서는 작은 명예도 주시지 않아요. 넓은 땅을 다스리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저를 모욕하고, 제 명예의 선물을 몸소 빼앗아 가졌으니 말예요." _아킬레우스, 43쪽

   아킬레우스가 바다의 여신인 어머니 테티스에게 이렇게 읍소하자, 테티스는 제우스에게 달려가 전쟁에서 빠진 아킬레우스를 사람들이 아쉬워할 때까지 아카이오이족이 트로이아인들에게 짓밟히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헤라를 제외한 여신들에게는 언제나 마음이 넉넉한 제우스, 당연히 테티스의 간청을 들어줍니다.

   "아버지 제우스여! 내 일찍이 여러 신들 중에서 말이나 행동으로 그대를 도운 적이 있다면 내 소원을 이뤄주시어 내 아들의 명예를 높여주소서. 그 애는 모든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요절할 운명을 타고났나이다. 그럼에도 지금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이 그 애를 모욕하여 그 애의 명예의 선물을 몸소 빼앗아 가졌나이다. 그러니 그대가 그 애의 명예를 높여주소서, 조언자이신 올륌포스의 제우스여! 아카이오이족이 그 애를 존중하고 그 애에게 전보다 큰 경의를 표할 때까지 부디 트로이아인들에게 승리를 내리소서." _테티스, 50~51쪽

   한편, 트로이아인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철없는 행동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지만 무공이 뛰어나지 못해 앞장설 수 없었던 파리스 대신 그의 형 헥토르가 아카이오이족을 상대하기 위해 앞장섭니다. 헥토르가 수많은 아카이오이족을 죽이며 무훈을 세울 때도, 아카이오이족들이 제발 도와달라며 간청을 해도 아킬레우스는 나서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헥토르의 손에 아킬레우스가 너무나도 아끼는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죽임을 당하게 되자, 이에 격분한 아킬레우스가 다시 싸움터로 뛰어듭니다. 아킬레우스가 싸움에 뛰어들자 전세는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립니다. 아킬레우스가 뛰어난 영웅이기도 하지만 그를 아끼는 제우스의 개입 때문입니다. 아킬레우스에게 목표는 오직 하나, 헥토르를 죽여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하고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 것뿐. 그는 헥토르를 죽인 다음 그의 시신을 끌고 가 함선 옆에 매달고 전사한 그를 모욕합니다.

   "헥토르의 시신과 도시의 파괴자 아킬레우스를 둘러싸고 아흐레 동안 불사신들 사이에 시비가 벌어졌소. 그들은 훌륭한 정탐꾼인 아르고스의 살해자에게 시신을 빼내라고 재촉하고 있소. 하나 나는 앞으로도 그대의 존경과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영광을 아킬레우스에게 내리기로 했소. 그대는 당장 진영으로 가서 그대의 아들에게 내 명령을 전하되 그가 광기에 사로잡혀 헥토르를 부리처럼 휜 함선들 옆에 붙들어두고 돌려주지 않는 것을 신들이 못마땅해하고 모든 신들 중에서 특히 내가 가장 노여워한다고 말하시오. 그러면 그는 내가 두려워서라도 헥토르를 내주게 될 것이오."_제우스, 685~686쪽

   아킬레우스의 무자비한 파괴와 만행을 보다 못한 신들이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라고 아킬레우스에게 명합니다. 이에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늙은 아비가 그의 시신을 가져가게 하고, 트로이아인들이 헥토르의 장례를 치룰 수 있게 열하루 동안 싸움을 멈춥니다.

   "그대가 진실로 고귀한 헥토르의 장례를 마치게 해주실 생각이라면, 아킬레우스여! 이렇게 해주시면 고맙겠소. 아시다시피 우리는 도성에 갇혀 있고 산에서 나무를 해오려면 멀리 나가야 하오. 게다가 트로이아인들은 잔뜩 겁을 먹었소. 아흐레 동안 우리는 집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열흘째 되는 날 그를 땅에 묻고 백성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열하루째 되는 날 그를 위해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인즉, 열이틀째 되는 날 꼭 필요하다면 우리는 싸울 수 있을 것이오." _프리아모스, 708쪽

