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9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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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 『왜 고전을 읽는가』 9쪽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왜 고전을 읽는가』 12쪽

   책 좀 읽어본 사람들은, 유명 저작을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에 '처음'이면서도 '다시'라는 말을 붙여 궁색한 위선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쉽게 엄두를 내기 힘든 책이긴 하지만,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다시 읽습니다. 이전에는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읽어냈습니다.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지만, 결말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스킵해 주세요.
책의 목차를 살펴보는 것도 삼가해 주세요. 책의 목차만 봐도 결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아버지 표도르는 첫번째 아내와의 결혼에서 큰아들 드미뜨리와 상당한 재산을 얻습니다. 그녀가 죽자 두번째 아내와 재혼해 이반과 알료샤를 얻지만, 그녀 역시 죽어버립니다. 표도르는 부성애가 전혀 없는 인물로 세 아들들을 방치하다시피 하며,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들의 손에서 키워져 다른 길을 갑니다. 드미뜨리는 군사 학교를 졸업 후 군인이 되고, 이반은 대학을 졸업한 후 논문을 쓰며 지식인으로 거듭납니다. 셋째 알료샤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는 조시마 장로의 제자가 됩니다.
   죽은 어머니의 유산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던 드미뜨리가 아버지로부터 그 몫을 받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온가족이 오랜만에 달갑지 않은 회합을 하게 됩니다. 그 회합은 알료샤가 머물고 있는 수도원에서 조시마 장로를 모시고, 이반이 아버지와 큰형의 중재 역할을 하며 진행되었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했지만 아버지의 치사한 광대짓으로 그 회합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사실 아버지 표도르와 드미뜨리는 금전적인 문제뿐 아니라 한 여자 때문에 서로 얽혀 있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 여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저울질만 하고 있고 진짜 마음은 5년전에 자신을 버리고 간 폴란드 신사에게 가 있습니다.
   아버지처럼 난폭하고 욕정이 넘쳤던 드미뜨리는 술을 마시면 사람들과 싸우고,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기도 합니다. 또, 그루셴까와 아버지가 자신 몰래 만날까봐 두 사람을 감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 표도르가 죽습니다. 누군가 집안으로 침입해 흉기를 휘둘렀고, 심지어 돈까지 훔쳐갔다고 합니다. 어린 드미뜨리를 키웠던 하인 그리고리는 도망치는 드미뜨리에게 맞아 머리를 다치기도 합니다. 모든 정황과 증인들이 드미뜨리가 '친부를 살해한 범인'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눈물 덕분인지, 어머니께서 하느님께 기도드린 덕분인지, 아니면 그 순간 성령이 내게 입을 맞춘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악마는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창문에서 물러나 담장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 그때 처음으로 나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지르며 창문에서 물러났습니다. 그 장면을 나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담장으로 향하는 정원을 가로질러 갔습니다…….그런데 내가 담장을 넘으려는 순간 그리고리가 뒤쫓아와서……." 825쪽

   "나는……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단지 창문 아래에서 아버지를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단지 그것뿐이에요……." 826쪽

   "나는 죽이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죽일 수도 있었고, 하마터면 죽일 뻔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사실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으며, 내 수호 천사의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비열한 것입니다, 비열하단 말입니다! 그건 내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죽이지 않았어요, 죽이지 않았다고요!" 830쪽

   정말 드미뜨리는 친부 살인범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모든 정황과 증인들이 일관되게 한 사람을 지목할 때는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진범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평소 드미뜨리의 행동과 말을 고려했을 때, 약간의 트릭만 준비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드미뜨리의 변호사 페쮸꼬비치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적어도 단순한 선입관으로 한 인간의 운명을 파멸시키는 일은 주저했을 겁니다. 물론 우리의 피고가 그런 선입견을 갖도록 만들었더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1286쪽

   "여러분들은 러시아의 재판이 단순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파멸된 인간을 구원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는 법률과 형벌이 존재할 뿐이라면, 우리들에게는 영혼과 사상이, 파멸한 인간의 구원과 부활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 우리 피고이 운명은 오직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러시아의 운명도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구해 내실 것입니다." 1298쪽

   변호사가 검사 측의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반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은 그에게 유죄를 선고합니다. 그는 20년형을 받아 시베리아로 떠나야 합니다. (←※)

   『죄와 벌』처럼 재판 이후에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이야기가 더 나올 것 같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사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미완성 작품입니다. 애초에 도스또예프스끼는 2부작으로 기획했지만, 첫 번째 이야기를 완성한 지 3개월 후에 죽음을 맞이하는 바람에 완성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나름나름으로 상상해 볼 수 밖에요.