   『일리아스』는 "이렇게 그들은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장례를 치렀다."(714쪽)로 끝나지만, 트로이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지루한 전쟁을 끝내 줄 트로이 목마는 『일리아스』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싸움을 지켜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인간과 신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족이면서 영웅인 아킬레우스의 영웅답지 않은 옹졸함입니다. 그는 전리품으로 주어진 여자 한 명 때문에 토라져, 수많은 영웅들과 동족들이 죽어나가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적장인 헥토르를 죽인 다음, 그의 시신을 끌고 다니며 능멸하는 모습 또한 지극히 사사로워 보입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지도 모르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웅의 면모라고는 할 수 없겠죠. 이것은 필멸하는 인간으로 태어나 목숨이 다할 때까지 구걸하지 않고 트로이아인들을 위해 싸운 헥토르가 더 멋져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들 또한 사사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파리스가 헬레나에게 반하게 된 것도 결국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의 유치한 미모 경쟁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들은 자신이 총애하거나 자신의 피가 섞인 인간들이 있으면 사사건건 개입합니다. 이는 제우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 외에 다른 신들이 전쟁에 개입할까 봐 올륌포스 산 위에서 꼼짝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기도 합니다.
   언제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습니다. 이 전쟁에서도 여자의 표정은 아무도 살피지 않습니다. 여자는 감정이 있는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양이나 황금처럼 셀 수 있는 물질처럼 취급됩니다. 그나마 헥토르의 아내인 안드로마케와 최고 미인으로 손꼽히는 헬레네 정도만 감정이 있는 존재로 다뤄질 뿐입니다.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이토록 방대한 서사시를 흥미롭게 써낸 호메로스와, 이렇게 오롯이 옮겨 써 준 번역가 천병희 선생의 힘을 느낍니다. 비록 인간은 필멸하지만, 인간들의 노래는 계속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9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 『왜 고전을 읽는가』 9쪽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왜 고전을 읽는가』 12쪽

   책 좀 읽어본 사람들은, 유명 저작을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에 '처음'이면서도 '다시'라는 말을 붙여 궁색한 위선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쉽게 엄두를 내기 힘든 책이긴 하지만,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다시 읽습니다. 이전에는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읽어냈습니다.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지만, 결말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스킵해 주세요.
책의 목차를 살펴보는 것도 삼가해 주세요. 책의 목차만 봐도 결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아버지 표도르는 첫번째 아내와의 결혼에서 큰아들 드미뜨리와 상당한 재산을 얻습니다. 그녀가 죽자 두번째 아내와 재혼해 이반과 알료샤를 얻지만, 그녀 역시 죽어버립니다. 표도르는 부성애가 전혀 없는 인물로 세 아들들을 방치하다시피 하며,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들의 손에서 키워져 다른 길을 갑니다. 드미뜨리는 군사 학교를 졸업 후 군인이 되고, 이반은 대학을 졸업한 후 논문을 쓰며 지식인으로 거듭납니다. 셋째 알료샤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는 조시마 장로의 제자가 됩니다.
   죽은 어머니의 유산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던 드미뜨리가 아버지로부터 그 몫을 받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온가족이 오랜만에 달갑지 않은 회합을 하게 됩니다. 그 회합은 알료샤가 머물고 있는 수도원에서 조시마 장로를 모시고, 이반이 아버지와 큰형의 중재 역할을 하며 진행되었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했지만 아버지의 치사한 광대짓으로 그 회합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사실 아버지 표도르와 드미뜨리는 금전적인 문제뿐 아니라 한 여자 때문에 서로 얽혀 있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 여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저울질만 하고 있고 진짜 마음은 5년전에 자신을 버리고 간 폴란드 신사에게 가 있습니다.
   아버지처럼 난폭하고 욕정이 넘쳤던 드미뜨리는 술을 마시면 사람들과 싸우고,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기도 합니다. 또, 그루셴까와 아버지가 자신 몰래 만날까봐 두 사람을 감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 표도르가 죽습니다. 누군가 집안으로 침입해 흉기를 휘둘렀고, 심지어 돈까지 훔쳐갔다고 합니다. 어린 드미뜨리를 키웠던 하인 그리고리는 도망치는 드미뜨리에게 맞아 머리를 다치기도 합니다. 모든 정황과 증인들이 드미뜨리가 '친부를 살해한 범인'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눈물 덕분인지, 어머니께서 하느님께 기도드린 덕분인지, 아니면 그 순간 성령이 내게 입을 맞춘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악마는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창문에서 물러나 담장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 그때 처음으로 나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지르며 창문에서 물러났습니다. 그 장면을 나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담장으로 향하는 정원을 가로질러 갔습니다…….그런데 내가 담장을 넘으려는 순간 그리고리가 뒤쫓아와서……." 825쪽

   "나는……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단지 창문 아래에서 아버지를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단지 그것뿐이에요……." 826쪽

   "나는 죽이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죽일 수도 있었고, 하마터면 죽일 뻔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사실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으며, 내 수호 천사의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비열한 것입니다, 비열하단 말입니다! 그건 내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죽이지 않았어요, 죽이지 않았다고요!" 830쪽