   결말을 미리 알았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노여워 마세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줄거리가 아니니까요. 우리는 '친부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누는 수많은 지적 대화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재판이 끝난 이후 도스또예프스끼는 일류샤의 장례식을 한 에피소드로 보여줍니다. 한때 드미뜨리는 술을 마신 후 일류샤 아버지의 수염을 잡아당기며 행패를 부린 적이 있습니다. 이를 본 일류샤는 우연히 만난 알료샤의 손가락을 깨물어 버립니다. 일류샤의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알료샤는 그때부터 줄곧 일류샤를 후원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일류샤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맙니다. 일류샤의 장례식에 참석한 알료샤는 이런 조사를 남깁니다.

   "어린 시절에 간직했던 아름답고 신성한 추억이 가장 훌륭한 교육이 될 겁니다. 인생에서 그런 추억을 많이 간직하게 되면 한평생 구원받게 됩니다. 그런 추억들 중에 단 하나만이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게 된다면, 그 추억은 언젠가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1345쪽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드미뜨리를 구원해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국 구원받지 못한거죠. 하지만 알류샤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의 세대는 구원받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들은 구원 받을 수 있길 바라며 조사를 남깁니다.

   이렇게 에피소드들은 태형, 학대, 종교, 심리분석, 교육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주제로 거론되며, 우리는 이 에피소드들을 통해 도스또예프스끼의 사상과 내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해서 버려져야 할 논제들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들이 많습니다. 시대가 이렇게나 흘렀는데도 왜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많은걸까요?
   그러므로 이 책은 쉽게 읽히거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며, 단 한번만 읽어서도 안되는 '고전'입니다. 그러니 좌절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고전이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책이다. 『왜 고전을 읽는가』 12쪽


   너도 까라마조프에 불과해, 너도 완전히 까라마조프라고. 144쪽

   저는 형님 이야기 때문에 얼굴이 빨개진 게 아니에요. 형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형님과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것은 하나의 똑같은 사다리예요. 저는 가장 낮은 계단에, 형님은 열세 번째 계단의 어느 높은 곳에 있을 뿐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완전히 똑같은 부류일 뿐이죠. 맨 아래 계단에 발을 디딘 사람은 어쨌든 반드시 위의 계단으로 올라가게 마련이죠. 194쪽

   그런데 요즘 정신병을 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도, 나도,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정신병을 앓고 있고, 또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잖아요. 1002쪽

   내가 지금 심리 분석을 해본 것은 인간의 심리란 마음대로 자유로이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다루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심리라는 것은 가장 성실한 사람마저도 부지불식간에 소설가로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나는 심리 분석의 악용과 남용을 감히 경고하는 바입니다. 1264쪽

   만일 어떤 사람이 자다가 별안간 신음소리를 들었다고 합시다. 잠이 깬 그는 수면을 방해받은 것이 얄밉지만, 다시 금세 잠이 들겠지요, 두 시간쯤 지난 후 다시 신음소리가 나면 잠이 깼다가 또 잠들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신음소리를 듣고 깨어났다가 잠이 들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 사람은 하루 저녁에 세 번 잠을 깼습니다. 아침이 되면 그는 누가 밤새도록 신음하는 바람에 한 잠도 못 잤다고 불평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 시간씩 자고 있는 동안 일어난 일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잠이 깬 몇 분만을 기억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밤새도록 수면을 방해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1284쪽

   왜 우리는 이 '불행'을 좀더 가까이서 관찰할 필요가 있는 걸까요? 1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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