   정말 드미뜨리는 친부 살인범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모든 정황과 증인들이 일관되게 한 사람을 지목할 때는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진범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평소 드미뜨리의 행동과 말을 고려했을 때, 약간의 트릭만 준비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드미뜨리의 변호사 페쮸꼬비치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적어도 단순한 선입관으로 한 인간의 운명을 파멸시키는 일은 주저했을 겁니다. 물론 우리의 피고가 그런 선입견을 갖도록 만들었더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1286쪽

   "여러분들은 러시아의 재판이 단순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파멸된 인간을 구원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는 법률과 형벌이 존재할 뿐이라면, 우리들에게는 영혼과 사상이, 파멸한 인간의 구원과 부활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 우리 피고이 운명은 오직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러시아의 운명도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구해 내실 것입니다." 1298쪽

   변호사가 검사 측의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반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은 그에게 유죄를 선고합니다. 그는 20년형을 받아 시베리아로 떠나야 합니다. (←※)

   『죄와 벌』처럼 재판 이후에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이야기가 더 나올 것 같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사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미완성 작품입니다. 애초에 도스또예프스끼는 2부작으로 기획했지만, 첫 번째 이야기를 완성한 지 3개월 후에 죽음을 맞이하는 바람에 완성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나름나름으로 상상해 볼 수 밖에요.

   결말을 미리 알았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노여워 마세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줄거리가 아니니까요. 우리는 '친부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누는 수많은 지적 대화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재판이 끝난 이후 도스또예프스끼는 일류샤의 장례식을 한 에피소드로 보여줍니다. 한때 드미뜨리는 술을 마신 후 일류샤 아버지의 수염을 잡아당기며 행패를 부린 적이 있습니다. 이를 본 일류샤는 우연히 만난 알료샤의 손가락을 깨물어 버립니다. 일류샤의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알료샤는 그때부터 줄곧 일류샤를 후원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일류샤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맙니다. 일류샤의 장례식에 참석한 알료샤는 이런 조사를 남깁니다.

   "어린 시절에 간직했던 아름답고 신성한 추억이 가장 훌륭한 교육이 될 겁니다. 인생에서 그런 추억을 많이 간직하게 되면 한평생 구원받게 됩니다. 그런 추억들 중에 단 하나만이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게 된다면, 그 추억은 언젠가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1345쪽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드미뜨리를 구원해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국 구원받지 못한거죠. 하지만 알류샤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의 세대는 구원받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들은 구원 받을 수 있길 바라며 조사를 남깁니다.

   이렇게 에피소드들은 태형, 학대, 종교, 심리분석, 교육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주제로 거론되며, 우리는 이 에피소드들을 통해 도스또예프스끼의 사상과 내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해서 버려져야 할 논제들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들이 많습니다. 시대가 이렇게나 흘렀는데도 왜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많은걸까요?
   그러므로 이 책은 쉽게 읽히거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며, 단 한번만 읽어서도 안되는 '고전'입니다. 그러니 좌절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고전이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책이다. 『왜 고전을 읽는가』 12쪽


   너도 까라마조프에 불과해, 너도 완전히 까라마조프라고. 144쪽

   저는 형님 이야기 때문에 얼굴이 빨개진 게 아니에요. 형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형님과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것은 하나의 똑같은 사다리예요. 저는 가장 낮은 계단에, 형님은 열세 번째 계단의 어느 높은 곳에 있을 뿐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완전히 똑같은 부류일 뿐이죠. 맨 아래 계단에 발을 디딘 사람은 어쨌든 반드시 위의 계단으로 올라가게 마련이죠. 194쪽

   그런데 요즘 정신병을 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도, 나도,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정신병을 앓고 있고, 또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잖아요. 1002쪽

   내가 지금 심리 분석을 해본 것은 인간의 심리란 마음대로 자유로이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다루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심리라는 것은 가장 성실한 사람마저도 부지불식간에 소설가로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나는 심리 분석의 악용과 남용을 감히 경고하는 바입니다. 1264쪽

   만일 어떤 사람이 자다가 별안간 신음소리를 들었다고 합시다. 잠이 깬 그는 수면을 방해받은 것이 얄밉지만, 다시 금세 잠이 들겠지요, 두 시간쯤 지난 후 다시 신음소리가 나면 잠이 깼다가 또 잠들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신음소리를 듣고 깨어났다가 잠이 들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 사람은 하루 저녁에 세 번 잠을 깼습니다. 아침이 되면 그는 누가 밤새도록 신음하는 바람에 한 잠도 못 잤다고 불평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 시간씩 자고 있는 동안 일어난 일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잠이 깬 몇 분만을 기억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밤새도록 수면을 방해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1284쪽

   왜 우리는 이 '불행'을 좀더 가까이서 관찰할 필요가 있는 걸까요? 128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녀는 실패한 희곡 작가였다!
   헬렌 한프는 뉴욕에서 평생 글을 썼지만 "나는 실패한 희곡 작가였다."(154쪽)라고 자평할 정도로 그리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작가였던 그녀는 한 평론지에 실린 '희귀 고서점' 광고를 보고 런던 채링크로스 가 84번지에 있는 마크스 서점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절박하게 구하는 책들이 있는데, 만약 5달러가 넘지 않는다면 보내달라고 말이죠. 얼마 후 서점 담당자 프랭크 도엘로부터 그녀가 원하는 책과 함께 편지가 날라옵니다. 그렇게 그들의 편지는 시작되었습니다.

   1949년 10월 5일에 시작된 그들의 편지는, 1969년 1월 8일 도엘이 죽었다는 편지가 날아올 때까지 20년 동안이나 계속됩니다. 그들이 주고받은 것은 단순히 주문서와 청구서뿐만이 아닙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호황을 맞이한 뉴욕은 물자가 풍부했지만, 런던은 한달에 달걀 하나를 배급받을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헬렌은 뉴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달걀이나 햄 같은 것들을 편지와 함께 보내주고, 서점 사람들도 사진이나 직접 짠 테이블보 등을 선물로 보내줍니다. 그들의 우정 어린 편지들은 가슴 설레게 했고, 도엘의 소식을 전하는 마지막 편지는 눈물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 편지들을 읽고 있는 독자가 이렇게 애틋하게 느낄 정도이니, 당연히 헬렌 한프는 런던 17번가를 뉴욕 17번가보다 더 가깝게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뉴욕 이스트 가와 런던 채링크로스 가가 지리적으로 5,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여기 이 자리에서는 런던이 17번가보다 훨씬 가깝답니다. 31쪽

   그녀는 항상 런던 채링크로스 가로 휴가를 떠나길 고대하지만, 서점 사람들이 잠자리를 얼마든지 제공해 주겠다고 했지만, 가난한 작가였던 그녀가 비행기 티켓 값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미루다보니 결국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서점을 떠나게 됩니다.

   나는 실패한 희곡 작가였다. 나는 아무데도 가지 못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154쪽

   프랭크 도엘이 죽은 후, 헬렌 한프는 그와 주고 받았던 편지들을 챙겨 출판사로 향합니다. 이 편지들 덕분에 그녀는 작가로서는 누려보지 못한 인기를 얻게 되지만, 전세계에서 날아오는 편지에 답장을 보내느라 인세로 받은 돈이 모두 우표 값으로 나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대로가 나을지도. 너무나 긴 세월 꿈꿔온 여행이죠. 단지 그곳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영국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요. 오래 전에 아는 사람이 그랬어요. 사람들은 자기네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러 영국에 간다고. 제가, 나는 영국 문학 속의 영국을 찾으러 영국에 가련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더군요. "그렇다면 거기 있어요." 어쩌면 그럴 테고, 또 어쩌면 아닐 테죠. 주위를 둘러보니 한가지만큼은 분명해요. 여기에 있다는 것. 이 모든 책을 내게 팔았던 그 축복 받은 사람이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큰 신세를 졌답니다. 145쪽

   그녀는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지금은 기념 동판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당신도 입맞춤을 보내주시겠어요?



   저는 전 주인이 즐겨 읽던 대목이 이렇게 저절로 펼쳐지는 중고책이 참 좋아요. 해즐릿이 도착한 날 '나는 새 책 읽는 것이 싫다'는 구절이 펼쳐졌고, 저는 그 책을 소유했던 이름 모를 그이를 향해 '동지!'하고 외쳤답니다. 18쪽

   여러분이 좀 덜 조심하여 카드를 쓰는 대신 속표지에다 글을 남기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행여나 책의 가치가 떨어질세라 노심초사하는, 서적상의 본분이 거기서 발휘된 거겠죠? 현재의 소유자에게는 가치를 높이는 일이었을 텐데 말이에요(그리고 미래의 소유자에게도 그랬을 거예요.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애가 좋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 답니다). 50쪽

   나도 영국행을 감행하여 나의 친애하는 서점을 직접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나한테 그럴 배짱만 있다면 말이야. 5,000킬로미터라는 안전한 거리가 있기에 그 난폭하기 짝이 없는 편지들을 써보낸 건데, 어느 날 거기에 들어가더라도 십중팔구는 내가 누군지 말도 안 하고 그대로 나와버릴 것 같아. 71쪽

   가장 애교 넘치는 부분에서 자꾸만 펼쳐지는 것이 마치 전 주인의 유령이 내가 읽어본 적 없는 것을 짚어주는 듯하답니다. 90쪽

   갈수록 나이가 들고 바빠지지만 더 부자가 되지는 않는군요.
138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프리쿠키 2018-01-18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책 이야기에 공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